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King went to school RAW novel - chapter 180
카이메로가 내 앞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뭐지……?”
카이메로에게서 그 어떠한 살기도 느껴지지 않자 난 의아한 얼굴로 잇던 말을 멈췄다.
그러자 카이메로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더니 이내 나와 눈을 맞췄다.
카이메로의 눈은 세뇌가 완전히 풀린 것인지 영혼이 가득 담겨 있는 영롱한 색이었다.
영롱한 눈빛의 카이메로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콧바람과 함께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계의 으르렁은 아닌 것 같았기에 난 실피아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실피아. 뭐래?”
그러자 실피아는 아직도 자신의 머리를 잔뜩 적신 물을 짜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라고 다 알아듣는 줄 알아?
“아…… 몰라?”
-너 오래! 안 죽일 테니까.
실피아의 통역을 들은 난 떨떠름한 표정으로 카이메로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멀리서 봤을 때는 차마 알지 못했던 카이메로의 웅장함이 느껴졌다.
난 카이메로 앞에 멈춰 선 채 마른침을 삼키며 그를 관찰했다.
용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난생처음이니까 말이다.
“흉터만 잔뜩 남아 있네.”
카이메로의 날개와 다리에는 상처가 아물어 생긴 흉터가 가득했다.
우리가 헌터 기관이 만든 팔찌를 찬 덕에 생명의 위협은 없던 것 같았다.
“어…… 이건.”
하지만 그건 우리가 행한 공격에만 해당하였다.
카이메로의 날갯죽지를 이리저리 관찰하던 난 카이메로의 등에 나 있는 커다란 상처를 발견했다.
그 상처는 날붙이, 마법에 의해 생긴 상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무언가에게 물어뜯긴 듯한 상처도 아니었다.
누군가 강제로 살결을 찢어 버린 듯한 거친 상처.
그 상처는 아물 기미조차 보이지 않은 채 여전히 붉은 피를 흘려 댔다.
푸우우-
그 상처를 바라보기 위해 난 카이메로의 등에 올라탔다.
카이메로는 그러자 콧바람을 내쉬며 고통을 참아 냈다.
난 카이메로의 등에 올라타 상처를 한참 바라본 뒤 나지막한 목소리로 니아이스를 불렀다.
“니아이스. 이리 와 봐.”
-응? 왜?
니아이스는 내 부름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이메로의 날갯죽지를 타고 올라왔다.
난 니아이스에게 상처를 가리키며 물었다.
“치유할 수 있겠어?”
내 물음에 니아이스는 대답 없이 잠시 빤히 상처를 바라봤다.
그러다 이내 활짝 웃으며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응! 니아이스 할 수 있어!
“그럼 부탁해.”
-응!
니아이스는 내게 활짝 핀 미소로 답한 뒤 곧바로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그리고 카이메로의 상처에 손을 살짝 가져다 댄 뒤 눈을 지그시 감았다.
촤아아-
맑고 푸른 물결이 니아이스의 손에서 굽이치기 시작했다.
푸른 물결은 서서히 카이메로의 상처를 감싸 안아 퍼지기 시작했다.
상처 근처에 서 있기만 했는데도 고통스러워하던 카이메로였지만, 이 물결이 상처 위에서 넘실거릴 때는 그 어떤 고통조차 표현하지 않았다.
그렇게 니아이스의 푸른 물결은 붉은 카이메로의 상처를 아물게 만들었다.
-끝! 다 했다!
니아이스의 치유치고는 꽤 긴 시간이 흘렀다.
치유만 1시간이 훌쩍 넘긴 탓에 니아이스는 힘이 빠진 것인지 카이메로의 등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난 그런 니아이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니아이스를 올려 둔 채 카이메로의 등 위에서 내려왔다.
크르릉-
카이메로는 콧바람과 함께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저 상처…… 키리엘이 낸 거지?”
난 카이메로를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음을 건넸다.
물론 카이메로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서로의 언어가 다르더라도 말은 충분히 통할 수 있었다.
끔뻑-
카이메로는 내 물음에 답하듯 나를 바라보며 눈을 두 번 연달아 끔뻑였다.
난 그런 카이메로의 이마를 톡톡 건드리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고생 많았어. 아팠겠다.”
그 무엇이든 얼어붙게 만드는 페로몬을 내뿜고 바위가 타오를 정도의 불꽃을 뿜어내는 카이메로.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엎드린 카이메로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내 손길을 느낄 뿐이었다.
내가 이마에서 손을 떼자 카이메로는 눈을 살며시 뜬 뒤 일어나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니아이스. 내려와.”
-응! 내려갈게!
니아이스가 폴짝 뛰어올라 등 위에서 내려오자 이내 카이메로는 몸을 일으켰다.
촤악-
카이메로의 거대한 날개가 펼쳐지자 주위의 나무가 일제히 흔들렸다.
크르르릉-
거대한 날개를 한 번 펄럭인 카이메로는 내게 무슨 말을 전하듯 그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실피아. 저것도 나 부르는 거야?”
난 이번에도 실피아에게 통역을 부탁했고 실피아는 바람을 만들어 자신의 머리를 말리며 내게 말했다.
-전부 다 타라는데. 탈 거야?
“타라고?”
난 의아한 표정으로 카이메로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카이메로가 영롱한 눈빛과 함께 등을 살짝 낮췄고 난 고개를 끄덕이며 결정을 끝냈다.
“그래. 나도 잘 부탁해.”
카이메로의 말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내게 등을 낮춰 준 녀석을 보며 난 깨달았다.
강력한 힘을 합쳐 줄 존재가 내 앞에 있다는 것.
그리고 이와 같은 존재가 각 차원에 있다는 것을.
“얘들아. 가자.”
난 정령들을 모두 어깨 위에 올린 뒤 높게 뛰어올라 카이메로의 등에 안착했다.
카이메로는 내가 등에 안착하자마자 곧바로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기 시작했다.
슈와아아아-
순식간에 땅과 호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게 올라왔다.
구름이 내 살결을 스쳤고 정령들은 마치 놀이기구를 타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호야! 이거 봐! 솜사탕이야! 솜사탕!
-먹어 봐야지! 이야압!
정령들은 구름을 솜사탕이라고 부르며 팔을 크게 벌려 구름을 안았다.
난 그런 정령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실피아는 그런 정령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그때.
크워어어-
카이메로가 울부짖었다.
난 흠칫 놀라며 카이메로의 머리 부분을 바라봤다.
그러자 실피아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화난 거 아니야. 꽉 잡으라는데?
“그렇구나. 알겠어.”
난 팔을 쫙 벌리고 있는 니아이스와 플레임을 품에 안은 뒤 몸을 낮췄다.
그러자 카이메로가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속도로 하늘을 비행하기 시작했다.
구름이 형태조차 보이지 않았고 너무 빠른 탓에 나를 스치는 바람에 베일 정도였다.
그렇게 잠시 카이메로의 등에 올라탄 나와 정령들은 고속비행을 맛봤다.
우웅-
고속비행으로 한참 광활한 하늘을 가르던 카이메로는 순식간에 하늘에 뚫려 있는 구멍으로 들어갔다.
그것이 바로 카이메로가 차원을 찢는 방법이었다.
난 카이메로와 함께 차원을 찢고 그 틈새로 들어갔지만, 그곳의 형태를 오래 볼 시간은 없었다.
정말 눈 깜짝할 새에 난 카이메로의 등에 매달린 채 다른 차원으로 들어왔다.
“여긴…… 어디지?”
카이메로는 다른 차원으로 들어오자마자 비행 속도를 늦췄다.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평야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바다.
용암이 끓어오르는 용암 지대와 거친 암석 지대까지.
마치 여러 차원을 합쳐 놓은 듯한 차원 속으로 난 들어왔다.
터덕-
카이메로는 그 모든 지대의 중심에 착지한 뒤 등을 살짝 내렸다.
“태워 줘서 고마워.”
난 정령들과 함께 카이메로의 등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이 차원에 대해 의아해하던 그때.
각 지대에서 거대한 무언가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쿵- 쿵-
“저건…….”
용암 지대에서 걸어오기 시작하는 익숙하고도 거대한 실루엣.
그것들은 다름 아닌 용암 거인과 데빌혼이었다.
끼에엑-
거친 암석 지대에서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울부짖는 거대한 실루엣.
그것은 킹 그리핀이었다.
그리고 넓은 바다에서 올라와 나를 맞이하는 건.
…….
역시나 그랬듯 바다였다.
“전부 같이 있었던 건가.”
데빌혼, 카이메로, 용암 거인, 킹 그리핀, 바다.
이들은 모두 키리엘에게 세뇌당했던 녀석들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와 한 번씩 생사를 겨뤘던 녀석들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눈에 담긴 영롱한 빛깔은 그들과 나의 관계가 달라졌음을 알려 주었다.
영혼이 가득 담긴 그들의 눈은 말을 하지 않아도 내게 속삭일 수 있었다.
‘힘을 보태 주겠다.’
라는 것을.
이것이 바로 영혼이 담기지 않은 눈과 영혼이 담긴 눈의 극명한 차이였다.
난 그들의 눈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제 50 대 50인가.”
■ 제180편 반격의 서막 □
우우웅-
서울 중앙.
헌터 기관 건물 앞에 생겨난 거대한 게이트.
건물에 있던 수많은 헌터와 관계자들은 곧바로 나와 게이트를 경계했지만, 게이트는 벌써 9시간째 그 어떠한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경계를 서던 헌터들이 하나둘 건물 안으로 돌아가고 최소한의 인원만 남아 게이트를 바라보며 졸린 눈을 비비고 있던 그때.
지지지직-
게이트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 지휘관님 불러와!”
가장 가까이서 보초를 서던 헌터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 옆에 서 있는 신입 헌터는 식은땀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할 뿐이었다.
“지…… 지휘관님 지금 부재중이십니다!”
“야이 씨! 그럼 최대한 높은 사람 불러와!”
“네…… 네!”
신입 헌터는 허둥지둥 자신의 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쿠당탕-
여간 놀란 것인지 발을 떼려는 순간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졌다.
“아…… 안 돼!”
신입 헌터는 곧바로 일어나 흙먼지조차 털기 전에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그렇게 그가 건물의 유리문에 양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우우웅-
거친 진동과 함께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게이트는 마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거대한 바람을 내뿜었고 그와 동시에 헌터 기관 건물의 모든 창문이 산산조각이 났다.
신입 헌터는 처음 보는 광경에 벌벌 떨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터벅- 터벅-
두려움에 질린 그를 향해 게이트에서 누군가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고향 집에 온 느낌이네.”
표정은 근엄했지만, 온몸에 가득한 여유.
양쪽 어깨에는 정령들을 올려 두고 다니는 인간의 정점에 선 남자.
의문의 거대한 게이트에서 걸어 나온 건 다름 아닌 정령사 강호.
그래. 바로 나였다.
“가…… 강호 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두려움에 떨던 신입 헌터가 한층 밝아진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연거푸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를 향해 다가오려던 그때.
쿵- 쿵-
내 등 뒤로 다른 차원의 거대한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저…… 저건 또 뭐야…….”
지난 결전의 날에 참전하지 않을 정도로 신입 중의 신입인 이 헌터에게 지금 광경은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말로만, 그리고 자료로만 본 다른 차원의 존재들.
그것도 그 차원을 관장하거나 정점에 서 있는 존재들이 하나같이 게이트에서 걸어 나오기 시작하자 신입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킹 그리핀과 카이메로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느린 비행으로 공중을 수놓았고 데빌혼과 용암 거인은 아스팔트를 태우는 불꽃을 뚝뚝 떨어트리며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뒤를 바다가 뒤따르며 뜨겁게 타오르는 아스팔트를 식혔다.
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깊은 유대를 쌓은 다른 차원의 존재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