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77)
지평선 너머를 가득 메우고 있는 헤아리기 힘든 수의 이매망량들.
놈이 예전과 같이 또 다시 대재앙을 일으키려 한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저 많은 수의 이매망량들을 보자 청령은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인간들로 이루어진 대군(大軍)이 저렇게 밀고 내려와도 절망에 빠질 지경인데, 이것은 영체인 그녀조차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이런 그녀를 바라보며 이매망량들을 등지고 있는 정의맹주 정현문이 광기 어린 얼굴로 자신의 이마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수라는 것은 한 수 앞만 봐서 될 것이 아니지. 밑에 저들을 봐라.”
십만 대산의 초입.
그곳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의 전장터였다.
정(正)과 사(邪)라는 이념의 대립으로 서로를 죽이고 죽고 있었다.
이런 그들을 바라보며 정현문이 비웃음을 흘렸다.
“경험이란 건 풍부할수록 좋지. 여러 오차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인간이라는 족속들은 더 큰 힘으로 누를 필요가 없다는 걸 말이야.”
-너…….
“한낱 짐승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 다른 존재를 해하지. 하나 인간은 다르다. 고작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해하거든.”
-……..
“그래. 류소월. 너도 반박할 수 없겠지. 저게 인간의 본성이다. 저들은 시답잖은 사상의 대립만으로도 서로를 해하며 공멸하려 든다.”
-…….닥쳐. 네놈의 계책이지 않느냐?
“계책? 후후후. 고작 계책 하나로 이렇게 된다는 게 더 우습지 않았느냐? 서로를 해하려드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작은 불쏘시개 하나만 던져줘도 턱 끝까지 차오르는 불길조차 알지 못하고 저리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청령이 지평선 너머에서 몰려오는 이매망량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삼대 세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대로 계속 싸운다면 정말 공멸의 형태가 되고 말 것이다.
아직까지는 전초라 양측이 서로 7할 이상의 전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저들이 도착할 무렵에는 그 수가 확연하게 줄어들 것이고 이미 지쳐있을 거다.
그리 된다면 손 쓸 틈도 없이 대재앙에 휩쓸리게 될 것이다.
‘막아야 해.’
놈의 뜻대로 두게 해선 안 된다.
지금이라도 전쟁을 멈추고 힘을 합쳐야만 저 이매망량들에 대응할 수 있었다.
‘귀의영역 펼쳐서 저들의 시선을 돌려야 해.’
원혼의 격이 이미 자령(紫靈)을 넘어선 자신이라면 광활한 범위로까지 귀의영역을 펼칠 수 있다.
아직까지 해가 떠있지만 아주 잠시라면 가능할 것이다.
지금은 눈앞에 있는 이놈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본체도 아니었고 말이다.
청령이 손가락을 살짝 움직였다.
그러자,
-쏴아아아아아!
허공에서 폭포처럼 핏물이 쏟아지며 정의맹주 정현문을 덮쳤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가 피의 폭포수가 쏟아지는 것을 향해 손을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꽉!
그와 함께 핏물이 모여들며 응축되어갔다.
구체의 형태로 점점 압축되어가는 핏물을 향해 그녀가 검지 손가락을 뻗었다.
그러자,
-파아아아아아아악!
그 순간 주변의 공간이 마치 압축되는 것처럼 한 점으로 몰리며 피의 구체가 그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갔다.
파사팔식(破思八式) 중 하나인 공진(空鎭)의 식(息)이었다.
이 정도면 놈을 잠시라도 묶어…..
-흠칫!
그 순간 청령은 황급히 몸을 틀었다.
몸을 트는 순간 푸른 빛의 검강(劍罡)을 머금고 있는 명검 일휘가 아슬아슬하게 그녀를 스쳐지나갔다.
이에 그녀는 몸을 회전하며 명검 순연으로 만월의 초식을 펼쳤다.
넓게 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검강을 누군가 검결지로 펼치는 검강으로 이를 갈랐다.
-촥!
이를 가른 것은 정의맹주 정현문이었다.
정현문이 차갑게 식어버린 눈빛으로 청령에게 말했다.
“설마 했는데 의외로군. 복수보다 저 버러지들을 살리는 길을 택하려고 하다니 말이야.”
-네놈의 뜻대로 두지 않는다고 했다.
“설령 복수의 집념이라고 할지라도 네 머릿속에 나 하나로만 가득해도 모자랄 텐데.”
-하!
정현문의 그 말에 청령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녀는 지금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을 가지지 못해서 그 광기가 폭발했다고만 여겼다.
그런데 지금 이 말은 충격적이기 그지없었다.
자신을 원한다는 놈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가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소름이 돋았다.
원한이라고 해도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게 하려 했다고?
-넌…….정말 최악이야.
집착이라는 것이 광기로 번지게 되면 이렇게까지 추해질 수 있는 것인가?
이런 그녀의 실망에도 불구하고 정현문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오히려 청령을 향해 웃어보였다.
“그래. 네 머릿속에는 오직 나만으로 가득해야 해.”
-…….꺼져.
-팟!
청령이 그 말과 함께 몸을 뒤로 날리며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이기어검강을 피해냈다.
-슉!
‘피해?’
정현문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분노로 정신이 분산되어 있어서 이를 피하지 못할 거라 여겼던 그였다.
그러나 이런 그의 판단과 달리 그녀의 집중력은 지금 최고치에 이르러 있었다.
이기어검강을 피해낸 청령이 손을 휘저어 피로 이루어진 수백여 개의 화살을 만들어내 정현문을 향해 쏘았다.
-파앙!
그와 함께 그녀는 십만대산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더 이상은 놈과 시간 낭비를 할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우우우우우웅!
그 순간 그녀의 주변으로 수많은 기둥들이 생겨났다.
‘이건?’
목경운이 펼치는 사봉연쇄술(四峰聯鎖術)의 기둥들과 닮아 있었는데, 그 숫자가 차이가 났다.
기둥의 숫자가 서른여섯 개였다.
그렇게 그녀의 주변을 에워싼 기둥들에서 순식간에 주력(呪力)으로 이루어진 면들이 겹겹이 생성되며 이내 그녀는 그 안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이에 청령이 그것을 뚫기 위해 영력을 두른 순연을 휘둘렀는데,
-채아아아앙!
부서지기는커녕 주력의 벽에는 흠집조차 가지 않았다.
사봉연쇄술보다 더 정교한 봉인술이었다.
청령이 고개를 돌려 정현문을 노려보았다.
왼손으로 수인을 맺고 있는 정현문이 입 꼬리를 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무공이 아니더라도 방술이나 술법만으로도 본좌는 이 세상의 정점에 이르렀다. 네가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월.”
-쾅! 쾅!
청령은 그런 그의 말을 무시하고서 주력으로 이루어진 봉인술을 파괴하려 들었다.
놈이 하는 말 하나하나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그녀의 모습에 정현문이 코웃음을 쳤다.
“이곳에서 기다려라. 곧 네 혼을 담은 그릇을 가져오마.”
-스륵!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현문의 몸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이를 보며 청령은 이를 악물고서 봉인술의 벽을 향해 핏빛 영력이 담긴 검을 휘둘렀다.
-차차차차차차창!
그렇게 검을 휘두르던 그녀가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이것은 이런 식으로 부숴질 게 아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이내 목경운이 펼치던 역량을 한 점으로 모으는 일검이 떠올랐다.
누구보다 가까이서 이를 수없이 지켜봤던 그녀였다.
‘역량……..중생이 한 것을 본좌라고 못할 것도 없다.’
이내 그녀가 명검 순연의 검 끝으로 모든 영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시혈곡주 이지염이 망연자실한 눈으로 사방을 바라보았다.
주군인 청령의 명을 받들어 이것이 밀회의 간계이기에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알리고 싶었지만 이미 그러기에는 늦었다.
전 천지회의 무사들과 정의맹, 사련맹의 무사들이 뒤섞여서 서로를 죽이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과연 멈출 수 있을까?
심지어 최고 간부들은 적들의 수장들과 싸우고 있어서 뭘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이쪽에서 멈춘다고 해도 과연 정의맹이나 사련맹이 멈출지도 의문이었다.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고민하고 있던 이지염의 눈에 문득 누군가가 띄었다.
“멈춰! 나는 정파인이다! 나는 적이 아니란 말이다!”
그는 다름 목유천이었다.
목경운과 함께 정파의 볼모로 잡혀 왔으나 명도왕 손윤의 제자가 된 그였다.
손윤의 제자까지 되었고 자신의 형인 목경운이 이 거대한 단체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니 더 이상 정파에 집착하지 않을 거라 여겼는데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빌어먹을!”
목유천은 정파의 무사들에게 자신이 정파인이라고 호소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말단에 불과한 그들에게 전쟁 중에 이것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들은 이를 무시하고서 목유천을 공격했다.
“헛소리!”
“죽어라!”
-채채채채채챙!
“큭!”
목유천은 답답해하면서도 어찌해서든 그들을 죽이지 않으려고 했으나 점점 정의맹의 고수들마저 나타나며 궁지로 몰리고 있었다.
이에,
-팟!
“멈춰랏!”
-화르르르륵!
이지염이 불꽃의 강기를 휘둘러 궁지에 몰린 목유천을 도왔다.
절정의 고수들과 일류 고수들이 수십여 명이 목유천을 합공하고 있었으나, 화경의 고수인 이지염이 끼어들자 상황이 달라졌다.
“빌어먹을!”
“퇴각! 퇴각하라!”
이지염을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긴 그들이 황급히 방향을 틀었다.
‘어째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고 하나 자신의 뿌리는 정도인이라는 것을 끝까지 버리지 않은 목유천이었다.
그런데 정작 아군이라 여긴 정의맹의 무사들은 절규와도 같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믿지 않았고, 정작 자신을 구한 것은 천지회의 간부라니.
-쾅! 쾅! 쾅!
목유천은 복잡한 마음이 바닥을 연거푸 내려쳤다.
이젠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겠다.
천지회 하나를 없애자고 불구대천의 적인 사련맹과 손을 잡고서 쳐들어온 것부터 모든 게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러면 사파인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결국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기보다 실리로 움직이는 것과 무슨 차이인가.
목유천은 모든 게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어째서……어째서 이렇게…….”
“뭘 그리 좌절하는 것이냐? 명도왕의 제자여. 아직도 저들과 네가 같다고 여기느냐?”
“닥쳐! 나는……나는……”
목유천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확고했던 그의 마음 속에서 이미 정사에 대한 관념은 부서진 지 오래였다.
그런 그에게 시혈곡주 이지염이 말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스스로 판단하면 되는 거다. 애초에 정사에 있어서 옳고 그름은 없다. 그저 서로가 지향하는 바가 다를 뿐이다.”
“……..”
“하나 그 전에 나를 좀 도와야겠구나.”
“뭐?”
“이 전쟁은 밀회라는 자들이 배후에서 만들어낸 계략이다. 지금 정의맹과 사련맹은 그들의 농간에 넘어가서 움직인 것이다.”
“밀회라면 설마 회의 내전 때 그…..”
“그래. 그들이 움직였기에 정의맹과 사련맹이 손을 잡고 우릴 친 것이다. 더 이상 설명할 시간이 없다. 너는 당장 네 스승인 명도왕을 찾아 이를 전달…..”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목유천이 고개를 젓고는 품속에 손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아니.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명도왕이 아니라 황보세가의 가주를 찾아야 한다.”
“황보세가의 가주? 설마 황보성을 말하는 것이냐?”
“그래. 황보세가의 가주는 암천의 수장이다.”
“암천? 그 자가 간자들을 움직이는 총책이었나? 한데 지금 그게 어쨌다는 것이냐? 지금 정의맹의 자들 중 누구도 너를 믿지 못하는데…..”
“아니. 황보세가주는 나를 믿을 거야.”
-슥!
그 말과 함께 목유천이 품속에서 각패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시혈곡에서 정의맹의 간자 집단인 암천(暗踐)의 요원 마상이 간자 색출로 잡혀가기 전에 목유천에게 넘겼던 각패였다.
일반 정의맹의 무사들은 이 각패를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암천의 총책임자인 황보세가주 황보성은 달랐다.
* * *
“막아라! 막아야 한다!”
시혈곡의 무사들이 필사적으로 합공을 하며 정의맹주 정현문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현 무림의 정점이라는 칭호는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리석은 것들. 후후후.”
-슥!
그가 검결지로 손짓을 할 때마다,
-촥! 촤촤촤촤촥!
“컥!”
“끄악!”
날카로운 예기가 갈가리 찢겨나가며 목숨을 잃을 뿐이었다.
모든 검진과 방어선이 무너지고 남은 자들은 고작 여덟에 불과했다.
비밀 통로가 있는 바위를 등지고서 필사적으로 자신을 막으려는 그들을 바라보며 정현문이 코웃음을 쳤다.
“그래. 벌레들답게 최선을 다해 꿈틀 대거라.”
정현문이 남은 그들을 죽이기 위해 손을 움직이려 했다.
그런데 그러려고 하는데, 갑자기 햇살이 무언가에 가려진 것처럼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이 보였다.
“이, 이게 대체?”
“뭐야?”
그때 바위를 지키던 시혈곡의 무사들이 위를 쳐다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흠칫!
‘뭐지?’
이 복잡한 기운들은?
이건 분명 귀기(鬼氣)였다.
정의맹주 정현문이 한 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류소월이 그녀만을 위해 특별히 만든 삼십육정봉술(三十六停封術)에서 벗어났을 리가 만무했고 그러기에는 귀기가 너무 많았다.
-슈우우우우우!
의아해진 정현문이 고개를 들어 올리는 순간 그의 머리 위로 수많은 원혼이 들러붙어 있는 커다란 배 한 척이 봉우리 위로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게 보였다.
‘!!!!!!!”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