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15)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115화(115/280)
개천에서 용이 날 때 2
방과 후에는 디베이트 클럽에 참가했다.
다들 시험을 잘 못 쳤는지 토론을 하면서도 힘이 없다.
대부분의 다른 학생들이 C나 D를 받으면서도 해맑게 웃으며 지내는 것과 달리 디베이트 클럽은 너드들의 모임이다.
성적에 민감하다는 소리.
최소 A―는 받을 거 같다던 오디만이 해맑게 웃고 있다.
나야 뭐 평소와 다를 바 없고.
이번 주말엔 원래 1박 2일 일정으로 다른 도시로 디베이트 원정을 가려고 했었는데, 참가자가 너무 적어 취소됐다.
아마도 중간고사 때문인 것 같다.
학군이 안 좋으면 이런 일이 가끔 발생한다.
학군 좋은 곳은 중간고사는 중간고사대로 치르고, 온갖 액티비티는 액티비티대로 다 해낸다.
대신 그다음 주말에 또 다른 도시에서 행해지는 1박 2일 일정의 대회에는 다들 참가한다고.
나도 그날에 가겠다 사인을 했다.
지난 대회에서의 아픔이 있긴 하지만 어차피 로컬 대회였고, 앞으로의 일에 큰 영향력은 없다.
나중에 대입 원서에 적을 만한 정도도 안 된다.
스테이트(States, 주 대회)나 내셔널(National, 전국 대회) 챔피언십 정도쯤 되어야 이력서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액티비티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을 입구부터 뭔가 어수선하다.
뭐지?
엘리에게 먼저 가 보려던 마음을 접고 집으로 향했다.
* * *
― 마커슨 힐!
― 마커슨 워녹!
마커슨의 부모가 동시에 마커슨을 부르는 소리.
마커슨이 튀어나오다가 나를 보고는 그대로 팔을 잡아끈다.
가방을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치고 끌려가 줬다.
누군가는 챙겨 주겠지.
어차피 안에 든 것도 책뿐이다.
어느 순간 내 팔을 놓고 뛰기 시작하는 마커슨.
다리가 길어서 성큼성큼 잘도 뛴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예전 골목 아이들의 아지트 근처였다.
그 자리엔 몇 년 전 태풍에 넘어진 커다란 나무가 누워 있다.
이제는 비바람에 깎여 반질반질한 몸통만 남아 가끔 공원을 산책하던 사람들이 잠시 쉬었다 가곤 한다.
공원 곳곳에 벤치들이 많은데도 굳이 이 자리의 저 나무를 찾아 앉는 걸 보면 이 자리가 명당인가 싶기도 하고.
― 헉헉헉.
“어휴. 뭘 그렇게 죽기 살기로 뛰냐? 나 아니면 누가 따라와.”
“헤헤. 너잖아. 그러니까 맘 놓고 뛰었지. 헥헥. 힘들다.”
“어우, 물 있냐?”
“없지.”
“그렇겠지. 목 안 마르냐? 위에 수돗가 가서 물 마시고 오자.”
“어.”
적당히 숨을 좀 돌린 후 공원 위쪽에 있는 맨션으로 올라가 수돗물을 마신 후 천천히 다시 내려왔다.
그사이 몸도 식으면서 어느 정도 머리를 식힌 것 같은 마커슨.
나무 몸통에 앉자 나무가 흔들린다.
“워워. 야, 조심해.”
“하하. 우리 진짜 많이 컸나 봐. 전엔 여기 올라가서 뛰어도 끄떡없었는데.”
“많이 크긴 했지.”
“…….”
“…….”
기다렸다.
말을 해 주면 듣고, 아니면 그만이고.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작은 일에도 징징거리며 과장까지 섞어 자신의 불행을 표출해 내던 우리들.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금세 뭐가 바뀌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는 조금 감정을 자제할 줄 안다.
자신의 아픔을 적당히 감추기도 하고, 혼자 삭이기도 하고.
모든 걸 밖으로 꺼내 놓았던 예전과는 좀 달라졌다고나 할까.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던 마커슨.
“제이든.”
“어?”
“난 말야. 내가 공부를 잘해서 가족들 사이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아까 엄마랑 아빠가 나 부르는 소리 들었지.”
“어. 각자 성을 다르게 부르셨지.”
“엄마는 이해가 돼. 지난 몇 년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냐? 근데 아빠가 너무 변했어. 하, 나를 데려가려는 이유 중 하나가 내가 공부를 잘해서래.”
“뭐?”
“내가 써먹을 데가 많겠대. 드디어 집안에 대학 가는 놈 하나 나올 거 같다고. 같이 할 일이 많대. 감옥 가기 전까지는 저 정도 아니었는데. 우리 아빠, 나 예뻐했고, 지키려고 노력도 했었다고.”
“…….”
“공부 괜히 했나 봐. 나 오늘 지오메트리 A 받았다. 반에서 A 받은 애가 나 빼고 딱 한 명 더 있어, 알렉스. 인터넷을 좀 뒤져 봤는데. 난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대학가는 First Generation인 데다가 인종도 흑인이잖아. 거기다 저소득층인데 공부도 잘해. 잘하면 하버드도 갈 수 있겠더라고.”
“그렇지. 가능성 있지.”
“사실 처음엔 너 때문에 공부했어. 네가 공부 잘하는 애를 좋아하니까. 라이언도 있고…. 암튼 처음엔 그랬는데, 인터넷 보고 나니까 욕심이 생기더라고. 어쩌면 너랑 같은 레벨의 대학도 갈 수 있겠다 싶어서.”
“…….”
“공부방에서 공부하고도, 집에 와서 한두 시간 더 공부했을 정도로. 옛날에는 진짜 이해가 안 가던 것이 어느 순간 머리가 트인다고 해야 하나? 암튼 막 이해가 되더라고. 오늘 시험 치고 나서 다른 애들은 다 어렵다고 난리인데 사실 난 쉬웠어.”
“…….”
“나 수학 시험으로 A 받은 거 처음이야. 젤 잘 친 시험이 중학교 때 92점으로 A― 받은 거였어. 기분이 너무 좋아서 집에 들어오면서 엄마한테 막 자랑했어. 아빠는 엄마랑 상의할 게 있다고 잠깐 들렀었는데, 그 말을 듣고 내 팔을 잡아끌더라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본인 집으로 가자고.”
“…….”
“그때부터 난리가 난 거야. 할머니는 이럴 줄 알고 계셔서 처음부터 멀리 이사 가자고 했는데, 굳이 여기로 왔다고 엄마한테 소리 지르고.”
“그래서 도망친 거냐?”
“어. 지금은 아빠 얼굴 볼 자신이 없어. 우리 아빠. 나름 좋은 사람이었는데. 진짜야, 동네 사람들이 다 좋아했었다고. 근데 감옥에서 나쁜 사람이 돼 버린 거 같아.”
마커슨은 전생과 현생,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을 통틀어 가장 어려운 삶을 살았던 놈이다.
겨우 극복하나 싶었는데….
이제 겨우 15살인 놈을 가족 때문에 발목 잡히게 둘 순 없다.
냉정하게 할 수 있는 조언을 했다.
“어떡하긴. 아빠와의 인연을 끊어 내야지.”
“인연을 끊어?”
“어. 할 수 있겠어? 그럼 알려 주고.”
“…어. 할 수 있어. 뭔데?”
“한 대 맞아라.”
“뭐?”
“한 대 맞고 아빠 신고해. 접근 금지 신청하라고. 엄마한테 손이 올라가든, 너한테 올라가든. 네가 맞으라고. 아마 겨우 받아 낸 양육권도 도로 뺏길걸?”
“그럼 아빠 인생은?”
“가족한테 손 올린 거면, 이미 그 인생은 회생 불가라 볼 수 있는 거 아냐? 너 이제 어린애 아니야. 지금은 네가 아빠보다 힘도 더 셀걸? 딱 한 대만 맞아. 한 대 가지고는 감옥 안 가.”
“…….”
“처음부터 무조건 맞으란 건 아냐. 각 잡고 찬찬히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빠와 평생 같이 가도 되겠는지, 아니면 니 인생까지 나락으로 떨어지겠는지 판단이 설 거 아냐. 말이 통할 아빠면 손찌검은 안 하겠지. 우리 엄마랑 할머니 사이 알지? 그렇게 사는 것도 방법이야. 피를 나눈 가족이라고 꼭 같이, 한 집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잔인하게 들릴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다 안다.
주변에 가족들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 한둘이어야지.
마커슨의 엄마나 할머니는 특히나 그들의 문화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는 사람들이다.
그 발버둥이 무색하게 미성년자 아들 앞날을 막아서려는 사람은 일찌감치 떼어 내는 게 맞다.
“…….”
“…….”
선선한 바람이 분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커슨이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만들 돌아와. 마커슨 아버지 갔어.]마크의 문자.
마커슨의 앞집에서 내려다보고 있다가 상황을 알려 준다.
안 그래도 이젠 진짜 어두워져서 돌아가야 할 때다.
“가자.”
“후우. 그래.”
“아. 문단속 철저히 하고 자.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거나 우리 집으로 튀어오고.”
“왜?”
“그냥. 아버지가 그렇게 되돌아갔다는 게 왠지 예감이 안 좋아.”
“…그래. 알았어.”
집에 도착하자 벌써 어두워져서 깜깜하다.
이 골목은 삼촌 집이 있는 골목 입구에 가로등이 하나 있을 뿐이다.
그래서 골목 끝 집인 우리 집은 항시 현관문 앞 전등의 불을 켜 둔다.
뒷마당이랑 산 아래가 바로 연결되어 있어 짐승들도 많이 드나들거나, 도둑이 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집 앞 작은 공터는 큰 나무가 벼락을 맞은 뒤로는 그냥 방치 상태다.
독립 기념일 같은 날 골목 사람들 다 나와서 불꽃놀이 구경하는 거 말고는 별 쓸모도 없는 땅이라 딱 필요할 때 아니고는 그냥 두고 있는 거다.
7학년 때까지만 해도 공부방 놈들이랑 자주 놀았었는데, 요즘은 진짜 방치 상태다.
뱀이나 작은 짐승들이 일광욕하러 자주 나오는 것 같더만.
아무튼 오늘따라 집집마다 현관문 앞에 작은 불들을 다 켜 두고 있다.
우리 둘이 튀어 나간 후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커슨의 할머니가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우리를 반긴다.
“에구. 마커슨. 내 새끼. 제이든. 우리 마커슨 데리고 와 줘서 정말 고맙구나. 네가 우리 집 은인이야.”
“에이. 무슨 그런 말씀을요. 피곤하실 텐데 어서 주무세요.”
“그래그래. 들어가라. 마커슨, 너도 들어가자.”
“어. 할머니.”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고 돌아서는데, 삼촌이 어깨동무를 한다.
“에구에구. 우리 제이든도 어서 가자.”
“어우. 왜 이래요?”
“왜 이러긴. 우리 조카님 장해서 그러지. 암튼 니 가방은 헤나가 주워서 니 방에 갖다 뒀다.”
“헤나가요? 마크는 뭐하고?”
“마크가 주우려고 했는데 헤나가 먼저 채 가던데? 인기 많아서 좋겠어.”
“인기는 무슨, 쩝. 그나저나 오늘은 우리 귀염둥이 엘리를 못 봤네. 보고 시퍼라. 좀 데려오지 그랬어요.”
“그 엘리 님, 지금 주무십니다. 내일 실컷 보세요오.”
“내일은 저녁에 밥스가든 가는 날이라 얼마 못 본다고요.”
투덜거리며 집으로 들어가니 엄마가 열이 잔뜩 나 있다.
“제이든, 피곤하지?”
“괜찮아요.”
“아니, 이 동네 애들은 왜 죄다 너한테 의지하고 난리야. 내 새끼 아까워 죽겠네, 진짜.”
“하하. 왜요? 닳을까 봐?”
“그래. 닳을까 봐 아까워. 집에서도 잘 해 주지도 못하는데 맨날 다른 애들 뒤치다꺼리만 하고.”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엄마. 전 애들이 저한테 기대는 게 좋아요. 다들 짠하잖아.”
“내가 진짜… 보석을 주웠다.”
“아이고. 이 모자지간은 정말 눈꼴 시려 못 봐주겠다. 진짜. 사내자식이 친구들한테 인정받으면 좋지 뭘 그래. 누나는 나가서 남자를 만나. 그래야 제이든이 훨훨 날겠어.”
“야! 내가 뭐 나는 애 발목 잡을까 봐 그러냐?”
“지금 보면 그러고도 남을 거 같아요. 애가 어디 엄마 눈에 밟혀서 저기 멀리 있는 좋은 대학에 원서나 넣을 수 있겠냐고.”
“넌 무슨 그런 말을….”
― 탕. 타탕!
“뭐, 뭐야!”
“지금 이거 총소리지?”
― 꺄아아아악!
연이어 들리는 비명 소리.
분명 마커슨의 엄마인 미세스 워녹의 목소리다.
허스키한 데다 굵고 큰 비명 소리.
“마커슨?”
“헉! 둘 다 딱 멈춰. 절대 움직이지 마.”
“엄마!”
“누나!”
“안 돼. 기다려. 무조건 기다려. 리암, 메디슨한테도 절대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전화해. 지금 당장.”
“어, 어.”
“제이든, 911. 전화하고.”
“네.”
엄마는 곧바로 집 안의 모든 불을 껐다.
1분도 안 되어 골목 전체가 암흑에 잠겼다.
― 띠띠띠띠띠. 띠리리릭. 띠띠띠띠띠. 띠리리릭.
베이스먼트에서 누군가 계속 문을 열려고 시도한다.
직감적으로 마커슨임을 알았다.
뛰어 내려가 문을 열었다.
곧 기절할 것처럼 새하얗게 질린 마커슨이 서 있었다.
“얼른 들어와.”
― 덜덜덜덜.
완전 패닉 상태로 보이는 마커슨.
삼촌과 엄마도 내 목소리를 듣고 뛰어 내려왔다.
“마커슨. 여기 앉아. 마음 가라앉히고. 후우. 심호흡해 봐.”
“엄, 엄마가 절 뒷문으로 밀어냈어요,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제이든네로 뛰라고. 집 앞에 차가 한 대 섰고, 엄마가 창문가에 서서 차를 마시다가 그걸 보고는 갑자기 절 뒷문으로 밀어냈어요. 오다 보니 총소리가 들렸고… 엄마 비명 소리도 들렸고. 할머니, 할머니는 부엌에 있었는데….”
“알았어. 알겠으니까 그만 말해. 괜찮아. 전부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까 진정부터 하자.”
“그래, 마커슨. 심호흡 크게 해. 나 따라 해 봐. 이렇게.”
― 후아후아.
― 드르륵. 드르륵.
전화기 단체 채팅방에서 알람이 계속 울린다.
공부방 놈들이다.
― 방금 총소리 맞지? 다들 집 밖으로 나오지 마라.
― 아무래도 마커슨 집인 거 같은데?
― 누가 911에 신고했어?
― 무슨 소리야? 총소리라니?
― 좀 전에 우리 골목에서 총소리 남. 비명 소리도 났는데 분명 마커슨 엄마 목소리였어.
― 뭐? 그게 무슨 소리야!
― 마커슨 무사. 다들 조용히 하고 기다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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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질 급한 녀석들 중 누구라도 튀어올까 걱정되어 일단 짧게 답을 한 후 911에 전화를 했다.
이미 신고받고 출동 중이란다.
그리고 잠시 후.
― 끼이익. 끼익. 콰쾅!
집 앞 공터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