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65)
상당히 넓은 몬스터 대기실의 절반을 차지하는 야수 형태의 몬스터.
옆으로 누워서 늘어진 길이만 따지면 사람 10명을 일자로 쭉 눕혀 놔야 할 정도였다.
건우는 뒷걸음치면서도 이 거대한 몬스터의 정체를 눈치챘다.
“워, 워블랑?”
부드럽고 푹신해 보이는 새하얀 털 사이로 보이는 단단한 비늘들은 분명 워블랑의 특징이었다.
건우는 놀라서 민서린을 돌아보았다.
민서린은 건우보다 더 놀라서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었다.
“혹시 돌쇠인가요?”
“네. 그런데 어째서······.”
건우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한 민서린은 건우를 제치고 축 늘어져 있는 돌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돌쇠의 두꺼운 허벅지를 세차게 흔들었다.
“돌쇠야! 정신 차려!”
크, 크륵?
“살아 있는 거야? 살아 있어?”
민서린이 그렇게 묻자, 녀석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돌쇠의 위에서 꿀잠을 자고 있던 가온이 서서히 눈을 떴다.
그렇게 꾸물꾸물 일어난 녀석이 입을 쩌억 하고 벌렸다.
갸우웅~
보는 사람의 속이 다 시원한 하품.
녀석은 그렇게 하품을 한 이후에 건우와 하와를 발견하고는 반짝 웃었다.
꺄웅!
그러고는 단숨에 날아와서 건우의 품에 쏙 안겼다.
건우는 그런 녀석을 반사적으로 안아 들고는 멍한 표정으로 한동안 있다가 물었다.
“너, 대체 여기서 뭘 한 거야?”
그가 그렇게 묻자, 가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갸웅?
그냥 잘 잤다는 대답이었다.
***
“자, 타자.”
건우가 기차에 오르면서 그렇게 말하자, 하와와 가온이 껑충껑충 뛰어서 건우의 뒤를 따라 기차에 올랐다.
“하왓!”
갸옹!
마냥 기분이 좋은 녀석들은 처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치 처음 기차를 타 보는 것처럼 들떠 보였다.
건우는 피식 웃고는 예매한 자리로 찾아가서 앉았다. 하와와 가온도 그 옆자리에 앉자마자 창밖을 구경하기 바빴다.
“하와~”
갸웅~
창밖으로 보이는 어두운 청량리역은 한산한 것을 넘어서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기차가 천천히 움직이면서 휘황찬란한 도시의 야경이 비춰졌다.
건우는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하와와 가온을 보면서, 자신에 처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설마 이렇게 집에 돌아갈 줄은 몰랐네.’
현재 건우는 원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서울에서 하룻밤 묵고 갈 생각이었지만, 일정을 앞당긴 것이다.
‘요 꼬맹이가 사고만 안 쳤어도 좀 더 머물렀을 텐데 말이지.’
건우는 그러면서 가온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쓱쓱 쓰다듬어 줬다.
갸웅~
녀석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고개를 움츠렸다.
그때였다. 옆에 있던 하와가 볼을 잔뜩 부풀렸다.
“하와!”
“하하. 그래. 하와도 예뻐.”
건우는 그러면서 하와를 품으로 데려와서 안아 주었다. 그 모습을 본 가온이 괜히 머리를 건우의 옆구리에 비벼 댔다.
‘녀석아. 뿔 때문에 갈비뼈 나가겠다.’
건우가 그렇게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신비술사 조윤아의 집사인 나이트였다.
“여보세요?”
-나이트입니다. 이건우 님. 혹시 벌써 강원도로 돌아가시는 길입니까?
“네. 강원도로 돌아가는 길이에요. 이제 막 기차 탔어요. 아까 전화를 안 받으셔서 문자로 남겼는데 못 보셨나요?”
-문자는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벌써 돌아가시는 건지 여쭤볼까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그 말을 들은 건우는 아까 전에 민서린과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파티장에서 먼저 벗어났어요. 시간도 얼추 된 것 같아서 그냥 강원도로 내려가는 거고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아가씨께서 많이 아쉬워하고 계십니다.
“그렇겠네요. 윤아한테 말 좀 잘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빠른 시간 내로 찾아뵙겠습니다. 건우는 그렇게 나이트와의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러면서 스마트폰을 만진 김에 민서린에게 사과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 조금 친해지기도 했고, 나중에라도 오늘 일을 사과하고 싶어서 연락처를 물어본 것이다.
[오늘 죄송했습니다.]간단하게 보낸 문자.
잠시 후, 답장이 왔다.
[괜찮아요. 돌쇠도 다 털어 낸 것 같아요.] [나중에 제가 사죄의 의미로 대접하겠습니다.] [정말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대접이라도 해 드려야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알겠어요. 연락 주세요.]건우는 거기까지 문자를 확인하고서 스마트폰을 껐다. 그러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중에 수확한 농작물이라도 좀 보내 드려야겠다. 시간하고 장소만 맞으면 식사도 대접하고······.”
그는 이번 일을 이렇게 일단락하고 좌석에 몸을 묻었다.
그때였다.
직행으로 가는 기차가 아니라서 그런지 잠시 기차가 정차했다.
건우는 슬슬 잠이 오는 것을 느끼면서 눈을 감았다. 하와와 가온이 갑자기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면 그대로 잠이 든 채로 원주역까지 갔을 것이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
건우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둘에게 공공장소에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그의 눈에 보이면 안 될 모습들이 보였다.
“어? 윤아? 나이트 씨?”
바로 조윤아와 나이트의 모습이었다. 정차 역에서 기차에 올라탄 둘은 건우가 있는 곳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건우가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어떻게 여기에?”
그 물음에 나이트가 슬쩍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빠른 시간 내로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 물론 그렇긴 했죠. 그런데 너무 빠른데요? 어떻게 오신 거예요?”
건우가 그렇게 물을 때였다.
“하와!”
갸웅!
하와와 가온이 창밖의 뭔가를 보면서 신기한 눈으로 구경했다. 그곳에는 헬리콥터가 떠오르고 있었다.
건우는 그 모습을 보면서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혹시 헬리콥터로 따라오신 거예요?”
“네. 어차피 가는 길이 같으면 같이 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나이트의 말에 건우는 황당한 듯 허허 웃었다.
그사이, 조윤아는 간단히 인사를 하고서 하와에게 곧장 다가갔다. 하와가 그런 조윤아를 방긋 웃으며 반겼다.
그렇게 건우는 능력 좋은 이웃사촌까지 대동해서 집으로 향했다.
***
건우가 강원도로 향하는 사이.
돌쇠의 안정을 위해서 선상에 남은 민서린이 건우에게 온 문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 사람, 나한테 관심 있나?’
굳이 괜찮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대접을 하겠다고 하니, 충분히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다.
물론 건우는 진심으로 마음이 불편해서 그런 것이었지만······ 민서린이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나한테도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지난 세월 동안 그녀는 여러 가지 이유로 남자와 이성적인 교류를 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는 이성에 눈을 뜨지 못했고, 슬슬 이성이 눈을 뜰 시기부터 작년까지는 줄곧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지난 1년은 그나마 여유가 생겼지만······.’
몬스터 사육 연구에 정신이 빠져서 연애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녀의 연애 세포는 죽다 못해서 완전히 말소되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본능은 쉽게 죽지 않는 법.
건우의 문자가 그녀의 연애 세포에 호흡기를 달아 주었다.
‘그런데 직업이 농사꾼이라고 했는데······ 괜찮을까?’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은 농부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실상은 상당히 달랐다. 많은 이들이 농부를 업신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민서린에게도 그런 마음이 은연중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죽음 끝에서 살아난 연애 세포가 그녀의 고정관념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래. 농사꾼이면 어때? 내가 능력이 있으면 되는 거지. 들어 보니 요즘은 농사꾼도 전문직이라는데······ 아, 그런데 그 사람, 유부남이었잖아!?’
세차게 흔들리는 민서린의 눈동자. 하와라는 존재가 문뜩 생각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 정도로 귀여운 아이라면 내가 키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잠깐, 아내가 있으면 내가 키우고 자시고도 없잖아? 그런데 유부남이 왜 나한테 작업을 걸어? 혹시 드라마에서나 보던 불륜? 미친 사람인가? 유부남이 나랑 대체 뭘 하자는 거야!?’
민서린은 그렇게 상상에 상상을 더해 가면서 자신을 드라마 속에 나오던 악녀와 오버랩시켰다. 그러자 묘한 격정 로맨스가 그녀의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냐앙~
만약 기운을 차린 돌쇠가 그녀를 부르지 않았다면, 그녀의 상상은 일반인들을 아득히 초월하는 수준까지 갔을 것이 분명했다.
***
건우는 단 하루 만에 많은 것을 했다.
새로운 인연을 만났고 누구나 시간을 내면 할 수 있는 벚꽃 놀이를 즐겼다. 거기다가 특별한 소수만이 할 수 있는 선상 파티도 경험해 봤다. 하루는 이처럼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던전 농지에 남겨진 엘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점이었다.
엘은 건우와 하와를 서울로 보내자마자 행동에 나섰다.
“꼭 한 번 해 보고 싶었답니다!”
“뀽?”
“뀨뀽이 님도 저를 도와줘야 한답니다!”
“뀽!?”
덩달아 엘에게 붙잡힌 뀨뀽이도 같이 도와줘야만 했다.
그것은 바로 동영상 촬영!
최근 들어서 미튜브에 푹 빠진 엘은 자신도 동영상을 찍어서 미튜브에 올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건우와 하와가 있을 때는 시도할 수 없었다.
‘조금 부끄럽답니다.’
시험 삼아서 스마트폰 앞에 선 엘은 생각보다 촬영이라는 게 어색하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건우와 하와가 본다고 생각하면 그 부끄러움이 몇 배는 커질 것 같았다.
“하지만 뀨뀽이 님은 괜찮답니다! 그러니 어서 저를 찍어 주세요!”
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뀨뀽이의 앞에 당당히 섰다.
그에 뀨뀽이가 낑낑거리면서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뀽!(어렵다뀽!)”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신체적 한계가 뀨뀽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무리 뿔토끼 중에서 독보적일 정도로 특별한 뀨뀽이라지만, 토끼 앞발로 스마트폰을 제대로 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엘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음, 이러면 안 되는데······.”
엘은 예상 못 한 상황에 당황했다.
스마트폰을 고정시켜서 촬영을 할 수도 있었지만, 엘이 찍고 싶은 동영상은 상당히 활동적인 동영상이었다. 촬영을 해 줄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소리였다.
‘정령들한테 부탁해도 정령들은 잘 도와주지 않는답니다.’
심지어 정령들도 엘의 촬영을 제대로 도와주지 않았다. 농사일이라면 무엇이든 잘 도와줬지만, 동영상 촬영을 부탁하면 엘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했기 때문이다.
“으음. 어떻게 하지?”
엘은 생각지 못한 난관에 부딪혀서 고민했다.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문득 났다.
“역할을 바꾸면 된답니다!”
엘은 마치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친 것처럼, 그리 외치면서 자신이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뀨뀽이를 찍기 시작했다.
“자! 뭔가 해 보세요!”
“뀽?”
“음, 활동적인 걸 하면 된답니다.”
그 말을 들은 뀨뀽이는 잠시 고민하는 눈치를 보이다가, 앞발로 귀를 몇 번 쓱쓱 빗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보면서 작은 입을 열었다.
“뀨융?”
뀨뀽이 브이로그의 탄생 비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