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56)
16화 시혈곡(尸血谷) (1)
한 어두운 숲.
죽립을 쓰고 있는 한 고혹적인 외모의 여인이 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어느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아주 희미한 불빛.
100여장 정도 떨어진 그곳은 천지회의 야영지였다.
‘젠장. 이게 뭐하고 있는 짓인지.’
속으로 투덜거리는 그녀의 정체는 비살문의 문주 후보인 하채린.
아니 하채린의 육신에 빙의해있는 호위 무사 고찬이었다.
목경운이 명도왕에게 점혈되어 납치되다시피 끌려간 후로 줄곧 추적해온 그였다.
보통 추적이라 하면 이보다 더 거리를 좁히겠지만 명도왕이라는 괴물 같은 고수 때문에 괜히 가까이 접근했다가 들킬까봐 이 정도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대충 위치를 아니까 그나마 따라는 갈 수 있는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식신이라 연이 이어져서 목경운이 어디 있는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가까이 붙을 방도가 없었다.
사실 식신만 아니었다면 목경운과 멀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거리가 멀어질수록 이상하리만큼 불안해져서 도망칠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불가능하다.
목경운이 죽으면 자신도 소멸될 처지이니까 말이다.
‘후우.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자신이 생각해도 자신의 처지가 참 우습다.
재능도 없겠다 은퇴해서 조용히 살아가는 게 목적이었는데, 어이없이 죽은 것도 모자라 이젠 이런 계집의 몸에 갇혀서 노예 노릇을 하고 있다.
‘참 박복하구나.’
이렇게 팔자가 사납기도 어려울 것이다.
어쨌거나 조금이라도 이승에 있으려면 목경운을 잘 보필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잠입할 방도를 찾아야 하는데.’
지금이야 명도왕의 눈치를 보느라 이러고 있지만 계속 거리를 두고서 졸졸 따라다닐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천지회에 자연스레 잠입할 방도가 필요했다.
‘그래. 계속 이럴 게 아니라 그 방도부터 찾아야겠다.’
명색이 전직 살수였던 그였다.
어딘가로 잠입하는 것에는 이골이 나있었다.
그리고 하채린의 기억을 더듬으면 자신이 여태껏 해보지 못한 잠입 방법도 있기는 했다.
‘미인계?……..는 개뿔.’
괜히 기억을 더듬다 오한이 났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다.
* * *
-덜컹덜컹!
그렇게 보름의 시간이 지났다.
이동방식은 반복적이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어딘가를 경유했고 그때마다 복면인들이 15세에서 18세의 소년들을 데려왔다.
그러기를 반복하다보니 벌써 100여 명의 인원이 불어났다.
왜 이러는지 궁금하여 두어 번 정도 방사 조의공에게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네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왜 그런 걸까요?”
이런 목경운의 물음에 어깨에 있던 목각 인형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모른다.
“천지회에 있었다면서요.”
-본좌의 손을 떠난 지 자그마치 백 년의 세월이 지났으니. 지금 회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본좌라고 어찌 알겠느냐?
그녀 또한 왜 그런지 알기 어려웠다.
한 가지 추측가는 것이 있기는 한데 방식이 썩 이상하기는 했다.
굳이 인력을 이런 식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을까 싶다.
“매번 느끼는 건데. 한 번씩 말하시는 게 천지회가 청령의 것이었던 것처럼 들리네요.”
-……..
“부정하지 않으시나요?”
-쓸데없는 소리.
이상하리만큼 과거의 이야기를 하기 싫어하는 청령이었다.
기억을 떠올리는 것마저도 화가 나서일까?
아니면 숨기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걸까?
목경운은 이를 의아해했지만 그것은 아주 일순간에 불과했고 이내 그 의문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보다 중요한건 지금부터였다.
“이제 곧 도착하겠군요.”
-왜 긴장되느냐?
“글쎄요.”
-긴장하는 게 좋을 거다. 본좌에게 월맥의 검로를 배웠다고 해도 중생 네놈의 수준으로는 고작해야 일류 턱걸이에 불과하니까.
일류(一流) 초입.
현재 목경운의 무공 상태였다.
불과 보름 전만 해도 삼류에서 이류로 넘어가는 턱걸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연목검장에서 벌어졌던 싸움으로 얻게 된 상당 양의 사기(死氣)를 전부 흡수하고 체화하면서 반 갑자에 상응하는 단전이 형성되었다.
내공만으로는 일류에 이른 것이다.
이를 다른 사람들이 알았다면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사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내심 청령도 꽤 놀랐었다.
‘운으로만 치부할 수 없군.’
지고의 비급이라 불리는 파사팔식(破思八式)부터 기연과도 다름없는 여러 상황을 연달아 맞이했다고는 해도 대단하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웠다.
무공을 익힌지 고작 한 달도 되지 않아 일류 초입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늦게 시작한 만큼 무운(武運)이 따른 것일지도 몰랐다.
‘하나 아직 멀었어.’
경이로울 정도로 성장했다고 해도 상황이 나쁜 것은 변함없었다.
자신이 살아있을 적만 해도 천지회 내에 일류 이상의 고수들이 상당히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지금은 그때보다 더 많을지도 몰랐다.
목경운의 지금 실력으로는 제 조부에 대한 복수는커녕 월의 업조차 이어나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더 빠르게 강해져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몰아붙일 필요성이 있었다.
일류부터는 깨달음의 영역이었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그 위로 가는 것이 일 년이 될 게 십 년이 될 수 있었고, 운이 없다면 그대로 평생 정체될 수도 있었다.
* * *
한 눈에 보기에도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산봉우리들이 자리하고 그 사이로 한 줄기의 핏줄과도 같은 강이 흐르고 있다.
석양이 아래 보이는 그곳은 자못 장관이었다.
강을 거점으로 산봉우리들이 천연의 성벽이 되어 커다란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현 중원 무림을 삼분하고 있는 천지회(天地會)의 근거지였다.
도시의 한 가운데 자리한 내성(內城).
-끼이이이익!
성문이 열리며 개선 장군처럼 말을 몰고 들어오는 큰 신장의 사내의 모습에 내성에서 이열로 길을 만든 무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
선두의 사내는 천지회의 오왕(五王)의 일인인 명도왕 손윤이었다.
그 뒤로 삼백여 명에 이르는 행렬이 뒤따르고 있었다.
검은 복장을 하고 있는 사내들은 천지회의 무사들이었고, 백여 명은 그들이 이번에 데리고 온 소년들이었다.
환호성에 놀란 소년들이 움찔거리며 한 발자국씩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렇게 행렬은 내성의 대로를 지나 넓은 광장으로 이어졌다.
‘호오.’
선두에서 가장 먼저 도착한 명도왕 손윤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것은 의외의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탁!
손윤이 말에서 사뿐히 내렸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에게 포권 지례를 했다.
“명도왕 손윤이 몽 부회주께 인사 올리오.”
그 인사에 백발에 수염 하나 없는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뱀과 같은 눈을 가진 사내가 마찬가지로 포권으로 응대하며 말했다.
“고생이 많으셨소이다. 명도왕.”
응대하는 사내는 다름 아닌 천지회의 이인자인 부회주 몽서천이었다.
부회주가 이리 직접 마중을 나오는 일은 아무리 손윤이 오왕의 일인일지라도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손윤이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하핫. 고생이랄 게 뭐 있겠소이까? 오랜만에 바람도 쐴 겸 다녀온 것인데 말이오.”
“정의맹의 영역을 가로질러야 하기에 위험할 수도 있는 임무인데, 고작 바람을 쐬러 다녀온다고 할 자는 오직 명도왕 뿐일 것이오.”
“누가 보면 전쟁이라도 치르고 개선한 줄 알겠소이다. 인사치례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요. 회주께서는 어디 계시오?”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았으니 보고를 해야 했다.
그 물음에 몽 부회주가 옅은 숨을 내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명도왕.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회주의 명을 긴히 전달하기 위해 직접 나온 것이오.”
“명을 긴히 전달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명도왕 손윤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전서구까지 보내서 대략적인 상황마저 알렸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그런 그에게 몽 부회주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회주께서 데리고 온 자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당장 시혈곡으로 보내라고 하였소이다.”
“오자마자 빠르구려. 뭐 그거야 당연히 그러려고 데려왔으니…..”
“그들뿐만이 아니오.”
“뭐요?”
“전서구에서 말한 그것을 익혔다는 연목검장의 아이와 볼모로 데려왔다는 그 아이도 함께 시혈곡에 보내라고 했소.”
‘!?’
이 말에 명도왕 손윤의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정말 그분이 그리 명했다는 거요?”
“그렇소.”
단호한 대답에 손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비급 자체는 되찾지 못했어도 자그마치 100년 만에 그 저주받은 비급을 읽어내 명맥이 끊긴 월맥의 검결을 익힌 자가 나타났다.
한데 그것을 확인조차 하지 않고서 시혈곡으로 보내라고?
“그럴 리가 없소. 내가 가서 당장 회주를 알현하겠소이다.”
“지금은 회주를 만날 수 없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이건 회주께서 직접 내린 명이오. 그럴 거면 녀석의 머릿속에서 구결이라도 빼낸 후에 보내든지 할 것이지 이건…..”
“명도왕. 그분께서 회주의 권한으로 내리는 명이라 하였소.”
“……….하!”
명도왕 손윤은 진심으로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그러나 회주의 명은 절대적이었다.
* * *
-쿵!
짐마차의 문을 누군가 거칠게 열며 들어왔다.
그는 다름 아닌 방사 조의공이다.
이에 목경운이 말했다.
“도착한 것입……”
“일이 꼬였다.”
“네?”
갑작스러운 조의공의 말에 목경운이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일이 꼬였다니 그게 무슨 소리죠?”
그 물음에 조의공이 다소 황당하다는 투로 답했다.
“회주께서 널 시혈곡으로 보내라고 했다.”
“시혈곡?”
“하……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다니.”
“……..무슨 말씀을 하는 건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만.”
“시간이 없다. 우선 이것부터 받아라.”
조의공이 품속에서 꺼내서 넘긴 것은 깨알 같은 글씨가 새겨진 반지였다.
반지에 새겨진 글씨들을 본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것은 특정한 부적에 쓰는 주언들이었다.
“여기 새겨진 몇 가지 것들은 부적이 없이도 수인과 함께 술법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걸 어찌……”
“잘 들어라. 시혈곡에 가서 멀쩡히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은 일 할도 되지 못한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어떻게든 살아남아라. 각주께 아뢰어 어떻게든 너를 그곳에서 빼낼 테니 무조건 버텨라.”
“버티라는 건……”
바로 그때였다.
“여기까지입니다.”
-우르르르르!
목경운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붉은 색 혁대와 붉은 머리띠를 착용하고 있는 무사들이 짐마차 안으로 들이닥쳤다.
* * *
“너!”
정신 차린 목유천이 목경운을 노려보았다.
하루에 두 번의 식사 시간, 한 번의 볼일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외한 내내 훈혈이 점해져서 보름 동안이나 기절해 있었던 그였다.
당연히 그런 짓을 한 목경운에게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내게….”
-퍽!
“큭!”
그러나 이내 뒤에서 봉으로 후려치는 무사로 인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훈혈, 아혈, 마혈이 풀렸다고는 하나 금문쇄(禁門鎖)라는 바늘을 여섯 기문에 박아넣은 바람에 내공이 금제되어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어이. 입 다물고 걸어라.”
“………”
불쾌함으로 입술을 실룩거리던 목유천이 이내 입을 다물고 명에 응했다.
지금으로서는 이들의 명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젠장.’
깨어나자마자 이게 무슨 봉변이지 모르겠다.
이게 천지회에서 볼모를 다루는 방식인가?
앞 사람을 따라서 어둡고 좁은 비탈길을 일열로 걷고 있는데, 이건 흡사 포로로 잡혀서 노역이라도 하러 가는 심경이었다.
‘대체 뭘 어쩌려는 거지?’
혼란스러워하는 목유천과 달리 목경운은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방사 조의공의 경고로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시혈곡이 뭐지?’
당장에 의문은 그것 하나였다.
대체 무얼 하기에 금문쇄라는 것까지 박아서 그곳으로 보내는 걸까?
청령조차도 시혈곡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렇게 의문을 가진 채 쉬지 않고 세 시진 가량을 걸어갔는데, 이윽고 사방에 횃불을 밝혀놓은 넓고 얕은 계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많았나?’
그곳에서 수많은 소년들이 오열을 맞춰서 기다리고 있었다.
목경운과 목유천이 있던 백여 명까지 합류하니 얼핏 팔백 명 가량은 되어보였다.
그들이 그렇게 도착하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시혈곡에 온 것을 환영한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해졌다.
큰 향로와 거대한 바위 하나가 있었다.
그 바위 위로 회색 악귀 가면을 쓰고 있는 자가 뒷짐을 지고서 오만하게 서있었다.
모두가 쳐다보자 악귀 가면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그 말과 함께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손가락 마디 하나 크기로 보이는 쇠구슬이었다.
‘뭐지?’
‘뭘 하려는 거지?’
모두가 뭔가 싶어 의아해하는데 악귀 가면이 말했다.
“정해진 시각은 이각. 계곡 물 안에는 이것과 비슷하게 생긴 쇠구슬이 있다. 이걸 찾아서 이 대향로 앞으로 와라. 찾지 못한 자는 죽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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