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68
58화
“아주머니! 아주머니!!”
주변 길드원들이 목청이 터지도록 그녀를 불렀다.
길을 뚫기 위해 사방에서 스킬들이 쏟아졌지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거대한 사명이라도 짊어진 듯 망설임 없이 옮기는 발걸음을 따라가기에는 느렸다.
잠긴 다리 옆으로 피어오르는 흰 연기.
피부가 녹아내리는 고통에 일그러질 만한데도, 감정을 잃은 인형처럼 창백한 얼굴은 고집스럽게 앞으로 향했다.
‘왜.’
머릿속이 무無로 돌아간 것처럼 텅 비었다.
사고 회로가 모두 터져 버린 것처럼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왜, 왜…….
그 말만 고장 난 녹음기처럼 입안을 맴돌았다.
『이겸은 살인자』라는 새빨간 문구를 목에다 걸고 걸어가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죽음이 미워 싸우면서도 묵묵히 자신을 죽여가고 있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모아 님!!”
길드원의 다급한 외침이 뒤통수를 울렸다.
‘염화.’
콰앙!
지팡이에서 솟구치는 폭발과 함께 몸이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발밑은 이제 발 디딜 곳 없는 독의 늪이다.
그러나 죽음을 결사한 상대를 붙잡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각오가 필요할 뿐이다.
반동력이 떨어져 점점 추락하는 몸.
치이익!
아타르의 독에 잠시 닿은 발목이 문드러지기 시작한다.
“멈춰요.”
작게 중얼거렸다.
나를 집어삼키려는 마수들이 검게 뻗어왔다.
펄처럼 질퍽이는 아타르의 몸뚱이가 정강이를, 팔을, 목을 붙잡아 당겼다.
얼음에 베인 것처럼 날카로운 통증이 사지를 녹였다.
물약을 퍼붓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독에 잠긴 다리는 타이어가 짓이기고 지나간 흔적처럼 흉하게 자국이 남았다.
살이 차오를 시간조차 없었다.
[마나파도]로 놈들의 구속을 떨쳐내고, 다시 상공으로 뛰어올랐다.노란색 판넬이 가까워질수록 마수들의 숫자는 급격히 늘어났다.
어느새 무릎까지 차오른 점액질을 헤치는 그녀의 옆으로는 아타르를 저지하려는 스킬들이 끊임없이 솟구쳤다.
그러나 그녀는 끝없이 걸었다.
가끔 늪 위로 올라온 발목은 뼈가 드러나 하얗게 보일 정도로 삭아 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맹목적인 행동이 두려웠다.
혹시나 그녀를 붙잡았을 때에도.
‘돌이킬 수 없게 될까 봐.’
눈앞에 뻔히 보이는데도, 또다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까 봐.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아니. 달라야만 했다.
그러니까.
“멈추라고 제발!”
악을 쓰며 손을 뻗었다.
드디어 따라잡은 어깨를 거칠게 돌려세우자 그녀가 휘청거렸다.
마주친 눈은 나를 보고 있지 않은 대신, 눈물자국이 마른 얼굴로 옅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죄수의 칼처럼 그녀의 목에서 달랑거리는 판넬이 치이익. 끝에서부터 타들어 갔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리되지 않은 입에서 더듬더듬 튀어나온 말이라고는 그게 전부였다.
그녀는 공허밖에 존재하지 않는 텅 빈 눈으로 조금씩 흐무러지고 있었다.
우리를 조금이라도 보호하기 위한 스킬들이 폭죽처럼 뺨 위로 터졌다.
어느새 정강이까지 썩어 빠진 그녀의 몸이 비틀대며 내 쪽으로 기울어 들었다.
그 순간.
‘젠장.’
그림자가 머리 위를 가렸다.
고개를 쳐들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마수의 벽이 파도처럼 넘실대며 밀려오고 있었다.
‘도망가기에는 너무 늦어.’
판단과 동시에 그녀를 안아 들었다.
이미 지탱할 다리를 잃은 몸은 가볍게 점액질에서 뽑혀 덜렁거렸다.
나는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공격이 아니라 최대한의 방어를 위해 몸을 굽혔다.
혼자라면 어떻게든 도망갈 수 있었겠지만, 성인 여성 하나를 들쳐 매고 마수 지역을 가로지른다는 건 꽤 많은 제약을 품는 일이다.
입으로 문 지팡이로 쉴 새 없이 진을 그렸다.
두웅. 둥.
쏟아지는 [마나 파도]의 파동이 조금씩 점액질을 헤치고 서 있을 공간을 만들었다.
뒤쪽에선 찰나의 타이밍에 시전한 [성운]의 운석들이 떨어지고, 어떻게든 탈출구를 내보려는 길드원들의 공격이 마주해 쏟아졌다.
구구구우―
아타르의 낮은 울음소리가 뒤통수 가까이로 바짝 붙어왔을 때.
‘온다.’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바스러진 판넬 글자는 군데군데 비어 있었지만, 내용을 읽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내 딸을 살려내라. 빼곡하게 적힌 내용은 억울함과 원통함이 가득했다.
가족을 잃은 마음이 얼마나 사무칠지 헤아리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 세계에 떨어진 후 수도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을 보았다.
하지만.
새빨갛게 적혀 있는 이겸의 이름을 눈으로 다시 더듬었다.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겸이 아니라 랭킹 1위로서 움직이는 그의 하루를 안다.
매 순간 유서를 적고, 서랍 속에 넣어두는 각성자들을 안다.
그들 역시 무엇 하나쯤은 전부 잃어버린 사람들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뜨거운 목구멍을 눌러 삼키며 말했다.
“마찬가지예요.”
“…….”
“구하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지켜만 보는 각성자는 아무도 없어요.”
아니. 그건 각성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같은 이야기이다.
살기 위해 남을 밀쳐내는 사람이 있다면, 쥐뿔도 없으면서 손 내미는 사람이 있다.
남을 구하고자 현장에 뛰어드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 사람을 놓쳤다면 그건…….
피 맛이 나도록 입술을 짓씹었다.
이 말들이 그녀를 조금이나마 감싸 안았으면 했다.
그러니까, 나는.
“최선을 다하는 방법뿐이지.”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녀를 조금 더 끌어안고 지팡이를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파도처럼 덮치는 점액질 사이로 우리는 파묻혔다.
나는 곧 해일처럼 닥쳐올 고통을 참아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이대로 매몰돼 뼈 2개로만 등장하는 수가 있었다.
죽지 않는다.
아타르의 독을 뒤집어쓰자마자 마나파도로 넉백 시켜 틈을 만들어낸 뒤, 어떻게든 바깥으로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
1초, 2초, 3초.
예정된 공격은 몰아치지 않았다.
대신 귓가에 들려온 건 급히 외치는 초조한 목소리.
“괜찮으세요?”
그리고 희미하게 퍼지는 먹물 냄새.
눈을 떴다.
이곳에 있을 거라 상상하지 못했던 이의 등을 보자마자, 심장이 아플 정도로 뛰었다.
“연이 씨.”
드디어 도착했다.
나의 지원군이.
“오래는 못 버텨요. 잠깐 앞을 뚫어볼 테니까 사이로 빠져나가요!”
인사를 나눌 시간도 귀했다.
잠깐의 눈맞춤으로 안부를 전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분신이 우리를 에워싼 채 아타르의 점액질로부터 지키고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독성에 닿은 몸이 먹물이 되어 돌아가고 있었다.
사방이 진흙 속에 갇힌 것처럼 어두웠다.
앞을 밝히는 것이라고는 내가 계속해서 그리고 있는 주문의 빛 하나.
이끼처럼 뻗어오는 마수의 손이 우글대며 시야를 막았다.
“지금!!”
연의 날카로운 소리침이 울렸다.
“진짜 싸워야될 건 우리가 아니거든요.”
흑옥 태환이식이 찰그랑, 울렸다.
【아티팩트가 소유자에게 공명하고 있습니다…… 】
【아티팩트의 영향으로 시전 스킬 ‘성운(星雲)’의 범위와 공격력이 증가합니다.】
【‘성운(星雲)’ Lv.3 달성!】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일정 비율의 지능이 상승하였습니다.】
지팡이 끝에 고인 밝은 빛이 눈이 멀 정도로 터져 나왔다.
질척이는 어둠을 가르고, 가로막는 것이 모두 사라진 시야에서 나는 언뜻 먹구름에 가져지지 않은 푸른 하늘을 봤다.
스킬의 영창 명을 조용히 되새겼다.
‘아무리 어두운 밤에도, 별들이 그대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잊지 말라.’
***
“모아야!”
“언니. 지원팀 어디 있어요? 얼른 치료받아야 할 것 같은데, 상태가 심각해.”
안전한 곳에 도달하자마자 품에 안고 있던 그녀를 바닥 위로 내려놓았다.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주서윤이 두려움 가득한 시선으로 내 상태를 뜯어보는 걸 막아섰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까무룩 기절한 것처럼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았던 그녀는 불러도 답하지 않았다.
물약을 쏟아부었어도 하반신 반절이 녹아내렸으니 당연한 쇼크 반응이었다.
“체온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 피는 대충 지혈됐는데, 그래도 빨리 대처하지 않으면 위험해요. 막사는 차렸어요? 다른 사람들은…….”
“모아야.”
“얼른 넘겨주고 움직여요. 시간 끌수록 우리가 더 불리해. 연이가 왔으니까 청렴이 왔다는 거죠? 배치를 새로 짜야 해요. 제일 효율성 있고, 전력 하나도 낭비하지 않는 쪽으로.”
“이모아!”
허겁지겁 쏟아내던 생각은 주서윤의 단호한 음성에 잘려나갔다.
그녀는 잠시 상황을 둘러볼 시간을 주더니, 먼저 조근히 내게 현 상황을 브리핑 해왔다.
“아직 지원팀은 없어. 우리가 다야.”
“뭐? 그럼, 연이 씨는…….”
멍한 눈빛으로 돌아보자, 연은 더 변명할 것이 없다는 태도로 고개를 떨궜다.
“저 혼자 왔어요. 중계되는 현장 보고.”
“…….”
“길드가 움직이는 게 쉽지 않은 상태예요. 그래서 전 청렴의 입장을 대표하러 온 게 아니라, 모아 님이 걱정돼서 온 거예요.”
친구의 입장으로.
그녀가 기대를 다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듯이 눈썹을 들어 올렸다.
제대로 돕지 못하는 분함 역시 섞여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리고 저는 우리 연이 아가씨를 보호하겠다는 목적으로 따라왔습니다!”
“저도요.”
“도술가의 희망을 혼자 보낼 수 없지요.”
“아가씨를 우리가 안 지키면 누가 지킨답니까.”
청렴의 도복이 아닌, 트레이닝 복 차림을 한 도사 몇 명이 아타르의 끈적이는 대가리를 쥐고 나타났다.
연이 그 모습을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살풋 웃었다.
“몇 명이 몰래 따라온 것 까진 꼬투리를 잡을 수 없을 테니까.”
나는 어떤 말도 없이 그녀를 덥썩 끌어안았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처음에는 잠시 당황하는 것처럼 숨소리를 내던 연도, 이내 내 등을 끌어안고 조심스레 두드리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작게 중얼거리는 내게 그녀가 답했다.
“왠지 또 이렇게 자기 생각 안 하고, 누구 구하느라 정신이 빠져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 때처럼.
장난기 섞인 채근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순간. 큼. 큼!
누군가의 헛기침 소리가 우리의 애틋한 우정을 멈춰 세웠다.
“아가씨들. 아직 상황 정리가 아무것도 안 됐거든요.”
겨우 눈만 가릴 정도의 가늘고 긴 선글라스.
어디서든 눈에 띌 빨간 트레이닝 복.
미묘하게 여유로운 태도.
허릿춤에 매단…….
‘옥패?’
저걸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이 세계에는 한 명밖에 없다.
머리를 한쪽으로 예쁘게 땋은 도 학이 샐쭉대며 하늘로 부적을 뿌렸다.
“하여간 동생들이 사고 치는 거 수습은 다 윗 형제들이 한다니까.”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