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5
005화 홍화루
#005 홍화루
험난했던 근무가 끝나고 나는 조원들과 마지막 노사 협상에 들어갔다.
“미산객잔!”
“홍화루!”
조원들이 평소 가던 미산객잔을 거부하고 새로 생긴 홍화루를 고집했기 때문이었다.
일전의 발생한 돌발 퀘스트에 대한 보상으로 미산객잔에 백주 열 병을 킵해둔 나는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조원들을 설득했다.
“미산객잔 얼마냐 좋냐. 야들야들한 돼지고기에 백주를 곁들여 먹으면 천하일미가 따로 없다니까. 캬아. 나도 모르게 침이 줄줄 나오네.”
“흥! 삶은 돼지고기도 하루 이틀이지. 그동안 미산객잔에서 먹은 돼지가 두 마리는 넘을 것이오.”
“거참, 곽삼 형님이 들으면 서운한 소리 하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곽삼 형님도 너무한 거 아니오? 개점한 지 반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국수와 돼지고기만 팔고 있다니. 됐고. 조장이 미산객잔을 고집한다면 우리는 파업을 할 수밖에 없소.”
노조위원장직을 맡은 양강이 평소와는 다르게 유려한 말솜씨를 뽐내며 나를 압박해왔다.
파업이라는 최후통첩에 나는 눈물을 흘리며 항복의 뜻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끄응, 알았다. 대신 인당 두 병씩이다.”
“그거 아시오?”
“뭘?”
“조장은 내가 구룡성에서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쪼잔한 사람이오.”
결국, 나는 최소한의 실리를 챙긴 채 십칠조를 데리고 홍화루로 향했다.
붉은색 등과 화려한 색감의 전각, 얼마 전 개업한 최고급 주루, 홍화루의 모습이었다.
입구에 도착하자 이제 막 30대나 됐을 법한 아름다운 여인이 아는 채를 해왔다.
“총관 육진화라 하옵니다. 외당의 영웅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험험, 우리를 아시오?”
“외당 십칠조의 양강 나리가 아니십니까? 그리고 저기 가장 뒤쪽에 계신 분이 조장이신 진무진 대협이시고요.”
등천각을 졸업하고 세상에 출사한 지 겨우 이 년.
벌써부터 내 명성이 외성 곳곳을 울리는 걸 보니 군계일학(群鷄一鶴)이란 말이 절로 떠올랐다.
‘하긴, 내가 좀 잘났어야지.’
명색이 구룡성에 떠오르는 에이스이자 등천각 수석졸업생이 아니던가.
허나, 당분간은 조심스럽게 지내야 하기에 나는 최대한 겸양의 말로 인사를 받았다.
“허허, 대협은 무슨, 나를 존경하는 마음을 알겠으나 내가 아직 나이가 어리니 소협이라고 불러주시오.”
내 겸손한 태도에 감명받은 것일까?
육진화가 이마를 찌푸리더니 이내 무표정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안쪽으로 오시지요. 루주님께서 외당분들이 오시면 특별 대우를 하시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이런! 좋지 않군요. 특별 대우라니. 구룡성의 녹을 먹고 사는 자가 어찌 특혜를 바라겠소?”
“주대를 할인해주라는···.”
“허나! 존경의 마음까지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내 오늘만 받아들이리다. 뭣들 하느냐?! 어서 들어오지 않고.”
할인은 못 참지.
잠시 후, 육진화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화려한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기다리시면 술상을 가져오겠습니다.”
“잠깐!”
“어인 일이신지···.”
“우리는 그저 구룡성의 앞날을 논의하기 위해 온 것이니 기녀는 필요 없소.”
내 말에 양강을 비롯한 조원들이 나를 미친놈 보듯이 보더니 나지막이 속삭였다.
“미쳤소? 기루까지 와서 기녀를 안 부를 거면 여기까지 왜 온 것이오?”
허어, 답답하기 그지없구나.
모든 일에는 정해진 예산이라는 게 있는 것이거늘.
하지만, 조원들을 불타오르는 눈빛을 외면할 수 없던 나는 결국 기녀들을 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오 분도 안 되어 그 결정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화란이라고 합니다.”
푸욱!
내 옆에 앉은 기녀를 보자마자 마시던 술을 뿜어냈다.
‘얘가 왜 여기 있어?’
인사를 건넨 기녀가 적룡당주의 손녀이자 등천각 후배인 홍화수검 적화란이었기 때문이다.
졸지에 얼굴에 술을 뒤집어쓴 그녀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후, 빈 잔에 술을 채워 넣었다.
“대협께서 많이 당황하셨나 봅니다. 혹은 소녀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던가.”
“아, 아니···.”
“어떤 게 불만인지 말씀 주시면 조속히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순식간에 얼어붙은 분위기.
기녀들은 침묵했고 조원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큰맘 먹고 하는 회식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재빨리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니다. 네 미색이 실로 경국지색이어서 깜짝 놀랐을 뿐이다. 내가 큰 실례를 했구나.”
면피성 멘트에 화란의 양 눈이 커지며 볼에 홍조가 올라왔고 그제야 기녀들이 호호 웃으며 조원들의 잔을 채워줬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황급히 그녀에게 전음을 보냈다.
[네가 여기 왜 있어?] [선배야말로 여기에 왜 있는 거예요?] [나야 조원들 데리고 회식하러 왔지.] [남한테 소면 한 그릇도 안 사주는 사람이 갑자기 웬 회식?]160km 몸쪽 꽉 찬 직구 같은 그녀의 말에 거액을 지출할 내 처지가 떠올라 가슴이 쑤셔왔다.
[홍화루란 이름을 보고도 모르겠어요? 여긴 제 사업장이라고요. 선배가 왔다길래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기녀로 위장하고 들어왔는데 얼굴에 술이나 뱉고. 나빴어. 정말.]그녀의 말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구룡성은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해 외성의 땅값은 하늘을 모르고 뛰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사층 전각 전체를 쓰는 홍화루가 적화란의 것이라니.
한국으로 치면 소위 강남 건물주가 아니던가.
상상 이상인 그녀의 재력에 나도 모르게 존경심이 올라왔다.
[여, 역시 재벌 집 막내 손녀.] [무슨 개소리예요? 잔말 말고 잠깐 나와보세요.] [술 시켜놓고 어딜 나가? 저놈들이 다 먹어치우기 전에 나도 먹어야 할 거 아니야.]“크허! 좋다. 쩝쩝쩝. 카합. 꿀꺽!”
양강이 이상한 소리를 내뱉으며 빠른 속도로 술과 음식들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함께 앉아있는 기녀들이 끔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말이다.
[…어차피, 입맛 떨어져서 먹지도 못할 거 같은데요? 그냥 따로 차려줄 테니까 저 따라와요.] [그러자.]그렇게 적화란과 함께 밖으로 나가자 조원들이 음흉한 눈빛을 보내왔다.
특히, 양강 녀석은 저질스러운 농담을 던지는 대참사를 일으켰다.
“숙맥인 줄 알았건만 조장도 대단하시구려. 앉은 지 얼마나 됐다고 그 짓을 하러 나간다니. 아니면 여자 쪽이 몸이 달아 올랐나? 으헤헤헤.”
세상에나, 적룡당의 막내 손녀를 대상으로 성희롱을 하다니.
아무래도, 사지가 잘려서 구룡호에 뿌려지고 싶은 모양인가 보다.
아니나 다를까, 기녀 중 하나가 살기를 보이며 품속에 손을 넣는 것이 보였다.
필시 손 끝에는 단검이 있을 터다.
하지만, 적화란이 미미하게 고개를 흔들자 그 기세가 사라졌다.
나는 양강 놈이 제발 사고를 치지 않기를 바라며 적화란을 따라 그녀의 방으로 이동했다.
“조금만 기다려요. 총관에게 새로운 술상을 봐오라 했으니까.”
“궁보계정(宮保鷄丁)이 있으면 그것도 부탁하고.”
“그냥 주는 대로 처먹어요.”
“손님은 왕인 거 몰라?”
“큰일 날 소리 하시네? 왕을 사칭한 자는 삼족을 멸하는 거 몰라요?”
아, 맞다. 여기 유교탈레반의 국가지.
“그게 아니라, 그···. 돈을 내는 사람은 왕처럼 대접···. 아니, 왕이 아니라 대접을 융숭하게···.”
“헛소리 그만하시고 일단 앉으세요.”
“넵.”
잠시 기다리자 밖에서 아까 봤던 총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녀님, 술상을 대령했습니다.”
“들어와.”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고 육진화를 비롯한 시녀들이 커다란 상을 들고 왔다.
온갖 산해진미가 깔린 건 물론이고 청아한 향이 훅하고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비싼 술이 올라가 있는 것 같았다.
“수고했어. 나가봐.”
찌릿.
육진화라고 했나?
홍화루의 총관이 돌아가면서 나를 노려봤다.
‘이런 이런, [또] 인가?’
아무래도 내 존재가 그녀의 마음에 불을 지른 듯 보였다.
하긴, 이번 생의 내가 좀 잘생겼어야지. 거기다 몸도 훌륭하고.
아니나 다를까, 육진화가 전음을 보내고 있는지 적화란을 바라보며 입을 달싹였다.
필시, 나와 친분이 있는 적화란을 이용하여 내게 접근하려는 게 분명했다.
적화란이 당황하며 육성으로 대답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사이 아니니까 걱정하지마.”
“그럼 그렇게 알고 돌아가겠습니다.”
육진화가 냉랭한 기색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나를 소개시켜달라고 부탁했는데 적화란이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지 않아 삐친 게 분명하다.
“마셔요.”
“그래.”
적화란이 흥분한 기색으로 잔에 술을 채웠다.
그녀를 따라 술을 들이켠 나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우왓!”
그 어디에서도 마셔보지 못한 향과 맛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후후후.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으로 만든 홍화주예요.”
“파는 거냐?”
“사 먹을 용의는 있고요?”
“이 정도면 충분히 사 먹을 거 같은데?”
“한 병에 열 냥씩인데도요?”
“빌어먹을.”
내 반응에 적화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대신, 제 직권으로 얼마든지 대접해드릴게요. 드시고 싶을 때 언제든지 저를 찾아오세요.”
“진짜?”
“그럼요. 제 사업장인데요. 그리고 선배는···. 제 지인이잖아요?”
‘키야. 역시···. 재벌 집 막내 손녀.’
올라오는 감탄을 간신히 누르며 그녀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그나저나 갑자기 웬 기루? 여자가 하기에는 좋은 사업이 아닌 거 같은데?”
“가문의 전통상 스물이 되기 전에 사업체를 운영해야 하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몇 없더라고요? 상단을 차리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크고 다른 일을 하기에는 초기 자금이 너무 부담되고요.”
“하긴, 뭐든 안전빵이 최고긴 하지.”
“네? 안전빵?”
“있어. 그런 게.”
적화란이 어리둥절한 틈을 타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사실, 나는 적화란이 떠드는 중에 홍화주를 다섯 잔을 내리 따라 마셨다.
물론, 그녀가 언제든지 대접하겠다고 했지만, 계약서를 쓰지 않는 구두 계약에 불과한 법.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얻어먹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마실 수 있을 때 최대한 마셔둘 생각이었다.
그렇게 여덟 잔째 들이마시려던 찰나.
“선배.”
“응?”
긴장감이 올라왔다.
몰래 한 병 더 딴 게 걸렸나? 그만 마시고 가라 그러면 어떡하지?
하지만, 그런 내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저랑 일 하나 같이 안 해보실래요?”
“일? 무슨 일?”
적화란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창문을 열더니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저게 뭔지 알아요?”
구룡성에 살면서 저길 모르면 간첩이지.
“금화루?”
외성에서 가장 유명한 기루이자 주루다.
하루 벌어들이는 매출이 금 백 냥에 가깝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곳을 건드리지 않는 이유는 금화루의 뒷배가 바로 금룡당이기 때문이고.
“하긴, 외당에서 근무하시니 모를 리가 없죠.”
적화란이 술을 털어넣으며 말을 이었다.
“조만간 금화루를 공격할 예정이에요. 거기에 손을 보태주세요.”
그녀의 부탁을 듣자마자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 마셨습니다. 적 소저, 아니 적화란 공녀, 그럼 다음에 뵐 때까지 부디 만수무강하시옵소서.”
그렇게 문을 열고 걸음을 내딛으려던 찰나.
스겅.
새까만 묵검이 내 목에 겨눠졌다. 검의 주인은 바로 방금 나갔던 육진화였다.
“공녀의 말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부 듣고 가시지요.”
갑작스럽 게 벌어진일에 나는 적화란을 돌아봤다.
“이거 뭐냐?”
“그래요. 마저 듣고 가세요. 선배. 다 듣고 결정하셔도 늦지는 않잖아요?”
“우선 이것 좀 치우라고 하지 그래?”
따앙···.
손가락으로 묵검의 중앙 부분을 튕기며 말했다.
“육 총관, 검 치워.”
“예.”
육진화가 검을 집어넣었고 나는 다시 적화란의 앞에 앉았다.
“하나만 약속하지. 만약 나를 이용할 생각이라면 너는 몰라도 네 부하들은 어디 한 군데씩 부러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