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20)
본래 팔가의 가주는 안식한 뒤 세계수의 축복을 받고 묻히는 게 관례다.
그래야만 진정한 평온을 찾을 수 있으며, 온전히 신의 품에 안길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라이가를 억지로 제자로 들이며 팔가를 봉문한 탓에 전대 가주인 단탈리안은 세계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을 박탈당했다.
하여 영원히 그가 다시 이곳에 올 일은 없을 터였다.
······ 없었을 터였다.
라이가가 아니었다면.
‘현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겠지.
대장로와 장로들의 고집을 꺾지도 못했을 것이다.
깨달음은커녕 지금쯤이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가주로 인정받지 못했으리라.
쉬지 않고 제국에서 성역을 왕복한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아무리 빠르게 이동해도 20일은 걸릴 거리를 5일 만에 주파했다.
하루라도 빨리, 일분일초라도 빠르게 스승님의 시신을 이곳에 가져오고 싶어서였다.
그래서일까.
평생토록 무겁기만 하던 어깨가 오늘은 왜인지 가벼웠다.
어깨가 잘게 흔들리며, 눈앞이 핑 도는 느낌이었다.
아니, 아니다.
라이가는 지금 느끼는 감정이 착각이 아님을 곧 깨달았다.
“아······.”
툭, 떨어지는 물방울은 비가 내려서가 아니다.
라이가는 어느새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울었는지, 울기는 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건만.
자신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한 스승, 단탈리안.
그가 마침내 세계수의 품에 안긴다는 사실에 이토록 가슴이 뻐근할 수가 없었다.
복잡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저 슬픔이었다면 라이가 눈물을 보일 리 만무했다.
이 벅차오름은 틀림없이 행복이리라.
살아생전 처음 느껴보는 진정한 해방이리라!
“······.”
라이가는 천천히 관에서 스승의 시신을 꺼내었다.
단탈리안.
그의 육체는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살아생전의 모습과 변함이 없었다.
마치 무언가의 미련을 갖고 있는 사람처럼 잔뜩 굳은 얼굴까지도.
하지만 그 미련이 무엇인지 라이가는 안다.
단탈리안은 본래 성역에서 나고 자랐으니까.
이곳으로 돌아와, 세계수의 품에 안기는 순간을 매일 같이 꿈꿨을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해졌을 때 얼마나 절망했을지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편히 쉬십시오, 스승님.”
라이가는 존경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 기적이 일어났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줄기 빛.
먹구름이 몰려 어둡기만 하던 하늘에 구멍이 났다.
강렬한 태양빛이 전대 가주의 시신을 관통한 것이다.
동시에.
“아!”
“세, 세계수가······!”
지켜보던 이들.
특히 대장로 알비노는 경악하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닥에서 솟아오른 세계수의 뿌리가,
전대 가주, 단탈리안의 시신을 감싸 안았기 때문이다.
팔가의 가주들이 축복을 받는 모습을 알비노는 수없이 보았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세계수가 직접 품에 안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드루이드가 죽어도 세계수의 뿌리가 움직일 일은 없었을진대.
기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표정이······?’
라이가의 스승, 팔가의 전대 가주.
단탈리안의 굳은 표정이.
그의 입가가 씰룩, 올라간 탓이다.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세계수의 뿌리로 인해 생긴 현상일수도 있었지만.
“스승님. 부디······ 그곳에선 평온하십시오.”
라이가도 마찬가지로 미소 지어 보였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
그에게도, 단탈리안에게도.
이처럼 크나큰 구원은 다신 없을 것이다.
스르르르륵.
곧이어 단탈리안의 시신이 흙이 되고, 먼지가 되어 세상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모든 미련을 벗어던지고 마침내 긴 여행을 떠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남은 제자를 위해 무언가를 남기고 떠났다.
그것을 본 라이가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더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예, 잘 전해주겠습니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크게 웃는 라이가와 달리.
“······!!!”
“저, 저건······!”
“제가 잘못 본 것은 아니겠지요?”
“허어!”
장로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전대의 가주, 단탈리안이 남기고 간 것.
그것은······.
꿀꺽!
대장로 알비노가 침을 삼켰다.
*
나는 가만히 앞에 선 라이가를 바라보았다.
세계수의 축복을 받은 그는, 이전과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외적인 변화를 말하는 게 아니다.
기세.
혹은 분위기라고 해야할까.
여유가 있다.
무거운 짐을 털어낸 듯이.
“받거라. 이건 너의 것이다.”
곧이어 라이가가 손을 내밀었다.
손의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은 채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전대 팔가의 가주가 라이가에게 남긴 것이다.
내가 가질 수는 없는 노릇.
“네가 받지 않으면 불태워 없애겠다. 어차피 내겐 필요 없는 것이니.”
“······ 알겠습니다.”
강력한 의지.
결국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건네받은 것을 살펴보았다.
손바닥 위에 놓인 건 작은 씨앗이었다.
전대 팔가의 가주 단탈리안이 먼지로 화하며 남긴 것.
환한 빛으로 둘러싸인 씨앗을 내게 넘긴 것이다.
그것을 받아 든 채 가만히 쳐다보자.
【세계수의 씨앗(無)】
-‘거룩한 계보’를 잇는 씨앗입니다.
-‘황금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상을 잇고, 조화를 이룹니다.
-????
-????
관련된 정보가 떠올랐다.
상당히 놀랐다.
······ 세계수의 씨앗이라니.
하지만, 별다른 정보는 없었다.
‘물음표?’
정확히 말하자면 ‘읽을 수 있는 정보’가 적다고 해야 할는지.
몇 줄의 내용이 물음표로 떠올랐다.
정보가 없거나, 혹은 해석할 수 없다는 뜻.
간혹 이런 것들이 있기는 했다.
관찰 스킬의 레벨이나 등급에 따라 읽을 수 없는 것들.
하지만 극에 달한 관찰력과 히든 특성에 의해 내가 볼 수 없는 정보는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도 읽을 수가 없다면.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거지.’
게다가 왜인지 익숙한 느낌이었다.
거룩한 계보.
그건 예전 ‘심연 미궁’의 공략을 준비할 때 본 글귀였다.
찬란한 영웅의 성좌가 보상으로 건네준 ‘황금색 열매’를 섭취했고, 곧이어 그게 ‘세계수의 열매’라는 게 밝혀지며 ‘거룩한 계보’를 흡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히든 특성 ‘드루이드의 자연친화력’이 ‘하이 드루이드의 대자연’으로 진화한 계기.
허나 이것은 열매가 아니라 씨앗이다.
본래라면 땅에 심어야 할 터였다.
“이 씨앗, 제 마음대로 써도 됩니까?”
“그래. 이제 너의 것이니 어떻게 써도 개의치 않으마.”
이 씨앗은 스승의 유지와도 같은 것이다.
그걸 내 마음껏 써도 된다고 말한다.
내가 쓰지 않으면 태운다고까지 했으니 거짓은 아닐 것이다.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꿀꺽!
······ 세계수의 씨앗을, 삼켜버렸다.
“컥!”
“뭐, 뭐 하는······!!”
순간 내 모습을 지켜보던 장로들이 뒷목을 잡았다.
땅에 심어도 모자랄 판국에 먹어버리다니!
그 순간이었다.
꿈틀!
목구멍에서 시작하여 전신으로 퍼지는 기운들.
후아아아앙!
황금색의 찬란한 실선이 몸에서 튀어나와 살랑이며 주변을 맴돈다.
황금률이다.
나는 급히 바닥에 앉은 채 기운을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세계수의 씨앗’이 소화되기 시작합니다.》
《업적 ‘금단을 깬 자(2)’를 달성했습니다.》
《씨앗의 효능이 전신을 돌기 시작합니다.》
《흡수율 10%······.》
흡수가 지지부진하다.
이전에 흡수한 열매보다 더욱 강렬한 기운이었다.
전부 흡수하기란 쉽지 않을 듯했다.
그때 누군가가 내 등 위로 손을 얹었다.
‘라이가.’
자신의 기운을 빌어 흡수를 돕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는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다.
자칫 잘못하면 라이가의 기혈이 꼬여 폭주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력을 다해, 오로지 씨앗의 기운이 전부 흡수될 수 있도록 전력을 쏟고 있었다.
《흡수율 20%······.》
《흡수율 30%······.》
그러자 막혀 있던 흡수율이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흡수율 100%!》
《씨앗에 깃든 ‘거룩한 계보(2)’를 전부 흡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히든 특성 ‘하이 드루이드의 대자연’이 ‘황금률의 드루이드’로 진화합니다.》
《업적 ‘황금률의 계보를 잇는 자’를 달성했습니다.》
《‘위대한 위상’에 따라 명예를 두배(20,000)로 획득합니다.》
《20,000의 명예가 2의 성화로 치환됩니다.》
《현재 12성화를 지녔습니다.》
《‘급속성장’ 스킬이 ‘급속진화’로 초월합니다.》
《빛의 성향이 상승합니다.》
《빛(10%), 어둠(90%) -> 빛(20%), 어둠(80%)》
······.
《‘황금률’의 기원, 근원은 ‘세계수’입니다.》
《‘황금률의 드루이드’는 ‘세계수’를 보유할시 ‘온전한 황금률’을 획득합니다.》
《‘한 그루의 세계수(명예의 세계수)’에게 주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000시간당 1의 ‘온전한 황금률’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현재 0개의 ‘온전한 황금률’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르르르르!
온몸에 전율이 오른다.
거룩한 계보.
이는 곧 세계수의 주인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계보를 뜻하는 것이었다.
이전까진 그저 자연을 잉태하고 키우는 수준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세계수를 다루며 그 근원까지 파고들 수 있게 되었다.
‘황금률이 세계수에서 비롯된 것이었나.’
황금률의 정체에 대해서도 깨달았다.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은 애초에 세계수에서 추출한 것이라는 걸.
이제야 이해가 된다.
세상을 잇는 힘.
타 차원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해주는 그 원동력이 세계수였던 게다.
그래서 한계가 있다.
세계수 하나로 만들어낼 수 있는 황금률은 정해져 있었다.
‘이곳 성역에 있는 세계수와 태초의 숲에 있는 세계수가 말라가던 것도 같은 맥락이겠군.’
이유는 간단하다.
무리한 황금률의 배출.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을 끊임없이 배출하고 있었으니, 그야 죽어갈 수밖에.
이대로면 회복했대도 다시 말라버릴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죽어가는 세계수를 살리거나, 죽은 세계수를 부활시키거나, 혹은 세계수를 심거나. 어떻게 해서든 멀쩡한 세계수의 개체를 늘려가야 한다.’
물론, 단순히 더 많은 황금률의 조각을 배출하기 위함만은 아니다.
‘······ 온전한 황금률.’
그래야만 더 많은 ‘온전한 황금률’도 얻을 수 있으니까.
진짜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온전한 황금률이라니!
그걸 가만히 있어도 획득할 수 있다니!
천 시간에 하나 분량이지만, 충분하다.
경이로운 업적을 달성해야 고작 하나 얻을 수 있는 게 ‘온전한 황금률’이었고, 나는 항상 온전한 황금률이 부족한 상황에 시달려왔으므로.
특히 빌헬름을 소환하며 전부 써버려서 0개인 상황.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 단비 같은 소식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너희들······ 거기 있는 거냐?’
느껴졌으니까.
세계수의 중심부에 생겨난, 잊힌 명예의 던전.
그곳에서 매우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진 탓이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녀석들이 저곳에 있을 리가.
나는 애써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