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88)
제 1088화
255화. 켈리악 지플의 죽음, 그리고……(5)
말살.
본래라면 인세에 존재하는 무엇이라도 반드시 절멸시킬 수 있는 힘이 한데 모이고 있었다. 무려 창성만 넷, 그 모두가 말 그대로 전력을 펼치고 있었다.
적을 베고, 부수고, 죽인다.
저주에 가까운 일념과 증오로 번들거리는 칼날과 발톱이 켈리악에게 쇄도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켈리악의 등을 노린 건, 루나의 심홍검이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넷 중 누구보다도 깊고 어두운 살의를 품고 있었다.
시잇-!
크란텔의 칼날에 공간이 일그러지며 기이하고 날카로운 흔적이 남았다. 켈리악은 그 순간 세 걸음 정도의 거리를 순간이동 해서 공격을 피했다.
칼날에서 뻗어진 심홍검의 잔기가 켈리악의 어깨를 스쳤다. 연격으로 이어진 두 번의 종베기도 잔상처만을 남겼다.
“그래, 네놈 낯짝을 보니 떠오르는구나. 다른 차원에서의 일들이…… 어떻게 잊고 살았을까, 네놈을.”
“루나 룬칸델, 기어이 여기서도 영웅 행세를 하려고 하는군.”
루나는 갑작스레 눈앞에 펼쳐진 공간 폭발에 일순 속도를 잃었다. 그 틈에 켈리악은 한 차례 더 거리를 벌리며 보호막을 강화했다.
급속하게 부풀며 거대해지는 보호막, 벌써 켈리악은 그 속 깊숙이 자리를 잡아 루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지켜보는 연합원들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 보호막만으로…… 창성들의 오의를 견디고 있다……!’
진과 반, 두 사람의 명왕군림검이 보호막에 부딪혀 가로막히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창성들은 이미 예상한 듯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명왕군림검의 진행이 멈춘 듯 보이는 사이, 먼저 파고든 루나만이 계속 켈리악을 쫓고 있었다.
보호막 속에서 요동치는 켈리악의 마력은 순식간에 루나의 온몸을 불사르고 있었다. 창성 중 오직 루나만이 그 불길을 이렇게 정면으로 견딜 수 있었다.
“단단하고 집요한 그 징그러운 습성은 여전하군. 그 숱하고 처참한 패배를 떠올리고도 내게 감히 칼을 들이민 점은 높이 사주마.”
“허세 부리지 마라, 켈리악. 지금 네놈은 우리만 상대해야 하는 게 아니잖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줄기 황금빛 광선이 켈리악의 가슴팍을 관통했다. 말루기아의 태양기였다.
말루기아, 그녀는 아까부터 명백히 바멀 연합을 돕고 있었다. 정확히는 포칼을 끌어들일 때부터 다른 태양신의 자아들과 바멀 연합을 이용하는 중이었다.
인간이라면 관통상은 치명적이다. 하물며 심장이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켈리악은 핏물조차 뱉지 않았다. 꿰뚫린 환부는 잠시 모자이크 같은 형태의 마력이 모이더니 금세 회복되는 모습. 켈리악은 마신석 없이 자신의 힘만으로 상당한 수준의 현실 조작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 너희에겐 무척 다행인 일이겠군.”
카아앙-!
켈리악을 꿰뚫은 말루기아의 창이 빛과 같은 속도로 되돌아갔다. 동시에 루나에게도 똑같은 형태의 창이 날아들었다.
첫 번째 창은 말루기아가 형성한 보호막을 전부 종잇장처럼 찢어버리며 그녀의 목을 관통했다.
그리고 켈리악과 달리 그녀는 움찔하며 타격을 받은 기색을 드러냈다. 포칼의 힘으로 연 차원문에 거의 모든 힘을 쏟고 있으므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루나는 첫 번째 창,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창까지는 완벽하게 회피하며 켈리악과 재차 거리를 좁혔다.
하지만 크란텔을 휘두른 순간 난데없이 그녀의 뒤에서 치솟은 세 번째 창이 허벅지를 꿰뚫었다.
켈리악은 당연히 그녀가 잠시 주춤하리라 예상했으나, 루나는 허벅지 앞으로 뚫고 나온 창을 그대로 뽑아버리며 켈리악의 목으로 크란텔을 휘둘렀다.
깊다.
칼날은 켈리악의 목을 절반 가까이 파고들어 베어냈다. 그 또한 현실 조작에 의해 ‘없던 일’이 되어버렸을 뿐.
“지금!”
루나가 소리쳤다. 말루기아, 그리고 동료들에게.
그녀가 지켜본 바 켈리악에게 극히 사소한 빈틈이라도 생기는 경우는 오로지 조작을 사용할 때였다. 말루기아의 창이 그의 가슴을 뚫었을 땐 확신하지 못해 신호를 주지 않았으나 이제는 확실했다.
진, 반, 무라칸.
그들의 오의는 보호막을 뚫지 못한 게 아니다. 일부러 가로막힌 척하고 있던 것이다. 켈리악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도박수였다.
켈리악이 온전히 창성들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면 이 방법은 성공할 수 없었다. 창성들은 극히 단순하게, 오의를 펼친 힘은 그대로 유지하되 보호막과 온전히 격돌시키지 않았을 뿐이었다.
말루기아와 루나가 끊임없이 압박한 까닭에 켈리악은 그 사소한 속임수를 읽지 못했다.
그리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면.
33차원의 켈리악 지플은, ‘명왕군림검’을 제대로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가 이곳을 제외한 전 차원을 정복하는 동안, 투신 반은 단 한 번도 지금처럼 온전히 인세로 나타난 적이 없으니까.
[운이 좋은 놈이로구나, 켈리악 지플. 네놈은 어떤 차원에서도 나와 같은 시대를 보낸 적은 없을 테니.]명왕군림검 결, 보호막 바로 앞에 멈춰 있던 뇌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뇌기가 완전히 닿기도 전에 보호막은 마치 얼음처럼 녹아내리며 길이 열렸다.
[아, 어쩌면 마냥 좋다고는 할 수 없겠군. 지금은 진 형제의 시대니…… 그는 나보다 위대하다.]켈리악의 눈동자가 커졌다.
전장 전체에 펼친 보호막이 이토록 순식간에 사라지는 건 그의 계산에 없던 일이었다. 심지어 명왕군림검의 뇌기에 직접 닿지 않게 저 멀리 펼쳐진 보호막까지 전부 허물어지고 있었다.
동시에 말루기아는 내내 차원문 너머로만 쏟아붓던 모든 힘을 켈리악에게 집중시켰고, 루나는 창성들이 쇄도하는 방향으로 물러났다.
“끝장내버려, 막내.”
진과 반, 그리고 무라칸이 루나를 지나쳤다. 사람이 아니라 세 개의 해일이 일어선 것 같았다.
“큭……!”
황금빛 입방체들이 켈리악의 사방을 짓눌렀다.
‘말루기아의 목적은 내 본진을 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나를 노리려고 한 것이었나. 바멀 연합 창성들의 얕은수에 당하기까지, 이건 정말 위험하군.’
전투가 시작된 후 켈리악은 단 한 번도 방심하지 않았다. 작은 반격조차 허용치 않기 위해 진을 무리하게 공격하지 않았고, 최우선으로 상대해야 할 말루기아에게 전력을 쏟았다.
부족했을 뿐이다.
혼자서 말루기아와 창성들 전부를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마신대의 수장이라 할지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말루기아가 내가 겪은 다른 말루기아들과 다르듯, 이 차원의 창성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건가.’
위기.
켈리악 지플은 실로 오랜만에 위기감이 엄습하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결코 실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말루기아의 덫에 걸려 이 차원으로 홀로 넘어오게 된 것도, 오자마자 말루기아와 이 차원의 창성들을 한꺼번에 상대하게 된 것도.
오히려 자신이 옳은 판단을 내렸다는 증거가 되고 있었다.
-게다가 그런 의지는 때때로 기적에 닿기 마련이지. 그게 지금껏 677차원의 강자들이 진 룬칸델이라는 변종을 죽이지 못한 이유다. 바멀 연합은, 이제껏 그 어떤 차원도 겪어보지 못한 강력한 적이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우리가 677번을 제외한 전 차원을 지배하고 있으니, 완성된 마신석을 가지고 있으니 반드시 그들을 제거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겠지, 다들. 틀렸다. 놈들의 검은 이미 우리 목에 닿아 있단 말이다.
켈리악은 지난번 회의를 떠올리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그런 여유가 남아있군.]반의 칼날이 켈리악의 이마로 떨어졌다.
피할 수가 없었다. 말루기아가 형성한 금빛 입방체들이 퇴로를 모조리 가로막았고, 그나마 틈이 있는 위치는 모조리 무라칸의 진 암흑도래가 펼쳐져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켈리악은 맨손으로 반의 칼날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커헉……!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나, 반. 내가 조금만 어설픈 판단을 했다면, 난 이 땅에 와보지도 못한 채 네놈들에게 패배하였을 테니 말이다.”
켈리악이 한 움큼 핏물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가 명왕군림검을 처음 겪듯이, 반 또한 명왕군림검을 이렇게 견디는 적을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오의 최종장이 응축된 칼날을 잡아내는 적이라는 건, 물론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끔찍한 진동과 폭음, 굉음.
그 속에서 켈리악의 부들부들 떨리는 손은 조금씩 반을 밀어내고 있었다. 핏물을 내뱉고 눈동자가 허옇게 뒤집혔는데도, 마력은 오히려 더 정제되고 증폭되었다.
그러나 명왕군림검은, 하나가 아니다.
진 룬칸델, 마신대의 수장을 이 자리로 불러낸 장본인의 검이 켈리악의 뒤로 떨어지고 있었다.
“크하아악……!”
간신히 몸을 숙여 머리가 반으로 갈라지는 건 면했다. 진의 칼날은 그의 등을 베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칼날에 뼈가 걸리는 선명한 감각이 전해졌고, 한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많은 피가 분출되고 있었다.
진은 그 핏물을 뒤집어쓴 채 재차 켈리악의 허리를 횡으로 끊어버리며 악을 질렀다.
몸이 반으로 나뉜 그 순간까지도, 켈리악은 잡고 있는 반의 검을 놓치지 않았다. 그 대목에선 창성들도 등허리에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정사각형의 마력들이 켈리악의 환부를 덮고 있었다. 현실 조작, 그 속으로는 칼날을 밀어 넣어도 그저 허공을 친 듯 반응이 없었다.
다만 회복을 끝낸 켈리악은 호흡이 가빠진 모습을 보였다. 지친 듯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고, 발산되는 마력은 그 흐름이 아까처럼 안정적이지 않았다.
황금함대의 동력이 돌아온 건 바로 그때였다. 함대는 진이 미리 명령한 바에 따라 즉시 퇴각을 시작했고, 순식간에 온 하늘에 티칸으로 돌아가는 차원문이 열렸다.
진과 반도 동시에 검을 회수했다. 지금 켈리악과 끝까지 싸우는 건, 결국 뼈를 주고 살을 취하는 일이나 다름이 없을 터였다.
창성들이 빠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말루기아가 지상으로 하강해 켈리악을 직접 상대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수십 개의 황금 창에 온몸이 관통된 채, 켈리악은 멀어지는 창성들을, 진을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 빚은…… 조만간 갚도록 하지, 진 룬칸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