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word Seven Flesh Divine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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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순응[順]
선고우가 죽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무명은 본격적으로 인간 농장 관리를 일임하기 시작했다.
이소호칸의 비호 아래 무명은 가장 먼저 이소호칸이 다스리는 동쪽 지파의 수도인 정백(精白)의 농장 관리를 시작했다.
무명은 관리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수도의 지명이 정백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았다. 그 이전까지는 솔직히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물어보지도 않았고 정백이라는 수도의 호칭을 쓰는 이도 없었다.
처음으로 정백이라는 수도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일전 수에르가 보여준 지도에서 언뜻 보았던 게 전부였다.
상대적으로 범족에겐 지리 관념이 부족했다. 무명이 등편이었던 시절 마을 주변과 산과 봉우리들에는 모두 이름이 있었다.
하나의 작은 개천과 소로(小路)에까지도 명칭이 있었던 반면 범족의 지리에 대한 명칭은 참으로 좁았다. 이곳에 온 지 5년이 지났지만 근방 지리에 대해 명칭을 아는 것은 오로지 높게 솟아있는 백모봉이 전부였다.
무명은 이에 관리를 겸하면서 이소호칸에게 지리를 배우고 싶다 요청했다. 각 지파에 대해 농장과 생산물을 관리하기 위해선 지리가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이소호칸은 무명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마진츠를 통하여 지리를 공부할 수 있도록 시켰다.
마진츠는 지난 무명과 함께한 3년간 인간의 언어를 훌륭하게 배웠다. 그는 스스로를 단련하고 수련하는 일에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오전에 잠시 시간을 내어 무명에게 인간의 글과 말을 배웠다.
이소호칸처럼 능숙하게 구사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인간의 말을 듣고 이해하고 쓸 수 있었다. 그나마 계속 어려워했던 것은 말하기였는데 그것도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듣는 이가 불편하지 않을 소통은 가능할 정도로 인간의 말과 글을 소화해 내었다.
이제 입장이 바뀌어 무명이 마진츠에게 지리를 배우게 되었다. 그러면서 조금씩이긴 하지만 농장 관리, 그중에서도 먼저 농사 부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이소호칸의 방식을 지켜보고 수확물을 검사하는 것에 그쳤지만 무명은 점점 자신의 입지를 넓혀갔다.
물론 인간들 대다수, 아니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사람들이 무명을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무명의 뒤에는 항상 이소호칸이라는 범족의 대족장이 있었다.
한번은 길을 가다 그를 시기하는 아이들이 던진 돌멩이를 맞은 적이 있었는데 이소호칸은 그 돌멩이를 던진 아이들을 찾아 포승줄에 묶어 굶겨 죽였다.
무명에 대한 이소호칸의 강력한 대응은 인간들에게 시기심과 질투, 분노를 더 가중시키기도 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공포심을 각인시켰다.
무명이 처음으로 인간 농장의 틀을 손본 것은 바로 상벌제를 도입한 것이었다. 무명 또한 잠시나마 인간과 함께 지내었기에 이들이 얼마나 능률 없이 일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일을 하는 사람은 하고 대충 하는 사람은 대충 했다. 범인들의 노예로 분간되었으나 그 속에도 분명 계층은 존재했다. 보다 나이 많고 힘이 많은 자들이 그보다 약한 자들을 핍박하며 일의 분량을 조절했다.
어차피 호인들은 일정 구역 내에서 개간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무명은 이 구조를 뜯어고쳤다. 여기에서 저기까지만 일해라, 라는 식의 분량을 제시해 주지 않고 스스로가 열심히 일해야 하는 동기를 부여했다. 그것이 상벌 제도였다.
먼저 어지럽게 배치되어 있는 조를 전부 다시 재배치하였다. 되도록 같은 나이대로 조를 편성했다. 각 조는 해당 업무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게 했다. 또한 각 조의 조장을 선출하게 했다.
이전처럼 각개로 자유롭게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닌 조장을 통해 업무를 조율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정백의 주위는 북쪽의 백모봉을 제외하고선 대부분이 너른 초원이었다. 지금 인간들이 개간하고 농사를 짓는 토지는 그 토지의 30분의 1도 채 되지 않았다. 개간의 속도를 높이고 농작물을 더욱 심는다면 생산력이 늘어날 것은 당연했다.
농작물을 재배하는 데 투입된 인력은 대부분 11세~19세의 남자아이들 759명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투입된 농작지는 200명 정도만이 일을 해도 충분했다.
무명은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서 대충이지만 인구 대비 효율을 가늠할 수 있었다. 참으로 능률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무명은 10여 명으로 나누어진 76개의 조를 나이순대로 묶어 여덟 개의 대를 만들었다. 한 개의 대에 8~10개의 조가 편성되었다.
무명은 군대처럼 체계를 만든 것이었다. 10여 명의 76개조는 76개의 십인 조였고, 여덟 개의 대는 백인의 조였다.
여덟 개 대에 속한 조는 대의 구분마다 하는 업무가 동일했다. 이것으로 무명은 각 대의 10여 개의 조를 경쟁시켰다.
정확히 업무의 분량을 정해주지 않은 채 조장들의 업무 성과에 대한 보고를 듣고 감시하여 가장 성과를 많이 낸 조에게 음식과 지급해 주는 옷의 품질을 개선했다. 일을 못하는 조는 음식을 적게 주고, 음식의 품질을 낮추었다.
물론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여자들의 입장에서는 일이 버거워지고 손이 조금 더 많이 가게 되었지만 이렇게 제도를 바꾼 이후로는 확실히 일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하위권에 맴돌게 되는 조에게는 기존에 주던 음식에 비해 형편없는 식사가 제공되고 상위권의 조는 기존의 음식보다 질이 좋으며 양 또한 풍족했다.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로 변하게 만든 것이었다.
조뿐만이 아니라 여덟 개의 대 또한 경쟁시켰다. 대와의 경쟁에서 상위에 있는 대는 분기마다 고기가 지급되었다. 호인들이 소비하는 고기에 비해서 손톱만 한 것이었지만 이것만으로도 그들은 열광했다.
물론 이 제도는 처음부터 잘 수행되지는 않았다. 중간의 시행착오가 빈번하게 벌어졌다. 처음에는 일일 보고의 형식에 76개의 조장만을 뽑아서 시행했기에 무명 혼자 76명의 조장들의 보고를 받다가 날이 샐 정도로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었다.
그것을 무명은 대를 만들면서 각 대의 대장을 선출하여 여덟 명의 보고로 줄였다. 초기에는 조장이나 대장으로 선출된 자들이 권력이 있는 듯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지만 무명은 그렇게 권력을 계속 유지할 수 없도록 조장은 10명의 조원을 통해 대장은 76명의 조장을 통해 뽑았다. 그 기한은 1년으로 잡았다.
유능하고 인정받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끈다. 이 논리는 무명이 대호투를 통해 배운 것이었다.
3년마다 격투를 하여 가장 힘이 센 자가 대족장을 그리고 대족장 중에 가장 힘이 강한 자가 강제에 취임하는 율법. 하지만 이것을 그대로 인간에게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무명은 힘으로가 아닌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을 귀결하여 장을 선출하는 것으로 이 방법에 적용시켰다.
반발도 많았다. 먹는 것을 건드리는 것은 상당히 예민한 문제였다. 기존에 주던 식사를 빼앗고 형편없는 식사를 준다는 것 자체가 지금까지 놀고먹으면서 지내던 계층에게 불만을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명의 발안을 이소호칸이 허락하고 호인들이 무명의 뒤를 봐주자 그들은 꿈쩍하지 못하고 변화에 수긍해야 했다.
적용은 힘들었으나 효과는 곧 나타났다. 적용한 당해에는 미미할 정도였으나 그 다음해 무명이 14세가 되고 나서의 백모 지파 정백의 농사 수확량은 일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풍작도 풍작이었지만 개간된 토지는 지금까지 수년간 일구었던 것의 절반을 상회했고 그 토지들에서 종전의 세 배에 버금가는 수확량을 얻었다.
이소호칸은 무명의 성과에 기쁠 따름이었다. 무명은 인간이지만 참으로 대단한 인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단 14세의 나이로 관리, 유지뿐만이 아니라 제도를 만들고 그것을 실현시킨 것이었다. 이소호칸은 이러한 제도를 다른 지파에 서둘러 적용하려 했다. 하지만 무명은 그런 이소호칸에게 겸손히 말했다.
“아직은 제도가 완벽하게 정착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올해는 해와 비가 적절하게 와주어 대풍년이었기에 이렇게 수확량을 늘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경과를 보고 찬찬히 다른 지파에 적용하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도 이 제도는 문제점들이 많습니다.”
큰 실적을 내서 뽐내며 칭찬을 기쁘게 받아들이기는커녕 무명은 매사 조심스럽게 한 계단씩 일을 진행했다.
이소호칸으로서는 무명의 신중한 말에 일리가 있다 생각할 뿐만이 아니라 그를 더 깊게 신뢰하게 되었다.
곧 이소호칸은 수도인 정백의 인간 농장 관리에 대한 전권을 무명에게 넘겼다. 몇몇 호인은 그런 이소호칸에게 불만을 가졌지만 그 불만도 곧 사그라졌다.
무명이 관리를 시작한 후로 인간 농장에서의 생산률이 급증했기 때문이었다. 소, 돼지, 염소, 닭, 오리 등을 기르는 축사에서부터 공방에서 나오는 도구와 제작되는 의복들의 품질과 생산이 차근차근 늘어나며 호인들의 편의가 점차 향상되었다.
그에 반해 인간들은 열심히 하면 이전보다 좋은 대접을 받는 것은 분명했으나 대다수가 피곤하고 힘들어했다.
이러한 제도를 적용시킨 무명을 홀대하고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무명은 스스로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호인들 사이에서 더욱 인기를 얻었고 인간들 사이에서는 미움을 받았다.
평년 777년. 무명의 열넷의 겨울에는 또다시 대호투가 벌어졌다. 정신없이 새로운 일들에 치여 살던 무명에게 시간은 정말 거센 폭포와 같은 흐름이었다.
대부분의 호인들은 이번 대호투에서 대족장이 바뀔 수 있음을 예상했다. 이소호칸의 나이 58세. 보통 호인이 무예로 절정을 맞는 기간은 느지막한 서른에서 쉰의 초반까지였다. 이제 예순을 바라보고 있는 이소호칸으로서는 기력이 쇠할 만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소호칸은 전혀 늙지 않는 듯했다. 근육은 팽팽했고 허리는 곧게 펴진 상태로 체격이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바뀐 것이 있다면 점점 길어지는 털의 길이와 깊어지는 눈동자 색이었다.
이소호칸의 나이만으로 볼 때 많은 사람들이 다른 대족장을 기대하는 눈치가 없지 않아 있었다.
이번에도 대호투에서 승리한다면 이소호칸은 동쪽의 백모 지파의 대족장으로 자그마치 21년을 연속해서 군림하는 것이었다. 이는 염의 역사만으로 봐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노년에 이르러서는 강제의 싸움에 참여하지 않기에 흑모의 카츠루기 같은 자들은 백모의 인재가 없음을 한심하게 생각하고 비꼴지는 몰랐다. 하지만 대부분의 호인들은 이소호칸을 들어 세대가 낳은 염의 걸출한 영웅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가 백모의 아버지가 됨으로써 동쪽 지파가 풍요로워지고 풍족해졌다. 이는 염이라는 국가 전체로 볼 때에도 획기적인 성과임이 분명했다.
이소호칸은 자신의 일대기에 다시 영광이란 글자를 한 획 더 그었다. 대족장이 바뀌길 기대하는 사람들의 기대심리를 철저히 부수고 늙어 쇠약해졌다는 의견에 반증이라도 하듯 당당히 대호투의 승자가 되었다.
일전 같았으면 그 자신도 실망했을 터였다. 아무리 강해도 늙은 자신을 뛰어넘는 자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백모 지파의 인재가 없다는 것을 확증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 대호투에서 가장 기쁜 성과를 얻었다. 아들인 마진츠가 당당히 결승까지 올라와 자신과 대족장을 두고 겨룬 것이었다.
마진츠의 나이 스물넷. 백모 지파의 인재가 없다는 말을 쇄신할 정도로 젊으면서도 강력한 힘을 가진 백모의 보배였다.
다소 기간이 길었긴 하나 이소호칸으로서는 이번 대호투를 통해서 충분히 만족했다. 아들의 기량은 자신의 젊었을 때를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지금은 자신과 쌍수를 이루기엔 실전에서의 경험이 적고 연배 차이가 크기에 이소호칸이 선을 잡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3년 후, 아니 그보다 더 일찍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아들은 필시 자신을 뛰어넘는 훌륭한 용사가 될 것이 자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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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7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