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healer's hidden ending strategy RAW novel - Chapter 63
62화. 소리 없는 악몽 (5)
아침이 오지 않는 기사단.
게임에서는 장소보다 주인과 그 밑의 마수가 더 특징적이어서 결정된 균열의 이름이고, 이 세계에서도 그렇게 불릴 예정이다.
그래도 균열 내부의 환경을 설명하기 위해 아침이 오지 않는다는 말을 붙였으니 정직하게 포함할 건 다 포함한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이 균열은 문자 그대로 해가 뜨지 않는 나날이 지속되다가 멸망한 한 영지가 배경이다.
진예신이 성문을 보고 추측한 것처럼 모종의 저주로 이 영지에만 햇빛이 닿지 않게 됐고, 나라는 그런 영지와 파견된 기사단을 고립시켜 없애버렸다. 속된 말로 팽한 거다.
‘공략한 사람들의 글은 많았지만, 정석적인 방법을 골라보자면 두 개 정도지.’
첫 번째는 균열에 입장했을 때, 처음부터 성벽 내부일 경우에 사용하는 공략법이다.
바깥에서 시작하지 않았으니 안개를 알 수 없고, 비석의 존재도 모르며, 성문이 막혀 있어서 부수지 않는 한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부 조사를 진행하게 된다.
그러면 성문에서 조금 떨어진 성벽에 기이한 모양새의 마법진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게 바로 이 마을에 햇빛을 들지 않게 한 저주의 표식이다.
그 진에 아무나 아이온을 덧씌워서 위치를 기억해두고 문제의 저택에 가면, 정문과 뒷문에도 각각 표식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 표식에도 똑같이 아이온을 서로 다른 사람이 덧씌워두면 기본적인 준비가 끝난다.
‘공략팀은 셋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편했지. 각자 하나씩 맡아서 아이온을 덮어두면 됐으니까.’
그렇게 서로 다른 마법진에 기운을 연결하고 저택 내부로 들어가면 불도 켜지지 않은 어두컴컴한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각 층의 방마다 기사들과 마을 사람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줄지어 누워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아이온을 마법진에 덧씌움으로써 정상적으로 저주가 발동됐다고 착각하게 만들어서, 일시적으로 균열을 열리기 전과 같은 상태로 유지해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수들이 적을 인식하지 못하여 전투가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니 주인을 끌어내기 위해서 다른 행동을 취해야만 했고, 그걸 위해 저택 조사에 착수하게 된다.
‘핵심은 해주였어. 균열 공략은 기본적으로 주인의 소원을 들어주면 완료되는 거니까 말이지.’
본래 4층짜리 건물인 저택의 가장 꼭대기, 그곳에 해답이 존재했다.
균열의 주인일 것이 분명한 기사단장의 집무실 안에 그의 편지와 그가 마법진에 대해 조사한 서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편지를 읽으면 기사단장이 소원이 ‘어떻게든 저주를 풀어서 이 땅에 다시 햇볕이 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라는 것임을 알 수 있고, 그가 조사한 자료를 통해서 해주 방법을 익혀 마법진을 모두 없애면 된다.
그 후에 해가 뜨는 것을 확인하면 관에서 기어 나온 기사단장 알렌이 소원을 들어주어 감사하다며 성불하는 것으로 공략이 끝난다.
‘사악한 주술사의 저주를 풀어줘서 감사하다, 국왕 전하를 부탁한다, 뭐 이런 말을 하고 사라졌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땐 1회차가 아녀서 좀 웃겼지. 그 국왕이 자기들을 팽했다는 걸 기사단장인 애가 모른다는 소리였으니까.’
아무튼, 게임에서는 특수한 균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임무용 기술로 분류되어 해주가 생겨났었는데, 현실에서는 어떤 식으로 반영이 됐을지 모르겠다.
이미 우리는 시작부터 이 방법을 쓸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 말이다.
‘바깥에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고, 그땐 전투가 필수 불가결이었지. 저택 상황이 게임과는 좀 달랐고, 일부러 다르게 행동했을 때도 못 봤던 패턴이지만 기사단장이 나왔으니까 아무래도 좋아.’
두 번째 공략법은 어지간한 균열에서도 다 통하는 주인과의 전투다.
소원을 들어주는 게 온건하고 평화로운 방법이라고 한다면, 이쪽은 힘으로 찍어눌러서 강제로 성불시키는 것과 다름없는 폭력적인 방법이다.
이 세계가 현실이 되면서부터 조금 무례한 방식인가 싶어서 되도록 사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을 때도 있는 법 아니겠는가.
게다가 대개의 전투계열 감응자는 이쪽이 더 방식이 간편해서 선호하는 편이다.
‘조사만 하면 끝나는 게 평화롭긴 했지만, 전투도 나쁘진 않았어. 기사단장 패턴을 외우는 거야 식은 죽 먹기였고.’
여러 종류의 게임을 하다 보면 레이드를 뛰는 게임이 심심찮게 있다.
나는 무슨 게임을 하든지 일단 켜면 보스까지 달려야 직성이 풀렸기 때문에 하드 콘텐츠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보스 레이드는 어지간해서 다 뛰어봤다.
보통은 MMORPG였는데, 퍼스트 클리어 공격대에 내 닉네임이 없는 적을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그만큼 공략을 하는 데에 있어서 나는 제법 내 실력이 좋다고 자부한다.
‘1회차에서 이 균열에 들어왔을 때도 오늘처럼 바깥에서 시작했었고, 기사단장과 스릴 넘치는 전투를 했었지. 아슬아슬했지만 파티원을 한 명도 죽이지 않고 잡았었고, 그 공략을 카페에 올렸었는데.’
당연하지만 첫 번째 공략인 해주법 말고 일반적으로 채택하게 되는 전투 공략은 내가 가장 먼저 발견하고, 해결했으며, 정석으로 통했다.
한창 게임을 할 때는 익숙하게 있었던 일인데, 그때마다 참 뿌듯한 기분이었다.
간만에 꽤 지난 과거를 떠올리는 사이에 상황 파악이 끝난 신여월이 철퇴를 없애며 느긋하게 팔짱을 끼는 게 보였다.
“흠. 오랜만에 철퇴를 양껏 휘둘렀으니 무기를 바꾸는 게 좋겠어. 예신아, 무엇으로 할 테냐? 검? 창?”
“글쎄요. 개인적으로 검이 더 좋기는 한데, 저 마수가 창을 들고 있으니 같은 걸 들어볼까요?”
스산한 기세로 등장한 기사단장 알렌이 주변을 스윽 살피는 모습을 보며 신여월과 진예신이 여유로운 대화를 나눴다.
긴장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는 모양새를 보면서 나도 천천히 지팡이를 들고 있던 어깨를 주무르며 살짝 풀어줬다.
사람답지 않은 시퍼런 불길 같은 눈도, 진예신의 세 배 정도 되는 거구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요소지만 불안해지진 않았다.
‘조심할 필요는 있지만 긴장할 이유는 없지.’
그게 베테랑의 여유라는 거다. 남은 아이온을 점검하고, 신여월과 진예신을 응시했다.
진예신이 검을 마석으로 변형시키더니 곧 기다란 창으로 바꿔서 손에 쥐었다. 진예신의 키만 한 길이의 봉 끝에 날카로운 날이 달린 장창이다.
‘겨울의 노을이 실체화하는 건 못 봤는데, 역시 가능했던 거군.’
날 전체에 주황색의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어서 꽤 화려한 모양새인 창의 중간 부분을 양손으로 쥔 진예신이 왼발을 앞으로 내밀면서 자세를 취했다.
창이 정확히 기사단장의 허리 부분을 겨누고 있었다.
“창은 별로 좋지 않다고 하더니, 이제 제법 자세가 나오는구나.”
“싫다고 했을 뿐이지 다루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고요. 제가 누구한테서 창술을 배웠는지 잊으신 건 아니죠?”
“아무렴. 내 제자를 내가 모를까.”
신여월이 웃음기가 잔뜩 어린 대답을 돌려주며 왼손을 튕겼다. 협회장의 주된 무기인 활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방울꽃 균열에서도 한 번 본 적이 있는 학의 날개처럼 생긴 거대한 활은 여전히 주인을 닮아 고아한 멋이 있었다.
[저주받은 자들이 이 땅에 들어왔구나.]저주는 너희가 받은 거고, 우리는 그냥 안개를 헤치고 오느라 흔적이 남은 거다, 균열 주인아.
본인의 기운이 무엇으로 잠식됐는지조차 잊은 망자의 말에 속으로 혀를 찼다.
신여월이 눈을 가느다랗게 접으며 불쾌하다는 듯이 입매를 구겼고, 진예신은 기사단장의 대사를 듣지도 못한 것처럼 태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까요? 선공? 아니면 대기?”
“선공이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먼저 움직일 것 같으니 우선 어떤 공격을 하는지 지켜보자꾸나.”
먼저 한 대 쳐보자고 하지 않아서 정말 고맙다.
저 기사단장은 치사하게도 자기가 공격을 하기 전까지 유효 타격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괜히 힘만 빼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짜증이 나게도 첫 공격부터가 광역 공격이라서 팀 전원의 체력이 한 번에 절반이 날아갔었다.
그 패턴을 편하게 넘기려면 튼튼하게 방어막을 두르고 맞는 순간에 맞춰서 정확하게 치유 주문을 외워야 한다.
“그럼 보호막을 먼저 치겠습니다.”
냉큼 여유만만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서 자연의 가호를 발동시켰다.
치유 주문도 사용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시간과 아이온이 두 배로 들어가는 전체 주문을 외울 필요는 없었다.
적당한 두께의 보호막이 우리 셋을 하나씩 감싸 안자 아이온이 움직인 기색을 눈치챈 기사단장이 하늘을 향해 창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느릿하게 한 발 내딛으면서 쾅! 창을 바닥에 내리쳤다.
‘첫 번째 모션은 단순한 필드 생성이야. 진짜는 지금부터.’
창이 내리 찍힌 장소를 중심으로 커다랗게 원이 그려졌다. 결투장처럼 생긴 필드다.
바깥으로 나갈 수 없고, 어느 한쪽이 전투 불능이 되면 저절로 사라지는 단순한 결계에 가깝다.
흔들리는 땅 위에서도 꿈쩍 않고 중심을 잡고 있던 신여월의 눈동자가 필드의 크기를 확인했고, 기사단장만을 주시하고 있던 진예신이 창을 강하게 쥐며 돌진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나는 기사단장이 다시 창을 들어 올리는 순간만을 기다렸다가, 기사단장의 창이 오른쪽 허공으로 올라간 즉시 지팡이를 바닥에 꽂았다.
“생명의 환희 발동.”
지팡이의 끝이 뾰족해서 참 다행이었다. 땅에 단단히 박힌 지팡이에서 정제된 아이온이 별 무리처럼 터져 나왔다.
게임과는 다르게 스킬 쿨타임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고, 후딜레이를 취소하는 고급 기술을 구사할 필요도 없지만 공격 타이밍은 맞춰야 했다.
생명의 환희가 터지는 것보다 아주 조금 빠르게 기사단장의 창이 부우웅 공기를 찢으며 휘둘러졌고, 거대한 참격이 우리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보호막이 있었지만, 반사적으로 참격을 피했음에도 충격이 닿았다. 강력한 일격과 그 여파에 보호막이 깨져나가면서 속이 뒤집혔다.
동시에 어깨 부근이 찢어지며 핏방울이 흩날렸다. 화끈한 통증도 피에 젖은 옷자락도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이거 생각보다 장난 아닌데.’
게임에서는 체력 게이지가 반으로 깎이면 회복력이 높은 주문을 눌러서 다시 채우면 그만이고, 특별한 디버프가 붙지 않으면 캐릭터들도 멈추거나 이상행동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잊고 있었다.
아니, 지금까지 치유를 전투 중에 사용한 것이 아니라서 생각을 못 했다.
제아무리 치유 주문을 써서 감쪽같이 처음과 같은 상태가 되어 전투에 임한다고 해도, 상처가 나면 피에 젖고 아프다는 사실을.
‘왜 게임에서 치유사의 주된 능력치가 정신력이나 신앙심인지 알겠는걸. 멘탈이 약하면 못 버티는 거였어.’
상처는 전부 치료되어 그들은 이제 아픈 곳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팔뚝 부근이 피에 젖은 진예신과 허리 부근이 피로 축축해진 신여월의 뒷모습이 눈에 박혔다.
욱신거리는 어깨를 한 번 꾹 눌렀다가 보관함에서 지혈제를 꺼내 들이부었다. 자가 치유가 안 되니까 미리 갖춰둔 비상약이다.
‘약 뿌릴 시간이 있어서 다행이지. 쟤가 둔했으니 망정이지 앞으로는 대책을 생각해둬야겠는데.’
한 방 한 방을 크게 먹이는 이 주인은 지금이 공격해야 할 타이밍이라는 듯이 거대한 창을 회수하는 중이었다.
“이거 자존심이 좀 상하는구나. 분명 피했는데도 여파만으로 상처가 생긴다니 말이야. 무식한 힘이로다.”
“하하, 첫 타를 제대로 먹었네요. 그럼 되돌려 줘야죠.”
사람 좋게 웃은 진예신이 벼락처럼 튀어 나갔다. 가공할 정도의 속도로 기사단장의 품으로 파고든 진예신은 그 속도와 양손으로 쥔 힘을 그대로 실어서 기사단장의 허리를 찔렀다.
까앙! 단단한 금속 갑옷은 부서지지 않았지만, 흉하게 패였다. 그 충격에 기사단장의 몸이 한 발자국 뒤로 밀렸고, 진예신은 그대로 창을 위로 긁어 올렸다가 훌쩍 뒤로 몸을 빼냈다.
“보기만큼 단단하네요. 충격은 들어간 것 같지만요.”
곁으로 다가온 진예신은 그 말을 남기고는 빙글 창을 돌리며 다시금 앞으로 달려나갔다. 물러났던 기사단장이 제 2격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예신이 가했던 공격처럼 그의 허리를 노리는 찌르기에 진예신은 창대를 비틀어 밀어내며 방어해냈다. 곧장 반격하려고 했던 모양이지만 저건 연격의 신호다.
집요하게 진예신을 노리며 뱀처럼 파고드는 기사단장의 창끝이 매섭다. 그래 봤자 안 맞으면 그만이지만.
‘진예신의 창술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공격은 해야지.’
방어는 내가 해줄 테니 공격에 집중하라는 뜻으로 진예신의 오른 어깨로 날아드는 창을 자연의 가호를 발동시켜 막아냈다. 그 뒤로 왼 다리를 노리는 걸 한 번, 긁어 올리는 걸 다시 한번.
진예신은 딱 세 번의 방어를 받은 후, 주인의 공격 타이밍을 익혔는지 네 번째 방어를 해줄 때는 대담하게 몸을 반으로 굽혀 기사단장의 다리 사이로 미끄러지듯이 빠져나갔다.
‘주인이 거대하다는 점을 잘 이용하네. 하긴 대부분의 마수가 사람보다 크기는 했으니까 익숙하겠어.’
공격의 사정권에서 벗어나 뒤를 점령한 진예신의 모습에 신여월이 휘파람을 한 번 불고는 비로소 활시위에 화살을 메겼다.
돌격을 가미한 창이 갑옷을 뚫지 못하는 것을 보고 화살을 어디에 어떻게 쏠지 지켜보고 있었는지 신여월은 나지막하게 주문을 읊었다.
《날갯짓하라, 바람이 그대의 힘이 되어줄지니.》
자유자재로 무기의 형태를 바꿀 수 있는 신여월의 마석, 영원의 눈물은 그 사기적인 변형 능력 대신 고유하게 지닌 주문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여월은 늘 자신의 무기에 맞춰서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보조적인 아이템과 주문을 지참하고 다니는데, 오늘의 선택은 바람 속성의 힘이었다.
창에 가까운 거대한 화살의 촉은 까맣게, 깃은 하얗게 물이 들었다. 촉의 끝에 거센 바람이 몰려들고, 활의 양옆으로 돋아난 학의 날개가 크게 날갯짓했다.
휘이잉. 공기를 찢고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진예신이 한 번 타격을 가했던 기사단장의 허리에 화살이 틀어박혔다.
[아아아아! 국왕 전하, 저희를 구원하소서.]기사단장이 울부짖었다. 난폭하게 날아간 화살이 허리를 관통하여 갑옷은 물론이고 옆구리에 구멍이 뻥 뚫린 몰골이 되었다.
자신의 창을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리며 절규하는 기사단장을 보며 지팡이를 세게 잡았다.
‘2페이즈 시작이다.’
즉, 본격적인 난전의 돌입이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