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50)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151화(150/280)
소문 속 주인공 2
체스클럽의 회장인 잭이 다가온다.
한섬 배 대회 이후로 체스클럽엔 들르지 않았다.
내 오지랖에 그 클럽에 깊게 발을 담그게 될 것 같아서 일부러 피한 거다.
가르쳐야 할 인간들이 한둘이어야지.
“제이든.”
“어, 잭. 잘 지냈어?”
“네가 벌어다 준 상금 덕분에 우리 체스클럽 체스판들 싹 바꿨지. 고맙다. 한 번쯤 들를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 안 왔어?”
“그냥 이래저래 좀 바빴어.”
“그래 보이더라. 그 중엔 연애 사업도 활발한 거 같고, 하하.”
“…….”
“내년에는 어쩔 거야?”
“아, 너 대학은 어떻게 됐어?”
“원하는 곳으로 가게 됐어.”
“오, 축하해. 잘됐네.”
“고맙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 체스클럽, 네가 좀 맡아 주면 안 되겠냐? 부회장부터 그 아래 임원들은 다 뽑았는데 회장 자리가 비었어. 애들이 네 자리라고 비워 두더라.”
슬쩍 말을 돌렸는데 안 통하네.
그나저나 회장 자리를?
이건 좀 의외다.
“아, 그, 나는 디베이트 QRT(클럽 클래스)로 갈 거 같은데? 8학년 때부터 약속한 거라.”
“QRT는 그리로 가. 체스클럽은 QRT도 없어.”
“…고민해 볼게.”
“부탁한다. 되도록 빨리 결정해 주면 더 고맙고.”
5월 말.
지지난 주엔 AP 테스트도 다 치렀다.
AP 테스트는 SAT 테스트처럼 전국적으로 같은 시험을 치르는 공인된 시험이다.
학군이 A를 남발하는 곳이라도 이 점수가 낮으면 소용이 없다.
반면 학군이 빡세서 B를 깔아도 이 점수가 높으면 대학들은 학생의 점수를 인정해 주는 거다.
점수는 5점이 만점.
3점 이하는 대학 입학 시 차라리 시험을 안 쳤다고 쓰는 게 낫다.
12학년이 되면 AP 클래스를 더 많이 듣게 되겠지만, 일단 11학년까지 8과목 정도 시험을 치러 두는 게 내 목표다.
원래 우리 학교는 AP 클래스 자체가 15개밖에 없었는데, 할머니 교장 샘이 오면서 25개까지 늘어났다.
이 25개 과목이 전부 AP 시험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대학 입시 때 AP 수업을 들었다고 적을 수는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거지.
해마다 시험은 5월 초나 중순에 있고, 결과는 6월 중순에 나오기 때문에 12학년 것은 대학 입시가 다 끝난 후에나 나온다.
아.
갑자기 왜 말이 이렇게 빠졌지?
아무튼, 지금은 방학까지 2주 정도 남은 시점이라 각 클럽들의 핵심 임원들은 이미 다 정해진 상태다.
대부분의 클럽 회장은 12학년들이 맡는다.
체스클럽같이 인원이 많은 곳에서 회장 자리를 비워 두고 있다는 건 그만큼 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
디베이트 클럽에선 이미 총무를 하기로 한 상태다.
그것도 보통은 11학년에서 하는데 올해 내가 하기로 한 거다.
회장은 아리아가 맡기로 했고.
고등학교에서 10학년은 나름 널널한 학년이다.
9학년 때처럼 어리바리하지도 않고, 12학년처럼 빡세지도 않다.
맡아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안 그래도 실력을 좀 끌어올릴 필요가 있긴 했는데.
저 체스 너드가 나를 찾아오기까지 꽤 오래 고민을 했을 거다.
“그래, 맡을게.”
“지, 진짜지? 번복 없기다!”
“알았어.”
“와, 다행. 담주 중에 체스클럽 연말 파티 있는데, 올 거지?”
“주말만 아니면 돼. 토요일엔 다른 약속이 있어서. 아니다, 목요일 점심때 들를게.”
“하, 고맙다. 제이든, 진짜 고마워.”
목요일 점심.
점심을 가지고 체스클럽으로 향했다.
여전한 풍경이다.
다들 도시락을 먹으면서 체스를 두고 있는 체스 너드들.
“어? 제이든 왔다!”
“제이든!”
“어서 와라, 우리 클럽 프레지던트.”
내가 회장직을 수락한 건 이미 다 알고 있다.
“근데 내가 좀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서.”
“뭔데?”
“디베이트 같은 경우엔 1년에 총 6번 대회 출전을 해야 회장 후보로 나설 수 있거든. 여긴 그런 거 없어?”
“왜 없어, 우리도 있어. 근데 우린 기본적으로 대회에 많이 나가지 않아. 대신 클럽 참가를 1년에 열 번은 해야 하거나 클럽에 큰 도움을 준 경우, 대회에서 큰 상을 받은 경우는 한 번으로도 족해. 그리고 넌 첫 번째만 빼면 두 가지에 모두 해당되고.”
“맞아. 그리고 우린 다 네가 회장을 맡아 주길 원해.”
“…그래, 열심히 하자.”
― Yay!!
얼떨떨하지만 다들 반겨 주니 고맙긴 하네.
체스클럽의 또 다른 미친X인 에이미를 이종사촌으로 두고 있는 빌리가 가장 반긴다.
체스 담당 선생님인 미스터 찰스가 다가와 힘 있게 악수를 한다.
“우리 클럽 맡아 줘서 고맙다, 잘해 보자.”
이 선생님… 소녀 감성이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올해 디베이트 내셔널 대회를 포기했더니 체스클럽 회장직이 오네.
내 체스 실력을 잘 알기에 되도록 피하고자 했던 클럽인데, 의도치 않게 스펙 하나가 쌓인다.
***
“나! 나느은!”
공부방에서 미스터 에멋이 제안한 걸 밝혔다.
파티에서 연주할 곡은 이미 다 정했다.
며칠 전, 오랜만에 미스터 커나스의 작곡 파일을 뒤졌다.
미스터 커나스.
당신의 베풂, 잊지 않고 있어요.
늘 감사합니다.
미스터 커나스의 작곡 파일을 건드릴 때마다 중얼거리는 혼잣말이다.
제이든으로 태어나 인생의 작은 이정표가 되어 준 사람.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연주곡은 미스터 커나스가 생전에 좋아했던 곡들 위주로 선정했다.
널싱홈 봉사를 꾸준히 다니고 있기에 따로 연습은 필요 없다.
이제는 어떤 악보를 펼쳐도 공부방 놈들과 대충 합을 맞출 수 있을 정도니까.
그리고 지금은 알렉스의 입이 댓 발 튀어나와 있는 중이다.
미스터 에멋이 요구한 악기는 ‘프렌치 혼, 바순, 플룻, 클라리넷, 색소폰’이다.
일단 공부방 멤버들을 보면,
제이콥과 마크, 매튜가 트럼본,
알렉스와 마커슨이 프렌치혼,
크리스틴과 조나단이 플롯,
오디는 클라리넷이고,
헤나는 색소폰이다.
알다시피 나는 바순이고.
트럼본은 미스터 에멋의 요구사항에서 빠진 상태라 제외, 플룻은 크리스틴과 조나단의 실력 차이가 많이 나므로 당연히 크리스틴을 선택했다.
클라리넷과 색소폰, 바순은 각기 한 명씩이니 상관이 없다.
문제는 프렌치 혼.
알렉스와 마커슨이 경쟁이 붙은 것이다.
실력만 놓고 보면 알렉스가 위다.
하지만 난 여기서 뒤끝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는 중이다.
“와, 치사하게. 제이든, 내가 마커슨보다 실력은 더 좋아. 너도 알잖아. 미스터 에멋이 너한테 그런 부탁을 한 것은 네가 정직하게 실력 좋은 애들로 꾸려 올 거란 걸 믿어서 아니겠어?”
“마커슨도 잘해.”
“야, 알렉스, 나도 SS1에 들어갔어.”
“마커슨, 그래도 내가 너보다 잘해. SS1도 너보다 일찍 들어갔고, TYT랑 YMEA에서도 내가 너보다 앞자리잖아. 인정?”
“…인정.”
마커슨이 깔끔하게 물러난다.
알렉스가 입꼬리를 올리며 의기양양해한다.
“크리스틴의 일은 미안한데 안 미안해.”
“무슨 말이 그래?”
“너 솔직히 크리스틴이랑 사귄다고 소문은 났지만, 그동안 너네 둘이 뭘 했냐? 네가 몰라서 그렇지 슬금슬금 말 나오고 있었다고.”
“무슨 말?”
“무슨 말이긴. 둘이 사귀는 거 뻥이라는 거지. 너 혹시 해리슨 기억하냐? 게이 아빠들한테 입양된 애.”
“알지. 지금 수영으로 제법 잘 나가지 않아? 근데 갑자기 해리슨 얘기는 왜 나와?”
“여자애들이 걔 잡고 물어봤나 봐, 너 어느 쪽인 거 같냐고.”
“뭐? 진짜로? 진지하게?”
“어. 걔가 아빠들도 그렇지만 그쪽으로 친구들이 많잖아. 암튼 해리슨이 너 절대 그쪽 아니라고 못 박아서 다들 그냥 넘어간 거야. 안 그랬음 너 지금 받는 캔디 절반도 못 받고 있었을걸?”
“…그건 몰랐네.”
“당연하지. 이제야 이 알렉스 님의 오지랖을 이해하겠냐?”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이쯤 되면 풀어 줘야지.
“마커슨, 알렉스 데려가도 될까?”
“네 권한이잖아. 난 괜찮아. 근데 다른 알바는 필요 없대? 접시라도 닦을 수 있는데.”
“미스터 에멋이 그냥 작은 파티라고 했어. 접시 같은 건 그냥 일회용 쓰지 않을까?”
“하긴. 암튼 잘 갔다 와라.”
마커슨의 깔끔한 포기로 내 뒤끝은 끝이 나 버렸다.
알렉스가 허리에 손을 얹으며 가슴을 쭉 편다.
나를 이겼다는 승리의 자세.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버렸다.
“연습은 2번만 할 거야. 다음 주 목요일 학교 끝나고 우리 집으로 와.”
“오케이.”
“2시간 연주하고 자그마치 100불인데 당연히 와야지.”
가난한 자들에게 100불은 큰돈이다.
***
5월의 마지막 월요일 점심시간.
공식적으로 올해 아시안컬처 클럽의 마지막 행사가 시작되었다.
라이언이 모든 준비는 자신이 하겠다며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라고 해서 우린 참가자의 자격으로 온 상태다.
공식적으로 싱글인 라이언은 제법 인기가 있다.
대략 40명의 인원들이 참가했는데, 여자가 30명에 남자가 10명 정도다.
“여자들은 너보다 내가 더 좋은가 봐, 하하.”
“너 다 해라.”
“그래도 되냐? 으하하.”
아주 의기양양한 표정의 라이언.
며칠 전에 본 알렉스의 표정과 동일하다.
정말 이상한 데서 과시욕이 있다니까.
“근데 왜 이렇게 아무것도 없어? 쌀국수면 이것저것 준비물이 많지 않아?”
“다 했어. 신경 쓰지 마. 내가 돈 좀 투자했다.”
“오호. 그래?”
― 짝짝짝.
라이언이 모두의 앞에 서서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한다.
“애들아. 미군들이 전쟁에 참가했다가 처음으로 이기지 못한 전쟁이 뭔지 아냐? 그게 바로 베트남 전쟁이야. 전쟁이 무려 20년 동안 이어졌는데 1955년부터 1975년까지로…. 일명 베트콩이라고 불리는 베트남 군인들의 게릴라전으로….”
베트남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이어 갔다.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의 눈에 생기가 사라진다.
역시 남의 나라 역사나 문화에 대한 관심은 1도 없는 이들이다.
라이언 얼굴 한번 보고, 쌀국수 얻어먹으러 온 게 목적이니까.
대략 10분에 걸친 설명이 끝이 났다.
그 사이 한쪽에선 3개의 커다란 전기 포트에서 물이 팔팔 끓고 있었다.
아니겠지?
설마… 아닐 거야.
아무것도 준비할 필요 없다고 할 때부터 수상하긴 했지만….
내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설명을 끝낸 라이언이 당당하게 캐비닛에서 박스들을 꺼낸다.
바로 쌀국수 사발면 박스들과 나무젓가락들.
8개들이 박스가 자그마치 10박스가 나온다.
저거 한 박스에 14불 정도 한다.
큰돈 썼네.
“야! 라이언, 사발면을 사 오면 어떻게 해?”
“왜? 이거 진짜 맛있어.”
“이런 건 애들도 그냥 사 먹을 수 있잖아. 문화 소개를 해야지.”
“뭐래. 문화 소개 충분히 했잖아. 그럼 뭐 이 와중에 고기 삶고 실란트로랑 숙주 꺼내고 그러리? 여기 다 들었어. 심지어 맛도 좋고 가격도 크게 차이 안 난다고.”
“…그건 그렇지.”
할 말이 없네.
내 문화가 아니다 보니 정확히 설명도 못 하겠고.
우리 학교엔 아시안이 왜 이렇게 없는 건지 원.
“야. 이거 면이 얇아서 불으면 진짜 맛없거든? 딱 거기 설명서대로 3분만 익혀. 그래야 맛있어.”
“어어.”
― 후루루룩.
다들 맛있게 먹는다.
할 수 있나.
나도 그냥 한쪽에 찌그러져 맛있게 먹었다.
같이 고개를 파묻고 먹던 오디가 넌지시 묻는다.
“근데, 제이든.”
“어?”
“우린 임원진 다시 안 뽑아?”
“왜? 회장 하고 싶어? 줄까?”
“어우야, 회장은 부담스럽고 부회장 줘.”
“부회장은 미아다.”
“칫, 이 클럽은 공산당이야!”
“뭐래.”
처음부터 이 클럽을 만들자고 꼬신 미아.
요즘 무슨 일이 있는지 표정이 좋지 않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크리스틴 덕분에 나도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다.
진짜 이 정신 나간 사춘기 놈들을 끌고 가려니 이젠 좀 지친다.
먼저 와서 도움을 청하기 전까진 모르는 척할 생각이다.
다들 예전에는 귀여운 맛이라도 있고, 말이라도 잘 들었지.
아직까지 내 눈치는 보지만 슬슬 자기 목소리를 높인다.
알렉스만 봐도 나를 설득해 마커슨을 밀어냈잖아.
에효.
나도 갱년기가 오는 모양이다.
슬슬 힘에 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