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376
376화
【 카운트 다운 】
애들 훈련도 끝나가고 작위도 받았겠다. 나도 움직일 시기가 다가오기에 공작위를 받자마자 이스마일과 독대를 청했다.
진지한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는데, 이스마일은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내게 ‘뭐 받고 싶은 거 없냐’면서 끈질기게 물어왔다. 나는 그의 제안을 모조리 거절했다.
“영지는?”
“필요 없습니다.”
수련하는 데 방해된다.
“결혼은 안 하나? 후사는 봐야지.”
“관심 없습니다.”
여자에 관심은 있지만, 이번만큼은 아니다. 절세기재 웨일을 잃은 만큼 이번 삶은 엉뚱한 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수련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소드 마스터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승천자의 중급 무리를 빼먹을 수 있게 됐는데,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그, 그러면 제자는? 응? 제자라도 받아야지 않나. 신성 쟈기의 절학을 이을 후임을…….”
“일 없습니다.”
내가 키운 최고의 작품이 해피다. 그 누구를 제자로 맞이하든 해피의 절반은커녕 반의반도 따라오지 못할 게 뻔한데 뭣하러 또 제자를 받아?
내 연이은 거절에 이스마일이 얼굴을 괴상하게 일그러뜨렸다.
“…자네 진짜 인간 맞나?”
“…….”
나는 말없이 손가락을 세워 이스마일의 콧잔등을 가리켰다. 너(흑마법사, 렉시놈)한테 그런 말 들으니 심히 기분이 나쁘다는 표현이다.
서로 상처를 주는 훈훈한 사이. 그게 바로 나와 이스마일의 사이다. 나는 짧은 대담을 끝마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보다 여유가 났으니 일 이야기나 하죠. 이종족 연합지역하고 중앙 대륙 개새끼들은 요새 뭐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정보부 분석은요.”
내가 애들 수련시킨다고 반데스 연무장에 박혀있을 때, 중앙 대륙의 테헤반 공작령을 비롯한 이십 개가 넘는 영지를 습격 및 탈취해온 자료를 정보부에게 맡겼다.
수만, 수십만 장이 넘는 문서 더미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특히 이종족 연합지역이 바라는 구오와 비슷한 케이스가 있는지 찾아내기를 기대했다.
원래 나도 중간마다 협력할 계획이었는데 게리소님 전력 강화가 발등에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무단으로 불참하게 되었지. 그 이후로 포테리오가 일은 잘 하고 있는지, 다른 유의미한 정보는 얻었는지 확인해야 할 때다.
내 질문에 이스마일 반데스가 씩 웃었다.
“찾았네.”
“잘 됐군요. 이종족 연합지역은요? 성명서를 발표한다 어쩐다 했는데, 그건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이종족 연합지역이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4개월 전, 그러니까 내가 훈련을 시킨 지 1개월이 지났을 때라고 한다.
그들은 중앙 대륙 정복을 거의 완료한 오대 강대국의 무리한 정복 활동을 규탄하며, 그 와중에 중앙 대륙 깊숙한 곳에서 살아가는 소수 이종족 부족이 피해를 보지 않길 바란다고 정중한 경고를 날렸다.
성명서를 받은 중앙 대륙은 되려 군소 영지 이십여 개와 테헤반 공작령의 현 가주, 전대 가주의 사살 사건을 언급하며 이종족 연합지역을 공격했다.
위의 테러 행위가 최소 소드 마스터 한 명, 고위 마법사 한 명과 장거리 이동 수단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데, 그만한 인력과 지원을 할 수 있는 집단은 세상을 뒤져봐도 얼마 되지 않는 게 그 이유다.
의심되는 용의자는 같은 피해자인 오대 강국, 알테어 그리고 이종족 연합지역뿐. 더군다나 오대 강국 테러 행위와 성명서 발표 시기가 일치하는 것이 아무래도 미심쩍다.
해서, 오대 강국은 이종족 연합지역에게 그 시기 군사 행동 내역을, 특히나 소드 마스터나 고위 마법사급 능력자의 명단과 그들의 알리바이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미쳤습니까?”
나는 중앙 대륙의 발언을 듣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게 받아들여질 거라 생각하고 말한 건가?
“안 될 걸 알고 한 거네.”
“예? 무슨… 아아, 그거군요.”
우리가 일을 너무 잘한 게 문제다. 이십 개가 넘는 군소 영지. 영지 하나당 2만 명이 산다고 치면, 테러에 벌벌 떤 일반 시민들의 수만 해도 50만에 다다른다. 더군다나 100만 명이 넘게 사는 테헤반 공작령의 젖줄, 베이터 댐까지 무너뜨리려고 하지 않았나.
최소 150만 명이 넘는 직*간접적 피해자의 눈물을 무기 삼아 하는 요청이다. 이쯤 가면 이성보다 감성이 앞설 수밖에 없다.
이종족 연합지역은 당연히 ‘싫다’고 말할 수밖에 없고, 그들이 어떤 변명을 하든 간에 중앙 대륙은 ‘거절’자체에만 이목을 집중하겠지.
최종적으로 중앙 대륙이 노리는 것은 아마 이런 심보일 것이다.
(이종족 연합지역이 정말로 당당하다면 모든 걸 밝혔을 것이다! 그러지 않는다는 것부터가 무언가 구린 게 있다는 뜻! 테러! 성명서! 밝히지 않는 알리바이! 다음에 찾아올 건 뻔하다! 이종족의… 르암인 침략이다! 저들은 침략의 밑밥을 까는 거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옳다는 명분을 확보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외부에 적을 만들어 내부의 혼란을 다잡으려는 의도도 있다.
급격한 확장. 강제적으로 여러 국가를 흡수하느라 문화, 제도적 혼란을 격는 오대 강대국. 이종족 연합지역이라는 ‘사악한’ 이종족의 음모로 분노의 방향성을 돌려서 국가 안정화를 노리겠지.
“맞습니까?”
“뭐, 간략하게 결과만 말하자면 공작의 말대로고, 실제로는 물밑에서 지저분한 정보전이 오갔지만… 무인인 자네에게까지 할 말은 아니지.”
그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일어난 정보전이다. 며, 이스마일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빛의 수호자가 암약하는 비밀 기지의 습격은 외부에 알리기가 힘들다. 때문에 포테리오와 함께 온 1.505명의 혼성 기습 대대는 영지나 군소 왕국 공격을 그만두고, 빛의 수호자 비밀 기지로 타겟을 바꾸었다.
“빛의 수호자 비밀 기지면 방어도 탄탄할 텐데? 포테리오가, 아니, 이종족 연합지역이 그 위험한 임무를 맡는 것을 잘도 허락했네요.”
“아까 찾았다고 하지 않았나. 구오만큼 말도 안 되게 커다란 사회 실험장은 아니지만, 확실한 증거는 발견했어.”
다행히 나와 포테리오, 뮤온 보트라, 펙, 마냐툴이 개고생 하며 얻어온 문서 더미에 몇몇 숨겨진 기지와 억류된 이종족의 이동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포테리오는 정보를 얻자마자 게리소님 고위 마법사의 지원을 받아(갑작스럽게 내가 빠졌으니 게리소님도 그 정도 지원을 해줄 의무가 있었다.) 그 장소를 습격했고, 실험용 쥐새끼 취급을 받는 소수 이종족을 구출했다.
그 말을 하며 과거가 떠올랐는지 이스마일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 나도 덩달아 목소리를 낮춰 그에게 물었다.
“억류된 이종족은… 얼마나 심했습니까?”
“흑마법사에게 당한 것보단 낫다지만… 가족들과 헤어져서 피를 뽑히고, 정체 모를 용액을 섭취하거나 원치 않은 임신을 당한 케이스가 많다고 하더군.”
“저런.” 양심상 이런 감탄사는 해주자.
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내 솔직한 심정은.
‘에이. 뭐야. 그 정도면 별것도 아니잖아.’
뭔가 착각하는 게 있는데, 이세계는 기본적으로 계급제도 사회다. 당장 남쪽 대륙만 해도 10년 전까지는 노예 제도가 성행했고, 해적들까지 판을 치지 않았나. 쟈기는 어릴 때부터 전문 살인기술을 배우며 어둠의 조직에게 키워졌다.
그나마 온건적인 남쪽 대륙이 이 정도다. 중앙 대륙은 말도 못한다. 5개월 전, 포테리오 등과 함께 중앙 대륙 군소 영지를 습격하면서 내가 본 것만 해도 고대 중국, 상 왕조를 멸망시킨 달기의 주지육림과 비견될 만했다.
아니, 마법하고 포션이 있으니 그것보다 더하지. 변태 귀족이 지하실에 지은 고문실 이야기, 흑마력만 쓰지 않을 뿐 마법 실험용으로 팔려나간 노예 사정까지 꺼내면 장르가 바뀌고도 남는다.
그런 세상인데 납치 당해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것 정도야 논란거리도 되지 않는다. 같은 이종족이라는 동질감 때문에 이종족 연합지역이 과민반응을 하는 거다.
‘이건 생각만 해두자고. 입 밖으로 꺼내진 말고.’
나는 표정관리를 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래도 첫 출발이 좋네요.”
일단 기지 하나라도 찾았으면 그걸로 끝. 기지 간의 연락 체계, 통신, 기지 내 인원의 심문 등을 통해 정보를 더듬어가면서 줄줄이 다른 기지를 알아낼 수 있겠지.
“그 말대로네. 그들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지.”
이종족 연합지역 지원군은 구오를 중심 기지로 삼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게리소님은 그들이 모은 정보를 정리하여 초장거리 통신 마법으로 이종족 연합지역에게 전해주거나 고위 마법사를 지원해주는 등, 이러저러한 도움을 준다고 한다.
즉, 구오-게리소님-이종족 연합지역 순으로 연결고리를 만든 것. 구오는 물론이고 다른 증거까지 발견되었으니 이제 이종족 연합지역도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거다.
구오에 실험실 쥐새끼까지, 증거는 명명백백하다. 이종족 연합지역은 완전히 전시 태세에 들어갔다. 겉으로 벌이는 말싸움은 어디까지나 최적의 타이밍을 노리고 자신들이 더 ‘정의롭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
속으로는 피 튀기는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게 이종족 연합지역과 중앙 대륙이었다. 이스마일은 그 이야기를 하며 이종족 연합지역에서 천공기를 몇 대 더 지원한 것 같다는 말까지 했다.
“습격한 비밀 기지의 숫자, 들어오는 정보의 양과 질, 그리고 구오를 돌아다니는 타격대대원의 수를 감안하면 도저히 천공기 다섯 대로 비빌 수 있는 수준이 아니지. 정보부는 최소 열 대, 많으면 열다섯 대 이상 추가지원이 왔다고 파악하고 있네.”
“와…….
천공기 한 대에 300명이 탄다 치면, 최소 3,000에서 4,500명 정도의 이종족 강군이 지원을 왔다는 얘기잖아? 그 정도면 마법의 지원 없이, 군사 대 군사로 전면전을 벌이면 게리소님 정예 병력도 감당하지 못할 전력이다.
이렇듯이 수천의 병력이 내가 모르는 곳곳에서 소규모 분쟁을 반복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빛의 수호자의 전력이 깎이고, 이종족 연합지역도 피를 흘리며 본격적인 대륙간 전쟁의 씨앗이 싹을 틔웠다.
그리고 슬슬 알테어도 움직이고 있었다. 옛 저녁에 국가 정비를 마친 알테어는 중앙 대륙의 혼란을 명분 삼아 ‘만일’을 대비하여 남쪽 국경으로 서서히 군사를 이동시키고 있다고 한다.
전쟁은 거의 확정된 거나 다름없다. 이제 남은 건 시간싸움. 나는 이스마일에게 그 시기를 물었다.
“언제부터 시작하리라고 예상하십니까?”
“올해 수확이 끝나고. 다들 그 시점을 점찍었네.”
역시. 비바 몬스터다. 아무리 전쟁이니 어쩌니 해도 몬스터에 대비해야 하니 수확 철은 칼같이 지켜주는 예의가 있는 이세계였다.
수확이 끝났을 때면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지?
‘내가 신년부터 애들을 가르쳤으니까.’
지금은 5월 중순.
쌀, 밀, 보리, 그리고 위도에 따라 다르지만, 중앙 대륙은 북반구에 있으니까 웬만한 작물을 다 수확하고, 정리까지 끝내면 9월 최 말, 10월 초쯤.
즉, 빠르면 4개월. 늦어도 5개월쯤 남았다.
전쟁 발발 지점은 이종족 연합지역, 남쪽 대륙 게리소님, 또는 데일리케 낮은 확률로 알테어. 이 넷 중 하나.
개중 게리소님으로 오는 공격 루트는 크게 세 개다.
우선 북동쪽의 슈라드와 북서쪽의 페로스, 각각 좌우 끝쪽에 자리 잡고 있어서 대수림이 아닌 안전한 육로를 통할 수 있는 장소다. 마지막으로 중앙의 큰 산을 통하는 화산재로 인한 식물 멸종 지역.
마지막의 큰 산, 대수림을 수직으로 통과하는 루트는 봄에 몬스터 정리를 못 해서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셀타론드 공국의 예가 있으니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게 이로웠다.
더군다나…….
“…‘그건’ 준비됐습니까?”
내 은근한 질문에 이스마일 반데스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공방에 숨은 오만한 마법사 특유의 자부심이 묻어나오는 미소를 보여주며 단언했다.
“다 끝났네.”
좋다. 아주 훌륭하다. 이걸로 수성전 대비도 끝났다.
이세계에서 수성전이 병력 차를 어쩌고… 하는 숫자 놀음은 의미가 없다. 과거 내가 몇 번이고 한 짓처럼, 초인 한 명이 있고 없고가 수성전에 크나큰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반대의 예로도 적용할 수 있다. 베이터 댐의 수룡 소환 마법진처럼, 수성전을 하는 쪽에 초인과 대등한 방어체계가 있다면 열 배가 넘는 병력 차이도 감당할 수 있다는 뜻.
그리고 마법사의 천국, 게리소님은 ‘전 영지’에 그와 비슷한 수준의 방어체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군사훈련, 마법사, 에이스헨에서 영입한 열두 명의 익스퍼트, 영지를 보호하는 방어 마법진, 마지막으로 게리소님 어디든 하루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초장거리 이동 마법진까지.
게리소님도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리는 일뿐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게리소님 따위가 중앙 대륙에게 먼저 시비를 걸 순 없으니까.
그 대신 중앙 대륙이, 빛의 수호자가 게리소님을 얕보고 선제공격을 하는 순간 그 자리를 무덤가로 만들어주마.
‘어디로든 와봐라. 오는 그 순간 지옥을 보여주지.’
나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남은 시간을 기다렸다.
* * *
그해 가을. 게리소님은 신속하게 수확을 끝마치고 전시체제에 돌입했다. 1년 전부터 미리미리 준비해 두었기에 전시체제에 돌입하는 시간은 한없이 짧았다.
강제동원을 발동해 각 영지의 젊은이들을 위험한 수준까지 쥐어짜서 20만이 넘는 군사를 일으키고 슈라드와 페로스, 큰 산 좌우에 새로 지어진 좌의 성과 우의 성으로 나눠서 군사를 보낸다.
“마법사 파견은 어떻게 됐나!”
“배치 끝났습니다!”
최소 4결 이상의 중위 마법사는 대수림 인근 영지로 보내 혹시 모를 루트로 기습하는 것을 방지한다.
익스퍼트 최상급의 소니아, 상급의 에이스헨 검사인 릴리, 펙을 비롯한 중급의 무인 열댓 명은 반데스 영주성에 머무르며 신호가 오는 그 즉시 초장거리 이동 마법진에 탈 수 있게 대기한다.
웅! 우웅!
반데스 영주성, 초장거리 통신 마법진이 설치된 마탑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번쩍이며 빛을 발했다. 이종족 연합지역, 데일리케, 알테어 등과 실시간으로 통신하며 언제, 어디로 중앙 대륙이 공격을 가해올지 연락을 하는 것이다.
메시지를 쉴 새 없이 보내느라 고급 마나석을 몇 개씩 갈아 끼었다. 그러면서 초장거리 통신 마법진도 위험한 수준까지 과부하 되었다.
원래 고위 마법사의 도움 없이 수만 킬로미터 단위의 실시간 통신을 하기 위해 설치된 게 이것이지만, 이렇게까지 막 쓰면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5결 이상의 고위 마법사는 각 주요 지점에 배치하고, 이스마일은 왕이라서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 쉘리 반데스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즉, 마탑 최상층에서 초장거리 이동 마법진을 관리할 능력자가 나밖에 없다. 때문에 나는 이주일 전부터 병사, 기사 등의 훈련도 그만두고 24시간 내내 마탑에 머무르며 초장거리 통신 마법진을 관리했다.
준비, 정보, 방어와 이동, 군사까지. 모든 게 완벽하다. 나는 그리 확신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세상은 언제나 내 예상을 뒤집었다. 나는 몇 번이나 전생했음에도 인간의, 집단의 힘을 얕보고 있었다.
언제나 시작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어난다. 중앙 대륙 오대 강국의 첫 표적은 이종족 연합지역도, 게리소님도 아니었다. 심지어 알테어도 아니었다.
* * *
웅! 우웅!
마법진이 설치된 방이 불온한 빛을 내며 번쩍거린다. 오온의 눈이 발동되었다는 뜻이다. 나는 즉각 마법진을 해석했다.
‘어디냐. 어디서 왔냐.’
초장거리 통신 마법진은 발신지의 위치도 알아낼 수 있다. 정확히 ‘어느 지점이다’라고 콕 찍는 건 아니지만, 거리와 방향을 계산해서 발신지를 유추할 수 있다.
북서쪽이면 알테어, 북쪽이면 데일리케, 동쪽에서 동북쪽이면 이종족 연합지역. 이런 식으로.
“으흠?”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북쪽인 건 맞지만, 거리가 심하게 차이가 난다. 데일리케는 1,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데, 이번 통신 거리는 그 절반을 겨우 넘는 정도다. 심지어 통신 내용도 글자를 내포한 마법 회로가 엉망으로 엉켜 있어서 해석할 수 없었다.
뭐지? 설마 어떤 놈이 초장거리 통신 마법을 빼앗는 데 성공한 건가? 아니, 저기에 뭐가 있지?
발신지는 북쪽. 정확히는 반데스 영지 기준으로 북쪽으로 치우친 북서쪽. 거리는 500 킬로미터 전후. 그 사이에 게리소님과 연관이 있는 곳이면……?
“저기 구오 아닙니까?”
나를 보조하던 하위 마법사가 발신지를 보더니 그리 말했다.
구오? 구오가 어디지? 워낙 예상치도 못한 단어가 등장해서 잠시 넋이 나갔다. 다른 하위 마법사들도 구오라는 단어에 얼굴을 멍하니 바꾸었다.
“구오… 면.” 한 마법사가 구오라는 이름을 입에 담는다.
구오, 암살자 펙의 고향이자 수십 년에 걸쳐 이종족 개량이 이루어진 땅. 이종족 연합지역의 본격적인 참전이 확실시된 곳.
근데 거기가 갑자기 왜 나와? 구오에서 누가 통신을 보낸 거야? 나를 포함한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며 마법진으로 시선을 던졌다.
번쩍! 번쩍!
또 초장거리 통신 마법진이 발동한다. 발신 위치는, 이번에도 구오다. 보내온 마법 회로는 이번에도 엉클어져서 글로 해석하기가 곤란했다.
구오, 초장거리 통신, 그리고 혼란스럽게 엉켜있는 마법 회로. 몇 개의 단서가 내 뇌리를 불안하게 스쳐 지나갔다.
“아! 설마……!”
나는 그 즉시 간이 통신 마법으로 왕성에서 대기하고 있는 이스마일에게 통신을 보냈다.
(이스마일! 구오에 누가 파견되었습니까!)
(구오? 탈트 경이네! 그건 왜 묻나?)
탈트. 6결에 다다른 고위 마법사다. 6결 마법사 중 가장 젊은 분. 물론, 젊다지만 예순이 훌쩍 넘는다.
탈트의 인적사항을 떠올린 나는 급하게 그에게 통신을 보냈다.
(구오에서 통신이 들어왔는데 아마 탈트 어르신이…….)
번쩍!
또 다시 발동된 초장거리 통신 마법이 내 통신을 막았다. 발신지는 이번에도 구오였다. 통신 내용은, 여전히 혼란스럽게 약동하는 마법 회로 탓에 글로 변환하는 게 힘들었지만, 다행히도 몇 개의 핵심 단어는 변환할 수 있었다.
“어… 어?”
단어를 해석한 나는 입을 더듬었다. 나는 뒤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마법사들을 돌아보며 내가 해석한 게 맞는지 되물었다.
“십만? 구오에 십만을 보냈다고?”
파직! 초장거리 통신 마법진이 활동을 멈추고, 그 사이에 이스마일이 내게 통신을 보냈다. 그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공작! 왜 그러나! 구오에 무슨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건가?)
나는 급히 그의 통신 채널을 붙잡곤 외쳤다.
(구, 구오! 구오입니다!)
(그러니까 구오가 왜!)
(구오가 시작이라고요! 중앙 대륙 이 개새끼들! 구오를 첫 목표로 잡았어요!)
구오다. 중앙 대륙은 첫 침략지를 이종족 연합지역도, 데일리케나 게리소님도 아닌 구오로 잡았다. 그것도 십만이 넘는 병력을 보내서.
번쩍! 번쩍번쩍!!
“하하…….”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계속해서 통신을 보내는 초장거리 이동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이거, 아무래도 빛의 수호자에게 뒤통수를 거하게 처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