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463)
464화 신과 신 (2)
한참을 고민하던 수호가 대뜸 물었다.
“나 어떻게 올라가냐?”
“형님도 참 답답하시오. 어찌 내게 물으시오?”
검객은 어이없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새장 같은 이곳에 갇힌 것도 억울한데, 나는 이 몸에 한 번 더 갇혔소. 팔병신을 앞에 두고 제 손톱 깨졌다고 아프다고 놀리는 거요?”
검객의 비유에 수호가 픽 웃었다.
“그래. 네가 더 답답하겠지.”
수호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어디 가시오?”
“어디든 가 봐야지. 짐작 가는 데라면 한 군데뿐이기도 하고.”
“으음.”
“왜? 혼자 남으려니까 쫄리냐?”
“다시 오시는 거요?”
검객의 목소리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저 두려움은 오직 장재식의 것인지, 낙송의 것도 포함된 것인지 모를 일이다.
“방법을 찾으면 재식이 몸을 가지고 다시 오지.”
“이 장재식이! 형님만 믿고 기다리겠소.”
수호가 피식 웃고는 개머리를 툭툭 두드려 주곤 길을 나섰다.
앉아서 고민해 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확인해 볼 데는 있고.’
수호는 길을 나서 걸었다.
공허의 공간을 걸을 때마다 그의 발치에 닿는 풀이 부서지듯 흩어졌고, 돌멩이들이 발길에 차여 위치를 바꿨다.
이 정지된 죽은 공간은 오직 수호와 접촉할 때만이 시간이 흐르듯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며 움직였다.
“흐음. 대충 저쪽인데.”
목적지는 멀지 않은 곳이다.
지구와 루나의 위치를 동일시해 보면 호주 쪽에서 일본 쪽으로 날아온 터이니, 지금 가는 방향이 맞다.
지구와 이곳이 동일한 방위라면, 이대로 쭉 걸어가면 세계수가 뿌리내린 위치에 도달할 것이다.
‘지구, 루나, 인간, 수인.’
지구에 인간이 있고, 루나에 수인이 있다.
지구의 침식이 루나를 살렸고.
인간의 죽음에서 수인이 탄생했다.
장재식이 평범한 인간은 아니다.
그가 그저 소멸하지 않고, 영혼이나마 아직 유지하여 수인의 몸에 갇힌 것은 ‘신’의 힘이 깃들어서일 것이다.
‘엘프들도 있으려나?’
아루카 행성에 의식 없는 장재식을 데려갔을 때 죽음의 저주라고 하였다.
그 말은 이전에 장재식과 비슷한 처지의 엘프들이 있었다는 이야기고, 그들의 행방이 궁금했다.
‘아루카에 침식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없으니.’
죽음의 저주에 걸린 엘프들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이곳에?
“아니겠지.”
지구와 루나는 대칭을 이루고 있다.
하나가 살면 하나가 죽는다.
지구의 침식공간에 발을 디딘 모든 생명체는 죽어 소멸하고, 침식구역을 넓히는 에너지로 사용될 따름이다.
장재식의 영혼이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는 오로지 인간신인 자신의 가호를 받아서다.
엘프들이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다.
“아르펜?”
아루카 행성에 꽃피웠을 고대문명에 대해 떠올려봤다.
“경우가 다르지.”
스킬북이라는 확실한 흔적을 남긴 고대문명이다. 그들은 멸망으로 자취를 감춘 것이지, 루나의 경우처럼 지구에 의해 소멸된 것이 아니다.
삶과 죽음으로 치환하기에는 경우가 맞지 않다.
아르펜은 그저 아루카의 과거 문명의 하나일 뿐이다.
“상관없나.”
엘프 따위야 엘프들 신이 어쩌겠지.
야누스 녀석.
고얀놈이다.
그놈이 인간들을 충동질해 루나를 침략했다.
루나를 파괴하고.
루나를 지웠다.
그 지워낸 행성에 지구라는 행성이 다시 꽃을 피웠다.
“뭔가 있겠지.”
자신이 그러하고, 장재식이 그러했고, 지구의 다른 사제들과 기사들이 그러했다.
신의 힘이 깃든 인간은 침식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공간의 제약 없이 다닐 수 있었다.
지금 수호가 허무의 공간을 딛고 서 있는 이유와 같다.
신의 힘이 없는 여타의 생명체였다면 침식 구역에 닿는 순간, 존재 자체가 소멸되어 한 줌 에너지가 되었겠지.
한참 걸었으나 뒤돌아보니 아직 개머리가 보인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걸었지, 본격적인 이동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다시 앞을 보니 색 없는 명암의 초원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이대로 쭉 가면 한국이겠지.
서울을 지나 근처까지 다다르면 수호시티가 있는 방향이겠지.
수호시티엔 세계수가 뿌리내리고 있다.
신의 힘이 깃든 세계수의 뿌리는 어디에 내렸을까?
인간의 지구일까, 행성 그 자체가 될 이곳 루나일까…….
“가볼까?”
수호가 가볍게 점프하자 그의 몸이 갈색 연기로 화해 훌쩍 하늘로 올랐다.
펄럭!
갈색 연기가 뭉쳐져 변한 매는 고고한 날갯짓 몇 번으로 훌쩍 멀어졌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그를 보며 개머리인간의 눈빛이 착잡해졌다.
“침략자의 아량인가…….”
“아니, 우린 언데드들이 아니야.”
“인간인 건 변함이 없다.”
“우린 그들의 과거지.”
“본질은 같다.”
“시간은 무시할 게 못 돼.”
“…….”
혼자서 중얼중얼 독백을 이어가던 개머리인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암흑으로 정지된 공간.
땅, 풀, 흙, 나무, 물, 바람까지도…….
바스락.
두툼한 개발이 옮겨지며 풀잎이 몸부림친다.
*
쐐애애액.
정지된 검은 세계에 홀로 쏘아지듯 나르는 갈색 매의 모습은 매우 이질적이었다.
“바다가 없네.”
호주 부근이라 생각되는 곳에서 일본까지 날아올 때도 느꼈지만, 이곳의 대륙은 지구와 영 딴판이었다.
군데군데 물도 있고 바다도 있지만 위치와 모양이 전부 달라, 같은 행성이 맞나 싶기도 했다.
‘땅을 뺏은 게 아니야.’
행성의 에너지를 뺏었을까?
아니면, 차원 에너지?
무엇이 되었든 루나는 그 모든 걸 뺏겨 이렇게 정지되어 생명을 잃어버렸고, 그 뺏긴 에너지는 지구를 이뤘다.
‘세계수가 어디에 뿌리를 내렸을지.’
수호는 대충 가늠한 거리까지 왔음에도 주변에 별다를 게 없어, 그답지 않게 눈빛이 흔들렸다.
이미 수호는 천 년을 산 인간이 아니다.
수십의 기억이 합쳐지며, 그의 부동심은 인간의 그것을 초월했다.
“없네. 이쯤인데.”
루나와 지구의 행성 크기는 그리 다르지 않다.
호주의 녹지와 일본의 녹지까지의 거리가 대략 자신의 감으로 잡은 것과 맞았으니까.
타닥.
수호가 작은 둔덕에 발을 내딛자 흙이 무너지며 발이 잠겼다.
“모래네.”
모래밭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해변이다.
길고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있고, 멀지 않은 거리에서는 넘실거리는 파도가 성난 기세 그대로 멈춰 있다.
“없네.”
어딜 둘러봐도 나무 같은 것이 없다.
검게 죽은 거라도 있으련만.
“후, 포탈이 있을 리도 없고.”
괜히 야누르의 지팡이를 써서 이곳에 왔나 싶기도 했다.
포탈은 차원 충돌의 결과물이다.
다른 두 종류의 차원이 충돌하며 그 빈틈으로 통로가 생기는 것인데, 지구와 루나가 충돌할 일은 없다.
애초에 한 몸이니까.
둘은 하나의 몸이지만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니, 만날 수 없는 기차 레일의 양쪽에 놓인 것이나 다름없다.
수호가 세계수를 찾은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신의 힘은 침식에 영향을 받지 않기에 기대하고 온 것이다.
세계수의 흔적이 이곳에 있다면 지구와 이어지는 길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수호는 혹여 자신이 방위를 잘못 정했나 싶어 하늘로 솟구쳐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응?”
수호의 시선에 이질적인 풍경이 잡힌 것은 땅이 아니라 바다 쪽이었다.
넘실거리는 파도가 그대로 굳어 있는 그곳의 한가운데가 뻥 뚫려 있었다.
흑색의 명암뿐인 이곳 세상과는 아예 다르다.
허공.
바다 한가운데가 싱크홀이라도 뚫린 듯 비어 있었다.
그렇다고 주변의 파도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양새도 아니다.
주변을 도려낸 듯 그곳만 매끈하게 잘려나가 있다.
“저기네.”
애초에 세계수를 특정하고 나무를 찾을 게 아니었다.
수호가 그 비어버린 공간에 안착했다.
“와……. 이건 또 다르네.”
발을 디딘 게 아니다.
그냥 멈추고자 마음먹으니 멈췄을 뿐이다.
바닥을 딛고 선 기분이 아니라 우주를 부유하는 기분이다.
행성의 가장 근간이 되는 힘.
중력 자체가 사라져버린 허공.
“루나의 영역이 아니다.”
수호는 그 허공을 부유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매끈하게 잘린 표면의 파도를 시작으로 밑으로 끝없이 이어진 바닷속은 수족관을 보는 듯했다.
생명체가 되는 어류는 하나도 없지만, 굳은 채 정지한 해조류들과 산호들이 가득이다.
“영역이 뭔가 했더니…….”
지구의 세계수는 행성 지구의 OS다.
관리자를 도와 지구를 다스리는 툴.
세계수 가이아는 자신의 영역에서 더 이상 침식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였는데, 그 이유가 이것인 모양이다.
“거긴 확실히 지구 영역이지.”
지구의 모든 영역이 침식당해 이곳 루나가 빛을 찾고 시간을 찾더라도 수호시티는 살아남을 것이다.
인류로 보자면 긍정적인 상황이지만, 수호에게 있어 지금의 처지에 하등 도움이 될 게 없었다.
수호는 신목의 소리 스킬을 다시 활성화했다.
신목의 소리는 세계수를 통해 지구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스킬이다.
대사제 김미소와 대화할 수도 있으며, 스킬 이름에서 보듯 신목의 주변을 엿볼 수도 있다.
통제할 수는 없지만…….
츠츠.
스킬이 활성화되자 여태 보지 못한 신기한 상황이 펼쳐졌다.
본디 수호의 의식 속에 시각화되어 보여지던 세계수 주변의 상황이 이번에는 허공에 펼쳐졌다.
파파팟.
“와, 이게 무슨.”
쭉 뻗은 세계수가 하늘 높은지 모르게 자라고, 그 영향력 아래 놓인 주변의 사물들이 빛이 번지듯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수를 슬쩍 만져봤으나 흐릿한 해상도의 그것은 실체 없는 신기루처럼 허무하게 통과하고 말았다.
볼 수 있지만 만질 수는 없다.
같은 곳이지만 공간의 너머.
수호는 세계수 앞에 누워있는 장재식의 몸을 보며 만지려 해 봤다.
후우우.
유령을 만지듯 통과되는 손을 보며, 조화력을 끌어올려 만지려 했으나 여전했다.
눈앞에 보이는 저 너머의 지구를 통제할 수 없다.
자신의 몸도 여전히 둥실둥실 떠 있을 뿐, 저들이 딛고 선 지구의 땅에 발을 디딜 수 없다.
“미소.”
[엇, 네 사장님!]여태 기다렸는지 세계수 앞에서 자리 잡고 있던 김미소가 화들짝 놀라 나무에 손을 가져다 댔다.
뚜렷하게 연결되는 대사제 김미소의 의식의 편린을 가늠하며, 아까 있었던 일을 전부 전했다.
[후, 역시 갇힌 건가요? 확실히 신의 가호를 받은 자만이 침식의 공간으로부터 자유롭죠. 거긴 특히 지구도 아니니……. 그쪽 신의 가호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그쪽 신?”
[네, 본래 루나 출신의…….]“쿠로 말이군.”
[네.]“쿠로…….”
쿠로를 생각하는 수호의 심경은 복잡했다.
지금 수호를 이루는 자아가 여럿이라 그렇다.
본디 박수호라는 인격에서 비롯된 것들이라 줄기가 같아 하나로 잘 융합된 듯 보이지만, 이따금씩 그것이 나뉠 때가 있었다.
기억에 묻은 감정의 편린이라 해야 할까?
쿠로를 떠올리자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도 동시에 증오심이, 호승심이, 기쁨이, 분노가, 아련함이 뒤섞인 여러 심정이 튀어나왔다.
몸은 하나라 그 욱하며 치미는 여러 감정들에 수호의 얼굴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니게 되었다.
“그래. 쿠로는 신이지.”
야누스가 그리 말했다.
애초에 그는 지구를 신의 요람이라 표현했으니까.
지구6가 낳은 신인 쿠로와 지구7이 낳은 신.
“그렇네. 그런 거네.”
수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신계로 가면 되겠네.”
[네?]루나는 신계와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
확신할 수 있다.
쿠로가 여전히 신계에 살아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