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660)
660화 아웃사이더 (4)
GM, 유르벤 하벨리온.
Elfnunalove라는 나로서는 굉장히 꺼림찍한 닉네임을 쓰는 플레이어이자, 이 세계에서 최소 20년 넘게 생존한 올드 유저.
참고로 이놈의 정체는 베르실도 알고 있다.
[유르벤 하벨리온. 그게 GM의 이름이다.]애초에 원탁에서도 밝혔던 내용이거든.
그래서인지 이 녀석을 추천한 다른 이유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단 생각이 든다.
“…마공학자라면 나도 알고 있다. 한데 현실적으로 그자를 불러내는 게 가능하겠나?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예리한 아멜리아의 질문에 베르실은 문제될 거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은 걱정 마세요. 친분이 있어서요.”
‘물론 안 될 수도 있기는 하지만요’라며 보험을 까는 베르실이었으나,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면, 어째서 이렇게 자신할 수 있는 걸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베르실이 정말로 그 은둔형 외톨이 같은 GM과 친분이 있을 리는 없으니.
‘쥐고 있는 약점을 믿는 거겠지.’
다만, 정체를 갖고 협박을 한다고 잘 될까 싶기는 하다. 보아하니 이놈 정체는 왕실에서도 알고 있는 거 같았거든.
쓸모가 있어서 서로 이용을 하는 관계랄까?
‘커뮤니티가 사라졌으니, 어떤 상황에 처했을지 좀 궁금해지긴 하네.’
사실 이 녀석에 대한 관심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섣불리 다가가기가 조심스러웠다.
명분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허구한 날 탑에 처박혀 있는 놈을 대뜸 찾아가봤자 만나 줄 리도 없으며, 갑자기 왜 왔나 수상해보이기만 할 터였다.
하지만…….
“나쁘지 않군. 일단 진행을 해봐라.”
베르실이 도개교 역할을 해준다면 자연스럽게 만나볼 수도 있을 터.
“네. 그러면 돌아가서 바로 말을 꺼내볼게요.”
약간 걱정되는 부분도 있지만, 베르실 성격상 자기 정체는 드러나지 않게 잘 협박하리라 믿기로 했다.
“외부에는 비밀로 해야 하는 일이니 이 부분도 꼭 당부해두고. 만약 우릴 도와주겠다고 하면 약속도 잡아라. 그전에 한번 봐야겠으니.”
“네. 그럴게요.”
“그럼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여기에 더 있어 봤자 할 것도 없기에 일단은 이쯤에서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도시로 복귀했다.
그리고…….
“저는 마탑으로 가볼게요.”
마공학자에게 말을 꺼내본다며 베르실이 먼저 따로 떠나고서 약 사흘 뒤.
“됐어요. 마공학자가 한번 봐보겠대요.”
약속이 잡혔다.
***
마공학자와의 만남은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비밀스럽게 진행됐다. 무슨 냉전 시대 첩보원이라도 된 거 같다 해야 하나?
‘여기서 좌회전을 한 다음에 앞에 보이는 빨간 지붕 옆 건물의 세 번째 문을 열고 내려가면……. 아, 여기네.’
골목길을 한참이나 돌고 돌아 도착한 건물.
그 아래에서도 지하 계단을 타고 내려간 뒤에 암시장에 입장할 때처럼 마법진을 발동시켜서 의문의 공간으로 진입했다.
번뜩-!
서재의 형태로 꾸며진 꽤나 널찍한 방.
다만 방 어디를 보든 출입구는커녕 창문조차 찾아볼 수 없다.
아무래도 오직 마법으로만 올 수 있게 만들어 둔 특수 공간인 듯한데…….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작님.”
소파에 앉아 있던 사내가 몸을 일으키며 내게 인사를 해온다.
‘이렇게 생겼었구나.’
도시에서 한번 만난 적이 있기는 했지만, 그때 이놈은 한스 I로 위장했던지라 얼굴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첫인상 키워드는 동안, 멸치, 안경 정도.
다만 외모 평가나 하러 온 건 아니기에 얼굴만 기억해둔 뒤 곧바로 대화를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조심스럽게 하는 이유가 있나?”
“번거롭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하나 최근 제 주위에 적이 많다 보니. 이해해주십시오.”
적이라…….
하긴 예전에 이백호만 해도 얘를 엄청 찾아다니고 그랬었지.
“아무튼, 반갑다. 유르벤 하멜리온. 얀델의 아들 비요른이다.”
이내 녀석과 짧게 악수를 한 뒤 내 자리로 보이는 소파에 앉았—.
콰지직.
후, 시작부터 바바리안 차별이라니.
“괜찮으니, 사과는 하실 필요—.”
…응?
사과를 내가 왜 해?
“다음부터는 더 튼튼한 의자를 사라. 이런 의자를 사면 차별 주의자처럼 보이니까.”
“예……? 아, 예…….”
“바바리안은 앉지 못하는 의자를 사는 것부터가 차별의 시작인 거다.”
“……하하, 꼭 명심하도록 하지요.”
나에 대한 인상이 실시간으로 떨어지는 게 보이긴 했으나,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이놈과 대화를 할 때는 특히 더 주의해야 하니까.
절대 현대인처럼 보이지 않도록, 바바리안스럽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조금 과해보일지라도.
툭.
완전히 내려앉은 소파를 옆으로 밀어내고 그냥 양반다리를 하고서 맨바닥에 앉는다.
놀랍게도 눈높이 차이는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가 살짝 위인 듯한데…….
“어쨌든, 부탁을 들어준다 해서 고맙다. 설마 베르실과 친분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둘은 어떻게 알게 된 거냐?”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말을 던진다.
그야 놈 입장에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
베르실을 보내 협박한 장본인이 바로 나라고.
“하하… 둘 다 정식으로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이지 않습니까. 다 자연스럽게 친분이 생기고 그런 거지요.”
“오, 그러냐?”
“한데… 그래서 제가 뭘 조사해야 하는 것인지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고울랜드 양이 거기까지는 말을 해주질 않아서.”
“지하 성채에 있는 마법진을 조사하는 일이다. 아니, 정확히는 이걸 발동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내줬으면 한다.”
“마법진 말입니까……?”
“그래. 아주 고대에 그려진 마법진이라, 베르실 혼자로는 역부족이라 하더군.”
솔직하게 본론으로 들어가자, GM이 턱을 짚으며 어딘가 상념에 잠기더니 아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혹시… 성벽 바깥으로 나가려는 게 목적이신 겁니까?”
…그래, 너도 아는 게 있었구나.
어차피 도움을 받는다면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솔직히 답했다.
“맞다. 정확히는 나가서 놈들의 동태를 살피려는 거지만.”
“……그렇군요.”
“혹시 이미 알고 있는 거냐? 그 마법진을 발동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단지 그런 마법진의 존재가 있다는 것만 어찌 운 좋게 들어서 알고 있던 정도이지요.”
“너도 직접 가서 보기 전에는 뭐라 확답을 줄 수 없다는 거군?”
“예, 그렇습니다.”
그리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GM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일절 느껴지지 않았고, 송구하다는 느낌마저 자아낼 정도였다.
하지만…….
‘근데 왜 이렇게 밑밥을 까는 거 같지?’
대충 하고 상황을 모면하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나는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라. 설령 못 한다고 해도 너를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아, 예… 그렇다니 마음이 좀 놓이는.”
“될 때까지 하면 되는 거 아니겠나?”
“……예?”
예는 무슨 예.
지하로 내려가서 마법진이나 한번 쓱 보고, 능력 부족이라 하면 내가 그러려니 할 줄 알았던 건가?
“몇 달이 걸리든 상관없다. 하다 보면 언젠가는 되지 않겠나!”
“…….”
“부탁하는 입장에서 널 혼자 두는 것도 예의가 아닐 테니 계속 옆에서 같이 있어 주겠다!”
해석하자면, 통조림에 가둬두고서 다른 곳에 새지 못하게 감시까지 하겠다는 뜻.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지금 바로 가보는 게 어떠냐?”
“…예?”
“듣기로는 어차피 맨날 탑에만 콕 박혀 있다고 하던대? 뒤에 약속 같은 것도 없을 거 아니냐!”
“그, 그래도 장비 같은 건 챙겨가야…….”
“걱정하지 마라! 말만 해주면 내가 베르실에게 시켜 가져오라고 할 테니.”
“제, 제가 직접 가져오겠습니다. 당장 그게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고, 말로만 전해선 찾기도 어려울 테니……!”
정말 이대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목소리가 빨라진 GM.
“흐음… 그러고 안 나타려는 건 아니겠지?”
“……예?”
얼빠진 표정을 짓는 녀석을 보며 나는 호쾌하게 웃었다.
“하하핫! 농담이다 농담! 네가 안 나타날 리가 있겠나! 난 걱정하지 않는다!”
“아하하… 그, 그렇습니까?”
“그래! 뭔가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나오지 못할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찾으러 가면 되는 거 아니냐!”
“…….”
이후 마탑은 여러 번 가봐서 지리에도 빠삭하다고 말해주자, 지난 마탑 습격 사건이 떠올랐는지 GM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거, 걱정하지 마십시오. 1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떠나간 GM은 정말로 한 시간이 딱 되기 전에 돌아왔다.
***
GM과 단둘이서 노아르크를 찾아 가는 일은 딱히 문제가 없었다.
일단 노아르크로 내려가는 길은 나도 빠삭하게 잘 알고 있는 데다가…….
처벅, 처벅.
하수도에서 순찰을 도는 기사들은 이 녀석이 갖고 있던 마도구로 해결이 됐거든.
순찰대도 나름 간파 계열의 마도구를 지닌 듯해 내심 걱정했지만, 결과적으로 기우였다.
‘…템빨이 좋기는 하네.’
과연 마공학자라 해야 하나?
기사들이 지닌 것보다 더 상위 판정을 갖는지, 바로 옆을 지나가는데도 기사들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직접 만든 거라고 했지? 이름이 뭐냐?”
“이름은 없습니다……. 애초에 팔려고 만든 것도 아닌지라.”
“왜 안 파나?”
“제작을 위해선 아주 희귀한 부산물이 필요한데, 성공 가능성도 무척 낮습니다. 그렇다 보니 만들어진 게 이거 하나지요.”
“오, 그러냐?”
그렇게 말하니까 더 탐나는데 말이지.
어떻게 뺏거나 할 방법이 없으려나?
속으로 고민하고 있자니, 그 욕망을 느끼기라도 한 듯 GM이 빠르게 말을 돌린다.
“그나저나 세상이 많이 변했다 싶군요. 하수도에 기사들이 돌아다니는 걸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러니까 밖에 좀 나가고 그래라.”
“하하… 그래야겠습니다.”
자리가 불편한지, 아니면 바깥에 나온 것 자체가 스트레스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노아르크 광장에 도착할 때까지 GM이 먼저 말을 거는 일은 없었다.
내가 어떻게 툭툭 던져봐도 적당히 넘길 뿐이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가 없네.’
뭐, 성격이야 어쨌든 일만 잘해주면 상관없지만.
“자, 여기다. 뭔가 알겠나?’
“한번 봐보겠습니다.”
이내 광장에 도착하자 GM은 전문가적인 포스를 뽐내며 이런저런 장비를 꺼내놓고, 뭔가를 계속해서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저…….”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금 떨어져서 잘 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있던 나에게 녀석이 총총 걸음으로 다가온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마는.”
처음엔 무슨 말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 끝났다고?”
“예. 여기에 마법진을 발동하기 위한 수식을 적어뒀으니, 이 방법만 따라한다면 4등급 마법사만 되어도 마법진을 발동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리 말하며 기품 넘치는 글씨가 적힌 양피지를 건네는 GM이었지만, 쉽사리 믿기지가 않는다.
이게 이렇게 빨리 끝나는 일이라고?
의심스럽다는 듯 눈길을 좁히고 위아래로 쓱 훑자 녀석이 변명하듯 말을 잇는다.
“…생각보다 쉬웠습니다. 고대 마법진은 제 전공 분야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아까는 왜 확답을 못한다 한 거냐?”
“그건… 제 안 좋은 버릇입니다. 죄송합니다.”
음, 그렇다면 또 할 말이 없기는 한데…….
“저… 그럼 이제 일도 다 끝났겠다, 이만 가봐도 괜찮겠습니까? 되도록이면 저녁은 집에서 먹자는 주의여서…….”
솔직히 말해서 믿지 못하겠다.
뭐, 아무리 나라도 면전에 대고 그리 말할 수는 없었지만.
“일이 끝났다니 뭔 소리냐?”
“예?”
“잘 됐는지 아직 확인을 못했지 않나. 한번 직접 발동시켜봐라.”
나름 합당한 이유를 대며 붙잡자, GM도 거절할 말을 찾지 못했는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 준비만 좀 할 테니 기다려주십시오.”
꺼내 놓은 장비들을 잘 챙긴 녀석이 다 끝났다며 나를 부른 건 5분 정도가 흐른 뒤였다.
녀석 옆으로 다가가자 녀석이 하나, 둘, 셋 하고 카운트를 외웠다.
그리고…….
번뜩-!
새하얀 빛이 우리를 감싸고, 이윽고 눈을 떴을 때.
‘여긴…….’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간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거대한 이무기가 지나갈 수도 있을 법한 넓은 원형 통로. 한쪽 벽면은 알 수 없는 문양이 그려진 채 막힌 상태였는데…….
“저게 이쪽에 새겨진 마법진입니다. 대충 살펴보니 발동 방법은 동일해 보이는군요.”
“…대충이라고?”
“그… 말이 헛나왔습니다. 틀린 정보는 아닐 테니 그 부분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아, 그리고 한 가지 주의를 드리자면……. 마법진이 파손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셔야 합니다. 광장에 있던 마법진과 다르게 외부에 노출이 된 구조이다 보니…….”
“망가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영구적인 복원 마법이 설정되어 있어서 기다리면 고쳐지긴 할 테지만… 최소 1년은 걸릴 겁니다.”
“…그렇군.”
영영 못 돌아간다는 것보다는 낫지만 1년이라는 기간도 충분히 큰 리스크다.
“순간 이동 마법을 사용해 도시로 돌아가는 것도 안 되나?”
“예. 좌표 인식은 도시 아래로 되어 있으나, 이동 궤도 지정이 되지 않는 걸 보면, 현재 저희 위치가 수호 마법진의 바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도시 아래에 있긴 하지만 도시 전체를 뒤덮은 결계를 기준으로는 밖에 있다는 뜻.
역시 아무래도 영 미심쩍다.
물론 녀석이 말한 정보의 진위 자체에 의심을 갖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역시 수상하단 말이지…….’
마공학자 유르벤 하벨리온.
이놈이 재능 넘치는 마법사라는 건 알겠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쓱 보고 전부 다 척척 대답하는 게 가능한가?’
문외한인 나조차도 이상하다는 게 느껴질 정도다.
마치 이미 조사해서 알고 있던 걸, 모르는 척하며 푸는 느낌이라고 해야—.
“저 그러면 제 할 일은 이제 다 끝난 듯한데… 이만 돌아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GM의 요구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할 일이 끝났다는 데는 부정할 말이 없지만, 막상 이대로 보내주기엔 좀 아쉽다.
최소 몇 주는 걸릴 거라 생각하고 가만 있었을 뿐.
사실 조사하는 동안에 계속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좀 알아볼 생각이었거든.
그래, 그러니까…….
“여기까지 와봤는데, 너는 궁금하지 않나? 같이 가보도록 하지!”
“예?”
“그럼 허락한 거로 알겠다!!”
쉽게는 못 보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