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16
0116 / 0124 ———————————————-
19. 반환[返還]
백모의 개선은 유래 없이 화려했다. 타 지파가 다소 어두운 얼굴로 귀환했지만 백모만은 모두의 얼굴이 밝았다. 희생도 다른 지파에 비해서 적었으며 가장 많은 노획물을 가져왔다.
이소호칸은 크게 기뻐하며 아들인 마진츠를 장원 밖으로 나가 맞았다. 이번 전투의 큰 공적이 마진츠였다는 사실이 모두의 입을 통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백모 지파로 온 수레는 가득 찼으며 노예로 잡아온 아이들의 행렬 또한 매우 길었다. 이전 원정에서의 성과보다 숫자로만 봐도 월등히 많은 수치였다.
“모두 수고가 많았다.”
이소호칸은 장원에서 다시 백모의 병력들을 맞았다. 장원을 가득 채우고도 노획물의 양이 많아 행렬이 바깥까지 이어졌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소호칸은 백모의 아들들이 이루어낸 전과를 보고받았다.
하지만 처음으로 사망자의 숫자를 보고할 때 이소호칸은 기뻐했던 마음을 약간 누그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사망자 마흔하나, 유래 없이 많은 숫자의 죽음이었다.
이소호칸은 그런 와중에도 아들을 책망하지 않았다. 다른 지파에서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이미 귀띔으로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흔하나는 지파 하나로 가늠한다면 상당히 큰 피해였지만 다른 지파의 피해와 비견하여 본다면 미미하다 싶을 정도의 것이었다.
적모 같은 경우에는 오백이나 보냈던 병력의 대부분이 돌아오지 못하였고 다른 지파들은 백모 지파보다 곱절의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이소호칸은 전은록에 그들의 이름을 올릴 수 있도록 사망자의 명단을 받아 품에 갈무리했다. 바로 이어서 노획물에 대한 보고가 이어졌다.
“…말 2,661마리를 노획하여 저희에게 온 것이 782마리, 어린 인간 총 8,221명 중 이송 중에 죽은 것이 113명, 저희에게 온 것이 남자 인간 911명, 여자 인간 861명입니다.”
노획물의 보고가 이어지자 이소호칸은 흐뭇할 수밖에 없었다. 실로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미소가 절로 나와 입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노획한 물자에 대해 보고를 받으면서 물자들은 즉시 분류되었다.
그 자리에서 무명이 장부를 들고 물자를 바로바로 정리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정리하는 데에만 일주일이 넘게 걸렸지만 무명이 물자 정리를 맡자 일이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무명은 6년 전 자신과 같이 줄에 묶여있는 아이들을 묵묵하게 바라보며 맡은 일을 처리했다.
아이들의 모습은 매우 추레했다. 무명은 그들을 보며 불쌍한 감정을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 그의 감정은 이마진과 공진희의 사건 이후에 완전히 죽어 어떠한 것에도 크게 기복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기계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해낼 뿐이었다. 워낙 감각적인 일에는 무신경한 범족들이기에 무명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가까이에서 무명을 가르치는 이소호칸마저도 무명의 내적 변화에 대해 쉽게 알아차릴 수 없었다.
오직 수에르만이 무명의 가슴 깊이 새겨져있는 상처를 알고 있었다.
“그럼 강제께 보낼 예물과 아이들을 분류해야겠군.”
이소호칸이 그렇게 말하며 무명을 불러 예물과 아이들을 어떻게 분류할지 일렀다.
그때까지 무명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던 아이들이었지만 이소호칸이 무명을 부를 때 그의 존재가 대두되었다.
특히 무명과 가까이 있던 아이들은 그의 목에서 인간의 말이 아니라 크르렁거리는 소리가 나올 때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적의 수령과 같은 자와 대화를 나누는 듯하니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놀란 아이들이 고개를 들고 무명에게 시선을 보내자 주변의 범족들이 못마땅한 듯 으르렁거렸다. 아이들은 그에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땅을 바라보았다.
아이들 몇몇은 무명을 힐끗힐끗 보며 그에 대한 궁금증을 크게 가졌다. 아이들이 보기에 무명이라는 존재는 정말 희귀하고도 신비로운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무명은 그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을 물건으로 취급하며 분류했다.
무명은 쭉 걸어가며 배정된 아이들을 일으켜 세웠다. 범인들이 다가와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들을 데려갔다. 반항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질끈 눈을 감고 부들부들 떠는 아이들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노획물들 중에 강제에게 주는 예물들이 나누어졌다.
무명이 참여하자 일처리가 확실히 빠르게 정리되었다. 나누어진 예물들과 아이들이 옮겨졌다.
해가 서편으로 저물어가자 온갖 노획물과 아이들 그리고 사백오십여의 백모의 병사들로 가득 차있었던 장원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텅 비었다.
무명이 뒤처리를 위해 장부를 끼적이며 창고 용량에 대한 계산하고 있을 때 고스보치와 마진츠는 이소호칸과 부대 편성과 은상에 대한 대화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도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고스보치가 권상하며 이소호칸에게 이별의 예를 갖추었다. 이소호칸이 미소를 지으며 권상의 예를 받아주고 그를 돌려보냈다.
이제 장원에는 장원을 정리하는 시녀 몇과 이소호칸, 마진츠, 무명만이 남아있었다.
무명은 대충 정리가 끝나자 장부를 살짝 접은 뒤에 마진츠에게 다가갔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마진츠 형님.”
무명이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마진츠에게 말했다.
마진츠는 무명을 보고 머쓱해하며 무명의 머리를 투덕거리며 대답했다.
“고맙구나, 네 덕분에 물자 정리가 상당히 빨라진 것 같구나.”
마진츠의 칭찬에 무명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러곤 몸을 돌려 이소호칸에게 권상의 예를 하며 말했다.
“대족장 어르신, 물자 정리는 다 끝났습니다. 저도 이만 숙소로 돌아가 해당 물자들을 각 족장들에게 배분할 계획을 짜도록 하겠습니다.”
무명이 공손히 예를 갖추어 말하자 이소호칸이 고개를 끄덕이며 예를 받았다.
이소호칸의 시선에는 무명에 대한 기특함이 고루 담겨있었다. 무명을 가르친 보람이 최근 들어서 크게 효과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 농장을 감독하고 백모 지파 내의 재물에 대한 관리를 무명에게 일임함으로써 백모 지파의 부가 늘어나고 있었다. 또한 평소 자신이 하기 귀찮았던 물자 정리를 완벽하게 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심히 들어가거라.”
무명이 뒷걸음질을 치며 이소호칸 곁을 물러났다. 그렇게 등을 돌리는 그 순간, 무서운 한기가 무명의 등을 감싸 안았다.
‘응?’
그 한기는 오묘했다. 짧은 삶이지만 그러한 한기는 한 겨울에도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무명은 더 이상 발을 옮기지 못하고 살짝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진츠가 허리춤에 매달고 있던 기다란 비단 보자기가 풀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뭐지?’
무명은 급격하게 호기심이 일어 풀려진 보자기 끝을 눈으로 좇았다.
그 끝의 황금색 물미를 바라보았을 때 무명의 머리는 흡사 종이 친 것처럼 울리며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
‘뭐, 뭐지?’
큰 소리가 귀를 때리면서 무명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것은 곧 마진츠의 손바닥 위로 올라갔다. 마진츠는 아버지인 이소호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이번 전투에서 노획한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입니다.”
기묘하게 생긴 검이 마진츠의 손 위에서 태양빛을 받아 반짝였다.
마진츠는 전투 승리를 기념하며 그 검을 이소호칸에게 진상하고 있었다.
무명은 마진츠가 검을 꺼내 든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무엇이냐?”
이소호칸이 검이라고 부르기엔 짧은 검신, 검병이라고 부르기엔 긴 손잡이를 가진 괴이쩍게 생긴 검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적장이 쓰던 검입니다. 아버지께서 마련해 주신 제 보도(寶刀)의 날을 깨트릴 정도의 보검(寶劍)입니다. 이 검은 적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최고의 신기(神機)일 것입니다.”
‘이 검은 적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최고의 신기(神機)일 것입니다……. 이 검은 적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최고의 신기(神機)일 것입니다…….’
마진츠의 마지막 말이 어지러운 무명의 귓가에 반복해서 울려 퍼졌다. 적에게 있어서 최고의 신기. 그것이 뜻하는 말을 무명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것은 그야말로 인간의 보물, 인간의 신물임이 분명했다.
머릿속 종의 울림은 검이 자신에게 보내는 울부짖음이었으며 슬픈 전언이었다.
‘으억!’
무명은 입이 벌어지며 무언가를 토해내었다. 아니 입 밖으로 나온 것은 없었다. 실제로 헛구역질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명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뱉어내고 또 뱉어내었다.
그것은 지난날 이마진이 공진희를 구하는 데 실패하여 팔이 잘리고 자신만이 도망쳐 나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은 유기이의 바구니 속에서 삼켜내었던 붉은 물이었다.
이마진의 끔찍한 고통 소리가 머릿속에 되뇌어지며 악몽 속에서 자신을 익사시킨 물이었다.
해일같이 쏟아져온 붉은 물이 무명의 입과 코를 막고 숨조차 쉬지 못하게 했다. 억겁과 같은 고통의 시간이 영겁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고통 속에서 붉은 물을 계속해서 들이켜고 또 들이켰었다. 그것이 그 원한과 분노의 핏물들이 지금 무명의 입 밖으로 모조리 토해져 나오고 있었다.
폭포처럼 떨어져 내린 붉은 물들은 무명의 발치 아래로 흘러가 검에 달라붙었다. 그것은 곧 형상을 이루더니 손이 되어 무명의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것이 손짓하고 있었다.
세상 그 어떠한 것보다 달콤한 향기.
그 손짓에 홀리듯 시선을 고정한 순간 손이 무명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다.
무명에게서 주체하지 못할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역류하듯 가슴을 파고든 붉은 손은 곧 몸을 관통하고 등으로 격하게 빠져나왔다. 그것의 형상은 더 이상 손이 아니었다.
지옥에서나 볼 법한 악귀의 형상이었다.
“소자(小子), 아버지에게 이 승리의 증표를 바치나이다. 이 검으로 적이 소자를 상대할 때에 소자와 부족함이 없게 격을 겨루었습니다. 이 검은 아버지의 권위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마진츠의 자랑이 섞여든 말에 이소호칸은 기쁜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자식이 진상하는 승리의 증표, 인간의 보물을 손으로 잡아 들었다.
“고맙구나. 다소 기형적으로 생긴 검이나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내 곁에 항시 두도록 하겠다.”
평소 병장기를 즐겨 수집하며 명기를 아끼는 이소호칸이었기에 단숨에 검의 진위를 파악하고 아들이 진상한 검을 기쁘게 받아 들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무명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저 검(劍)은 원수인 호족 따위의 손에 놀아날 물건이 아니다!’
마음이 부르짖었다. 통한의 원한이 담긴 외침이었다.
‘검이 나를 부르고 있다. 저 검은 나의 것이 되어야 한다!’
등 뒤의 붉은 악귀가 무명의 마음속 외침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끔찍한 표정임이 분명했으나 무명은 악귀의 미소가 어떠한 것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악귀는 갑자기 불어온 바람을 타고 이소호칸이 쥐어 든 검속으로 빨리듯 들어갔다.
무명은 그러한 광경을 보고 어금니를 깨물며 스스로를 갈무리했다.
지금 이러한 감정을 바로 얼굴에 표출해서는 아니 되었다.
지금 이 감정을 행동에 옮겨서는 아니 되었다.
저 검을 얻기 위해서는 합당한 때와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 옳았다.
신중한 시간이, 생각이 필요했다. 보다 저 검을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무명의 머릿속은 이미 어떠한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헝클어지고 무너져갔다. 더 오래, 더 신중하게 판단하기 어려웠다.
최대한으로 검을 얻을 수 있는 기간을 미루고 미룬 것이 오늘 저녁이었다.
그렇다. 무명은 오늘 밤 저것을 쥐고 갈망하는 힘을 얻을 터였다.
무명은 지금 뛰쳐나가고자 하는 자신을 간신히 설득하고 힘겹게 등을 돌려 검과 멀어졌다.
그 결심을 하기 위해 손등까지 깨물어야 했다. 손등이 찢어져 핏물이 입술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저 검은 나를 선택했다.”
손등을 앞에 두고 무명은 낮게 속삭였다. 한기가 서린 속삭임이었다.
너무 낮은 속삭임이었기에, 검에 정신이 팔려있는 이소호칸과 마진츠는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무명에게 일어난 이상한 낌새를 알 수 없었다.
무명은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잠재우고선 장원을 빠져나갔다.
이소호칸은 마진츠가 자신에게 바친 검의 요모조모를 살펴보았다.
반사되는 햇빛마저 베어버릴 예기를 품고 있는 검.
조국의 신물 태령검이었다.
============================ 작품 후기 ============================
2014-08-09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