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260
260화
* * *
남쪽 대륙은 화산대에 포함되지 않는다. 수만 년 전에는 해양판과 지각판이 활발하게 맞물리며 지진, 화산이 자주 일어났지만, 현재는 거의 안정화기에 다다랐다. 가장 커다란 화산 중 하나인 큰 산의 분화조차 이스마일의 주장대로 800년이나 전의 일이다.
이러한 휴지기는 1시대 이전부터 시작되었으니, 아직까지 마그마가 지표면 가까이 남아있는 화산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도 되었다.
즉, 화산 후보는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그들의 힘이라면 빨라도 며칠 안에 조사를 끝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스마일은 후보지 탐색을 며칠이나 끌고 갈 생각이 없었다. 단 하루 만에 끝낸다.
렉시놈의 고위 마법사들이 마법 무구를 꺼낸다. 비행, 가속, 신체 보호, 원경(遠景) 마도구의 준비. 모든 것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고위 마법사 한 명당 최소 다섯 개의 마법 도구를 주렁주렁 달고 게리소님 곳곳으로 퍼졌다.
다음날 아침. 이스마일 반데스는 평화협정이 이루어진 파스마스에 도착했다.
파스마스는 화산이 없다. 역사책을 뒤져봐도 화산의 ‘화’조차 나오지 않는다. 몇 없는 7결 마법사인 그가 파스마스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스마일은 파스마스에 있었어야 했다. 파스마스는 (이번 점령지를 포함하여) 게리소님의 중간에 위치해있다.
엄밀히 말해, 정확히 중간은 아니고 살짝 오른쪽으로 치우쳤지만, 그래도 파스마스에 있어야만 점령지 전체에 통하는 마법을 통괄할 수 있다. 그는 점령지로 퍼진 마법사들의 탐색을 도울 목적으로 이곳에 왔다.
드드드드!
파스마스 곡창지대 한가운데에 솟구친 돌기둥! 돌기둥은 한계를 모르는 듯 상승하여 거의 150 미터 가까이 솟구쳤다. 이스마일은 돌기둥 정상에 서서 남쪽 대륙을 한눈에 내려다보았다.
높이 150 미터. 지평선까지의 거리는 지구 기준으로 40 킬로미터 이상. 지구보다 더 커다란 이세계 행성은 그보다 더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다.
이스마일은 산과 들이 가득한 지평선을 바라보며 스태프를 높게 세웠다.
“오온의 눈.”
우우웅!
티 없는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새빨간 루비와도 같은 지름 10미터의 구체가 그의 위에 만들어졌다. 몇 초 후, 구체 적도면에 샛노란 선이 그어지더니 고양잇과의 동공처럼 세로로 죽! 확장되었다.
이상(異常) 에너지 흐름. 마나의 변화를 분석하는 천국의 계단 고위 마법. 몬스터의 이동을 감지하기 위한 마법이지만, 이 등신의 계단은 오온의 눈을 완성하기도 전에 멸망했다.
그들이 미처 완성하지 못한 고급 마법을 렉시놈이 이어받아 재현에 성공했다. 100년의 세월을 격하고, 모습을 드러낸 오온의 눈이 서서히 위로 상승했다.
이스마일이 위치한 150 미터를 훌쩍 넘어, 거의 표고 500 미터 가까이 상승한 아름다운 적색의 눈알. 오온의 눈이 사방 80 킬로미터 이상의 땅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비자연적인 대규모 마나 흐름을 감지했다.
오온의 눈의 역할은 그걸로 끝이 아니다. 이스마일을 중심으로 80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어느 장소에서 마나 파장이 발생한다. 오온의 눈은 원거리에서 마나 파장을 읽고, 뜻을 해석했다.
뜻을 해석한 오온의 눈이 웅~! 하며 묵직한 마나 파장을 토했다. 마나 파장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저 멀리 어딘가에서 신호를 캐치한 한 마법사가 답신을 보낸다.
우웅~! 다시 오온의 눈이 크게 울었다. 오온의 눈은 사방에서 흘러넘치는 마나 파장을 읽고, 분석한 뒤, 그것의 영향력이 미치는 땅으로 그 모든 신호를 내보냈다.
이것은 전파탑과도 같다! 넓고도 넓은 남쪽 대륙의 우측면 절반. 그 절반에서 발생되는 마나 파장을 수집, 증폭하여 빠르게 전방위로 전달하는 것!
오온의 눈을 통해 이스마일은 남쪽 대륙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받아들이고, 광범위한 통신망의 역할을 해주며 통신을 전달했다.
오온의 눈의 효과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천국의 등신은 세상 물정 모르는 천재답게 모든 효과를 하나의 마법에 담으려는, 턱도 없는 목표를 세웠다.
그들이 정한 목표는 ‘그’ 렉시놈조차 달성하지 못했다. 일부만 달성했을 뿐인데도 7결인 이스마일이 아닌 이상 쓸 엄두도 내지 못하는 초고난도의 마법이 탄생했다.
역사는 둘째 치고, 등신의 등신이 꿈 꾼 오온의 눈의 또 다른 효과가 발휘되었다.
반짝!
남쪽 지평선 너머, 푸른색이 가득한 하늘에서 작은 무언가가 기세 좋게 자기주장을 하며 반짝였다. 거리가 워낙 멀어서 먼지보다도 작게 보이지만, 오온의 눈과 감각을 동화한 이스마일은 그것을 코앞에서 보는 것만큼이나 똑바로 볼 수 있었다.
남쪽에서 반짝이는 것의 정체는 또 다른 오온의 눈! 그 크기는 반의 반도 되지 않고, 높이도 150미터 정도에 불과하지만, 분명히 오온의 눈이었다.
반짝!
북쪽에서 또 다른 무언가가 떠오른다. 그 또한 남쪽에서 떠오른 것과 같은, 소형 오온의 눈! 남쪽과 북쪽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동쪽에도, 서쪽에도. 그리고 오온의 눈으로도 볼 수 없는 지평선 너머에도… 거의 열 개가 넘는 소형 오온의 눈이 남쪽 대륙 동쪽 곳곳에 떠올랐다!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오온의 눈은 7결 마법사만이 사용할 수 있고, 렉시놈의 7결 마법사는 이스마일, 마냐툴, 그리고 나머지 한 명까지 총 셋. 쉘리 반데스를 포함해도 오온의 눈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겨우 넷에 불과하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오온의 눈의 또 다른 기능. 마나 파장을 통해 ‘마법을 이루는 정보’를 전달하여 새끼 오온의 눈을 만드는 것! 새끼 오온의 눈은 기능이 제한되고, 효율도 낮지만, 광범위 탐색능력은 원본과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거기에 이스마일의 정보를 빌려 새끼 오온의 눈을 탄생시키기에, 난이도도 크게 하락한다. 새끼 오온의 눈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5결 마법사 수준으로도 충분했다.
렉시놈의 5결 마법사는 15명 이상. 그 중 3분의 2 이상이 새끼 오온의 눈을 만들어 남쪽 대륙을 구석구석 탐사했다.
소형 오온의 눈 하나당 탐사할 수 있는 면적은 약 2,500 제곱킬로미터 이하. 열 개가 더해진다고 해서 남쪽 대륙 전부를 커버할 순 없다.
하지만 높게 떠올라, 원거리에서 휴화산을 탐지하기엔 이것만큼 효율적인 게 따로 없었다. 이스마일은 열 개가 넘는 새끼 오온의 눈을 총괄하며 그것이 보내는 정보를 해석했다.
오온의 눈도 정보 해석을 도와주며 몇 분간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그. 정보 해석이 끝나자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마나 광을 은은히 내뿜는 녹색 동공이 남쪽 너머를 응시했다.
웅~!
다시 오온의 눈이 바쁘게 운다. 피랄 연합체 또는 중앙 대륙이 화산 폭발을 한 개만 하는지, 여러 개만 하는지 확신하지 못하지만, 일단 하나는 찾았다. 이스마일이 난폭한 미소를 지으며 돌기둥에서 내려왔다.
돌기둥에서 내려온 이스마일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단 10분 정도 오온의 눈을 사용했을 뿐인데 그의 얼굴은 샤워한 것처럼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비틀!
흐르는 땀을 닦기 위해 상의를 벗었더니, 그것조차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이스마일. 그를 호위하던 소니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버지를 받쳐주었다. 소니아가 물었다.
“아버님! 괜찮으신가요?”
이스마일은 소니아의 물음에 답하기보다는 엉뚱한 말을 했다.
“쟈기 남작의 직위가 어떻게 됐지?”
“어… 예?”
소니아가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남작이라고 말씀하셨으니 남작이겠죠?”
소니아는 스스로 말해놓고도 쟈기의 작위를 헷갈리는 이스마일을 진심으로 걱정했다. 아버님이 마법의 부작용으로 뇌에 타격을 입었나?
하지만 이스마일은 뇌가 망가지지도 않았고, 진심으로 쟈기의 직위를 몰라서 물어본 것도 아니었다. 그가 들숨과 함께 마나를 회복하며 말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자작으로 상승시켜줘야겠어.”
“…예?” 소니아가 다시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이스마일은 그녀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바쁘게 걸었다. 한번 한 농담을 설명해주는 것은 재미가 없을 뿐더러 그럴 여유도 없었다.
* * *
움직이지 않는 거인 쉘리 반데스.
쉘리 반데스의 일대목표는 마법 탐구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에게 남쪽 대륙 정벌은 목표가 아닌 수단이었다. 아니, 사실 별 관심도 없었다.
그저 젊은 시절에 사별한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아들 이스마일의 꿈을 도와주기 위해 한 손을 거들 뿐. 권력을 얻고, 땅을 넓히는 게 렉시놈의 보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었다면 그 한 손마저도 거들지 않았으리라.
때문에 쉘리 반데스는 일상 대부분을 지하 도시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렉시놈의 마법을, 이제는 흩어진 나머지 흑마법 삼대 지파의 마법을 연구한다. 독보적인 경지에 다다랐음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위로, 더 위를 노리며 수련에 매진한다.
사실 그가 지하 도시에 머무르는 것은 ‘관심이 없다.’말고도 남에게 말 못할 고약한 취미 탓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다스리는 지배자! 남쪽 대륙을 지배하는 암중의 제왕! 참으로 가슴 두근거리는 타이틀이 아닌가!
아무리 흑마법사라지만, 쉘리 반데스도 사나이. 그는 사나이의 로망을 충족시켜주는 현재의 위치가 아주 만족스러웠고, 특별한 일이 아닌 한 ‘암중의 어쩌구’ 타이틀을 버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아버님도 힘을 써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이번에도 화산 폭발 때문에 난리가 나지 않았다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가 외부 활동을 할 계획은 없었다.
그렇지만, 제아무리 대단하신 암중의 제왕님이라도 화산 폭발로 불탄 땅을 다스리는 것은 멋이 없지 않는가. 해서, 쉘리 반데스는 오랜만에 아들을 돕기로 했다.
“에잉! 어쩔 수 없지!”
투덜거리며 지하 도시를 걷는 쉘리 반데스. 하지만 말투와는 다르게 목소리에는 반기는 기색이 가득하다.
한 세기 반 이상 살아온 그라도 화산 폭발은 몇 번 겪어보지 못한 거대한 사건이었고, 그것에 한 다리 걸친다는 것은 그에게 야망과 생명력이 가득했던 젊은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오랜만의 외출. 단단히 준비하고 가야지. 작게 다짐한 그가 지팡이를 짚으며 한적한 지하 도시를 걸었다.
뚜벅. 뚜벅.
‘언제 나가봤는지 기억도 안 나는군.’
예전에 나는 어땠지? 쉘리 반데스는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을 쓰다듬으며 젊었던 때를 떠올렸다.
그렇게, 한걸음에 돌아오지 않는 인연을 회상하고, 한걸음에 피비린내 나는 시절을 떠올리며 천변만화하는 쉘리 반데스의 얼굴. 울고, 슬퍼하고, 그리워하던 그의 얼굴이 최종적으로 웃음으로 고정되었다.
염화미소(拈花微笑)의 탐욕스러운 마법사 버전이 이러할까. 이내, 그 웃음마저도 홀홀 털어 넘기고, 손을 든다.
짝짝!
여염집 여인네처럼 단아하게 치는 박수 두 번. 간단한 손길에 마나가 그의 의지에 따라 재배열된다. 푸른빛을 내는 홀로그램이 쉘리 반데스의 주변에 떠올랐다.
남쪽 대륙 동쪽 지역, 게리소님이 차지한 땅을 보여주는 3차원 지형도였다. 푸른색 등고선 곳곳에 붉은 점이 열댓 개 찍혀있다. 오온의 눈과 새끼 오온의 눈이었다.
붉은 점이 붉은 색 파형(波形)을 푸른지도 너머로 발산한다. 유순하게 지도를 타넘는 파형이, 어느 산맥에서 멈추곤 삐~! 삐~! 하며 격하게 울어 재꼈다.
그곳이 바로 이스마일과 열 명이 넘는 5결 마법사가 오온의 눈으로 관측한 이상 변화를 일으키는 휴화산이었다. 쉘리 반데스는 흥미로운 눈으로 지도를 조작했다.
딱딱! 손가락을 튕기고, 탁탁! 지팡이로 땅을 때리고. 그렇게 몇 번 지도를 훑은 그가 ‘그럼 그렇지’하듯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스마일도 아직 멀었군.”
무얼 멀었다고 하는지는 그만이 알고 있으리라. 하긴 빛의 수호자라는 이레귤러가 판에 끼어들었는데, 시골 촌구석에 처박힌 이스마일에게 그들의 심리를 예측하기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겠지.
그렇게 홀로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쉘리 반데스는 또 한 명의 이레귤러, 요 몇 년 사이 그를 재미있게 해준 젊은이, 쟈기를 떠올렸다.
‘웃기는 자식.’
수십 년 만 더 지나면, 쉘리 반데스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괴물로 자라날 가능성이 있는 천재. 본래라면 싹이 더 크기 전에 짓밟아야 함이 옮지만, 쉘리 반데스는 쟈기의 존재를 용인했다.
어째서일까. 때때로 비치는 눈빛에서 세월을 뛰어넘은 깊이가 비쳐서? 영적인 세계에도 발을 넓히는 그의 감각이 쟈기 내부에 자리 잡은 초월적인 영혼을 느껴서?
그게 아니라면, 마치 모든 것이 준비되어있다는 듯이 혼자서 척척 경지를 개척해나가는 모습이 미심쩍어서? 또는… 성력(聖力)이나 첫 만남에서 그를 탐지한 의문의 힘을 보유했기에?
전부 다일 수도 있고, 전부 다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쟈기를 관찰하는 것은 최근 5년 사이에 추가된 쉘리 반데스의 몇 안 되는 취미생활 중 하나였다. 그 재미있는 관찰거리가 2차 전쟁으로 멀리 떠나자 심심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잉-!
마음이 움직이면 바로 마나가 일어나는 경지. 쉘리 반데스의 마음을 읽고 마나가 재배열되었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쟈기에게 통신을 거는 것이다.
쟈기의 신호기로 마나가 전달되며 그의 정보가 전해진다. 쉘리 반데스는 통신을 받을까 말까 고민하는 쟈기를 보고는 혀를 찼다.
‘이놈은 또 얼굴이 왜 이따위야?’
본래 쟈기의 통신기는 음성만이 전달된다. 하지만 현시대의 한계를 우습게 돌파한 쉘리 반데스는 통신기를 통해 외부의 시각적 정보도 관측할 수 있었다.
그는 쟈기의 외형이 꽤 위협적으로 변한 걸 보자 눈을 빛냈다. 환각 마법도 뭣도 아닌, 골격근을 통째로 재배열한 것이 분명하다. 쉘리 반데스의 감각을 속이고, 그를 은밀히 탐지한 그 괴상한 능력과 연관이 있었다.
저것부터 화제로 삼을까? 쉘리 반데스는 쟈기와 무슨 말을 할지 기대되었다. 그리고 그의 기대는, 통신을 받자마자 쟈기가 한 말에 의해 와장창 박살이 났다.
* * *
“아, 씨. 이 노인네는 진짜.”
쉘리 반데스가 내게 통신을 걸었다. 매번 게리소님에만 머무르는 뒷방 늙은이가 참 할 일도 없네. 그냥 안 받을까 고민했지만, 무시하면 후환이 두렵기에 받는다. 계급사회가 이래서 싫다.
“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십시오.”
그리고 통신을 끊는다. 이러면 되겠지. 나는 후련해진 마음으로 코로미트 왕의 시체를 버리고 야산을 날다가…….
[야 이! 애새끼야!]“어이구!”
갑자기 통신기에서 쉘리 반데스의 호통이 들린다. 내가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통신이 연결 된 것이다. 대체 이런 짓을 어떻게 한 거지?
노인네의 마법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나는 통신을 받으며 허리를 굽실거렸다.
“아, 어르신.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바빠서 일찍 끝내줬으면 하는데요.”
[아들 녀석이 바빠서 내가 대신 연락했다. 지금 상황을 알려주마.]아뇨, 안 알려줘도 되는데요. 내 마음속 항변을 무시하고 쉘리 반데스가 현재 상황을 조리 있게 정리해서 알려주었다. 이스마일은 나는 모르는 방법을 써서 남쪽 대륙을 하루 만에 다 조사했고, 이상 흐름을 보이는 휴화산을 하나 발견했다고 한다.
쉘리 반데스는 조사 방법을 말하지 않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물어볼 걸 기대하나 본데, 나는 굳이 궁금해하지 않았다.
‘렉시놈이라면 당연히 그 정도 능력은 있어야지.’
울타르는 지옥문을 열었고, 트록바는 죽은 악신을 되살렸다. 그에 비하면 남쪽 대륙 탐사 정도는 식은 죽 먹기도 되지 않는다. 아니, 이 정도도 못하면 곤란하다.
나는 그의 기대를 모른 척 하고 할 말만 간략하게 했다. 쉘리 반데스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혀를 몇 번 차더니 대화의 주제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예? 무슨 연락 말입니까? 코로미트 왕에게 얻은 정보는 안전한 곳에 숨은 뒤, 이스마일에게 보고할 생각이었는…….”
[아니, 그게 아니라! 뮤온 있잖나? 뮤온 그 친구!]“아…….”
곤란하다. 이 화제가 나오면 곤란하다. 차라리 어떤 수단을 써서 하루 안에 조사를 끝냈는지 물어볼 걸. 나는 후회했지만, 이미 열차는 떠나간 뒤였다.
[뮤온 보트라에게 통신을 보내야지. 다른 것도 아닌 화산 폭발인데 이런 일이면 그의 도움을 받아야 해. 우리 혼자서 중앙 대륙의 암수를 막긴 힘들어.]“…….”
[뮤온이 도와줘야 이후에 있을 모략도 방지할 수 있다. 그러니 네가 당장 연락해서… 어이? 내 말 들리냐?]“아, 아 예. 들립니다. 들리고 말고요.”
[…….]쉘리 반데스가 침묵한다. 불편한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그가 미심쩍다는 듯이 물었다.
[너, 뮤온 보트라, 통신기, 어쨌어.]기계처럼 딱딱한 말투. 대장로님. 진짜 무섭습니다. 통신기를 통해 마나가 굳어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더듬거리며 말을 돌렸다.
“아, 아… 음… 저… 그게……. 공학적 문제점이 있어서 말이죠.”
[버렸나.]“아닙니다. 결단코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말해.]로봇이 되어버린 쉘리 반데스의 음성.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그에게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망가졌습니다. 그거…….”
[어… 엉?]“저, 그게 있잖습니까. 작년에 탁센하고 보로 기사 서임 축하 회식할 때…….”
기사 서임 축하 회식 당시. 이때는 나도 알코올을 몰아내지 않고 떡이 될 때까지 술을 마셨다.
그렇게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엉덩이에 통신기가 있다는 걸 잠시 까먹은 채로 의자에 앉으니 엉덩이에 딱딱한 게 느껴지지 뭔가. 엉덩이를 이리 비비고, 저리 비벼도 딱딱한 감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기가 차오른 나는 엉덩이에 마나를 집중해서, 의자를 향해 빡! 하고 내리쳤고… 통신기는…….
나는 그날의 일을 최대한 포장해서 쉘리 반데스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음……. 뮤온 보트라가 통신기를 나약한 걸 줘서 통신기 내구도가 제 엉덩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래서 그때 이후로 한 번도 통신을…….”
[야! 이!!] 쉘리 반데스의 노한 외침이 내 변명을 막았다. 그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높은 목소리로 내게 욕설을 퍼부었다. [야 이 미친 개 빡대가리 새끼야아아!!! 그게 어떤 건데 술에 취해서 부셔!! 네가 제정신이냐!!!!]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렇게 나의 사과, 쉘리 반데스의 분노, 이스마일의 후속대처, 피랄 연합체의 변고, 사실을 모르는 피랄 연합체 병력의 기습, 중앙 대륙의 계략. 마지막으로 정보를 받지 못한 뮤온 보트라와 함께 화산 폭발이 가져온 난장판은 남쪽 대륙을 더욱 큰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일단 내 책임이 가장 적다는 것만 확실히 해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