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499)
499화 퀘스트 (4)
이종족 귀족가 연합 멜베스.
나는 이곳에 몸을 담으며 얀델 남작가의 지원을 비롯해 클랜 아나바다에 대한 지원을 받아냈다.
사실상 클랜의 경우엔 거의 떼를 써서 받아낸 것인데, 지원 항목 자체도 그리 크지 않았다.
현재 우리가 저택으로 사용 중인 클랜 하우스를 저렴하게 제공받은 것이나, 앞으로 공금을 이용한 대출이 가능해진 것이 일방적인 혜택의 전부.
‘의뢰라…….’
그렇기에 ‘의뢰’의 중요성이 커진다.
‘의뢰’는 혜택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조건부 계약에 가까웠으니까.
‘이 의뢰를 얼마나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지에 따라서 대우가 달라지겠지. 내 입지도 훨씬 올라갈 테고.’
게임으로 치면, 공적치 시스템과 비슷하다.
퀘스트를 깨면 랭크가 오르고, 그에 따라 혜택이 늘어나는 거지. 뭐, 그래도 누울 자리인지는 제대로 확인하고 발을 뻗어야 하겠지만.
“뭘 의뢰하려는 거지?”
보수가 얼마인지 묻기보다는 의뢰 내용을 먼저 확인했다.
“정보요.”
“……정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내용이었다.
의뢰라는 것은 십중팔구 사냥, 채집, 전투 이렇게 세 항목 중 하나이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정보라니?
자세한 설명을 하라는 눈짓을 보내자 구드릭스 자작이 차를 홀짝이며 말을 이었다.
“그… 이번에 아주 큰일이 있지 않았소?”
“헷갈리게 하지 말고 정확히 말해라.”
귀족스럽게 빙빙 돌려 말하려던 자작이 헛기침을 내뱉으며 딱 잘라 명확하게 말했다.
음, 명확하게까지는 아닌가?
“명예의 돌에 새겨진 글귀 말이오. 알아봤더니 숨겨진 지역이라는 것이, 새로운 계층을 의미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구려.”
그래도 뭘 말하는지는 알 거 같았다.
여기까지 왔으면 내게 바라는 정보가 무엇인지는 확실하니까.
“얀델 남작은 분명 다음 탐사에서부터 미탐사 지역을 수색할 것 아니오? 탐사 성과를 우리에게도 공유를 해줬으면 하오. 정말 숨겨진 지역이 새로운 계층이 맞는지, 입구가 어디이며 들어가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까지.”
흐음…….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 자작이 얼른 말을 이어붙였다.
“아,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 이 의뢰는 멜베스의 의회에 정식으로 공인된 안건이며, 의뢰 완수 시 그에 상응하는 보수가 즉시 지급될 것이오.”
“보수라면 얼마나?”
“탐사 성과의 가치, 그리고 희소성에 따라 다를 것이오. 아직 확인된 게 무엇도 없지 않소? 막말로 다음 탐사에서 입구가 발견되어 모든 탐험가가 그 방법을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하나 그래도 제대로 된 성과만 낸다면 결코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오. 이미 열세 개의 가문이 동참하기로 하였으니.”
“열세 개?”
“기회에 대한 주관적인 의견은 누구나 다를 수 있지 않소? 이번 의뢰의 보수는 동참하기로 한 열세 개의 가문이 모은 공금으로 지급할 예정이오.”
해석하자면, 다른 가문들은 이번 의뢰를 ‘낭비’로 판단했다는 뜻.
“그래서 정식으로 회담이 열린 게 아니라, 네가 대표로 나를 만난 거군.”
“그렇소이다. 애석하게도 임시 표결 과정에서 과반수를 넘지 못했으니 말이오. 아, 물론 걱정은 하지 마시오. 우리가 따로 공금을 모아 의뢰를 넣는 것은 정식으로 허가가 났으니 말이오.”
번거롭기 그지없는 과정을 듣고 있자니, 의회란 집단의 단점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뭐, 그만큼 장점도 있긴 하지만.
“그래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시오?”
“시간보다는 몇 가지 묻고 싶은데.”
“무엇이든지.”
“탐사 정보를 얻어 뭘 하려는 거지?”
내 물음에 구드릭스 자작은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듯 잠시간의 텀을 두고서 입을 열었다.
“남작은 역사상 가장 비싸게 팔린 9등급 정수가 무엇인지 아시오? 바로 심연어라오. 다른 9등급 정수들에 비해 크게 좋을 것도 없는 그 정수가, 32억스톤이라는 거액에 판매됐지. 왜 그런지 아시오?”
처음 듣는 이야기였으나, 그 이유가 무엇일지는 짐작이 갔다.
“…최초였으니까.”
“그렇소. 9층 균열에서 발견됐다는 이유 하나로 마탑은 그 큰돈을 주고 정수를 구매해갔소. 최초엔 그만큼 큰 가치가 있는 법이니까.”
다만 돈이 목적인 거냐고 되묻자, 자작은 그건 또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예로부터 새롭게 등장한 지역에서는 수많은 보물과 기회가 있어왔소. 해룡 살해자 뮬마린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영웅이오. 그가 최초로 해룡을 처치하고서 얻은 힘과 권능은, 이후 미궁의 그 어떤 누구도 다시 얻을 수 없었지.”
“그래서?”
“남작에게 얻은 정보는 믿을 수 있는 각 부족의 탐험가들에게 전달될 것이오.”
“정보를 이용해 그들을 성장시키겠다는 거군.”
“그렇소. 이종족 출신 탐험가들이 힘을 얻으면 얻을수록 우리의 힘 역시 커질 테니까.”
쓸데없는 말이 길어지긴 했으나, 자작의 얘기를 들어보니 멜베스가 이런 의뢰를 건 동기에 대해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납득도 됐고.
“물론 남작도 귀중한 탐사 성과를 우리에게 전하는 것이 불만스러울 수 있소. 하지만 약속을 하리다. 전해 받은 정보는 믿을 수 있는 이들에게만 전해져 비밀을 지킬 것임을.”
그 말을 끝으로 자작은 의뢰를 받을 것인지를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좋다. 의뢰를 받아들이겠다.”
실패 시 위약금이 있는 퀘스트도 아니고.
일단 받아서 손해 볼 건 없잖아?
“그럼 다음에 보지.”
이후 자작가를 떠나 집에 들어온 뒤엔 팀원들을 모아 새 퀘스트에 대한 내용을 공유했다.
몇몇 우려는 있었지만 반대는 없었다.
숨겨진 지역을 발견하고, 그다음 그곳의 가치를 확인한 다음에 생각해도 되는 문제니까.
째깍, 째깍.
조금 늦은 시간까지 앞으로의 탐사 계획에 대해 의논을 하다가 침대에 누웠다.
침대 앞에 놓인 의자 두 개에는 아멜리아와 에르웬이 사이좋게 앉아 있었다.
“테르시아, 너까지 있을 필요는 없다만.”
“싫은데요? 저도 여기서 아저씨 지킬 건데요?”
……사이좋게는 아닌가?
거, 얼마나 다녀온다고 다들 이러는 건지.
째깍, 째각.
침대 협탁에 올려진 시계의 초침 소리를 속으로 세며 눈을 감았다.
「캐릭터의 영혼이 공명하며 특정 세계로 이끌립니다.」
벌써 한 달의 반이 지나갔다.
***
이한수의 방에서 깨어난 즉시, 컴퓨터 본체에 전원을 넣고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대한독립만세] – 0명이 접속 중입니다.그래, 아직 얘네들은 안 들어왔고…….
이따가 2명이 들어온 다음에 입장해도 늦지 않기에 일단은 자유 게시판부터 확인했다.
역시나 벌써부터 게시물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다들 이번 패치노트 봄?]진짜 뒤통수가 아프단 게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싶더라.
아직도 숨겨진 지역이 있던 거 실화냐?
[BurtusMaximus: ‘던전앤스톤’이 갓겜인 이유 = 10년도 넘은 무료 겜인데 아직도 패치가 됨.] [ㄴthese99: 대신 집에 안 보내줌.] [ㄴBurtusMaximus: 그러게. 진짜 갓겜이네. 이제 집에 좀 보내줘 신 새끼야.]이번 패치 내용은 원주민들보다 유저들에게 있어 더 충격적이었던 듯했다.
최근에 암시장, 마탑에 깽판을 치거나 하는 등, 다른 사고도 많이 쳤는데 이 얘기가 가장 먼저 도배 되는 걸 보면.
[근데 비요른 걔는 공포의 군주를 대체 어떻게 잡았기에 패치가 되냐?]다 잡은 다음에 프라이팬으로 튀겨 먹기라도 했나?
갑자기 그거 잡았다고 패치되는 게 이상한데.
[Futuralis: 5인클 했다잖아.] [ㄴAI_DIDIGO: 정보1, 5인클이 아니라 4인클이었다.] [ㄴFuturalis: 그럼 4인클이 조건인가 보지.] [ㄴAI_DIDIGO: 정보2, 4인클도 비요른 얀델이 최초는 아니었다.] [ㄴFuturalis: 그래서 결론이 뭔데?] [ㄴAI_ DIDIGO: 결론, 비요른 얀델이 특수한 조건을 충족시킨 뒤 공포의 군주를 처치했을 가능성이 92.24571%에 수렴한다.] [ㄴ글쓴이: 이 새끼 컨셉 웃기네.] [ㄴNyacreeps: 근데 이 말이 맞는 게, 왕실 연구원에서도 특정 조건하에 가브릴리우스의 안배가 발동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음.]느닷없는 패치에 여러 가능성을 제시하는 플레이어들.
집단 지성을 활용하면 뭔가 단서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열심히 살펴봤지만, 그 ‘특수한 조건’이 무엇일지는 아직도 감이 안 잡혔다.
‘뭐… 이제 와서는 상관없나.’
게시판을 싹 훑어본 뒤에는 다시 마우스를 조작해 채팅방을 확인했다.
[대한독립만세] – 2명이 접속 중입니다.오케이, 그럼 두 사람 다 제때 왔고.
서둘러 방에 입장하자, 인기척을 느낀 두 사람이 먼저 인사해왔다.
“형니이임! 오셨슴까!”
과장스러운 몸짓으로 허리를 꾸벅 숙이는 이백호.
“아, 왔어요?”
그리고 새침하게 힐끗하고 끝내는 현별이.
둘을 지나쳐 소파에 앉자 이백호가 금방 달려와 내 옆에 앉았다.
“형! 그거 알아요? 형 오기 전에 잠깐 얘기를 했는데, 현별 누나는 아직도 형한테 감정이 남아 있대요!”
“………응?”
시작부터 굉장히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주제.
이에 침을 꿀꺽 삼키며 옆을 확인하니, 현별이의 굳은 얼굴이 보였다.
“…오빠, 저는 저런 말 한 적 없어요. 쟤 말 믿는 거 아니죠?”
“아, 알아. 당연히 안 믿지.”
“형님! 섭섭하게 그러실 겁니까! 누님도요! 그런 적 없기는요? 아까 분명 형님이 다시 사귀자고 하면 어쩔 거냐는 말에 얼굴 붉히셨잖아요!”
아… 역시 그랬던 거구나.
…다행이네.
앞으로 현별이 얼굴 어떻게 봐야 할지 싶었는데.
“…안 붉혔어요. 그리고 설령 그렇다 해도 그게 어떻게 그 얘기가 돼요?”
“훗, 침묵은 때론 강한 긍정이 되는 법이죠.”
“이백호 씨는… 정말 쓰레기네요?”
현별이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이백호의 장난질에 넘어가지 않았다.
단지 매서운 눈빛으로 째려보기만 할 뿐.
“현별아 그만해. 어차피 나는 안 믿으니까. 백호, 너도 그만 장난치고.”
“넵!”
“진짜 열받아…….”
내가 상황을 중재하자 이백호가 얄미운 목소리로 차렷 자세를 취했고, 이에 현별이가 양주먹을 꽉 쥐었다.
‘얘네 둘은 언제 이렇게 친해진 거야?’
의문이 들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랬다간 현별이가 또 발작할 게 분명하니까.
이백호 이놈은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커뮤니티, 거기서도 한 시간만 만날 수 있기에 시간은 되도록 아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별아.”
대화를 위해 현별이부터 내보내기로 했다.
이름만 불렀는데도 표정이 구겨지는 걸 보니 현별이도 대충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한 거 같았다.
덕분에 나도 길게 말하지 않았다.
“백호랑 할 얘기가 좀 있는데…… 알지?”
“…1시간 뒤에 올게요.”
그 말을 끝으로 현별이는 이백호를 한차례 째려본 뒤 채팅방을 떠났다.
“휘유! 저 누나 진짜 재밌지 않아요? 기는 엄청 센데, 또 형한테는 쩔쩔 매는 게 참…….”
“백호야.”
“네?”
“너무 예의 없게 굴지 마.”
“…알았어요. 앞으로 장난은 안 칠게요. 됐죠?”
하… 얘는 진짜 어떻게 해야 컨트롤할 수 있지?
고민하고 있자니, 이백호가 내 눈치를 보며 새 주제를 꺼냈다.
“그나저나 형.”
“어.”
“그래서 냐옹이… 아니, 미샤 칼스타인은 잘 만났어요?”
“어. 덕분에.”
흘러간 세월 탓인지 아직은 서로가 서로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지만, 이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그래, 그러니까…….
“그나저나 백호야.”
마침내 미샤도 안전하게 돌아왔겠다.
나는 지난 번 만남에서 미처 묻지 못했던 질문을 꺼냈다.
“기록석이 뭐냐?”
나만 모르는 이야기에 휘둘리는 건 이제 그만둘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