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258
258화
* * *
콘트라키 요새. 해발 400여 미터 정도의 낮은 산을 통째로 개조하여 만들어진 보금자리.
콘트라키 요새는 성곽 시대에도, 투쟁의 시대에도 단 한 번도 무너진 적 없다. 남쪽 대륙 서쪽 지역의 ‘무너지지 않는 방패’라는 명예로운 이름까지 부여받았다.
특히나 현대에 들어선 중앙 대륙에서 전파된 고급의 마법 회로로 개량을 거듭했다. 풍부한 지하수를 이용해 기초적인 관개수로를 만드는 데 성공하여, 내부에서 적게나마 식량까지 키운다.
게리소님도 이곳을 쉽사리 정복하지 못한다. 콘트라키 요새는 수호의 상징이었고, 무너지지 않는 철벽이었다. 그랬다. 아니, 그랬어야 할 터였다.
“콜레 대공! 옵니다!”
콜레 디 보오로 스타바이트 발리에로 디스 블라와 폰트 대공(大公). 전쟁을 대비하여 불라와를 떠나 콘트라키 요새 방어 책임자로 임명된 피랄 연합체의 고위 귀족.
원래는 든든한 콘트라키 요새에서 지내며 튀어나온 배나 두들기면 되는 위치였지만, 지금 콜레 대공의 안색은 병에 걸려 죽어가는 인간처럼 창백했다. 그가 기사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준비는 어떻게 되었나!”
“거의 다 끝나갑니다!”
거의 다 끝나간다고 했지만, 기사의 목소리는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무적의 철옹성을 자랑하는 콘트라키 요새를 지켜왔던 병사들의 눈에도 긴장감이 가득했다.
우우웅! 철컥!
마법사는 요새 곳곳에 자리 잡은 마포를 가동한다. 방어마법이 요새를 넓고, 균일하게 덮고. 반짝이는 얼음 가시가 요새를 날아다니며 아름다운 얼음 조각을 하늘에 수놓는다.
대형 몬스터를 대비한, 폭발 마법이 인챈트된 발리스타용 투창. 지력(地力)의 힘을 빌려 트롤 무리도 묶을 수 있는 포박 마법진.
화염 폭발 추적 마법, 얼음 화살 추적 마법, 대지 감옥 추적 마법, 바람 칼날 추적 마법, 독 안개 추적… 비석 폭풍 추적… 마비 번개 추적… 그 외에도 스무 종류가 넘는 다양한 공격, 환각, 마비 계열의 마법이 준비되었다.
“저기입니다! 대공 준비하십시오!”
4년 전에 익스퍼트에 들어선 롤프 기사, 아니, 롤프 자작이 요새 상층에서 사방을 감시하다가 한 곳을 가리켰다. 콘트라키 요새 동쪽 하늘, 상공 약 800미터 지점이었다.
우웅! 그가 검을 뽑아들고 오러를 일으켰다. 길이 3미터가 넘는 청록색 오러가 회색질 벽면과 롤프 기사의 은색 갑옷을 청록색으로 물들였지만, 그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롤프 기사가 이를 악물며 외쳤다.
“비익마(飛翼魔)가 옵니다!”
두웅-!
그의 외침과 거의 동시에, 하늘에서 무형의 파장이 퍼져 나갔다. 비익마라는 침입자가 하늘을 날아 콘트라키 요새로 침입하려다가 보호 마법장에 막힌 것이다.
콘트라키 요새를 넓고, 균일하게 덮은 보호 마법장이 비익마를 붙잡았다. 요새 전체를 보호하는 마법장과 일개 개인이 힘겨루기 한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꾸와앙! 꾸와앙! 마치 비익마를 중심으로, 일천 배, 일만 배로 증폭된 북소리가 하늘에서부터 지면까지 퍼지는 것만 같다. 보호 마법장도 그만큼 몸살을 앓았다.
물을 가득 채워놓은 풍선을 터지기 전까지 손가락으로 푹! 찌르면 고무 재질이 안으로 쭉! 늘어나지 않는가. 보호 마법장이 그와 같았다. 보호 마법장은 침입자를 막지 못하고, 비명 대신 북소리를 지르며 한계까지 늘어났다.
“지금!”
콜레 대공이 식은땀을 흘리며 외치자 성 안의 중앙 마법 회로를 담당하던 마법사가 회로 일부분을 활성화했다. 그 순간, 보호 마법장이 변화를 일으켰다.
애초에 보호 마법장을 넓고, 균일하게 깔은 이유가 지금을 대비해서다. 콘트라키 요새를 덮은 보호 마법장이 외부 침입물체, 비익마를 중심으로 수축했다.
수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영역을 덮은 보호 마법장이 신장 2미터가 겨우 넘는 인간을 중심으로 압축된다. 그 압력과 밀도 또한 상상 이상!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하늘을 날던 비익마도 보호 마법장의 압축에 몸이 부르르! 떨린다.
됐다! 모두의 얼굴에 희망이 깃들었다. 보호 마법장 압축은 집체만한 돌덩이도 모래알보다 작게 부술 압력을 전달한다. 익스퍼트 최상급이라도 보호 마법장 압축에 걸리면 짜부라져 죽는데 하물며 비익마는!
하지만 그들의 기쁨은 일렀다. 아직은 축배를 들 때가 아니었다.
번쩍!
백색 검광이 하늘을 십자(十字)로 쪼갰다. 고절한 ‘베기’의 심득이 담긴 오러는 힘과 압력을 뛰어넘은 절삭력을 발휘하여 보호 마법장을 십자로 갈랐다.
그리고 다시… 번뜩! 십자 끄트머리에서 네 개의 십자가 이어진다. 이어서 네 개의 십자 끄트머리에서 12개의 십자가, 12개의 십자 끄트머리에서 36개의 십자가, 36개의 십자 끄트머리에서…….
만일 이종족 연합지역의 누군가가 이 장면을 보았으면 이렇게 외쳤으리라.
오성검법 후반부 비기, 무한팔겁(無限汃迲)!
“아, 으… 으아아…….”
롤프 기사는 무한팔겁에 담긴 심득을 피상적이나마 읽어내고는 감각이 아득해졌다. 오러를 단지 물리적인 파괴만이 아닌, 내면의 심상을 현실로 이끌어내는 수단으로 삼는다니!
만약 롤프 기사가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그는 무한팔겁을 견식한 경험을 기반으로 익스퍼트 상급에 다다를 단초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살아남는다면.
콰과과과!
수천 개의 십자가 똑! 갈라져서 수천 개의 검광으로 변했다.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백색 검광의 해일이 롤프 기사를 비롯하여, 성 안쪽에서 마법 회로를 조작하던 마법사까지 일거에 휩쓸었다.
성 꼭대기에 머무르던 수십 명의 기사, 마법사가 새끼손가락 마디 하나보다 작게 조각나서 즉사!
하지만 천운일까? 그러는 와중에도 콜레 대공만큼은 죽지 않았다. 그는 자기 옆의 롤프 기사‘였던’ 피와 살 조각이 바지와 신발을 축축하게 적시는 감각을 느끼며 울먹였다. 그가 침을 튀기며 외쳤다.
“쏴! 씨발! 쏘라고!”
콘트라키 요새 꼭대기에 지어진 마법 회로가 요새의 전체 마법을 관리하지만, 그것이 사라진다고 요새를 이루는 모든 마법 기능이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다.
마치 신체 곳곳에 퍼진 곤충의 신경절처럼, 머리가 사라져도 몸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 그 몸 곳곳에서 수십 개의 공격 마법이 터져 나와 비익마를 요격했다.
수백 킬로그램이 넘는 쇳덩이가, 폭발 마법이 인챈트 된 발리스타가, 화염, 얼음 창, 회오리, 저주가, 독이… 무수한 방어 마법이 단 일개 개인을 죽이기 위하여 쏘아졌다.
꾸과광!
붉은 화염이 터지고, 녹색 안개가 분진폭발을 일으키며 화염의 범위를 열 배로 불린다. 회오리가 화염을 맹렬하게 회전시키고, 저주가 화염에 섞여든다.
벌겋고, 검고, 초록빛을 내는 색색의 화염이 콘트라키 요새 공중을 채운다. 공격 마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또한 비익마의 공격도 끝나지 않았다.
쉬익!
공격 마법 사이로, 검게 물든 무언가가 화염을 뚫고 날아갔다.
퍼벅!
“꺽!”
“크헉?!”
두 번의 파열음이 들리고, 콜레 대공을 지키러 올라온 기사 둘의 상체가 폭발하듯이 터져나갔다.
“히이익!”
콜레 대공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바닥에 수그렸다. 그가 달달 떨며 외쳤다.
“아직 죽지 않았다! 비익마는 죽지 않았어! 어서 추적 마법이 걸린 공격을……!”
파박!
또 다시 파열음. 이번에는 요새 중간을 지키는 선임병사와 그들을 이끄는 기사의 상체가 터졌다. 요새 곳곳에 퍼진 기사와 마법사는 의문의 공격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감지했다.
공격자, 비익마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푸르른 하늘에 찍힌 검은 점 하나! 연기를 뭉게뭉게 피우는 검은 점이 비익마의 위치였다. 화살을 쏘던, 추적 마법이 걸린 공격을 하든, 발리스타를 쏘든, 원거리 공격만 할 수 있으면 비익마를 괴롭힐 수 있다.
다만, 아주 사소한 공학적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비익마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
비익마는, 죽어가는 먹잇감 위를 빙빙~ 떠도는 독수리 떼처럼 콘트라키 요새를 날았다. 그렇게 원형으로 요새를 날며, 가끔씩 무언가를 던졌다.
퍽!
일격일살. 한 번 던질 때마다 무조건 한 명이 죽는다. 머리에 맞으면 머리가 터지고, 상체에 맞으면 상체가 터진다. 방패로 막으면 전신이 으스러지고, 방어막을 치면 급상승한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칠공(七孔)에서 피, 내장, 눈알 등등을 내뿜으며 죽는다.
투사체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중위 지대를 지휘하던 기사는 눈을 가늘게 떠서 비익마를 자세히 관찰했다. 비익마 주변을 배회하는 수백 개의… 돌덩어리?
“돌?”
기사가 작게 뇌까렸다. 혼잣말한 이후, 기사의 눈에 작고 검은 점이 찍혔다. 그다음 프레임. 검은 점이 크기를 열 배로 불렸다. 또 다음 프레임. 검은 점이 기사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마지막 프레임. 검은 점이 기사의 머리통을 부수기 전, 기사는 생각했다. 수천 개가 넘는 돌멩이가 비익마의 공격 수단이구나. 돌멩이의 재료는 발리스타와 마포, 비석 폭풍에서 유래한 것이니… 우리는 스스로 자기 목을 조른 셈이구나.
파삭!
기사의 생각은 거기서 끊겼다. 그의 뇌를 채운 지방질과 신경 전류의 흐름은 한계속력 이상으로 쑤셔 박힌 우악스러운 무기질에 흩어져,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세상으로 올올이 풀려났다.
풀썩! 머리가 소멸한 기사 뒤로 검은 선이 몇 개 스쳐 지나갔다. 적어도 그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그의 동지는 비익마의 주위를 위성처럼 맴도는 돌멩이의 잔여량과 같았다.
파바박!
하늘에선 계속해서 돌멩이의 비가 내렸다. 마법사도, 기사도, 귀족도. 그 누구도 돌멩이 앞에선 평등했다. 한 번에 죽는가. 피하고 다음 공격에 죽는가. 천운으로 막다가 죽는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결국, 돌팔매질에 죽는다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단 삼십 분.
성곽 시대에도, 투쟁의 시대에도 고고하게 제자리를 지킨 천혜의 장벽이자 무너지지 않는 방패, 콘트라키 요새가 함락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기사는 절반 가까이 죽었다. 마법사는 전멸했다. 병사의 피해는 수백에 달했다. 귀족은… 모두 죽었다. 아니, 정확히는 콜레 디… 어쩌구 저쩌구 머시기 저시기 대공만 남기고 전부 죽었다.
“아으으… 으으으으……!”
콜레 대공은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성안에 숨었다. 그의 사치를 충족시켜주던 황금옥좌 뒤에 수그려서, 타조처럼 땅에 대가리를 콕! 박고 눈을 질끈 감았다.
콘트라키 요새 꼭대기에 지어진, 황금옥좌가 놓인 알현실. 백색 재질의 벽돌과 중앙 대륙의 최신 과학을 수입해 채운 색색의 유리창은 할렘가처럼 곳곳이 깨지고, 머리와 상체가 터져 죽은 시체 수십 구가 널려있었다.
이제 그를 지켜줄 이는 아무도 없었고, 자랑스러운 황금옥좌는 비대한 살덩이를 가려주지 못했다. 콜레 대공은 벌벌 떨며 무의미한 숨바꼭질을 계속하다가, 비명과 ‘쉬익-!’하는 소음이 사라지자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
“힉?!”
그리고 다시 땅에 대가리를 처박았다. 비익마가 알현실에 발을 디딘 것이다.
뚜벅! 뚜벅!
발걸음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확장되며 콜레 대공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뿐만이 아니다.
살기(殺氣)! 하늘을 가득 메운 무자비한 살기! 인간이라면, 생명체라면 절대로 내어선 안 될 극심한 농도의 살기가 알현실을 뒤덮었다.
아니, 살기는 넓은 알현실도 비좁은 모양이었다. 여행자를 포근히 감싸주는 오로라처럼, 콘트라키 요새 꼭대기에서 시작된 궁극의 살기가 요새 전체로 퍼져 나갔다.
“끄아-!”
알현실 너머에서 들리는 비명이 콜레 대공을 괴롭혔다. 살아남는 병사들이 살기에 정신이 나가 오줌을 지리고, 비명을 질러대는 것이다.
비명과 심장박동, 달달 떨리는 사지와 합을 맞추어 뚜벅거리는 걸음소리! 콜레 대공은 정신이 나가 한 가지 비책을 떠올렸다.
‘나는 돌이다. 나는 땅이다. 나는 시체다. 비익마는 나를 보지 못한다. 비익마는 나를 지나친다……!’
무의미한 자위를 하며 일말의 안심을 획득한 정신. 그 정신력을 이용해 머리를 굴려 정체를 추론한다. 비익마(飛翼魔)에 대해.
비익마. 나흘 전, 큰 산의 분화 이후 등장한 몬스터. 누군가는 큰 산에 봉인된 고대의 악마라고 한다. 누군가는 화산쇄설류에 휩쓸린, 수백만이 넘는 생명체의 원한이 모여 탄생한 죽음의 정령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원인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익마의 행적이었다.
비익마는 큰 산 분화 반나절 후, 좌(左)의 성 옆의 부스키 영지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부스키 영주성과 영주를 ‘없앤’ 후 떠났다. 단 1분 만에.
삼십 분 후, 부스키 바로 옆 영지인 디야센트에서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다음으로는 그 옆 영지로……. 그렇게 나흘 동안 비익마는 남쪽 대륙 좌측 영지의 절반 가까이에 해당하는 영주를 모조리 죽였다.
즉, 비익마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화산 폭발이 원인이 되어 괴물이 탄생했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특히, ‘그 계획’의 주창자 중 하나인 콜레 대공은 찔리는 게 아주, 아주아주 많았다.
‘설마… 설마 그것 때문인가? ‘그것’에 정말 악마가 깨어나서……!’
“너.”
나른한 목소리. 콜레 대공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고개를 땅에 박았다. 눈을 질끈 감았지만, 그는 알 수 있었다. 비익마가 바로 위에 있다. 눈을 뜨고, 콜레 대공을 노려보고 있다.
주륵-! 오줌이 흘러나온다. 비익마의 살기를 정통으로 맞은 그는 눈을 감았음에도 어둠 속에서 색을 인지했다.
뇌가 발광하며 그에게 형이상학적인 감지력을 제공한다.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색, 들을 수 없는 소리, 느낄 수 없는 촉감, 맡을 수 없는 향기. 뇌가 아득하게 녹아내리고, 살기가 깔아준 레일이 그를 형언할 수 없는 육감(六感)과 칠감(七感)의 세계로 인도한다.
푸욱!
콜레 대공은 들었다. 스푼으로 푸딩을 한 스푼 크게 뜨듯이, 비익마가 그의 뇌를 한 숟가락 떴다. 형이하학적 세계에서 비익마는 단지 그를 바라볼 뿐이었지만, 콜레 대공은 하늘에 맹세코 그의 뇌가 푹 떠져서 비익마의 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쩝쩝! 푹! 후룩! 푸욱! 할짝!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세 숟가락. 비익마가 그의 뇌를 먹을수록, 콜레 대공은 살아있으면서도 죽어가는 모순적인 감각에 절규했다. 미치고 싶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미치지도 않는다. 아니, 못한다. 비익마가 그의 미침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신체 외부로 무언가를 흘려보낼 수 있는 기관에서 흘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흘리는 것에 불과했다.
마침내 고통과 혼돈, 무(無)의 시간이 지나고, 콜레 대공이 스스로 죽기 전. 비익마가 그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콜레 대공은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비익마의 얼굴을 보았다. 비익마가 싱긋 웃으며, 그의 뇌를 한 차례 헤집었다.
“으아아! 아악!”
바스락!
언제 챙겼는지, 영주성 깊숙한 곳에 보관한 계획도가 비익마의 손에 들려있었다. 비익마는 텔레파시로 콜레 대공의 뇌를 훑고, 계획도를 읽으며 사정을 파악했다.
“중앙 대륙이 이번 일에 개입했군. 하긴 나도 멍청했어. 그 욕심 많은 개새끼들이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할 리가 없다는 건 당연했는데 말이야.”
“끄흐흐흑!”
“야, 그래도 화산 폭발은 좀 오바 아니냐?”
“모, 몰라! 나는 아무것도 몰라!”
“오호. 요 5년 사이에 계획한 일이 아니야. 최소 20년 이상? 그 시기면… 게리소님이 원래 목표가 아니었나? 목표는 따로 있었고, 겸사겸사 게리소님도 함께 지우는 거였군. 어이, 콜레 아저씨. 원래 목표가 뭐야?”
“아니야. 죽여줘. 제발 나를 죽여줘. 제발, 제발 나를 죽여줘. 죽여줘죽여줘죽여줘! 제발나를죽여줘제발나를죽여줘제발나를죽여줘!!”
으직! 비익마가 콜레 대공의 목뼈를 부러뜨렸다. 비익마는 단지 콜레 대공의 ‘지저귐’이 시끄러워서 이런 짓을 저질렀고, 놀랍게도, 콜레 대공은 목뼈가 부러져도 죽지 않았다.
“……! …! ……!!”
콜레 대공이 뻐금거리며 광기에 찬 비명을 내지른다. 비익마는 인자하게도 그의 목뼈를 맞춰주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알고 있는 걸 전부 말해. 그러면 죽여주지.”
콜레 대공은 약 십여 분 후, 그가 그토록 바라던 안식에 들 수 있었다.
* * *
천혜의 장벽은 무슨. 현대전의 개념도 모르는 무식한 이세계 인들이 천혜의 장벽 운운하는 꼬라지 하고는.
“흥!”
나는 코웃음을 치며 통신기를 작동했다. 평상시와 다르게 1분이 넘게 시간을 소요하고 나서야 이스마일이 통신을 받았다.
“할, 아버님.”
[…제발 편히 영주님이라고 불러주면 안 되나?]“영주 할, 아버님. 알아냈습니다.”
역시. 피랄 연합체도 이때를 노렸군. 나는 빠르게 핵심만을 말했다.
“아뇨. 그보다 더 급한 게 있습니다. 더 이상 전쟁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번 하나가 끝이 아니에요.”
[……뭐라고?]이스마일이 길게 침묵하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하나를 지칭하는 게 무엇인지 짐작이 가지만, 믿을 수가 없어서 되물은 것이다.
나는 그의 의심에 마지막 도장을 꽝! 찍었다.
“화산 폭발 말입니다. 피랄 연합체, 아니 중앙 대륙은 큰 산만이 아니라 남쪽 대륙 곳곳의 휴화산에 연쇄적으로 분화를 일으킬 계획이더군요. 정보원이 자세한 건 몰라서 지역까지 특정하진 못했습니다.”
[어, 어어… 쟈기. 그, 그렇다는 건…….]나는 통신기에 대고 확실하게 말했다.
“영주님. 남쪽 대륙이 화산 폭발에 불바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전쟁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시고, 영주님을 비롯한 고위 마법사는 영지 근처의 휴화산을 조사하셔야 합니다.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