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908)
908화
“야차의 왕. 네 권능은 잘 알고 있다. 왕족을 영원히 방해할 수는 없을 터.”
미친 분신은 냉정하게 지적했다.
겉으로만 보면 웬 덩치 큰 전사가 마법사를 제압한 것처럼 하찮아보였지만, 그 안에는 고등한 권능의 대결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실제로 햄스터는 홀린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둘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신화 속 존재들이 펼치는 힘의 대결이라니.
‘놀랍다!’
폭군의 마법이 비범한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저 야차의 왕은 햄스터로서도 처음 보는 존재였다.
대체 무슨 신비를 숨기고 있기에 폭군의 마법을 저렇게 봉인할 수 있단 말인가?
흐음. 맞는 말이다. 오수 너를 봉인하는 동안에는 나 또한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잘 알고 있군. 세계가 널 거부할 것이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마 내가 먼저 사라지겠지.
야차왕은 또다시 순순히 인정했다.
인근에 대마법을 펼쳐 세계로부터 자신을 숨기고 있는 오수의 분신과 달리 자신은 그저 힘으로 차원을 열고 찾아온 손님이었다.
당연히 저 분신보다 오래 버티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오수의 제자 네가 해내야 한다.
“……”
야차왕의 말에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대화하는 모습에 이 상황을 정말 수습 가능한가 싶었는데, 역시 수습이 불가능했구나!
하지만 따질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이한은 즉시 물었다.
“뭘 해야 합니까?”
스승을 설득해야겠지. 흐음. 혹시 지금이라도 뒤나미스의 비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데스포티스를 시전해 볼 생각이 있나?
“그게 뭔지도 모릅니다.”
하나는 소세계고 다른 하나는 고유세계인데, 후자의 난이도가 워낙 높다 보니 전자로 마법사의 권능을 증폭시켜서…
“다른 방법. 다른 방법 없습니까?”
흐음. 마저 설명을 듣고 판단하는 게 정확하지 않겠나?
“다른 방법!”
이한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외쳤다.
무슨 소세계에 고유세계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단 말인가!
그걸 본 햄스터는 야차의 왕에게 크게 호감을 느꼈다.
“대륙을 지배해서 다스려야 할 신분으로서 마법에 겁먹고 꼬리를 내리다니 부끄러운 줄 알도록. 제자.”
심지어 미친 분신까지 이한을 엄중히 질책했다.
하지만 이한은 흔들리지 않았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으시군.’
스승이 이루지 못한 비원을 즉시 달성해서 설득하라는 건 지금 당장 에인로가드를 점령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 오수의 제자. 네가 원한다면 다른 방법을 말하도록 하지. 하지만 지금 내가 보기에 너는 지금 초조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있군.
“…그럼 이 상황에서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동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다른 방법은 영락이다.
“방금 말하신 방법 아닙니까?”
미친 분신도 하지 못한, 세상의 고통을 마법으로 한 곳에 모으는 이야기를 다시 꺼내자 이한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그러나 야차왕은 자기가 하고 싶은 소리만 줄줄 내뱉더라도 멍청하지는 않았다.
세상의 고통을 이야기한 게 아니다. 오수의 제자. 스승의 광증을 영락으로 끌어내란 소리지.
“!”
이한은 깜짝 놀랐다.
마법을 배웠지만 정말 생각치도 못한 방법이었다.
“그게 가능합니까?”
물론이지.
>고나달테스의 영락>은 상대방의 영락(零落)을 자신한테 옮기는 마법.
저주나 고통, 상처가 여기에 들어갔으니 광기도 들어갈 수 있었다.
이한은 지팡이를 휘둘러 바로 시전하려다가 멈칫했다.
“광증을 흡수했다가 제가 미치면 어떡합니까?”
오수의 제자. 그럴 경우 나와 오수가 제압해서 가둬놓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그리고 저 광증은 오수 본인에게만 의미가 있지, 제자 너한테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거다.
“그걸 보통 먼저 말하지 않습니까?”
원래라면 별 일 없다는 말에 기뻐해야 했지만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하긴. 내가 아무리 세상의 고통을 없애야겠다는 압박에 크게 시달린다 하더라도 대륙을 지배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주문과 함께 영락이 시전되었다.
저번에 치유 마법 학파에 찾아온 환자를 치료했을 때 쓴 적 있는 만큼 이한의 외침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
“……”
-……
침묵.
‘뭐지?’
변화한 게 없는 것 같자 이한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스승님. 괜찮으십니까?”
“당장 이 야차의 왕을 치워버리고 에인로가드를 점령하지 못하겠나?”
“…안 통합니다.”
그럼 제대로 시전하지 못한 거겠지.
야차왕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제대로 시전하지 못했다는 게 무슨 소리입니까? 분명 마법을 제대로 익혀서…”
마법은 가끔 다 익힌 것처럼 보여도, 예상 밖의 난적을 만나면 그 깨달음이 얕다는 걸 느끼게 되지. 오수의 제자.
‘이 사람. 진짜 뭐 하나 제대로 알려주는 게 없군!’
이한은 치를 떨었다.
생각해보니 저번의 별 계약도 야차왕의 헛소리 때문에 잔뜩 고생만 하지 않았던가.
사실 지금 이것도 잘못 알고 있는 거라면…
‘아니. 불길한 생각하지 말자.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영락에 문제가 있단 말입니까?”
흡수하지 못했지 않나?
문득 이한은 예전 미친 분신에게 마법을 배웠을 때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이 마법에 익숙해지도록 해라.
-제 마법 시전에 실수가 있었습니까?
-아니.
-그렇다면 익숙해진다는 건 뭡니까?
-그건 천것 네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생각해보니 그 때도 시전은 완벽했었지만 미친 분신은 아직 멀었다는 느낌으로 이야기했었다.
이한은 자신이 무엇을 놓쳤나 싶어 인상을 찌푸렸다.
쿠르르르르릉!
“?!”
그러는 사이 밖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야차왕은 이한이 혼란스러워하자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저건 오수가 소환한 군대로군. 흐음. 아마 흑제관을 이용한 반신 군단이려나? 완전히 소환되기 전에 가서 멈추는 게 좋겠다. 나는 여기서 오수를 붙잡고 있을 테니…
“친절한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이한은 욕설을 삼키며 일단 공방 밖으로 달려나갔다.
미친 분신도 분신이었지만 지금 밖의 상황부터 수습해야 했다.
“아!”
달려나가던 이한이 다시 돌아오자 공방 안에 있던 모두가 의아해했다.
왜 그러지?
“이거 좀 갖고 가겠습니다!”
이한은 햄스터 우리를 한손에 챙기더니 다시 후다닥 달려나갔다. 햄스터는 미친듯이 찍찍 소리를 냈지만 이한은 무시했다.
* * *
-진짜 죽고 싶냐!
“마법사 님. 지금 보십시오. 제가 나중 일을 신경 쓰게 생겼습니까?”
이한의 말에 햄스터는 자신도 모르게 납득했다.
하긴 지금 같은 비상 상황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는 게 이상한 놈이었다. 자신이어도 뭐든지 했을 것이다.
-난 모든 힘을 뺏겨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도 지혜가 있잖습니까.”
-…그렇긴 하지.
햄스터는 마법범죄자였지만 동시에 대마법사였다. 후배 마법사의 찬사에 새삼 만족스러움을 느끼며 수염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 제물도 가능하고요.”
-……
“농담이었습니다.”
‘미친 새끼 아닌가 이거?’
악명 높은 제국의 마법범죄자한테 이런 농담을 하는 놈은 정말 살면서 본 적이 없었다.
에인로가드 출신 마법사들이 다들 마음 한구석에 광기를 가두고 있다지만 이놈은 특히 심한 것 같았다.
-…헉!
그러나 햄스터는 욕할 여유도 없었다.
공방의 통로를 따라 동굴 밖으로 나가자마자 말도 안 되는 광경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거대한 검은색 관이 허공에 고정된 채로 사악한 힘을 뿜어냈다. 그 힘은 필멸자의 힘이 아닌, 사념체나 신(神)의 힘이었다.
그리고 그보다도 놀라운 것은 이미 관의 문이 반쯤 열려서 안에 있는 놈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는 점이었다.
‘반신을 소환한 것도 모자라 그걸 길들인 뒤 밖으로 꺼냈다고?!?!’
대체 어떻게 한 건지 묻고 싶은 게 수십 가지였지만, 햄스터는 일단 찍찍대며 비명을 질렀다.
-공격해라! 놈이 완전히 나오면 일이 수백 배로 힘들어진다!!
생명체가 보내는 숭배나 사념으로 형성되는 반신을 인공적으로 만들어서 그 힘을 추출해내는 고대 마법에 대해서는 햄스터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반신을 고치 안에서 꺼낸 뒤 대륙에 강림시켜 군대로 부리는 건 햄스터 상상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했다.
‘이것이 신화 속의 마법사인가??’
“알고 있습니다! 젠장. 공격이 이걸로 충분할지… 여러분!”
이한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하고 반색했다. 거인들이 모닥불을 피운 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워다나즈!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에인로가드 치러 가는 건가?
“…그거 완전 헛소리입니다! 여러분들은 속은 거예요!”
-?!?!
거인들은 놀랐다.
에인로가드 습격하기 위해서 모인 게 아니었다고?
“여러분들이 싸워야 할 건 저겁니다! 저 관에서 나오려는 괴물 놈 말입니다!”
-어? 우리 도와줄 친구 아니야?
“아닙니다!”
순간 머리를 내민 반신이 이한을 응시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응시라고 할 수는 없었다. 상대에게는 눈동자라고 할 만한 기관이 없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악마 같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드래곤 같기도 했다. 계속해서 모습이 변형되는 기묘한 키메라를 연상시켰다.
-상대가 정말 반신이라면 네 생각을 조심해라!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인공적으로 만든 반신이라면 사념체다. 그 사념(思念)을 어디서 모았겠나!
몬스터들이나 정령들 중에는 두려움이나 감정을 먹고 강해지는 놈들이 있었다.
반신은 격으로만 놓고 보면 까마득히 차이가 났지만 단순한 원리는 비슷했다.
응집된 사념에 따라 반신의 형질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스승님께서 만드신 반신 아닙니까? 그러면 스승님이 원하는 대로 고정이 되어야 할 텐데요!”
-아니! 그건 꼬마 네놈이 고대의 규칙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제자에게 그 정도 권한은 있어! 더군다나 네게 대륙을 점령하라고 했을 텐데!
미친 분신은 제자를 사령관으로 삼아 대륙을 점령하려고 했다.
당연히 이런 반신의 통제에 있어서 제자에게도 어느 정도 권한을 부여했으리라.
마법사들로 가득한 탑을 공격해야 한다면 대(對) 마법 특화 반신으로 변해야 할 테고, 기사들로 가득한 성을 공격해야 한다면 그 반대여야 할 테니…
대륙은언제지배하는가?
“!”
응시와 함께 반신의 질문이 이한에게 흘러들어왔다. 이한은 즉시 외쳤다.
“그 명령은 취소되었다!”
대륙은언제지배하는가?
‘젠장. 상위 명령은 못 건드리나?’
이한은 제자로서의 권한이 있어도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미친 분신이 먼저 내린 상위 명령이 있는 만큼 자폭시키거나 정지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놈을 약화시킨 다음 공격이나 해라! 관 밖으로 나오면 얼마나 강해질지 몰라!
“약화라면…”
-놈을 최대한 약하게 생각하란 말이다!
햄스터는 찍찍대며 외쳤다. 자칫하면 자신도 같이 반신한테 흡수당할 수 있는 상황이라 보통 초조한 게 아니었다.
지금 저 반신이 악마나 드래곤 형태를 종종 보여주는 건 아마 눈앞의 워다나즈 가문 소년이 가진 인식 때문이리라.
강한 존재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종족들 아닌가.
어떻게든 상대를 약하게 바꿔야했다.
“햄, 햄스터 같은?”
-…그래! 그거라도 해라!
묘하게 기분 나쁜 선택이었지만 햄스터는 일단 동의했다.
최소한 반신 햄스터가 반신 악마보다는 훨씬 상대하기 쉬울 테니까.
이한은 정신을 집중했다.
‘저 반신의 형태를 바꾼다. 저 반신의 형태를…’
강력한 사념이 연결되자 반신의 형태가 다시 일렁이더니, 거대한 해골 교장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햄스터는 절망 섞인 찍찍 소리를 내질렀다.
더 강화시키다니!
‘두려워하지 말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