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310
309화 청가장(4)
“응? 초대 장주님의 무덤이 어디 있냐고? 갑자기 그곳은 왜……?”
“크흠, 중원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신 위인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말입니다. 뿌리를 알아야 가지를 바로 살필 수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하긴! 이제 가족과도 같은 사이가 될 테니 미리미리 찾아뵙는 게 좋겠지.”
청가장주가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마음 같아선 함께 가 주고 싶지만, 내 오늘은 바빠서 안 될 것 같고…… 소소를 붙여 주겠네.”
“그러지 마시고 위치만 알려 주시면 제가 혼자 다녀오겠…….”
“밖에 누구 없느냐!”
“예, 장주님.”
“얼른 가서 소소를 데려오거라. 지금 당장!”
“아니.”
혼자 갔다 온다니까요?
잠시 후.
하인이 누가 봐도 자다 일어난 몰골인 청소소를 데리고 돌아왔다.
“아! 바빠 죽겠는데 왜 자꾸 부르시는 거예요?!”
열 걸음 이상 떨어져 있음에도 술 냄새가 진하게 나는 걸 보니, 분명 밤새 술을 퍼마시다가 늦잠을 잔 게 분명했다.
화를 내던 그녀가 나와 눈을 마주치고 환하게 웃었다.
“어라? 집주인님도 계셨네요? 안 그래도 오늘 저녁에 술 마시자고 부르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다. 근처에 오리탕 기가 막히게 하는 곳 찾았는데 이따 백주 한잔 어때요? 물론 계산은 돈 많은 집주인님이 하시는 거고요.”
그 모습을 보는 청가장주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이, 이 미친 계집애가 조신하지 못하게…….”
“조신은 무슨. 볼 장 다 본 사이인데요, 뭘.”
“보, 볼 장 다 봐?”
청가장주의 시선이 대번에 나를 향했다.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저 진짜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아니, 그만큼 친하다는 뜻이지! 무슨 생각을 하신 거예요? 설마 배꼽이라도 맞췄다고 생각하신…….”
청가장주가 바로 옆에 있던 안마 봉을 들고 대번에 달려 나갔다.
“악!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예요?! 아악! 아파요!”
“거기 서지 못하겠느냐?!”
도망치는 청소소와 쫓아가는 청가장주의 모습을 보니 한숨이 튀어나왔다.
“에휴.”
제발 내 딸은 안 저랬으면 좋겠다.
* * *
한 시진 후.
나는 청소소와 당양강을 데리고 청가장의 선산으로 향했다.
“갑자기 무덤을 왜 가냐고요! 오래간만에 집에 와서 편하게 쉬려 했는데…….”
“옳소! 이 무슨 개고생이란 말이오?!”
이번 여정에서 절친이 된 두 사람이 나를 타박했다.
아무래도 둘 다 개망나니 기질이 있어 쉽게 친해진 듯 보였지만, 이런 동맹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직 멀었수? 언제까지 가야 하는 것이오?”
“시끄러워욧! 안 그래도 짜증 나 죽겠는데 그만 좀 보채요!”
더운 날씨 탓인지 얼마 안 가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물어보지도 못하오?”
“일각에 한 번씩 물어보니까 그렇죠! 진짜 이렇게 참을성이 없어 가지고 장가는 어떻게 갈지 몰라…….”
“이 여자가 진짜?! 입에서 튀어나오면 다 말인 거 같소?”
“뭐? 이 여자? 이 아저씨가 정말 말이면 다인 줄 아나. 여태 입 냄새 나는 거 참아 줬더니만…….”
“뭐?!”
그렇게 반 시진 정도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가다 보니 청소소가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저기예요.”
후다닥 달려 나간 그녀가 언제 짜증을 냈냐는 듯 웃으면서 돗자리를 펴더니, 봇짐에서 술과 간단한 안줏거리를 꺼냈다.
“온 김에 제사라도 지내려고?”
“아뇨? 산 사람 입부터 챙겨야지 제사는 무슨 제사예요. 그냥 저 마시려고 챙겨 왔어요. 양 무사도 이리 앉아요. 생긴 건 밉상이지만 술은 나눠 드릴게요.”
“크흠, 아까는 미안했소이다. 더워서 잠시 실성을 했나 보오.”
“뭐, 용서해 드릴게요.”
“…….”
제발 내 딸과 아들은 안 저랬으면 좋겠다.
술을 마시는 두 사람을 내버려 두고 무덤과 그 주변을 살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깔끔한 묘지와 적당한 크기의 비석이, 이곳에 청구서가 묻혀 있음을 알려 줬다.
풀이 적당한 길이로 잘려 있는 것으로 보아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 같았고.
‘절이나 하자.’
직계 자손인 청소소가 저따위니 어떡하겠는가.
나라도 해야지.
샤아아.
꾸벅 절을 하며 무덤 안으로 칠감도를 펼쳤다.
백골로 추정되는 사체와 몇 가지 유품이 느껴졌다.
‘역시.’
내 예상이 딱 들어맞았다.
청구서 정도 되는 인물이 맨몸으로 무덤에 들어갈 리가 없었으니깐 말이다.
이제 남은 건 무덤 안을 확인하는 것뿐.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시고 있는 청소소와 당양강을 향해 지풍을 날렸다.
털썩털썩.
수혈이 짚이자마자 두 사람이 단숨에 쓰러졌다.
모기가 넘쳐나는 한여름 날씨에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뭐…… 괜찮겠지.
“그러게 혼자 온다니까.”
그렇게 두 사람을 잠재운 나는 무덤 주변을 살폈다.
남의 무덤을 파헤친다는 게 조금 찝찝하긴 한데 어쩔 수 없다.
과학 수사의 첫 번째는 시체에서 단서를 얻는 거니까.
“어디 보자…….”
허리에 감은 천라포망에 기를 주입하며 펼쳤다.
사방으로 뻗어 나간 그물이 무덤을 감싸는 건 물론 관이 있는 곳 바로 위까지 꽉 잡아챘다.
그야말로 포클레인이라고 할 만했다.
이렇게 통째로 들어냈다가 원상 복구 하면 관뚜껑이 열렸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렇게 힘을 주려던 찰나.
“……!”
등 뒤에 엄습하는 살기가 느껴졌다.
곧장 뒤돌아보니 낫을 든 노인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너 뭐냐? 뭔데 남의 무덤을 파헤치려 하고 있냐?”
“…….”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기절부터 시키려던 그때.
“이 아이는…….”
쓰러져 있는 청소소를 본 그가 기세를 끌어올렸다.
“청가장의 금지옥엽까지 납치하다니 보통 대담한 놈이 아니구나.”
“아니, 납치한 건 아니고…….”
“하긴, 어차피 뒈질 놈의 유언을 들어 뭐 하겠냐?”
“아니, 일단 들어 보고 판단을…….”
“죽어라!”
번쩍!
벼락처럼 날아오는 낫이 내 목을 노렸다.
“헙!”
딱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위력.
폭사경의 경력을 터뜨려 막아 내니 손에서 찌릿찌릿한 위력이 느껴졌다.
순간, 깨달았다.
“……고수?”
어쩌면 오늘 크게 망신당할 수도 있겠다고.
* * *
“후후후.”
“입꼬리가 귀에 걸리셨습니다.”
외원을 돌며 환자들의 상세를 살피던 청가장주가 웃자 그를 호위하던 아천이 물었다.
“진 당주 덕분이지.”
“하긴, 진 당주 같은 고수가 사위라면 천하에 딸 가진 아비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살 만하지요.”
“허어, 내가 겨우 진 당주의 무공 때문에 좋아하는 것 같은가?”
“그러면요?”
“인성이 되어서 마음에 드는 게지!”
“……인성 말입니까?”
“그래, 인성. 아니 글쎄, 오늘 아침에 초대 장주님의 묘지가 어디 있는지 묻더라니까. 뿌리를 알아야 가지를 볼 수 있다면서 말이야.”
“묘지를요? 갑자기 그건 왜…….”
“왜긴 왜겠나. 혼인 전에 조상님께 절을 하러 간 것이지. 어떤가? 이 정도면 딸 복은 없어도 사위 복은 있는 셈이 아닌가?”
“처가 조상부터 챙기다니. 확실히 요즘 젊은이답지 않은 심성입니다.”
“그렇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소린데, 요즘 젊은것들 좀 보게. 남들보다 조금만 잘난 구석이 있으면 거들먹거리지 않나. 그에 비해 우리 사위는 그렇게나 잘났는데도 겸손이 몸에 배어 있더군.”
이미 진무전을 사위라고 여기고 있는 청가장주의 말에 아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파 조사의 무덤까지 찾는 걸 보면 다 넘어온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비록 초혼이 아닌 게 살짝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젊은 나이에 천하제일을 다투는 무전이다. 삼처사첩…… 아니, 칠처십이첩을 두어도 흠잡을 일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소소가 드디어 시집을 가는구나……!’
울컥.
순간, 아천은 목구멍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는 청소소가 태어났을 때부터 봐 왔다.
비록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숙부와 조카 사이로 지내 온 세월이 이십 년이 넘는다.
그런 의조카가 드디어 혼인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형님…….”
“아우…….”
청가장주의 뜨거운 눈빛을 본 순간, 아천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어난 감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형님!”
“아우!”
와락!
후련함과 기특함.
그 고삐 풀린 망아지 같던 청소소를 드디어 멀리 보내 버릴 수 있다는 후련함, 그리고 집 나간 망아지가 용을 데려왔다는 기특함이었다.
“정말 잘된 일입니다.”
“그렇지. 암, 그렇고말고!”
한참이 지나서야 진정한 두 사람이 떨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번뜩 무언가를 떠올린 아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한데 초대 장주님의 묘지라면 그분이 계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
청가장주가 벌떡 일어섰다.
“그분이 계신다는 걸 깜빡했구나!”
무려 팔십 년이 넘도록 초대 장주님의 묘지기를 자청하는 노인.
이름도 모르고 그가 왜 묘지기를 자청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는 알고 있었다.
바로 그가 천하에 적수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의 고수라는 것.
아천 이전에 식객당주를 맡았던 육학이 노인을 보고 감히 자신은 쳐다보기도 힘든 고수라고 칭했을 정도였다.
당연히 청가장주는 그를 모시기 위해 몇 번이나 찾아가며 정성을 쏟았다.
하지만, 그는 묘지를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청가장주가 다가갈수록 노인은 피하기만 했고 이제는 깊숙이 숨어 묘지만 관리했다.
그렇게 얼굴을 못 본 지 십삼 년.
청가장주는 그만 노인의 존재를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그가 불안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아천에게 물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갑자기 호승심이 일어나서 맞붙는다거나 오해가 생긴다거나…….”
“괜찮을 겁니다. 무인이란 손을 마주치다 보면 상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진 당주의 인성이라면 그분께서도 틀림없이 인정하실 겁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겠지. 다행이군.”
그제야 안심이 된 청가장주가 쨍쨍한 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무공에서 살의가 느껴지는 게 틀림없이 사공을 익힌 사파의 잡졸이렸다!”
“아니 어딜 봐서! 공명정대하기 짝이 없는 정파 무공에 사공이라니. 그리고 내가 누군지나 알고 그따위 소리를…… 헙!”
콰아앙!
극사경을 펼쳐, 벼락같이 날아오는 겸(鎌)을 견제했다.
서거억!
집채만 한 바위도 가를 정도의 위력.
하지만, 겸에 담긴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극사경으로도 경로만 약간 틀었을 뿐 튕겨 내지는 못했다.
겸이 목 옆 승모근을 스치고 지나가며 살을 길게 잘라 냈다.
“워매!”
“청가장의 식솔을 납치한 이유를 말해라!”
“납치한 게 아니라니까! 그냥 잠깐 재우려고…….”
“문답 무용!”
“아니.”
미친놈이냐고.
쑤앙!
피해 내자마자 정수리를 노려 오는 겸.
풍기는 기세가 심상치 않아 곧장 이형환위를 펼쳐 피해 냈다.
동시에 펼친 파월.
거대한 인력이 노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뻔한 수!”
쑤앙!
그가 코웃음을 치고는 맹렬히 회전하며 겸을 그었다.
싹둑!
“……!”
검은색 파월이 꽃을 피우기도 전에 반으로 갈라졌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멍하니 있으니 진한 웃음을 머금은 노인이 양손에 쥔 겸을 빠르게 그었다.
심상치 않은 기세에 나도 모르게 펼쳐진 전왕보.
쿠웅.
전력을 다한 이형환위가 펼쳐지며 주위의 풍경이 바뀌었다.
본능적으로 이동한 거리가 거의 백 미터에 달할 정도였다.
그리고.
싹둑싹둑싹둑.
방금까지 내가 있던 자리가 수십 가닥으로 쪼개졌다.
그야말로 공간을 쪼갰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공격에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오싹.
‘저기에 걸렸으면…….’
십중팔구 온몸이 조각조각 났을 것이다.
용린갑을 입은 채로 말이다.
이해가 안 되었다.
아무리 천하에 기인이사가 많다지만, 고수의 숫자는 한 줌이고 절대고수는 몇 되지 않는다.
갑자기 나타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뜻이다.
‘대체 어디서…….’
이런 고수가 숨어 있었단 말인가.
그것도 묘지기를 자처하면서 말이다.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
어쩔 수 없다. 진짜로 싸우는 수밖에.
파지직. 파직.
전왕기를 끌어올리며 물었다.
“제발 노인장의 나이가 많길 빌겠수.”
“…….”
“그래야 죽여도 죄책감이 없을 테니까.”
“어디 죽여 봐라. 애송아.”
“염라가 묻거늘 지상의 진무전이 보내서 왔…… 워매!”
쑤앙!
이기어겸이 날아오는 것을 신호로 본격적이 싸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