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149)
149화 바바리안 로드 (1)
지난날, 미샤는 딱 잘라 말했다.
[나는… 마른 남자가 취향이당.] [이잇!! 너에겐 남자로서의 매력이 없다는 뜻이당!!]마녀의 숲에서 조난당했을 때, 내 동료 계약 제안을 고백으로 오해하고서 했던 말이었다.
나는 그 말에 안심했다.
남녀 사이에 친구란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토록 취향이 명확하다면 오래 붙어 지내도 불편할 일 없이 동료 관계로 남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빨리 와서 앉아라. 밥도 안 먹고 그렇게 자면 몸 상한당.]날 대하는 미샤의 태도는 점점 변해갔다.
굳이 매일 아침마다 들러 나를 깨웠고, 손수 만든 요리를 함께 먹었다.
심지어 고기반찬도 양보해 주었다.
솔직히 동료가 아니라 무슨 여자 친구라도 생긴 듯한 기분.
처음엔 목숨 바쳐 구해줬으니 이런 식으로라도 은혜를 갚으려는가 싶었지만…….
“……응. 좋아한당. 남자로서.”
그래, 역시 그랬던 거구나.
“혹시 알고 있었냥?”
“확신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이유로 외면해 두고 있었다. 직접 언급한 것도 아니지 않나. 모든 게 내 착각일 수도 있다며 이 문제를 직면하지 않았다.
알게 되면 선택지가 하나뿐이니까.
“그, 그랬구낭…….”
떨면서도 나를 마주하는 미샤를 보고 있자니, 새삼 내가 얼마나 비겁한지가 느껴진다.
진작 이 문제를 마주했다면 다른 방식의 해결도 가능했을 것이다.
에두른 말로 진작에 밀어낼 수도 있었겠지.
드왈키가 외면하지 말라고 말할 정도로, 미샤의 감정이 커지기 전이라면.
그래, 분명 그렇게 됐겠지.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냥?”
이제 선택지는 둘이다.
몸을 들이밀어 타오르는 불을 지피든가.
아니면, 더욱 커지기 전에 불을 끄던가.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악령이고 플레이어인 존재다.
비요른 얀델도 아니며, 집으로 돌아가겠단 소망도 아직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할 수 없기에.
진짜 모습을 보여 주지 않고서 진심을 바라는 건 비겁한 짓이라고 드왈키도 말했기에.
나는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너를 소중한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샤의 대답은 약간의 텀을 두고 돌아왔다.
“그래…… 나로는 안 되는 거구낭?”
“다른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내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지 않나. 게다가 나는 성인식을 끝마친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다.”
여러모로 생존이 최우선시 돼야 할 시기다.
그리고 미샤는 나와 계속 탐험을 해야 한다.
남녀의 감정이 얽히면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질 터.
이는 우리 둘 모두에게 위험을 초래할 거다.
그러니까…….
“너도 나를 동료로만 여겨 줬으면 한다.”
지금이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선을 긋는다.
하지만 서로를 위한다는 말로 암만 포장해 봤자 그 본질은 이기심이었을까.
미샤는 단호하게 내 제안을 거절했다.
“싫다!”
“……뭐?”
“내가 왜 그래야 하냥? 애초에 나는 오늘 내 마음을 밝힐 생각도 없었단 말이다, 이 나쁜 바바리안노망! 이 사기꾼! 받아 줄 것처럼 물어봐 놓고서!!”
미샤가 짜증 난다는 듯 소리치며 내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퍼억!
심장까지 시려오는 냉기 대미지.
분이 풀리지 않는지 미샤가 이어서 소리쳤다.
“누가 먼저 날 받아 달랬냥? 나도 안다. 네가 그럴 처지가 아니라는 것쯤은! 근데! 좋아하지도 말라니, 그건 너무 잔인하지 않냥!”
퍽! 퍽! 퍽! 퍽!
빠르게 중첩되는 냉기 대미지.
뭐라 말을 하던 차, 미샤가 힘없이 내 명치에 손을 내려놨다.
“나는…… 많은 걸 바라지도 않는단 말이다. 지금만으로도 충분히 분에 넘친다 생각한당. 그러니까 그런 말은 안 하면 안 되냥? 응? 왜 나한테 그것까지 빼앗아가려는 건데…….”
미샤와 이어진 곳으로부터 떨림이 전해졌다.
고개를 숙인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표정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어떤 위로의 말과 행동도 할 자격이 없다 생각했다. 그렇게 침묵의 시간이 하염없이 흘렀고, 이내 떨림이 멎었다.
“…….”
미샤가 뒤로 물러서더니, 벌겋게 부은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리고…….
“내일 밥은 없을 줄 알아라.”
표독스레 그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나는 망부석처럼 남아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끼익.
여관에 들어서자 카운터에 앉은 주인아저씨가 나를 보며 혀를 찼다.
“오늘은 자네가 잘못했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터벅, 터벅.
계단을 올라 방문을 열었다.
여전히 좁디좁은 비요른 얀델의 방.
왠지 텅 비어 있던 이한수의 방이 떠올랐다.
이제 그만 인정할 때였다.
“…….”
정을 붙였기에 나약해진 것이 아니다.
나약하단 걸 알기에 정을 붙이지 않으려 했을 뿐.
***
다음 날 아침.
내일 밥은 없다고 말했던 미샤가 방문해 나를 깨웠다.
당근으로 가득한 웰빙 도시락을 들고서.
“꼭꼭 씹어 먹어라. 알겠냥?”
지은 죄가 있기에 전부 씹어서 삼켰다.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먹으니 오래 걸리진 않았다. 다만 식사가 끝나고 뻘쭘하게 눈알을 굴리는 날 보며 미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냥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 않지 않냥.”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 네 결정권은 없당. 그러니까 부담 갖지도 마라.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일 뿐이니까.”
집으로 돌아가 하룻밤 동안 내렸을 결론.
내가 뭐라 간섭할 여지는 없었다.
미샤는 나보다도 어른스러웠다.
이렇게 의연하게 말하는 것도 이 관계가 더 불편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거겠지.
뭐, 드왈키가 바란 건 이런 애매한 입장 정리가 아니었을 테지만.
“알겠다.”
“그래, 그럼 앞으로 이 얘기는 금지다. 알겠지?”
“그러겠다.”
이것으로 이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전과 변한 게 없지만 아무튼.
“씻고 나와랑. 슬슬 나가야지.”
식사를 마친 후에는 간단하게 몸을 씻고서 미샤와 함께 외출했다. 그리고 약속 장소로 향해 동료들과 만나 다 같이 컴멜비로 향했다.
마차에서의 분위기는 꽤나 무거웠다.
“이렇게 모두 함께 온 건 처음인 거 같군?”
난쟁이놈이 애써 밝게 말하긴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모두 함께 온 건 아니니까.
이제는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어서 볼일만 마치고 돌아가세.”
이후 컴멜비에 도착한 후에는 그나마 나았다.
장비를 수리하고 판매할 건 판매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앙 행정청에 들러 드왈키가 남긴 집을 난쟁이놈에게 양도하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간단한 이유였다.
난쟁이놈이 사겠다고 했거든.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 드왈키도 분명 그렇게까진 바라지 않을 텐데.”
“하하! 원래 내 집을 갖는 게 꿈이었네. 이번에 이렇게 목돈도 생기지 않았나.”
“자, 걱정은 이만하면 충분하니 어서 받고 서명이나 하게나.”
행정청 직원이 공증하는 앞에서 서명을 적어 넣었고, 이로써 드왈키의 집은 난쟁이놈 소유가 되었다.
참고로 행정청을 통해 확인한 집의 감정가는 2,400만 스톤.
다만 경매로 매각 시 20%는 싸게 팔린다는 말을 들었기에, 인당 500만 스톤씩만 받았다.
“그럼 이만 돌아가서 술이나 한잔하세.”
용무를 마치고 거주 구역으로 돌아온 우리는 주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최종 정산을 했다.
마석을 포함해 모든 소득을 넷으로 나누었다.
장비 수리비라든가, 미궁에서 사용된 소모품값이라든가. 그러한 이유로 제각기 미세한 오차는 있겠지만…….
‘2,500만 스톤이라…….’
막대한 거액이 손에 쥐어졌다.
난쟁이놈이야 집을 사느라 천만 스톤밖에 안 남았겠다마는.
아, 참고로 용살검이나 미궁에서 내가 사용한 ‘절제된 소망’은 내 몫으로 인정하기로 합의됐다.
“뱀파이어 정수가 사라지고 오우거의 정수가 생겼다니, 과연 그런 자가 찾아 헤맬 만큼 중한 보물임은 틀림없네. 다만, 우리를 살리려다가 생긴 일 아닌가.”
“거기까지 욕심을 낼 정도로 염치가 없지는 않소. 용살검 또한 자네가 아니었다면 그자가 갖고 돌아갔을 물건이고.”
나로서는 너무도 고마운 얘기였다.
이것들을 돈으로 환산해서 넷으로 나누려면 파산을 몇 번 해도 모자랄 테니까.
“자, 그럼 이제 마시세.”
이후 술잔이 몇 번 더 오가고 난 뒤에 나는 슬며시 운을 뗐다.
“이제 슬슬 팀에 대해서도 말해야 할 듯한데.”
팀의 한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다만 나는 그 자리를 메울 계획이 아니라, 미샤와 함께 팀을 떠나겠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해서 모두에게 할 말이 있네.”
나보다 난쟁이놈이 한발 빨랐다.
“나는 탐험가 일을 그만둘 걸세.”
“뭐?”
“이런 때에 이런 말을 꺼내서 미안하네. 다만 어제 온종일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니, 부디 이해해 줬으면 하는군.”
난쟁이놈의 선언에 로트밀러가 물었다.
“이 일을 그만두면 앞으로는 뭘 할 생각이오?”
“대장간을 차릴 걸세. 그 친구의 집을 구매한 것도 그래서고. 지금이 아니면 영영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어쩐지 드왈키의 집을 사겠다더니만.
거기를 개조해서 대장간을 차릴 계획이었던 거였구나.
“탐험가가 된 건 현실을 피해 달아난 것에 가까웠네.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당장 먹고살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꿈을 접었지. 그렇기에 후회할 일을 하고 싶지 않네. 그건 그 친구에 대한 모욕일 테니까.”
난쟁이놈의 단호한 말에 누구도 감히 만류의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단지 그의 앞날을 응원할 뿐.
“……꼭 꿈을 이루길 바라겠소.”
“오, 대장간이라니 이제 사장님이 되는 거냥? 나중에 꼭 놀러 가겠당.”
“대장간에 갈 일이 있으면 앞으로 네 가게로 가면 되겠군.”
“그래, 그러면 되겠군!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즐거울 것 같네! 하하핫!”
난쟁이놈의 탈퇴가 기정사실이 된 후, 대화를 이어받은 건 로트밀러였다.
“무라드, 그렇다고 너무 미안하게 생각하진 마시오. 어차피 나도 이번 탐사가 끝나면 팀을 떠날 계획이었으니까.”
“뭐? 자네가? 대체 왜?”
“나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소. 단지 그뿐이오.”
짧은 답변에 난쟁이놈은 아무런 말도 못 했다.
다만 이런 반응을 이미 예상했을까?
로트밀러는 별 내색 없이 말을 이어갔다.
“사실 비요른에게는 미리 말해 뒀소. 설마 이런 식으로 끝날 거라고는 그땐 상상하지도 못했지만. 모처럼 큰돈도 생겼겠다, 나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셈이오.”
“……자네의 성실함과 끈기라면 그 목표가 무엇이든지 언젠가 이룰 수 있으리라 믿네.”
난쟁이놈의 진심 어린 말을 끝으로 둘의 시선이 나와 미샤에게 모였다.
우리는 어쩔 것인지가 궁금한 거겠지.
나는 짧게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우리 둘은 새 팀을 만들 거다. 그리고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거다.”
“그래, 자네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네.”
“칼스타인 양이 고생하겠구려.”
“……뭐, 내 업보 아니겠냥. 이것 말고는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없고.”
우리들은 다 같이 술잔을 들어 건배했다.
팀 반푼이로서 함께하는 마지막 술자리.
서로의 앞날을 축복하고 응원하며 추억을 안주 삼아 이별의 시간을 보냈다.
늘 그렇듯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만 갔고, 이내 난쟁이놈과 미샤가 만취해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슬슬 자리를 끝내야겠군.”
나는 로트밀러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술자리 마지막에 이르러 언제나 수습하는 건 우리 둘이었으니까.
마지막까지 팀 반푼이다운 마무리답구나.
그런 생각이나 하며 일어서던 순간이었다.
“비요른,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네.”
평소와 달리 로트밀러가 목소리를 내리깔며 나를 부른다.
마치 둘이 잠들 때까지 기다리기라도 했듯이.
“……말해 봐라.”
나는 묘한 압박감 속에서 그를 응시했고, 로트밀러는 약간의 텀을 두고서 내게 되물었다.
“혹시 자네는 악령인가?”
팀 반푼이의 안전 해체를 위해서는 가장 큰 숙제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