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66)
-주르륵!
순식간에 얼굴이 식은땀으로 젖은 영검산장의 장주 구천무.
그의 눈동자는 목경운이 새겨놓은 단 하나의 글자 검(劍)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그저 쳐다만 보는 것처럼 보였지만,
-촥! 채채챙!
그는 어느새 심상 속에 빠져들어 검(劍)에 담겨 있는 검의(劍意)와 자웅을 겨루고 있었다.
아니 이것은 자웅이라는 표현이 맞지 않았다.
검의에 압도당한 그는 검도검극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막기에 급급했다.
‘어찌 이런······.’
단 한 글자에 불과했으나 이 검의에는 무궁무진한 역량이 담겨 있었다.
그 역량을 감당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깨달음이 담긴 절초들을 펼쳐보았으나 어떤 식으로든 이에 범접하기 어려웠다.
‘빈틈이 없다.’
허점을 찾기 위해 알고 있는 모든 검초를 동원했지만, 이 검(劍)에 견줄 수가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그렇게나 바라왔던 극(極)에 가까운 검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거지?
수 대에 걸쳐서 검(劍)을 만들고 검을 수련한 것이 허무해질 지경이었다.
“아아······.”
이같이 충격에 빠져든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목경운이 새겨넣은 검(劍)을 보고서 이곳에 있는 자들의 태반 이상이 심상에 빠져들었는데, 그들은 전율에 사로잡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검 하나에 모든 것을 바친 그들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는 항산파의 정명 사태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럴 수가.’
검도검극을 보고서 깨달음마저 얻을 만큼 나름 오성이 뛰어났던 그녀였다.
한데 이것은 격 자체가 달랐다.
구 장주의 검도검극이 마치 산봉우리 끝에 오른 고고한 검객의 독백을 보는 듯하다면 이 검(劍)은 완전히 궤를 달리했다.
오히려 검 그 자체의 날카로움으로 극치를 보여 주고 있었다.
참으로 오만, 아니 광오하기 그지없다.
마치 하늘 아래 오직 이것만이 검(劍)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모든 것을 굴복시키는 검이다.’
이것이 그녀가 느낀 솔직한 감정이었다.
검수라면 어떤 누구라도 충격과 전율, 패배감에 빠질 수밖에 없으리라.
-챙그랑!
결국 그녀는 들고 있던 검마저 떨어뜨렸다.
모든 것이 멈춘 것마냥 정적으로 물든 검곡.
유일하게 들리는 소리라고는 여기저기서 무력하게 검을 떨어뜨리는 소리들이었다.
-챙그랑! 챙그랑!
이를 바라보며 엎드려 있던 구연우가 내심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교(敎)가 기다려왔던 그분이란 말인가?’
목경운의 강함을 직접 보기는 했으나, 내심 현 무림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육천(六天)의 일인인 부친에게는 미치지 못할 거라 예상했던 그였다.
한데 부친인 구천무 장주를 비롯한 이 많은 검수가 절벽에 새겨진 저 검이라는 글자를 보며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주변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 논검(論劍)의 승자는 정해졌다.
구연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인인 예송아를 잃게 될까 봐 두려웠던 그였다.
그러나 이로써 부친인 구천무도 그렇고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녀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 안심해도 될 것 같다.
-쿵!
너무도 감사한 마음에 구연우가 목경운을 향해 이마를 세게 찧어가며 절을 올렸다.
그야말로 진정한 구원자였다.
그러는데,
“흐억!”
그때 어디선가 누군가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그곳을 바라보니 검곡에서 나가는 동굴 방향 쪽에 바닥을 한 손으로 붙들고 있는 구 장주의 둘째 아들 구웅성이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근방에 있던 그가 언제 저기까지 간 거지?
의아해하던 찰나였다.
“어딜 가시나요?”
“이, 이이······.”
“오시죠.”
-탁!
허공을 밟고 절벽 쪽으로 내려오는 목경운이 손으로 그를 잡아당기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왼손으로 바닥을 붙들고 있던 구웅성이 강제로 끌려왔다.
“으아아아!”
-촤아아아아아아!
어찌나 안간힘을 쓰는지 바닥에 그의 손톱자국이 새겨질 정도였다.
종국에는 손톱이 벗겨지기마저 해서 핏자국으로 바뀌었다.
“구 공자!”
“공자를 잡아!”
이런 그의 비명소리에 깨달음이 부족해 심상이 얕았던 일부 영검산장의 검수들이 화들짝 놀라서 이를 막으려 들었다.
그러나,
-팍!
목경운이 위로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리자,
-파악!
바닥으로 끌려오던 둘째 구웅성의 몸이 떠올라 그들을 넘어서 목경운의 근방까지 날아와 바닥에 철퍼덕 내동댕이쳐졌다.
‘이런 젠장!’
바닥에 엎어진 둘째 구웅성이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부친인 장주 구천무부터 대부분의 검수가 경탄과 경악을 금치 못하는 모습에서 모든 것이 틀어졌다고 여긴 그는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미처 도망가기도 전에 이렇게 붙잡힐 줄이야.
당혹스러워하던 구웅성이 이내 안 되겠다 싶었는지 소리쳤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장주께서 한 보 양보하셔서 서로 검을 논하는 걸로 끝내기로 했는데, 어찌하여 이런 행패를 부린단 말이오?”
“행패? 참 재밌는 말씀을 하시네요.”
그때 영검산장의 검수들이 황급히 달려와 구웅성을 보호하려 했다.
“구 공자를 건들지 마시오!”
“구 공자를 지켜라!”
그들이 그렇게 둘째 구웅성의 가까이로 가려고 하던 찰나였다.
-촥!
목경운이 그들의 앞으로 검결지를 그었다.
그러자 바닥에 예기로 된 선이 만들어지며 그들은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목경운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 선을 넘지 않기를 권할게요.”
특별히 살기가 들어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위압감에 검수들은 굳어진 얼굴로 선을 쉽사리 넘지 못했다.
그러나 선을 넘기지 못한다고 해서 입마저 굳은 것은 아니었다.
“장주님께서 베푸신 호의를 이런 식으로 갚는 거요?”
“정녕 본 장과 해보자는 겁니까?”
그들의 항의에 목경운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둘째 구웅성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자신의 것도 아닌 물건을 탐한 것도 모자라 꽤 성가시게 굴더군요.”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요? 난 물건을 탐한 게 아니라 배화교의 위험한······.”
-촥!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
-툭!
바닥에 떨어져 파닥거리는 무언가.
그 순간 구웅성의 입에서 고통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아아악!”
그 이유는 그의 하나 남은 왼팔이 잘려나갔기 때문이었다.
겨우 오른팔을 지혈했는데, 왼팔마저 잘려나간 덕분인지 분수처럼 뿜어나오는 출혈로 인해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져 버렸다.
“이, 이런 미친!”
“공자아아아아!”
바닥을 피로 적시며 뒹구는 둘째 구웅성의 모습에 검수들이 소리를 지르며 선을 그대로 넘으려고 했다.
바로 그때였다.
-드르르르! 팟!
절벽 바닥에는 도객으로 인해 죽은 검수들의 검(劍)이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주인을 잃은 검들이 일제히 떠오르더니 살아있는 것처럼 날아와 검수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여덟 자루가량의 검에 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이기어검?”
그것은 이기어검(以氣馭劒)의 묘리였다.
한 자루도 아니고 여덟 자루나 되는 검들이 앞을 가로막자, 놀라운 광경에 위압감에 사로잡힌 그들이 당황한 나머지 순간 어쩔 줄 몰라했다.
육천의 일인인 장주 구천무가 이기어검을 펼치는 모습을 간간이 본 적이 있는 그들이었다.
한데 그것 역시도 한 자루. 혹은 많아 봐야 두세 자루 정도였다.
그런데 눈앞에 여덟 자루를 동시에 다루는 모습을 보니 설마 하는 의문마저 생겨났다.
‘말도 안 돼.’
‘아무리 그래도 이자가 장주님보다 강할 리가 없을 텐데?’
‘단순한 허장성세인가? 아니 그런 것치고는······.’
검이 움직이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검 하나하나가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만약 정말로 이 정도 숫자의 검을 단순한 허공섭물이 아닌 이기어검의 묘리로 통제할 수 있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이들이 이렇게 이기어검들에 억눌려 꼼짝하지 못하자 목경운은 바닥을 뒹구는 둘째 구웅성에게로 다가가 말을 이어갔다.
“아직 안 끝났어요.”
“끄으으으. 대, 대체 내게······.”
“그 혀.”
-슥!
목경운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우으으읍! 학!”
둘째 구웅성의 입이 강제로 벌려지더니 이내 혀가 내밀어졌다.
팔이 잘린 괴로움으로 눈물까지 흘리고 있던 구웅성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아무리 봐도 이 괴물 같은 놈의 목적은 하나였다.
바로 자신의 혀였다.
“으······으마아아······. 제······제하아아······.”
혀가 붙잡혀서 발음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그가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해댔다.
누가 봐도 애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는데 그때 누군가 동시에 황급히 달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구연우와 소장주 구웅황이었다.
“성화의 주인이시여. 제발 멈춰주십시오.”
“공! 사죄드릴 테니 제발 아우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서로 사전에 입을 맞춘 것처럼 그들은 둘째 구웅성을 보호하려고 했다.
그 모습에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참 우애가 두터운 형제들이군요. 하지만 그건 그거고 대가는 대가라서요.”
-슥!
“아악!”
목경운이 살짝만 손을 움직이자 둘째 구웅성의 혀가 돌아가며 뒤틀리려고 했다.
베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뒤틀어서 뜯어버리려는 모양이었다.
이에 구연우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간절히 소리쳤다.
“제발! 제발! 형님을 살려주십시오!”
“누가 죽인다고 했나요. 세 치 혀를 함부로 놀린 대가만 받아갈 뿐이에요.”
목경운의 태도는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는데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하께서는 멈추시오.”
‘!?’
그 순간 주변이 술렁였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장주 구천무였다.
벽에 새겨진 검(劍)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심상에 빠져 있던 그가 어느새 정신을 차려 있었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저 괴물 같은 자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육천의 일인인 구 장주였기에 모두가 안도의 눈빛이 되었다.
이런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구천무가 목경운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그 아이의 혀를 뽑으려는 것이오?”
“뽑는다기보다 뜯어낸다는 표현이 어울리겠군요.”
-고오오오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주 구천무의 진기가 사방으로 폭사되었다.
누가 봐도 분노한 모습이었다.
이런 그의 모습에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이 안도했다가도 내심 불안을 금치 못했다.
장주가 한발 물러서는 것으로 싸움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 여겼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저자의 행동으로 인해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무리 구 장주가 성품이 있다고 해도 자식을 가진 부모 입장에서는 참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이리되는구나.’
‘여파가 커질지도 모른다.’
모두가 긴장하며 이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슥!
그때 장주 구천무가 몸을 파르르 떨더니 분노를 억누르며 두 손을 모아 목경운에게 예를 갖추는 것이 아닌가?
그 광경에 모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왜 저러는 거지?
하는데 구 장주가 입을 열었다.
“이미 양팔을 잘려 충분히 대가를 치른 아이요. 여기서 혀까지 앗아간다면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한 처지나 다름없소. 부디 귀하께서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비를 베풀어주시오.”
‘!?’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연히 화를 참지 못하고 싸우리라 여겼는데, 구 장주는 이를 억누르고 다시 한번 물러났다.
자식을 위하는 마음일까? 아니면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한 인내심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혀 개의치 않는지 목경운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송구합니다. 죽이지 않는 걸로도 충분히 자비를 베푼 것 같군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지 못해서요.”
-슥!
그 말과 함께 목경운이 손가락을 슬쩍 움직였다.
그러자 안 그래도 반쯤 뒤틀려 있던 둘째 구웅성의 혀가 더욱 돌아갔다.
-꽈아악!
“아아아아아악!”
어찌나 고통스러운지 구웅성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이미 출혈이 너무 심해서 창백하기 그지없었고 서둘러 지혈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그러자,
-스릉!
장주 구천무가 이내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결국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하는 순간이었다.
-촥!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장주 구천무가 검을 반대 손으로 잡더니, 이내 자신의 오른팔을 그대로 베어버린 것이었다.
-툭!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진 그의 오른팔.
‘!!!!!!!!!’
모두가 너무 놀라서 할 말을 잃고서 그것을 쳐다보았다.
장인이자 검수인 그에게 있어서 오른팔은 천고의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한데 그걸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스스로 베어냈다.
그렇게 좌중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데, 장주 구천무가 피가 흐르는 자신의 팔목을 붙잡고서 고통을 견디며 입을 열었다.
“하아······하아······. 자식의 잘못은 이를 가르친 부모에서 비롯된 법. 대가는 이걸로 대신하시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