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64)
정령 농사꾼 – 64
돌쇠가 애절하게 민서린을 찾고 있을 때.
그녀는 건우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돌쇠를 위해서라도 건우에게 아는 체를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마주쳤으니 아는 체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건우는 민서린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람이 민서린이라고?’
놀랍게도 그는 민서린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만큼 유명인이었다.
다만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민서린이 건우의 생각을 대충 눈치채고는 멋쩍게 웃었다.
“제 모습이 많이 변했죠?”
“네? 음······ 솔직히 못 알아봤습니다. 죄송합니다.”
건우는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민서린은 크게 개의치 않아 하면서 털털하게 웃었다.
“아뇨. 괜찮아요. 예전에 친했던 사람들도 못 알아보던데요, 뭘.”
민서린은 그렇게 말하면서 장난스럽게 툴툴거렸다. 예전에 친했던 동료들도 자신을 못 알아본다면서 말이다.
건우는 그런 그녀의 푸념을 들으면서 그녀를 자세하게 살폈다.
둥글둥글하고 순한 인상의 그녀.
건우의 기억 속에 있는 ‘포식자 민서린’의 모습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포식자 민서린의 이미지는 한 마리 자칼이었는데······.’
살기등등한 눈빛, 필요한 뼈대와 근육만 남겨 놓은 듯한 마르고 단단한 몸매, 머리를 짧게 잘라서 활동성을 극도로 높인 모습까지.
자칼을 의인화시킨다면 분명 과거 민서린의 모습처럼 될 것이다.
‘지금은 무슨 골든 리트리버 같네.’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물었다.
“그럼 그때 그 고양이는 혹시······ 워블랑입니까?”
포식자 민서린의 테이밍 몬스터 워블랑.
보통 때는 하얀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전투 시에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몬스터였다.
건우는 그것을 기억해 내고 혹시 몰라서 물은 것이다.
민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이름은 돌쇠예요.”
“아.”
건우는 자신의 생각이 맞자,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민서린을 포식자로 만들어 준 몬스터 워블랑.
녀석은 A급 이하 던전에 나오는 모든 몬스터들을 상대로 공포심을 선사하는 몬스터였다. 덕분에 돌쇠가 사냥에 나서는 것만 해도 던전의 난이도가 하나 떨어질 정도였다.
‘그 고양이가 워블랑이었다니······.’
건우는 잠시 돌쇠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겁 많은 고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것도 그럴 것이 마냥 귀엽기만 한 가온 앞에서 꼬리를 말고 눈도 못 마주쳤으니 말이다.
그때였다.
민서린이 건우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혹시 나중에 우리 돌쇠를 보시면 그냥 고양이로 취급해 주실 수 있을까요?”
“워, 워블랑을 그냥 고양이 취급하라고요?”
“네. 사실, 지난번 일 때문에 우리 돌쇠가 많이 쪽팔려 했거든요.”
“쪽팔려 했다고요? 그 워블랑이?”
“네. 저도 처음 보는 모습이라서 꽤 놀랐어요. 평소에는 무척 거만한 아이거든요.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즐겁게 돌쇠에 대한 이야기를 해 나갔다. 상당한 수다력(?)이었다.
건우는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포식자 민서린을 서서히 지워 나갔다.
‘역시 유명한 헌터들도 같은 사람이구나. 하긴 수찬 씨도 마찬가지였지.’
건우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민서린의 수다는 돌쇠로 시작해서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한 푸념으로 흘러갔다.
“아무튼 제가 은퇴한 이후에 몬스터 사육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신화그룹에서 이번에 제가 거의 연구를 마친 것을 성공했다고 하더라고요.”
건우는 그 이야기를 듣고서 놀라 물었다.
“몬스터 사육을 연구하고 계셨습니까?”
그 물음에 민서린이 살짝 쑥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네. 옛날부터 꿈이었거든요.”
“그럼 꿈을 위해서 은퇴하신 건가요?”
건우의 물음에 민서린이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 애매한 대답을 남겼다.
“꿈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더 이상 헌터 일을 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건우는 뭔가 사정이 있어 보이는 민서린의 모습에 조금 더 질문을 하려고 했다.
음식을 다 먹은 하와만 다가오지 않았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하와아~”
만족할 만큼 음식을 다 먹은 하와는 바로 건우에게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그 뒤에는 조윤아가 꼬리처럼 착 달라붙어 있었다.
민서린이 하와를 알아보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녕? 오랜만이네?”
그녀는 그러면서 하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하와가 방긋 웃으면서 인사했다.
“하왓!”
“그래. 반가워. 그런데 그 옆에 아이는 누구······ 응?”
민서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인지 부조화?”
단번에 조윤아가 착용하고 있는 목걸이의 효능을 짐작해 낸 것이다.
조윤아가 조용히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민서린 님.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어? 저를 아시나요?”
“네. 당연하죠. 포식자 민서린 님을 어떻게 못 알아보겠어요? 헌터 일은 그만두시고 몬스터 사업에 종사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아무래도 조윤아는 민서린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밖에 없었다. 바위벌꿀을 구하기 위해서 몬스터 사육과 관련된 이들을 알아보고 다녔기 때문이다. 만약 건우가 성과를 조금만 늦게 냈어도, 조윤아는 민서린을 찾아갔을 것이다.
민서린은 자신을 알아봐 주는 조윤아의 말에 기쁜 듯 활짝 웃었다.
“알아봐 주시니까 고맙네요. 그런데 얼굴 특정이 잘 안 돼서 불편하네요.”
“그에 대해서는 이해를 좀 부탁드릴게요. 사정이 있어서요.”
“음, 그렇다면야······.”
둘이 그렇게 대화를 이어 가고 있을 때였다.
자유로운 파티 분위기를 단번에 휘어잡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사, 숙녀 여러분. 잠시 주목해 주십시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무대로 향했다.
거기에는 냉철한 인상의 사내가 마이크를 붙잡고 서 있었다.
“초인 협회 원주지부장 백천수라고 합니다. 오늘 파티에 참가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반갑습니다.”
백천수가 그렇게 말하면서 정중한 인사를 건네자, 사람들이 가볍게 박수를 쳐 주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오늘 이 자리는 여러분들의 친목을 위해서 마련되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새로운 인연을 알게 되었으리라고 믿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을까 싶어서 제가 나섰습니다.”
백천수가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물의 정령이 무대 위에 나타나서는 물로 된 커다란 스크린을 만들어 냈다. 그 스크린에는 백천수의 화면이 실시간으로 투영되고 있었다.
보아하니 물의 정령의 시야가 그대로 비춰지는 듯했다.
“하와!”
그것을 보고 놀란 하와가 건우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건우도 놀란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나도 보고 있어. 확실히 신기하네.”
물론 둘 외에도 많은 이들이 감탄하고 있었다.
정령으로 만든 물 스크린은 그만큼 신기해 보였다. 화질도 아주 깨끗한 수준이었다.
백천수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만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 괜한 오지랖일지도 모르겠지만, 몇몇 초인들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제야에 묻혀 있기에는 너무 아쉬운 분들이기에 준비한 자리입니다.”
그가 그리 말하는 순간 물의 정령이 파티장을 돌면서 몇몇 초인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백천수는 그런 초인들이 화면에 투영될 때마다 간단한 소개를 곁들여 주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몇몇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비전투직 초인들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거구나.’
건우는 백천수의 방법이 자연스럽게 비전투직 초인들의 인지도를 올리기엔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초인들끼리 눈도장을 찍는 수준이었지만, 초인들 사이에서 비전투직 초인의 능력을 인정받으면 자연스럽게 대중들에게도 알려질 것이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야.’
건우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열심히 움직이던 물의 정령이 건우와 하와의 앞을 지나가다가 멈칫거렸다.
순간 스크린에 건우와 하와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동시에 비춰졌다.
“하와~”
하와가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스크린을 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건우는 바짝 얼어 버렸다. 카메라는 없었지만 스크린에 자신이 비친다는 생각만으로도 카메라 울렁증이 도진 것이다.
그때, 백천수가 인상을 가볍게 찌푸렸다.
‘왜 이상한 사람들을 비추는 거야?’
원래대로라면 물의 정령이 다음 초인에게로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재빨리 물의 정령을 다루고 있는 정령사에게 눈짓했다.
흠칫 놀란 정령사가 재빨리 물의 정령에게 자신의 의지를 전달했다.
하지만 물의 정령은 요지부동이었다. 녀석은 오히려 건우와 하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서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하와~ 하와아~”
하와는 기분이 좋은지 엉덩이 가볍게 씰룩거리면서 경쾌한 그루브를 탔다. 나날이 늘어 가는 춤 솜씨를 공개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둘씩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호호호. 아이가 귀엽네요.”
“이야. 실력이 상당하네.”
그렇게 파티장이 즐거운 분위기로 소란스러워졌다.
백천수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파악하고서 입을 열었다.
“음. 아무래도 물의 정령이 두 사람에게 반한 것 같군요. 저 정도 춤 솜씨면 반할 만도 합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자 사람들이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는 사이에 정령사가 건우와 하와의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운디네. 왜 하라는 대로 안 움직이는 거야?”
아무래도 물의 정령 이름이 ‘운디네’인 모양이었다.
운디네는 정령사의 말에 움찔거렸지만, 이내 다시 건우와 하와를 보기 바빴다. 마치 유명 연예인을 눈앞에 두고 아무 말도 못 하는 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정령사가 당황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운디네! 제발 부탁이니까, 리허설대로 하자.” 그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운디네는 마지못해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건우와 하와에 대한 미련을 차마 다 못 버렸는지, 멀어지면서도 건우와 하와만 바라봤다.
그리고 그 모습은 그대로 스크린에 투영되었다.
그 모습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위트 포인트로 다가왔다.
“애절하네. 애절해!”
누군가의 말에 깔깔 웃는 사람들.
그와는 반대로 정령사의 표정은 까맣게 죽었다. 그러면서 그의 고개가 백천수에게로 돌아갔다.
백천수는 안 그래도 무서운 얼굴에 서늘한 눈빛까지 더해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죽었다.’
정령사는 행사 후에 받을 욕을 떠올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는 사이, 카메라 울렁증에서 벗어난 건우가 하와를 안고 파티장을 벗어났다. 과한 관심을 이겨 낼 수 없었던 것이다.
***
하와를 안고 밖으로 나온 건우는 식은땀을 닦아 냈다.
‘이놈의 카메라 울렁증······.’
그러면서 그는 자신은 관심을 받는 삶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유명해지고 싶고 관심도 받고 싶긴 한데, 막상 기회가 오면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에효. 그래. 농사나 열심히 짓자.”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앞으로 사람들 앞에는 나서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건우에게 안겨 있던 하와가 건우의 식은땀을 작은 손으로 슬쩍 닦아 주었다.
“하와?”
괜찮냐고 물어보는 하와의 물음에 건우는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하와를 안심시켰다.
“괜찮아. 그냥 긴장 좀 했을 뿐이야.”
그가 그렇게 말하자 하와가 다행이라는 듯, 밝게 웃었다.
그때 조금 늦게 세 사람이 다가왔다.
정수찬과 조윤아, 민서린이었다.
“괜찮으십니까, 건우 씨?”
“괜찮으세요? 하와는요?”
“괜찮으세요?”
세 사람의 걱정 어린 말을 들은 건우는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잠깐 바람 좀 쐬다가 들어갈 테니까, 걱정 마세요.”
건우는 그러면서 세 사람에게 다시 파티장으로 돌아갈 것을 종용했다.
그에 정수찬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파티장으로 돌아갔다.
조윤아는 하와와 함께 있으려고 했지만, 갑자기 스윽 나타난 검은 선글라스 사내에게 뭔가 얘기를 듣고는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덕분에 가장 친분이 없는 민서린만 덜렁 남게 되었다.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아무래도 이만 집에 돌아가야겠네요.”
“아, 돌아가시게요?”
“네. 어차피 파티 때문에 온 건 아니거든요. 돌쇠만 데리고 가야겠어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하와가 뭔가 생각난 것인지 건우를 흔들었다.
“하와!”
“가온이 보러 가자고? 그러고 보니까 한 번씩 찾아가 주기로 했지.”
건우가 그렇게 말하자, 민서린이 잘됐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같이 갈까요?”
“음, 좋죠.”
그렇게 세 사람은 천천히 몬스터 대기실로 향했다.
그리고 몬스터 대기실 앞에 섰을 때, 민서린이 건우에게 아까 했던 부탁을 상기시켜 주었다.
돌쇠를 고양이 취급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렇게 몬스터 대기실을 연 건우.
그가 보게 된 광경은 상당히 묘한 광경이었다.
그르르······.
갸우웅······.
축 늘어진 거대한 몬스터 배 위에서 발라당 뒤집어져 자고 있는 가온의 모습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