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436)
436화 맞수 (2)
이백호.
나이 스물셋.
풋내 나는 까까머리에 앳된 시골 청년 같은 이목구비를 가진 갓 전역한 군인.
그런 녀석은 나를 형이라 불렀다.
[저요? 그냥… 십 년은 지났어요.]최소 10년.
아니, 이제 그 말을 한 지도 4년은 지났으니 최소 14년 이상을 이 도시에서 살아남은 플레이어일진대도.
처음엔 별난 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네는 이미 이곳 사람일세.]징벌의 함에서 만난 한스 A의 말을 통해 나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전에 녀석이 했던 그 말에 담긴 독기와 집념을.
[형님! 그런 잣 같은 소리 마십쇼! 전 돌아갈 거예요. 그러니까 현실 나이로 쳐야죠!]이백호는 별난 녀석이 아니다.
그저 어느 누구보다도 필사적일 뿐.
그렇기에 오히려 속내를 읽기 편하다.
[빨리 벤 풀어. 안 그러면 진짜 여기서 넌 뒈지니까.]말투는 경박하고.
[야, 틀. 누가 맘대로 불 지르래, 내 허락도 없이.]무소불위의 무력을 믿고 망나니처럼 행동하며.
[이야, 진짜 플레이어였네?]오로지 본인의 욕구대로만 움직이는 듯 보일지 몰라도.
결국 놈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난 이쪽 세상에서 정 같은 거 안 쌓으니까.]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탈출해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
목표가 명확한 사람만큼이나 대하기 쉬운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동안의 나는 이백호에게 내 정체를 밝히는 것을 경계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겠지.’
어차피 이놈도 비요른 얀델이 이한수라는 걸 알지 못할 뿐, 악령이란 건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와, 대박…….”
시간이 흐른 지금은 어느 정도 생겼으니까.
이 괴물 같은 놈이 상대라 해도, 최악의 상황에서 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자신이.
“그래… 형이 진짜 비요른 얀델이었던 거구나. 리헨 슈이츠가 비요른 얀델이니, 그러면 저번에 아틀란테에서 만난 것도 형이었네요?”
내 정체를 밝힌 후, 묘한 탄성을 몇 번이나 터트리던 이백호가 안도하듯 숨을 내쉬었다.
“…진짜 다행이네. 지금에라도 알아서.”
조금 거슬리는 부분이었다.
“다행이라니……?”
“아… 그건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을 거 같아요.”
“그건 내가 들어 보고 판단해야 할 문제 같은데.”
내가 딱 잘라서 말하자 이백호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근데, 형.”
“…….”
“저한테 왜 그렇게 공격적으로 말해요?”
화가 난다기보다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목소리. 다만 내가 뭐라 말할 것도 없이 녀석은 혼자서 납득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좀 그랬지…….”
아무래도 비요른 얀델과 있었던 일이 떠오른 모양이다.
“미안해요, 형. 형인 줄 몰랐던 때 일이니까 이해해 줄 거죠?”
사과를 받을지 말지 결정도 하기 전에 이백호가 다시금 한숨을 뱉었다.
“형도 참… 그때 그냥 말해 주지. 그랬으면 이렇게 일이 꼬일 일도 없었을 텐데.”
허허허…….
사람 빡돌게 하네, 이거.
“그래서 그게 내 책임이라는 거냐?”
“아뇨. 그런 말은 안 했는데요? 결과적으로 제 잘못이기는 하죠. 형 말대로 비요른 얀델이 악령이라 알려지게 된 건 저 때문이니까.”
덤덤한 목소리에서 순간 다시 열이 뻗쳤지만, 일단 감정을 죽이고서 대화에 집중했다.
“이제 서로 이름도 깠으니까 다시 묻는데, 그건 대체 왜 그런 거냐?”
“제 계획을 위해서 상징적인 존재가 필요해서요. 다시 말하지만, 형인 줄 알았으면 그런 방법은 절대 안 썼을 거예요.”
글쎄, 말은 그리하지만 신뢰가 가진 않는다.
나도 이제 이 녀석에 대해 조금은 아니까.
“정말로 내가 죽었던 거여도?”
과연 그래도 이 녀석은 나를 이용하지 않는단 선택을 내렸을까?
***
“…….”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침묵이었다.
거짓말하는 걸 싫어하는 타입인가?
그런 생각도 들지만 확신하기엔 이르다.
어쩌면 단지 들킬 게 빤한 거짓말은 하지 않는 걸지도 모르니.
이백호가 자연스레 화제를 바꿨다.
“근데 제가 어떻게 형이 비요른 얀델인지 알아낸 건지는 안 궁금하세요? 난 솔직히 그것부터 바로 물어볼 줄 알았는데.”
답은 간단하다.
당장 중요한 건 따로 있다고 보았다.
아무리 이유를 찾아봐야 한번 지나간 결과는 바뀌지 않으니까.
그게 설령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될지라도—
“아, 물론 물어봤어도 대답 안 해 줬을 거지만.”
뭐 하자는 거야, 이 새끼는?
“그래도 한 가지만 말하자면, 그렇게 확실한 건 아니었어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조금 떠보기로 했죠.”
떠본 방식은 굳이 들을 것도 없었다.
날 비요른 얀델이라 의심하면서도 그저 평소처럼 행동했다. 내가 먼저 ‘미샤’ 혹은 ‘비요른 얀델’을 먼저 언급할 때까지.
‘아마 현별이한테 쩔쩔매는 모습을 보인 것도 그래서겠지. 그래야 내가 좀 더 경계심을 풀—’
“아, 근데 현별 누나는 진짜 무섭더라고요. 그런 사람이랑 어떻게 연애를 했어요? 와, 기 싸움에서 진 게 대체 얼마 만인지. 막 헛웃음이 나던데요? 어이가 없어서.”
음, 그건 진짜였던 건가?
알 수 없지만, 지금 깊이 생각할 주제는 아니었다.
“아무튼, 그건 됐고.”
해당 주제를 이쯤에서 끝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미샤는 왜 데려간 거냐?”
“당연히 미궁 공략 때문이죠.”
그래, 역시 그 이유 때문이었구나.
내심 짐작은 했으나, 직접 말로 들으니 어딘가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형도 그래서 걔를 키우고 있던 거 아니에요? 9층 후반부에는 빙결 쌍수 검사가 있으면 편하니까.”
물론 그 답변에도 의문점은 있었다.
“너 정도 되면 다른 후보도 많았을 텐데, 왜 하필 미샤였지?”
“순애보가 마음에 들어서요. 소생의 돌로 형을 살려 주겠다고 약속하면 절대 배신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게 전부야?”
“뭐, 다른 것도 있긴 하지만… 전부 사소해요. 솔직히 말해 그 결정에 제 변덕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요. 조금 신기했거든요. 악령인 걸 알면서도 마음이 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 듯했다.
실제로 얘는 미샤에 대해서는 정말 큰 관심도 없어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물건처럼 생각하고 있달까?
“아, 맞다! 돌려받길 원하시면 드릴게요. 몇 년 동안 꽤 열심히 키웠고, 현별이 누나한테도 왠지 죄짓는 기분이 들긴 하지만…….”
지금 이 녀석이 흥미를 보이는 건 오직 나뿐.
“형이랑 저 사이잖아요?”
이내 녀석이 씨익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죠. 암요?”
부담스러울 정도의 호의.
이를 통해 나는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다.
이 녀석이 나를 잘 대해 주는 것은, 단순히 내가 ‘한국인’이어서가 아니다.
뭔가 더 이유가 있다.
그게 아니라면, ‘귀환’이 목표인 이놈이 미샤를 이리 쉽게 양보할 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모른 척하는 게 낫겠지.’
나는 떠보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우선은 미샤를 안전하게 돌려받는 것이 급선무라 판단한 것인데…….
“그럼 냐옹이 문제는 해결이 됐으니, 말고 다른 얘기나 하죠!”
“다른 얘기?”
“그냥 형 얘기가 좀 궁금해서요. 저도 형 연차일 때 형만큼 강하진 않았거든요. 심지어 얼마 전에는 심해거인 정수도 먹었고. 대충 확인된 팩트들로만 견적을 내 보니 3등급 정수가 최소 4개는 될 거 같던데…….”
이백호는 나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을 토해 내기 시작했고, 나는 거를 것은 거르며 답해 줄 부분은 착실히 답해 주었다.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이니까.
쿨하게 미샤를 보내 준다고 한 이상, 나도 이 정도 성의는 보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래서 실제로는 어때요? 2년 반 동안에 어디 가 있었던 거예요?”
이 질문에서는 고민을 많이 했다.
20년 전 과거에 갔던 일을 얘한테 말하는 게 좋을까 아닐까.
결정을 내리는 데 긴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어차피 내가 비요른 얀델인 것도 아는 애인데 굳이 숨길 필요는 없겠지. 어쩌면 얘한테도 뭔가 도움이 될 정보를 듣게 될지도 모르고.’
아우릴 가비스는 플레이어들의 공공의 적이다.
그러니 정보를 공유하고 대적할 방법을 의논하는 것도 중요하다.
따라서…….
“기록의 파편석……? 들어는 봤는데, 그게 진짜 있었구나.”
파루네 섬에서 과거로 빨려가게 된 일.
그리고…….
“…아우릴 가비스를 만났다고요?”
20년 전의 커뮤니티에 입장을 했던 것을 위주로 썰을 풀었다. 어차피 얘는 아멜리아 언니를 구한 얘기는 궁금하지도 않을 테니까.
“어, 이제 보니까 이 커뮤니티 자체를 그놈이 만든 거였더라고.”
“아, 그건 알아요. 루인제네스 그 늙은이한테도 들었던 거라… 어? 잠깐만… 그때 그 늙은이가 말하길, 커뮤니티가 터지기 전에 아우릴 가비스가 이상한 놈을 데려왔었다고 했는데……. 설마 그게 형이었던 건가?”
“아마 그럴걸.”
“와… 이러니까 형이 무슨 주인공 같네. 더 해 봐요. 그래서요? 어떻게 됐는데요?”
“아우릴 가비스는 내가 미래에서 온 플레이어란 거에 엄청 관심을 보이더라고.”
나는 내가 오리지널 모드를 깼다는 것을 제하고 아우릴 가비스와 나눴던 대화를 설명했다.
놀랍게도 이백호는 대부분의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야 얘의 현 동료 중의 한 명이 파멸학자니까.
애초에 과거 이야기를 한 것도 이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어서였고.
“땅의 마녀가 살아 있는 건 저도 알아요. 뭐,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요.”
“그 늙은이는 모두의 소망이 향하는 곳에 있다고 하던데. 혹시 짚이는 게 있어?”
“엥? 정말 그렇게 답했어요? 쉬운데요? 미궁의 끝 말고 더 있어요?”
“하지만 게임에선 최종 보스 같은 게 없었잖아.”
“그거야 튜토리얼이었으니까요. 형도 이만큼 지내 봤으면 알 거 아니에요? 이곳은 엄연히 게임과 다르다는 걸. 어쩌면 땅의 마녀가 최종 보스로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흐음, 그러면 대체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지?”
비단 땅의 마녀만이 아니더라도 이백호와의 대화는 나름 유익했다.
오히려 정보를 푼 건 나인데, 내 쪽에서 더 많은 정보를 손에 넣었다고 해야 할까?
“카구레아스라면 창세보구 세 개를 모았던 그 바바리안을 말하는 거죠?”
어, 내가 갔던 시기엔 두 개였는데…….
아니, 애초에 그보다.
“그 사람이 바바리안이었어……?”
“몰랐어요? 형이랑 나름 인연도 깊은데. 작은 발칸이라고… 형이 그런 이명으로 불렸잖아요?”
…뭐?
“설마…….”
“네. 카구레아스가 발칸이에요. 정확히는 정황상 그렇게 추정돼요. 개벽 136년 4월 2일. 발칸이 55세의 나이로 사망한 직후 사라졌던 창세보구가 모두 잃어버렸던 종족들 품으로 돌아갔거든요.”
놀라운 이야기였다.
내 이명의 원주인이었던 전설적인 선배가 설마 악령이었을 줄이야.
“왕궁 지하에 있다는 포탈에 대해서도 알아?”
“예전부터 조사 중이긴 한데 알아낸 건 별로 없어요. 거기 있는 포탈이 입구가 아니라 출구라는 것 정도?”
“출구라니?”
“포탈을 통해 어디론가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반대라는 거죠. 어딘가에 있는 포탈을 타면 왕가 지하의 포탈이 있는 곳으로 이동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음, 그렇구나…….
뭔가 딱 보기에도 굉장히 수상한 이야기네.
아무튼, 이후로는 정말 오래간만에 같은 편에 선 입장으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러다 보니 그 얘기도 하게 되었다.
[아우릴 가비스, 당신은 당신 욕심 때문에 이곳에 끌려와 죽어 나간 수많은 ‘악령’들에게 조금이라도 가책을 느끼고 있나?]어쩌다 보니 진실 게임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됐던 바로 그 질문.
이를 듣자마자 이백호가 박장대소했다.
“푸핫! 풋, 아하하하하! 정말요? 그 늙은이한테 그런 질문을 했다고요?”
“왜 웃는데?”
“그냥요. 형답다면 형다운 질문이었다 할까요……. 그래도 형은 아직 순진한 편이니까…….”
뭐? 내가 순진해?
들으면서도 기가 찼으나, 이백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요? 그 늙은이는 뭐라고 대답했어요?
나는 그때 들었던 답변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전했다.
[어찌 나라고 마음이 편하겠는가. 물론 안쓰럽네. 책임감도 느끼지. 아마 이런 마음을 평생 지닌 채 속죄하며 살아갈 것이네.]내 눈을 똑바로 보며 그렇게 말하고.
[어때, 이러면 대답이 되겠는가?]보석에 빨간불이 들어왔던 것까지.
“흐음…….”
사이코패스 같은 늙은이라며 함께 욕을 해 줄 줄 알았던 이백호는 묘한 표정이었다.
“이건 좀 애매하네요.”
“애매하다니?”
“말을 길게 했잖아요, 그것도 일부러 엄청 과장해서.”
“응?”
“진실 속에 거짓을 숨길 때 전형적으로 쓰이는 패턴이에요. 심지어 예, 아니요로밖에 답을 못 하던 상황이었잖아요?”
이백호는 아우릴 가비스의 저의를 의심하고 있었다.
근데 문제는 생각해 보니, 저게 또 아예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니라는 것.
“음, 근데 왜 그 늙은이가 그렇게 했지? 그냥 우연인가? 형은 어떻게 생각해요?”
“글쎄… 그 늙은이 속을 어떻게 알겠냐, 우리가.”
“그건… 그렇죠.”
아우릴 가비스의 답변에 대한 의논은 거기서 깔끔하게 끝이 났다.
이백호는 그보다 더 궁금한 게 있는 듯했다.
“저기, 형…….”
“말해. 갑자기 그러면 괜히 더 불안해지니까.”
“아, 근데 좀 실례가 될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됐고, 하라니까.”
“그럼 할게요?”
“어.”
한 번 더 허락이 떨어지자 이백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은 목표가 뭐예요?”
뜬금없는 질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외의 말을 들었다는 듯 나는 되물었다.
“목표라니?”
“지구로 돌아가고 싶은지, 아닌지요.”
그래, 역시 그게 궁금했구나.
“그때 노움트리에서 만났을 때는 분명 잘 모르겠다고 하셨죠.”
응, 그랬지.
참고로 그 대답을 했을 때 이놈은 너는 그 적묘족 때문이냐고 물었고. 내가 침묵으로 답하자, 예전의 자기를 보는 거 같다며 NPC한테 많은 걸 바라지 말라는 조언 아닌 조언까지 해 줬다.
‘…그때 그렇게 쿨하게 넘어간 건 ‘비요른 얀델’한테 그리 큰 가치를 두지 않았기 때문일 테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글쎄…….”
“그럼 지금이라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요. 마냥 살아남겠다는 게 목표일 시기는 지나도 한참 지났는데.”
이백호의 의도야 빤했지만, 일단 진지하게 고민하는 척했다. 한데 나도 최근 들어서 자주 하고 있던 고민이라 그럴까?
“목표라…….”
시늉만 내려고 했는데, 정말로 이런저런 생각이 뇌리에 휘몰아친다.
내 목표는 무엇인가.
“어려우면 이렇게 생각을 해 봐요. 여기 버튼이 하나 있어요. 그리고 그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형은 곧바로 원래 있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고요.”
이백호의 조언은 생각보다 도움이 됐다.
실제로 미래의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까지는 알 수 없을지 몰라도.
“자, 그러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적어도 당장의 상태는 알 수 있었으니까.
“…….”
정말 그런 버튼이 있다면, 나는 한참 동안 버튼 앞에서 머뭇거렸을 것이다.
또한, 머리로는 쉴 새 없이 생각했겠지.
집으로 돌아가면, 그 집에는 무엇이 있는가.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한가득이었다.
“…….”
햄버거, 콜라, 게임.
재밌는 미디어와 수많은 현대 기기의 편의.
무엇을 죽이지 않아도 되며, 매일같이 피를 흘릴 일도, 아프고 힘들 일도 없다.
생활을 걱정할지언정, 생존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래, 내가 바라는 그런 평탄한 삶이 그 너머에 있다.
하지만.
“…….”
분명 이 게임 속 세상은 빌어먹을 곳이고, 그 생각은 아직도 변함 없지만.
‘아마… 결과는 바뀌지 않겠지.’
끝내 나는 버튼을 누르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누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바라는 건 그러한 삶이 아니니까.
“어느 정도 고민이 끝난 거 같네요?”
“그래.”
결론은 나왔다.
내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다.
살얼음 위를 걷듯 온갖 위협이 가득한 이곳에서.
나,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수많은 이들과 함께.
그게 내 솔직한 욕망이다.
그렇기에…….
“말해 줄 수 있어요? 어떻게 할 건지.”
나는 녀석의 눈을 마주하며 답했다.
“누를 거야, 그 버튼.”
진실된 속내를 밝히지 않고, 당장은 녀석에게 맞춰 주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빤했으니까.
이 녀석이 무슨 답을 기다렸는지 정도는.
“…….”
내 대답을 들은 이백호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응시했다.
그렇게 잠시 정적이 흘렀다.
어딘가 무겁게만 느껴지는 침묵.
“쯧.”
그 짧은 시간에 끝을 고한 것은 이백호의 혀 차는 소리였다.
“거, 사람 기분 나쁘게. 여기선 스킬 못 쓴다고 병신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늘상 경박하게 웃으며 장난스레 말하던 녀석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보면서 거짓말을 하시네.”
내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차가운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