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74)
74화 고스트 버스터즈 (3)
분수대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고 있다.
메뉴는 감자 스튜와 빵, 그리고 소고기를 곁들인 야채 샐러드.
옆자리엔 미샤가 앉아 있다.
“비요른, 이거 좀 먹어랑.”
“고기를 준다고……?”
“나는 아까 만들면서 많이 집어 먹었당.”
그렇다면야 뭐.
미샤가 넘겨준 고기를 꼭꼭 씹어 삼킨다.
대체 얼마 만에 먹는 소고기지?
입에서 살살 녹는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옆에서 날아드는 시선 때문에 맛을 온전히 느끼기 어렵단 거겠지.
“방금 분명 비요른이라고 그랬지?”
“그렇다면, 저자가 작은 발칸이겠군.”
“흐음, 겉보기로는 특별한 점을 못 찾겠는데…….”
언제부턴가 어딜 가던 간간이 나를 알아보는 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클랜 가입 권유, 팀 영입 제안.
이런 거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이보게, 자네가 정말 작은 발칸인가?”
이렇게 괜히 와서 시비를 걸거나 그때 얘기를 해달라며 귀찮게 하는 놈들도 있다.
거, 사람 밥 먹고 있는 거 안 보이나?
마침 마지막 숟갈이었긴 했다마는.
“미샤, 일어나라.”
“응?”
“다 먹었으니, 슬슬 가야지.”
서둘러 자리를 정리한 뒤 분수대를 떠났다.
뒤에서 뭐라 구시렁대는 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따라오거나 하며 선을 넘진 않았다.
미샤가 뒤를 힐끗하며 중얼거렸다.
“뭔가 신기하당. 이렇게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런 건 진짜 대단한 사람들만 그런 건 줄 알았는뎅…….”
뭐지? 시비 거는 건가?
그래도 뭔 말이 하고 싶은진 알겠다.
주변 사람이 갑자기 유명해지니 어색한 거겠지.
‘작은 발칸이라…….’
게임 내에선 명성 수치가 오르면 손해 볼 게 하나도 없었다.
받을 수 없던 종류의 퀘스트를 받을 수 있게 된다든가, 뜬금없이 고액의 의뢰가 들어온다든가 했으니까.
무엇보다 명성 수치가 낮으면 제1구역 황도 카르논에 들어갈 수 없기에 게임 진행에 있어 명성 수치는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이게 잘된 건지 모르겠단 말이지.’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단순한 게임 속이 아니다.
플레이어는 악령으로 취급되며, 발견하는 족족 단두대에 올려 버리는 세계.
갑작스럽게 이름이 알려져 버리면 달갑지 않은 관심도 함께하게 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살려면 어쩔 수 없던 거니까.’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오크 히어로의 정수를 얻었고, 목숨을 살렸으며, 그 외에도 여러 이득을 취했다.
그러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겠지.
“그럼 오늘 할 일은 다 끝난 거 같군.”
수리를 맡긴 장비를 돌려받고, 필요한 여러 물품을 사고, 이왕 온 김에 경매소도 들려서 살 만한 물건이 있나 둘러보고 나니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숙소로 돌아가서 육성 계획이나 마저 짜야겠군.’
“나는 이제 돌아갈 건데, 너는 어쩔 건가?”
사실상 슬슬 돌아가자는 내용의 말.
다만 미샤가 갑자기 말꼬리를 흐린다.
“아, 그게…….”
뭐지? 괜히 사람 불안해지게.
어서 말하라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자, 미샤가 내 눈치를 살살 보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잠시 가문에 좀 다녀오려 한당.”
“가문?”
“응. 어쩌면 내일이나 모레까지는 거기 있을 예정이당.”
“그렇군.”
왜 이런 걸 사람 눈치 봐 가면서 말해?
일정이 있으면 있는 거지.
집안사라니 내가 간섭할 영역도 아니고.
조금 걱정되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겠다마는, 얘가 알아서 잘하겠지.
“힘내라.”
그래도 응원의 말 정도는 해 주기로 했다.
가문이 얘한테 어떤 존재인지는 아는 사이기도 하니까.
미샤가 피식 웃었다.
“뭐, 조금 힘이 나는 거 같기도 하넹…….”
그래?
그런 거치고는 목소리에 매가리가 없는 거 같은데.
등을 떠밀어 줄 필요가 있을 듯하다.
물론, 바바리안 식으로.
퍽-!
“악! 이 무식한 바바리안노망!”
화들짝 놀란 미샤가 뭐라 소리친 거야 어쨌든.
“한결 낫군.”
“이씽, 아무튼 이틀 안에는 무조건 돌아올 테니까 그때까지 알아서 밥 잘 챙겨 먹고 있어라, 알겠냥?”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다.”
도시로 돌아온 다음에 생긴 변화다.
은인으로 모시겠다더니, 이런 의미였을까?
어째선지 요즘 들어 엄마처럼 군다.
***
미샤와는 마차 승강장에서 헤어졌다.
걔는 가문으로, 나는 숙소가 있는 8구역으로 향하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삐그덕거릴 때마다 흔들거리는 몸.
마땅히 할 것도 없기에 파도에 몸을 맡기듯 눈을 감고 상념을 시작했다.
‘당분간은 이 팀에 더 있는 게 낫겠지.’
오크 히어로의 정수를 먹으며 단번에 스펙이 확 뛰었다.
사실상 신청서만 작성해 제출해도 6등급 탐험가로 승급은 떼어 놓은 당상.
작은 발칸이란 명성까지 있으니, 어쩌면 5등급까지 한 번에 승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즉, 맘만 먹으면 더 좋은 팀을 구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
‘대신 미샤를 데리고 들어가긴 어렵겠지.’
미샤의 전투력은 더도 덜도 말고 딱 7등급 탐험가 수준이다.
물론 상위 등급으로 갈 잠재력은 충분하다.
이번에 영혼수를 손에 넣었을뿐더러, 변환계 이능인 [강화]야말로 내가 얘를 동료로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 이유니까.
그런 의미에서…….
‘일단 첫 번째 과제는 미샤의 레벨업인가.’
나는 최종적인 판단을 마쳤다.
한동안은 미샤의 성장에 집중하는 게 효율적이리라고.
‘우선 영혼수 계약 레벨부터 올리고, 가능하면 다음 탐사지도 그쪽으로 해야겠군. 그 정수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아, 될 수 있으면 주 무기도 바꾸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미샤의 육성 과정을 세세히 짜고 있자니 어느샌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후, 딴건 몰라도 나중에 숙소를 바꾸면 승강장 근처로 잡든가 해야지.’
일종의 역세권이다.
그만큼 집값이 비싸기야 하겠다마는.
터벅.
마차에서 내린 나는 능숙하게 길을 찾아 숙소로 향했다.
쭉 직진하다 사탕 가게에서 좌회전.
그러다 불멸왕의 동상이 나오면 오른쪽 갈림길.
한 5분 정도 더 가면 중앙광장이 나오는데…….
“집행을 시작하겠다!”
씨발, 며칠 동안 잠잠하더라니.
평소엔 텅텅 비어 있는 광장에 모인 군중들이 보인다.
다들 고개를 높이 올려 단두대를 보고 있다.
서걱-!
이제 그리 끔찍하게 보이지도 않는 광경.
그러나 굳이 관심 두고 지켜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따라서 섬뜩한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무의식은 주어진 시각 정보를 바탕으로 이상한 부분을 감지해 버렸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사람이 적지?’
단두대 아래 모인 군중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늘 처형될 예정인 사형수들.
수십 명씩 한 번에 형을 집행하는 게 보통인데 오늘은 고작 네 명밖에 되지 않는다.
‘왠지 오늘은 앞에서 피 찍어 먹으려 대기타는 놈들도 안 보이는 거 같고.’
머리가 의문을 감지한 동시.
배경음처럼 흐릿하던 웅성거림이 정확하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악령이라기에 기대했는데, 별거 없군?”
“어머, 그러게요. 피도 빨가네요.”
“역겹지 않나? 악령 주제에 사람 흉내를 내고 다닌다는 게.”
뭐, 악령?
나도 모르게 걸음이 뚝 멈췄다.
고개를 돌려 단두대를 확인하니, 벌벌 떨며 차례를 기다리는 사형수들이 보였다.
남은 건 세 명이었다.
“나, 나는 아니야! 아니란 말이에요!”
“뭐 하나? 재갈을 다시 물리지 않고.”
어린 외모의 요정 여자.
난쟁이놈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드워프 남성.
그리고—
“읍, 으으읍!!”
어딘가 익숙한 얼굴의 바바리안.
서걱-!
요정의 머리가 굴러떨어져 비치된 통 안에 쏘옥 들어가며, 다음 순번인 드워프가 형장에 무릎 꿇려진다.
다만, 내 시선은 오로지 한 곳에 고정됐다.
‘리옌의 아들 타리칸.’
그래, 그런 이름이었다.
저기 겁에 질린 눈으로 벌벌 떨며 두려워하고 있는 저 바바리안의 이름은.
‘씨바, 하는 짓 보고 불안하긴 했는데…….’
어색한 바바리안 식 말투.
겁 많던 성격.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하던 약한 마음가짐.
짐작 가는 바가 너무 많아서인지, 뭘 잘못해서 정체를 들켰는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한데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가 준 돈으로 무기를 사진 않은 거 같군.’
근거는 없다.
그야 형장에 올리기 전에 무기는 빼앗아 뒀을 테니까. 하지만 어째선지 그가 이번에도 미궁에 들어가지 않았으리란 생각이 자꾸만 든다.
‘대체 왜지?’
근거 없는 직감의 원천이 무엇일까 진지하게 고민해 보던 찰나.
“읍, 으읍!!”
얌전히 벌벌 떨고만 있던 그가 갑자기 몸부림을 치기 시작한다.
또한, 재갈이 물려진 입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끊임없이 움직이며, 휘둥그레진 눈동자는 내가 있는 방향을 향한다.
아무래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으읍! 읍으으으으읍!!”
설마 저 멀리서 날 알아본 건가?
하긴, 이 중에 바바리안은 나뿐이니 저 멀리서도 눈에 띄긴 했겠지.
“뭐 하나! 어서 무릎 꿇리지 않고?”
이윽고 사람들에 의해 제압된 그가 단두대의 칼날 아래로 목을 들이밀었다.
그 와중에도 그는 무언가를 말하고자 했다.
군중들 틈에 섞인 나를 콕 짚어 바라보며.
“읍, 으으으읍!!”
나로선 알 수 없었다.
짓뭉개진 저 아우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와 달라는 걸까?
음, 그렇다기엔 눈빛이 너무 표독스러운 거 같은데.
“으, 으읍!!”
유언조차 남길 수 없는 모습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한편, 약간의 안도감도 피어났다.
‘그때 딱 잘라 거리를 두기 잘했군.’
만약 15만 스톤을 주고 끝낸 게 아니었다면.
판단을 달리해 같은 처지임을 밝히고 서로에게 의지했다면—
“얀델의 아—!!”
저 자리에 내가 함께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
서걱-!
마지막에 재갈이 끊어지며 그가 뭐라 외쳤지만, 싸늘한 칼날이 떨어지며 음성을 짓뭉갰다.
나는 즉시 등 돌려 가던 길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에 한 가지 교훈을 새겼다.
‘다음부터는 그런 짓도 하지 말아야겠군.’
더 조심해야 한다.
이 좆같은 세상에서, 내 목숨을 위협하는 건 약탈자와 탐험가뿐만이 아닐 테니까.
과연 누가 누구를 동정한단 말인가?
괜한 오지랖은 자중하며 앞으로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행동해야 한—
“얀델의 아들 비요른, 맞죠?”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돌아보니 깔끔한 행색의 사내가 날 보고 있다.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라.”
낯선 이가 말을 걸어오는 일은 근래에 많이 있었기에 대충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너무 경계하지 마세요. 나도 비슷한 처지이니까.”
말하는 뉘앙스가 아주 묘하다.
무심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사내를 바라보았다.
“미국? 대만? 유럽? 그쪽은 어디에서 왔어요?”
씨발, 이건 또 뭐지?
***
명성을 얻은 후, 생각은 해 봤다.
어쩌면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다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는데.’
머리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는다.
물론 내가 할 행동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놈이 진짜 플레이어건, 아니면 플레이어인 척하는 놈이건…….
‘어차피 변하는 건 없어. 준비했던 대로 하자.’
나 외에도 악령이 존재한단 건 이 몸에서 깨어난 첫날부터 알고 있지 않았던가.
지난날, 나는 이미 한번 스스로에게 물었다.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그들과 교류할 필요가 있는가?’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단연코, 그만한 가치는 없다고.
그야 플레이어와 만나서 뭘 하겠는가?
정보 공유?
어느 정도야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이 낯선 세상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따위가 전부일 터.
고작 마음 편해지자고 그만한 리스크를 감수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그렇기에…….
‘그 누가 됐건 패를 보여 줄 필요는 없겠지.’
세간에는 포커페이스라는 말이 있다.
이를 이용해 심리전을 걸 때도 있다지만, 결국 기본적으로 무표정한 얼굴을 뜻한다.
그만큼 얼굴은 사람의 심리가 가장 잘 드러나는 신체 부위.
하지만 나는 판단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건 무표정 따위가 아니라고.
놈이 질문을 끝마침과 동시에 나는 대답했다.
“뭐라는 거냐?”
물론, 이것으로도 완벽하진 않다.
그렇기에, 바바리안스러운 말투로 답하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아이나르라면 저 말을 했을 때 어떤 반응이었을까?’
함께한 시간이 나름 길었던 만큼 답은 쉽게 도출됐다.
“어려운 소리 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라.”
그래, 이거다.
바바리안은 모르는 게 많다.
그리고 모르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또한, 낯선 상대가 인간이라면…….
약간의 경계심과 공격심도 내비친다.
따라서—
터벅.
조금은 위협적인 눈빛으로 걸음을 내디딘다.
또한, 말 한마디 잘못하면 머리통을 깨트릴 것처럼 콧김을 내뿜는다.
하지만 그런 내 행동에도 사내는 묘한 탄성을 뱉을 뿐이었다.
“와, 속을 뻔. 진짜 연기 잘하시네. 3개월 차 아니었어요?”
“연기? 어려운 말은 하지 말랬을 텐데?”
“아, 경계하실 필요 없다니까. 저는 미국에서 왔어요. 그 빌어먹을 게임엔 손도 대는 게 아니었는데.”
회한과 설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
그리고 플레이어가 아니고서는 결코 알 수 없을 내용의 정보들까지.
이로써 나는 어느 정도 확신했다.
“아무튼, 대단하시네요. 3개월 만에 이명까지 얻으시고, 저는 3년도 넘게 걸렸거든요. 하필 인간이 걸려 가지고…….”
이 새끼, 플레이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