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각자의 신념.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관우.
그의 입에선 미소마저 엿보였다.
‘눈을 억지로라도 돌려서 내 안을 들여다보려고 해봐요. 피의자에게서 찾지 못한 걸 내 주변인들에게서 찾아보라구요.’
정우가 했던 말처럼 문제를 해결할 키는 내부에 있었다.
한 번도 들추어보지 않았던 퍼즐판.
그 밑에 핵심 퍼즐 조각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백양 2기에 대해선, 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 관우가 내게 백양을 설명해줄 때.
그는 유독 2기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다 자기가 멤버였기 때문이었나.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습니까.”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고 있지만 사실 나는.
“꼭 이래야만 했습니까?”
어느 정도 그를 이해하고 있다.
아까 전 가락에게 소식을 전해들은 게 있어서.
*
두 시간 전.
사무실에서 쌓인 서류를 정리하며 정신없이 신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끼익-
“탁경위님.”
가락이 날 찾아왔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중에 하죠. 지금은 바빠서.”
“아뇨, 지금 보셔야 합니다.”
“…?”
단호한 말투.
어두운 표정.
척-
그가 내 책상에 서류를 놓으며 말을 이었다.
“하남 지하실에서 발견된 시신 중 마지막으로 신원이 확인된 피해자입니다.”
유골과 썩지 않은 옷, 가죽 등이 함께 있는 사진.
“왜 이 피해자만 확인이 늦었죠?”
“중간에 정보를 빼 간 사람이 있었거든요.”
“… 네?”
“저도 국과수 직원한테 듣고 이제야 알았는데…”
그가 잠시 말을 흐리고는 다시 이었다.
“하남 지하실에서 시체가 발견된 그날, 경기북부청에서 바로 국과수 직원을 찾아왔답니다. 그리고 신원 하나를 알려주며 일치하는 시신이 나올 시 경기북부청에 따로 연락을 달라고 했다네요.”
“…!!”
“그래서 저도 뒤늦게 서류를 받았습니다. 피해자 이름은…”
그가 손가락으로 성명 란을 가리켰다.
“유미정. 유관우 청장의 외동딸입니다.”
*
“……”
관우는 여전히 아무 대답이 없었다.
“청장님은 백양 멤버가 아닙니다.”
“……”
“따님의 복수를 위해 멤버를 가장해 함정수사에 들어갔던 거예요.”
“……”
“하지만 지금은 일부러 실제 백양멤버인 척 연기를 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내가 잠시 틈을 두고 말했다.
“그래야 그 영상의 적법성이 인정되니까.”
“……”
“기회제공형이 아닌 범의유발형 함정수사는 불법이라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으니까. 함정수사였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영상은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이의원과 서차관을 기소할 수 없게 되니까. 결국 청장님은…”
내가 잠시 말을 흐렸다 이었다.
“자신을 범죄자로 둔갑해서라도 딸의 복수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환각 파티를 직접 주최한 것은 단순 범죄를 행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 아니라 범의를 유발한 행동이다.
따라서 이는 함정수사라 하더라도 그 적법성을 인정받을 수 없고, 영상은 위법수집증거 배제의 원칙에 따라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
하지만 관우가 자신을 피의자라고 말해버린다면?
함정수사를 논할 여지가 없어진다.
그저 피의자가 피의자를 촬영한 영상으로써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최근에 와서야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다.
아마도…
“애초부터 복수를 위해 함정수사를 기획한 거예요.”
“……”
“하지만 다른 정황들을 찾는 데 실패해 영상 공개를 미뤄왔죠. 영상만으론 살인교사 혐의를 비롯한 다른 혐의들을 밝혀낼 수 없으니까. 그 뒤로도 계속 복수를 위해 10년 넘게 이 수사에 매달려왔던 거예요.”
“……”
“그리고 마침내 충분한 정황을 가지고 이호중 의원의 집에 쳐들어가는 오늘. 바로 오늘이 기회라고 생각하고 언론을 통해 영상을 퍼뜨린 겁니다. 그렇죠?”
“……”
“지금이라도 진실을 말하세요. 함정수사였다고, 청장님은 죄가 없다고 사실대로 말하세요!”
내 외침에 그의 입 꼬리가 살짝 내려갔다.
미세하게 느껴지는 씁쓸함.
그는 먹먹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다가.
“저는…”
다시금 씨익 웃으며 말했다.
“범죄자가 맞습니다. 백양 2기 멤버고요.”
“……”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는 절대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내면은 그 무엇보다 단단했다.
이 결정을 하고 실행하기까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10년짜리 신념을 단번에 부술 방법은 없었다.
“아뇨, 인정할 수 없습니다.”
“……”
“수사목적이 아니었다면 카메라를 켜고 들어갈 이유가 없어요. 이건 말도 안 되는…”
“이게 뭔 줄 아십니까?”
내가 용납할 수 없다며 반박했지만.
그는 들은 체도 않고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자기 얘기를 했다.
“2005년, 연예인 지망생이었던 제 딸이 지방 행사를 나가 타온 첫 월급으로 사준 겁니다. 명품 차 열쇠고리죠. 엄마아빠랑 세트 악세서리를 갖고 싶었다며 엄마와 자기 것은 가방에 다는 걸로, 제 것은 차키에 다는 걸로 사온 겁니다.”
“……”
“그런데 제가 이걸 받고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가 잠시 틈을 두고 말했다.
“싹 다 가져가서 환불해오라고, 필요도 없는 걸 뭐 하러 사왔냐고 혼을 냈습니다. 당시 공무원들이 으레 그렇듯 저도 보수적인 성격의 가장이었습니다. 상사들 눈치가 보여 명품은 차지도 못했고요.”
“……”
“그렇게 나무라고 근무를 갔다가 퇴근해 집에 왔는데, 머리맡에 편지와 함께 이 열쇠고리가 그대로 있더라고요. 딸 첫 월급으로 주는 거니 받아달라고, 우리 가족이 하나라는 표식 같은 거라고요.”
“……”
“하지만 그 뒤로 딸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연락도 없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더군요.”
그의 표정이 다시 조금씩 어두워졌다.
“곧장 실종신고를 하고 자체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확보한 CCTV 장면은 제 딸이 연예기획사 대표를 따라 홍설희의 주점으로 들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영상엔 이의원과 서차관의 모습도 촬영되어 있었죠.”
“…!”
“들어가는 모습은 있는데 나오는 모습은 지워져 있었습니다. 뭔가 이상해서 추가 영상열람 및 디지털포렌식을 요청했더니 청에서 불가하다는 회신이 오더군요. 공문으로 영상협조가 안 된다는 겁니다. 공문이 안 되면 영장을 발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니 실종은 범죄가 아니라 영장청구가 불가능하다는 말도 안 되는 답변을 내놓더군요.”
정말 말도 안 되는 답변이다.
실종이 납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발견되면 영장은 물론이고 공문단계에서도 필히 협조를 해주어야 마땅한데.
“저는 금방 깨달았습니다. 이미 이의원과 서차관이 손을 썼다는 것을요. 개인적으로 흥신소 사람까지 써가며 딸을 찾으려 해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결국 개별 수사를 하다 발견한 거라곤…”
그의 음성이 약간 떨렸다.
“이의원과 서차관이 장기적출을 일삼는 조선족 조직원들과 가깝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었죠.”
딸의 실종.
그리고 장기적출 범죄자들과의 연결점.
그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아주 조금은 짐작되었다.
“그때부터 저는 미친놈이 되어 백양 2기 수사를 맡아 진행합니다. 사상 최대의 인원을 모았고, 저는 저만의 작전을 짜냈죠. 저희 팀원들조차 모르는 작전 속 작전을요.”
스스로 피의자가 되어 증거를 확보하는 것.
이 작전은 관우 외엔 아무도 모른 듯했다.
“하지만 너무 힘을 들인 탓일까요. 수사 시작 2주 만에 정보가 흘러나갔고 위기를 느낀 백양 2기는 금방 해체되어버립니다. 작전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죠. 그 후로 수사가 흐지부지되고 수년간 아무 소득 없이 살아가고 있던 그때.”
그가 눈에 힘을 주고 날 쳐다봤다.
“탁경위 님이 나타났습니다.”
“……”
“탁경위 님이 나타난 후로 백양 수사에 다시 힘이 붙기 시작했죠.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된 겁니다. 정말…”
그가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인사를 했다.
다시 고개를 든 그의 눈엔.
“아마 끝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계시겠죠.”
옅게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하지만 저는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행복합니다. 숙원을 이뤘거든요.”
“……”
“자식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는 부모의 말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난 포돌이 탈을 쓰고 그 말을 했던 치헌을 떠올렸다.
“저는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
“아까 이호중을 검거할 때 총을 차고 있었거든요.”
“…!”
“그 짧은 시간, 헤아릴 수도 없이 고민을 했습니다. 총을 꺼내 머리를 날려버릴지 말지를요. 하지만 저는 총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이호중 머리를 날려버리면 저는…”
그가 더 아련한 눈을 하고 말을 이었다.
“이호중 그 개새끼랑 다를 바 없는 인간이 되니까요.”
“……”
“적어도 경찰인 아버지라면 법으로 그를 심판해야겠죠.”
조금씩 더 차오르는 눈물.
“사람은 각자의 신념을 따라 삽니다. 남들은 손가락질 할지 모르겠지만 저에겐 딸의 복수가 신념이었습니다. 그에 따라 살았고, 오늘 드디어 그 숙원을 이뤘습니다. 저는 지금 진심으로 행복합니다.”
나는 몰래 휴대폰을 꺼내 녹음버튼을 누르려했다.
“지금 대화 녹음되고 있는 거 아니죠?”
“…!”
“사실 녹음돼도 상관없습니다. 지금 제가 말하는 건 드라마니까요. 사람들은 드라마를 믿지 않습니다. 영상으로 보여지는 현상을 믿을 뿐이죠.”
눈엔 눈물이, 입엔 미소가 지어져 있는 모습.
슬픔과 행복을 동시에 표출하는 그 감정이 가슴에 강렬히 와 닿았다.
“제가 탁경위님을 선택해 이런 부담을 지우게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
“하지만 적합한 사람이 탁경위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주르륵-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말했다.
“저를 기소의견 송치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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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하…’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막막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현재로선 관우를 기소의견 송치할 수밖에 없다.
그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마음먹어서가 아니라, 그가 수사목적으로 촬영을 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어서다.
보통은 혐의를 부정하는 피의자를 상대로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를 찾는 게 경찰의 일인데.
이 경우는 반대로 혐의를 인정하는 피의자를 상대로 죄가 없음을 증명해야하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사건은 무려 10년 전에 발생했고, 혐의를 입증하는 명확한 영상증거까지 있다.
게다가 관우의 무죄를 입증해버리면 영상의 증거능력이 깨지고, 그렇게 되면 호중과 인혁의 혐의를 입증할 수 없게 된다.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겹치는 상황.
끼익-
나는 복잡한 생각을 다 치워버리고.
저벅- 저벅- 저벅-
차에서 내려 건물로 걸어갔다.
여태 남의 일에 대해 충분히 생각했다.
이제 나에 대해 생각할 차례.
저벅- 저벅- 저벅-
[창진병원]
위잉-
나는 자동문을 열고 계속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을 보러 가기 위해.
내가 총알을 뚫고 배에 침투해 장천과 맞서 싸우며 구해낸 사람.
이 모든 복잡한 사건을 빨리 끝내고 가장 먼저 만나고 싶었던 사람.
저벅- 저벅- 저벅-
끼익-
“은빈 씨.”
나는 그녀를 보러 왔다.
그 어둠, 네가 걷어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