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144)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건우의 인사를 받은 족장 얀이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에 건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얀이 존댓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으로는 존댓말을 못하는 거 아니었나?’
건우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에 대해 슬쩍 물었다.
“음, 말투가 많이 바뀌셨네요?”
“말투라고 하신다면…… 존댓말 때문이겠군요. 존댓말까지 할 수 있는 마법을 이번에 익혔습니다.”
마법으로 존댓말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얀의 말에, 건우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마법도 있나요? 소아에게 듣기로는 그런 마법은 없다고 하던데…….”
그 말에 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없었습니다만, 작은 무녀가 존댓말 마법을 만든 이후로 생겼습니다.”
“소, 소아가 만들었다고요?”
건우는 순간적으로 황당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법이라는 게, 원래 하루 만에 뚝딱 만들어지는 거였나?’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얀이 말을 이었다.
“작은 무녀는 자연과 함께 머무는 자들 중에서 최고의 마법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존댓말에 대한 개념만 알면, 기존의 언어 마법에 접목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소아가 그 정도로 마법 실력이 좋았다니…… 전혀 몰랐네요.”
건우는 그러면서 무척이나 의외라는 표정으로 소아를 돌아봤다.
소아는 얀이 등장한 이후로, 건우의 뒤에 찰싹 달라붙어서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그냥 보면 어린아이 같기만 한데…… 하긴, 겉모습으로만 보고 뭔가를 판단할 수는 없지.’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소아가 마법 천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왜 아까는 어설픈 존댓말을 썼지?’
분명히 소아는 오늘 점심까지만 해도 어설픈 존댓말을 사용했었다. 만약 존댓말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았다면, 보일 리 없는 모습이었다.
건우가 그에 대해 소아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소아야, 정말로 존댓말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
그 물음에 소아가 고개를 조심스럽게 끄덕였다.
“응.”
“아까 전까지만 해도 조금 서툴게 존댓말 하지 않았어?”
“맞아. 마법 사용 안 했어.”
“그랬어? 왜?”
건우가 그렇게 묻자, 소아가 한동안 우물쭈물하다가 대답했다.
“마법의 도움 없이 익히고 싶었어.”
“어째서?”
“건우하고 모두가 사용하는 말이니까. 직접 익히고 싶었어.”
그렇게 대답한 소아는 쑥스러워하면서 건우의 등허리 쪽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 순간, 건우는 가슴속에서 뭔가 찡한 것이 느껴졌다. 좀 더 가족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 예쁜 것이다.
건우가 그런 소소하지만 행복 가득한 감동을 만끽하면서, 소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고 했다.
그때, 얀이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끼어들었다.
“그건 그렇고, 제가 오늘 다시 찾은 이유는 작은 무녀 때문입니다.”
그 말에 건우가 소아의 머리로 향하던 손을 멈칫하고 얀을 돌아봤다.
“역시 소아를 다시 데리고 가려는 건가요?”
그 물음에 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작은 무녀가 원한다면 어디든 머물 수 있습니다.”
그 말에 건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소아에게 듣기로는…… 부족원들이 부족을 벗어나는 걸 많이 경계하신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나요?”
그 물음에 얀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으신 바대로입니다. 저는 부족원들이 부족을 벗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소아를 안 데려가신다고요?”
“네. 일전에 작은 무녀를 찾아다녔던 것은, 지구로 넘어간 것이 사고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때도 작은 무녀가 자신의 의지로 지구로 넘어갔던 것이었다면, 애써 찾지 않았을 겁니다.”
“아. 사고였군요.”
건우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소아의 부족만 찾아 주겠다고 생각했지, 소아가 어떻게 지구로 넘어왔는지는 신경 쓰지 못했던 탓이다.
얀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네. 하지만 이번에는 스스로의 의지로 넘어온 것이니, 작은 무녀의 의지를 존중해 줘야만 합니다. 다만 조금 걱정이 들어서…… 작은 무녀를 잘 부탁드리고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잠시 뜸을 들이다가, 소아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작은 무녀가 가져간 엄마 나무의 잎도 회수하러 왔습니다.”
“엄, 엄마 나무의 잎이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작은 세계를 수호하고 유지하는 신비한 힘이 깃든 잎입니다. 몇 장 정도는 상관이 없는데…… 이번에 작은 무녀가 너무 많이 가져가 버렸더군요. 덕분에 꽤 난처한 상황이 됐습니다.”
그 말에 건우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순식간에 어떤 상황인지 대충이나마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작은 세계를 유지한다는 뜻은 아마도, 소아의 부족들이 사는 던전을 세계수의 잎이 유지해 주고 있다는 뜻일 텐데…… 어쩌지? 세계수의 잎이라면 이미…….’
그가 그렇게 복잡한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을 때였다.
소아가 불안한 표정으로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엄마 나무의 잎은 다 건우한테 줬어.”
그 말에 순간적으로 얀의 미간이 좁아졌다.
“무, 무슨 소리입니까, 작은 무녀?”
“건우한테 다 줬어. 나를 부족으로 데려다준 계약 보상으로 줬어.”
“그 많은 걸 다 줬다는 말입니까?”
“응. 건우한테 많이 고마웠어.”
그 말에 얀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중요한 것을…….”
“하지만 건우도 나한테 그만큼 중요한 걸 찾아 줬으니까…….”
소아의 변명을 들은 얀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자신들과 던전을 유지하는 중요한 잎을 동일 선상에서 봐준 것이 은근히 기뻤던 것이다.
“그랬던 거군요.”
얀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면서 건우를 바라봤다.
“이건우 님, 정말 죄송하지만 저희에게 엄마 나무의 잎을 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비록 공정한 계약에 의한 거래였지만…… 저희에게 엄마 나무의 잎은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부디 조금이라도 다시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보상은 제가 다른 것으로…….”
얀은 그렇게 말하면서 건우에게 세계수의 잎을 돌려 달라고 간청했다.
물론 그 간청을 들은 건우도 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죄송한데, 그 엄마 나무의 잎이라는 거…… 다 쓴 거 같은데요?”
세계수의 잎이 건우의 손에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 말을 들은 얀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무, 무슨 말씀입니까?”
“음, 제 던전 농지가 흡수해 버린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절대로 본의는 아니었습니다.”
“던, 던전 농지가 흡수?”
얀은 건우의 말에,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전과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넓어진 던전 농지와 풍부한 기운.
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설, 설마…… 대체 어떻게 인간이 엄마 나무의 잎을 사용할 수 있는 거지?”
얀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가혹한 법.
얀은 던전 농지에 세계수의 잎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너무나 잘 느끼고 있었다.
“아.”
다리에 힘이 풀린 듯이 바닥에 무릎을 꿇는 얀.
그 모습을 본 건우가 깜작 놀라서 얀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그 물음에 얀이 서서히 고개를 들어서 건우를 올려다봤다.
그러더니 마치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으로, 실성한 것처럼 중얼거렸다.
“끝, 끝이야. 이제 우리는 끝이야. 우리의 터전은 사라질 거야. 인간들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질 거야. 어찌하여…….”
그 극적인 변화에, 건우가 순간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사람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지. 내가 이러면 안 되지. 과정이 어떻든, 결과적으로는 내가 세계수의 잎을 다 써 버린 것은 맞으니까…….’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짝 심호흡을 했다. 일단 얀을 진정시킬 생각이었다.
그때,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하와가 건우보다 먼저 얀에게 다가갔다.
“하와.”
얀의 축 늘어뜨린 어깨에 작은 손을 얹고 위로하는 하와.
얀의 고개가 저절로 하와에게 향했다.
“당, 당신은…… 정, 정령?”
“하와하와!”
“저희를 도와주신다는 겁니까?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엄마 나무는…….”
얀이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그는 마치 번개라도 맞은 듯이, 한차례 부르르 떨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순수한 자연인님의 계시가 내려왔습니다.”
방금보다 뚜렷해진 얀의 눈빛.
건우가 하와를 슬쩍 뒤로 물리면서 앞으로 나섰다.
“계시라고요?”
건우가 그리 되묻자, 얀이 천천히 일어서면서 말을 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이건우 님, 부디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그 말에 건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저요?”
“네. 당신만이 할 수 있습니다. 부디 엄마 나무를…… 세계수를 돌봐주십시오.”
얀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계약의 조건이 성립되었습니다.]「순수한 자연인이 주관하는 계약.
얀은 오랫동안 자연과 함께 머무는 자들을 훌륭하게 이끈 아이입니다. 비록 저와 반하는 행동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모두 순수한 의도에 의한 것들이었습니다. 부디 얀을 도와주세요.
계약 완료 조건: 세계수의 복원.
계약 완료 보상: 순수한 자연인이 생각하는, 이번 계약에 상응하는 정도의 보상.
계약 실패 조건: 자연과 함께 머무는 자들의 보금자리 파괴.
계약 실패 보상: 순수한 자연인의 부탁.」
[계약을 진행하시겠습니까? Y/N.]새로운 계약이 건우에게 제시되었다.
* * *
건우가 새로운 계약을 마주하고 있던 시점.
신비술자 조윤아는 신화그룹 안주인 강지현이 내준 숙제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숙제 내용에는 만들어 달라는 포션이나 아티팩트도 있었지만, 대부분 한국에 있는 그룹 계열사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 외에도 한국과 관련된 정부 협력 프로젝트 같은 것도 존재했다.
그중에 방금 유의미한 결과가 내려진 것은 한국, 일본 정부와 협력해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였다.
집사 나이트가 그에 대해서 조윤아에게 보고했다.
“아가씨, 한일 지옥초 시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이뤄졌습니다. 특히 일본 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테스트 수준이 아니라, 적극적인 도입을 원하는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방사능 물질을 제거할 수 있다는 걸 언론에 내보내면, 현 총리한테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테니까요.”
일본에게 방사능 물질은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존재였다.
대충 넘기고 싶어도, 너무 깊게 박혀서 넘어가지 않는 가시.
만약 이번 기회에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면, 여러모로 일본에게 크나큰 이득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외교적이든…… 모든 것들이 좋은 방향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을 알기에 조윤아도 신화그룹에서도 지옥초를 쉽게 제공할 생각이 없었다.
조윤아가 나이트에게 말했다.
“대한민국 대통령님께 선물 하나 주죠.”
그 말에 나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옥초 관련 프로젝트를 외교협상 소스로 보내겠습니다.”
“좋아요. 아시겠지만, 저희가 받을 것도 꼭 받아 오고요.”
“물론입니다.”
“아, 일본에서도 따로…… 아시죠? 지옥초는 다른 나라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지만, 특히 일본에서는 더 간절할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조금 욕심을 부리는 쪽으로 조치하겠습니다.”
“좋아요. 제대로 조치해 주시고 조만간 중국하고 러시아 쪽에도 연락해 보는 것으로 할게요.”
둘은 그렇게 빠르게 대화를 나누면서 보고를 마무리했다.
잠시 후.
모든 보고를 다 받은 조윤아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럼, 이제 숙제는 끝난 거죠?”
그 물음에 나이트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니에요.”
조윤아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럼 바로 출발하죠.”
“헬기는 미리 준비해 뒀습니다.”
“고마워요.”
그렇게 둘은 헬기 이륙장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횡성 묵계리.
‘하와야, 기다려. 언니가 갈게.’
목표는 하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