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눈이 내렸다.
구조 막사 안에서 바늘로 생살을 꿰매고 있던 사람도, 해독제를 위해 다급히 뛰어다니던 약제사도, 우그러진 포탈 아래 간신히 숨만 고르며 서 있던 각성자도, 모두 한 번씩은 흐린 하늘을 쳐다봤다.
세상은 새하얗게 뒤덮였고 곧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핏자국, 나뒹구는 사체, 모든 전투의 흔적까지.
“고생하셨어요.”
누군가 그렇게 속삭이자 몇몇은 눈을 감았고, 몇몇은 고개를 숙였다.
살아남은 자들의 안도이자 애도였다.
눈은 계속 내렸고, 그리고.
탁탁탁탁!
달리는 발걸음이 종종 비틀거렸다.
속도를 이기지 못한 무릎이 꺾이고, 허공을 짚으며 버텨내면서도 움직이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추위에도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이마가 폭삭 젖은 것이 눈 때문인지, 아니면 땀 때문인지 구서복은 알 수 없었다.
제발, 제발…….
그는 자신이 빌고 있는 줄도 모르면서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받는 이 없는 통화 신호가 움켜쥔 손안에서 재차 흘렀다.
콰앙!
철문을 거세게 열어젖혔다.
누군가 나간 흔적 그대로 돌아가 있는 의자.
발자국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책상.
“아가씨!”
허공에 외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자신의 목소리뿐.
사람의 인영은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결국 무너졌다.
아무 곳에도 없었다.
정말, 아무 곳에도.
“어디 가신 거예요…….”
이모아가 사라졌다.
***
통창 너머로 아침 햇살이 눈이 부시게 들이쳤다.
가끔 차 경적소리와 사람들의 와글거리는 소리 같은 것들이 길드 꼭대기까지 넘어와 들렸다.
일상의 회복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그러나 활기찬 밖과 달리 집 내부는 고요하고 적막했다.
먼지들만이 부유하는 공간.
삑, 삑, 삑.
도어락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이러고 있네요.”
바스락거리는 검은 비닐봉지 소리.
서윤이 숨소리도 내지 않고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서복을 보며 작게 한숨지었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처박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벌써 사흘이었다.
모아가 사라진 지.
서복이 못 박힌 듯 식탁 위에 앉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게 된 지.
서윤은 편의점에서 사 온 레토르트 죽을 꺼내 차곡차곡 올려뒀다.
제대로 된 요리를 한 번 해본 적 없을뿐더러, 해서 떠먹일 지극정성도 없었고, 서윤 역시 이 모든 상황이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그보다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자신은 화랑의 부길드장이기 때문에.
아직, 신화 차원에 진입한 이겸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 서복을 들여다보는 것 정도가 그를 향해 서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옆자리 의자를 꺼내 앉았다.
어색했다. 주인을 잃어 온기 없이 싸늘한 집안의 분위기가.
손을 비비던 서윤이 한숨처럼 내뱉었다.
“그래도 살아 있다는 건 알았잖아요.”
동시에 서복의 숨이 파르르 떨렸다.
불과, 어제 오전.
아침 8시도 되지 않았던 시각.
「“그럼 이것만 전해주세요.”」
서윤이 외출 후 돌아왔을 때, 길드 로비 데스크에 한 여자아이가 버티고 서 있었다.
죄송하다며 연신 사과하는 직원을 보니 꽤 길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모양이었다.
길이라도 잃었나. 이 시간에.
서윤은 멍하게 생각했다.
저런 것까지 신경 쓰기에는 서윤의 상태가 안팎으로 몹시 피곤했다.
직원이 알아서 잘 처리하겠거니, 데스크를 지나쳐 엘리베이터 앞에 선 순간.
곤란해 보이는 직원 앞에서 또박또박 되새기듯 말하는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나는 괜찮다고.”
“…….”
“나는 정말 괜찮다고, 이모아한테 전해주세요.”
새빛중학교 한미래예요.
그 말만으로 용건을 다했다는 듯 뒤돌아서는 얼굴은 상처투성이였다.
그리고 서윤은 그 즉시, 길드를 빠져나가려는 아이의 팔을 다급히 붙잡았다.
찌푸려진 눈살이 서윤을 향했다.
간절함 때문이었나. 억세게 붙잡은 팔 위로 상처가 터지기라도 했는지 피가 조금씩 배어 나오고 있었다.
구슬처럼 새까만 눈동자를 보며 서윤이 물었다.
“너…… 모아를 아니?”
이 아이가 모아의 행방에 대해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제가 마지막으로 본 건 그게 끝이에요.”
기나긴 이야기를 맺었음에도, 말을 꺼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래는 다시 치료받은 팔의 붕대를 작게 매만졌다.
세 사람이 모여 앉은 테이블 위로 영겁 같은 침묵이 흘렀다.
낙산공원, 명암, 이태환…….
장면들이 휘몰아치고 속을 긁어댔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도대체 그 아이가 혼자 무얼 짊어지려 했는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 그 어떤 것도 납득이 가질 않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처참했던 것은.
‘살아…… 있을까.’
그것을 의심해야 했다는 점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가슴을 후려치면서도, 각성자이기 때문에 알고 있는 이성으로 서윤과 서복은 더더욱 괴로웠다.
아무리 성장했다곤 하지만 그래 봤자 B급.
이태환은 랭커들 사이에서도 미친 개로 소문난 각성자였다.
모아가 그런 S급을 상대해 살아남을 확률은.
‘제로.’
제로에 가까웠다.
그러나.
“살아 있을 거예요.”
그 마음을 알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난 미래가 말했다.
모아의 같은 반.
‘……친구.’
라고 소개한 아이의 얼굴은 단단한 확신의 빛으로 차 있었다.
“아니, 살아 있어요. 걘.”
그 믿음이 어디서부터 흐르는 것인지 서윤과 서복은 알지 못했다.
이모아가 구한 아이는 그렇게 떠났다.
서복은 흔적이라도 좇아보겠다며 낙산공원으로 떠났고, 서윤은 이제 꿋꿋이 본인의 일을 해내야 할 차례였다.
집무실로 돌아와 달칵, 문을 닫는 순간에도.
소파 위로 겉옷을 내던지고, 자리에 앉아 서류를 펼친 순간에도.
‘모아야.’
이게 맞는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복잡했다.
생각을 털 듯 거칠게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모아의 행적을 쫓고 싶었다.
달려나가 샅샅이 있던 곳을 뒤지고, 머리칼 하나라도 지푸라기 쥐는 심정으로 발견하고 싶었다.
살아 있다고.
그 아이가 살아 있다고 확답받고 싶었다.
그러나.
모두가 본인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듯 서윤에게도 지켜내야 할 것이 있었다.
화랑.
제게 소중한 사람들이 돌아올 곳.
이겸이 없는 지금 그것은 오로지 서윤의 몫이었다.
참아내야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었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글자를 애써 머릿속으로 채워 넣었다.
펜을 휘갈기고, 죽은 사람들과 산 사람들의 숫자를 헤아렸으며, 그것들은 종이 위의 숫자. 데이터 따위로만 남았다.
서윤은 가끔 자신이 하는 일을 믿을 수 없었지만, 누군가는 해내야 할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기적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포탈이 생성된 규모에 비해 기적이라고 할 만큼 적은 피해.
단 한 아이의 계획과 설득이 수많은 사상자를 막아냈다.
그 누구도 해낸 적 없었던.
그때.
“언니!”
우당탕탕 문을 열고 들어온 해이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었다.
서윤은 그 표정만을 보고도 심장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떨리는 손끝을 애써 감추며 침착히 물었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이거, 이 기사.”
해이의 손에는 평소에는 읽지도 않는 신문이 덕지덕지 들려 있었다.
서윤은 목구멍까지 치고 드는 박동을 애써 가라앉히며 그녀가 가리키는 기사를 천천히 읽어 내렸다.
「명일 연구단지 폭발 사고…… 알고 보니 엽기 시체연구소?」
― 19일 새벽 6시경, 명일 생명화학 연구소 근처 대형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소방당국은 인위적인 방화 사건으로 추정,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하는 도중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연소 된 잿더미들 사이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가 무더기로 나왔다는 것.
즉시 투입 된 경찰 조사에 따른 결과, 현장에 있던 뼈들은 사람의 것이 맞았으며, 명일연구소의 투자 자금을 대주고 있던 것은 이단 ‘천문진리회’로 그들의 개입이 필연적이라고 본 당국은 구체적인 압수수색을 시작하겠다며 공공연히 선포했다…….
“모아 맞지.”
떨리는 목소리가 서윤에게 확신을 받듯 말했다.
신문지를 곧 찢기라도 할 것처럼 구겨 쥔 서윤이 무언가를 억누르듯 힘겹게 숨을 뱉었다.
“……맞는 것 같아.”
아니, 맞을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타이밍을 단지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많은 계획들을 알고 있었다.
순간, 서윤의 시야 앞에는 자그마한 등이 그려졌다.
내리는 눈과, 활활 타오르는 연구소와, 시체들 앞에서.
홀로 아득한 눈을 하고 있을 모아가.
매캐한 냄새가 났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이는 모든 것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이를 악물어 마음을 짓씹으면서도 한편으론 안도가 됐다.
살아 있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것을 알려왔다.
덜덜 떨리던 호흡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파도에 일렁이던 눈빛 역시.
그거면 충분했다.
정갈히 신문을 접어 다시 해이에게 건넸다.
“어떡해? 우리도 지금 연구소 가볼까? 뭐 CCTV 찍힌 거라도 달라고 해볼까? 응?”
안달복달하는 그녀의 손등을 붙잡아 엄지로 살살 쓸어내렸다.
부드럽게 달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래.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이따가 보자고.
길드에서 빠져나갈 때까지도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던 아이를 떠올렸다.
그저, 아직 끝나지 않았을 뿐이다.
아이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돌아올 거야. 모아는.”」
“돌아올 거예요, 모아는.”
서윤은 해이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서복에게 들려주었다.
그런다고 스스로 감옥에 처박힌 저 머리가 들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탁.
따끈하게 데운 전복죽 하나를 서복의 앞에 두고, 서윤은 야무지게 참기름과 김까지 챙겨 식탁에 앉았다.
할 수 있는 것은 건강히, 그리고 안전히 모아를 기다리는 일밖에 없었다.
‘그러겠다고 했으니까.’
서윤에게도 어느새 작은 믿음이 생겨 있었다.
***
캉, 캉가가강…….
우그러진 음료 캔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석조 바닥 위로 뒹굴었다.
끝을 분간할 수 없게 어둠이 뻗어난 아파트 복도.
꼴꼴 흘러내리는 주황빛 액체.
싸늘한 바람이 창을 흔들었다.
불도 켜지지 않는 그곳에 낮이고 밤이고 하염없이 앉아 있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녀의 머리 위로 달빛이 한 줄기 내리쬐었다.
무릎을 감싸 안은 윤채희는 간헐적으로 거친 숨을 내뱉었다.
등이 호흡을 따라 짐승처럼 부풀어 올랐다 가라앉았다.
703호의 철문 앞.
엄마의 집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