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89)
제 1089화
255화. 켈리악 지플의 죽음, 그리고……(6)
1804년 6월 21일.
켈리악 지플과 말루기아는 바멀 연합이 퇴각하고도 약 일주일이나 더 제국에서 격전을 이어갔다.
그 전투를 직접 지켜본 이는 아무도 없다. 바멀 연합조차 격전지로 병력을 재투입하지 않았으니까.
창성들의 기준에서도 지나치게 위험한 격전이기 때문이었다. 연합으로서는 두 끔찍한 존재가 공멸하거나, 어느 한쪽이 심각한 피해를 받고 전쟁이 끝나길 기다리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켈리악과 말루기아의 싸움은 오늘 아침에 갑자기 끝났다.
싸움의 결과는 알 수 없었다. 제국 영해에 대기하며 승자를 기습하려던 창성들조차 사태를 파악할 수 없을 만큼 갑작스럽게 끝난 것이다.
금빛 황야가 된, 제국이라는 거대 국가의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
제국은 멸망했다.
영토의 7할 이상이 전투의 여파에 휩쓸려 파괴되었고, 백성은 그보다 더 많이 죽었다. 한 번이라도, 조금이라도 두 존재의 힘에 영향을 받은 지역엔 생존자도, 어떤 잔해도 남지 않았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전쟁 때문에 폐허가 된 경우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그저 말루기아의 힘을 상징하는 금빛 황야가 끝없이 늘어져 있었다.
비탄에 찬 외침도, 살려달라는 애원도, 신을 찾는 목소리도, 하다못해 건물이 부서지며 생긴 돌덩이조차 보이지 않는.
그 압도적으로 황량한 풍경 앞에서, 진과 동료들은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기록…… 기록을, 분석해야 해…… 발레리아.”
“응…….”
켈리악과 말루기아의 행방.
그 괴물들이 어디로 향했는지를 알아야 했다. 이 세상의 복수를 하려면.
“왜 갑자기 싸움을 멈췄는지는 알 수 없으나, 둘 다 정상은 아닐 것이다. 반드시 회복하기 전에 끝장내야 한다.”
반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켈리악이든 말루기아든, 각자 단신으로 연합 전체의 전력을 한참 넘어선다는 사실은 이미 밝혀졌다.
그들이 완전한 상태일 때는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지금껏 마주한 그 어떤 강적도 그들과 비교하면 초라해질 지경이었다.
기록을 분석하는 발레리아의 두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가늠할 수도 없고 실감할 수도 없는 죽음이 미친 듯이 기록창을 갱신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놈들은 싸움을 끝낸 게 아니라 전장을 타 차원으로 옮겼을지도 모르겠군.”
무라칸의 말에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루기아가 포칼의 힘을 빼앗아 연 거대 차원문은 사라진 상태였다.
“설령 우리가 찾지 못하더라도 놈들은 반드시 모습을 드러낼 거다. 둘 다 이 세계를 정복하거나, 멸망시키는 게 목적이니까.”
어느 쪽이 먼저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어느 쪽을 먼저 추적할 수 있을 것인가.
진은 왠지 켈리악 쪽일 것 같다는 직감을 느끼고 있었다. 죽지 않았다면, 그는 이제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나타날 터였다.
‘켈리악이 말루기아와의 전투에서 막대한 충격을 받았다고 해도, 마신대가 추가되면…… 대체 어떻게 맞서야 하지?’
투신전 본당의 공중요새화를 끝내고, 시론의 원정대가 돌아오고.
현재로서 연합의 전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은 그 두 가지뿐이었다. 그러나 그 두 요소 전부 마신대보다 뛰어나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솔더렛의 안배…….’
흑해에 있는 솔더렛의 마지막 안배.
그 안에 이 상황을 뒤집을 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승산이 생긴다.
‘그리고 마녀. 그자가 직접 전쟁에 참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무언가 제약이 있으니 오르갈을 대신 움직이게 만든 것이라도, 어떻게든 그 제약을 없애줘야 해.’
거기까지 생각한 찰나, 강철 차원문이 열리며 오르갈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평소와 달리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행동하지도,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 또한 슬퍼하고 있었다. 제국이 멸망했다는 사실에, 이 세계가 벌써 이만큼이나 파괴되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는 미안해하고 있었다. 이번 싸움에 자신이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 까닭이었다.
[진, 미안하다.]“네가 그때라도 나타나지 않았다면 퇴각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거다.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워. 그보다, 마녀를 만나야겠다.”
[……헬루람을?]“네가 누구보다도 잘 알겠지. 그자가 우리 편에 서서 직접 싸워주지 않으면 답이 없다는 걸.”
[일단 헬루람에게 이야기를 전하도록 하지.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아. 나 또한 수많은 세계에서 그녀에게 지원을 요청했었으니……. 무엇보다 설령 그녀가 직접 나서게 되더라도, 그건 차악의 탄생이나 다름이 없다.]-[좋아! 좋아, 좋아. 그럼 정리를 해보자고, 헬루람. 말하자면 나는 너의 연인, 즉 계약자였다. 대체 몇 개인지도 모를 똑같은 세상에서, 언제나 오르갈 레밀리아스는 너의 계약자였어. 그런데 항상 실패했다, 무엇을? 내 입장에선 킨젤로의 부활이고, 네 입장에선, 뭐지? 넌 뭘 원하는 거냐, 대체? 내가 알기론 세상에서 빛이 사라지는 것인데. 그래서 우린 헤어졌고.]
-그래, 그건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지.
오르갈은 헬루람과의 지난 대화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에서 ‘빛’을 없애는 것, 그 또한 결국은 또 다른 종말에 불과했다.
“그래도 최악보다는 차악이 나아.”
[무슨 뜻인지는 알았다. 그나저나, 방금 단테 하이란이 깨어났다.]“……단테가?”
단테 하이란, 그는 지난 전투에서 극적으로 구출된 후 지금껏 의식을 잃고 있었다. 누적된 충격이 너무 큰 탓이었다.
그러나 신체적인 타격보다 더 큰 문제는, 정신이었다. 그는 쓰러지기 직전 친구들을 보고 일순 구원을 받은 듯한 기분을 느꼈으나, 그보다 더 어두운 미래를 직감했다.
제국은 이대로 끝날 수도 있다는 직감, 그건 결국 사실이 되고 말았다.
[아이나스가 직접 단테의 꿈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언제 깰 수 있었을지 몰랐다더군. 아직, 그는 제국에 벌어진 일을 모른다.]질끈, 진이 한 차례 눈을 감았다.
“……내가 만나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이내 진은 오르갈의 강철 차원문을 통해 킨젤로의 은신처로 향했다.
부바르와 아이나스조차 평소처럼 시시덕거리지 않고 있었다. 단테가 있는 치료실에 다다르자 그와 베라딘의 모습이 보였다.
“진.”
“단테.”
“제국은…… 멸망한 것이오?”
긴 정적이 이어졌다. 막상 단테를 눈앞에 두니 진은 입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조부님. 검황지는, 조부님께서 남긴 그 빛도 다 사라져버렸소?”
“검황지는, 무사하다…… 단테.”
검황지만 무사하다.
차마 그렇게는 말할 수가 없었다. 검황지만 이상하리만치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고, 그 외 나머지 주요 대도시와 제후국은 모조리 끝났다는 말을, 각 변방의 소도시 일부만이 무사하다는 사실을 차마 알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단테는 알 수 있었다. 그의 공허한 눈동자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진. 우리가…… 이길 수는 있는 것이오? 그 끔찍한 존재들에게, 정녕 복수를 할 수 있는 것이오?”
단테의 한마디 한마디를 들을 때마다 죄책감이 끓어올랐다. 대체 왜 자신이 회귀한 것인지, 그 수많은 세계에서 오르갈이 실패한 일을 왜 자신이 맡고 있는 것인지.
전부터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더더욱 앞이 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지. 반드시.”
단테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피눈물을 닦아냈다. 주먹과 뺨이 붉게 물들었다.
“죽은 백성들의 원혼은, 복수를 끝낸 후에 기리겠소. 그러니 연합 차원에서 추도식 같은 건 따로 준비하지 마시오. 난…… 잠깐만 혼자 있고 싶군. 잠깐만 추스르고, 바로 전선으로 복귀하겠소.”
단테가 치료실을 빠져나갔다. 진은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베라딘과 시선을 맞췄다.
“진, 이걸 얘기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하는 게 나을 것 같군.”
“뭐가?”
“실키아 경과 오르갈이 퇴각을 위해 차원문을 형성했을 때, 나는 의식을 잃고 있었다. 기억하지?”
“그랬었지.”
“그때, 꿈을 꿨다. 꿈인지 아닌지도 헷갈리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때 나는 엘로나 경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다.”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지만, 말루기아가 등장한 순간부터 전투 내내. 나는 그 속에 있는 엘로나 경이 나를 의식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 실제로 말루기아는 단 한 번도 나를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았다. 그럴 틈이 없던 건지, 그럴 가치가 없던 건지는 몰라도.”
“엘로나 경의 의식이 아직 말루기아 안에 남아 있다고 믿는 거냐, 베라딘.”
“……그래. 단지 내 바람일 수도 있고, 헛된 희망일 수도 있지만…… 왜인지 날이 갈수록 그날 꿈속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선명해지더군. 그리고 오늘에서야 그 내용이 완전히 기억났고, 너에게 말하는 게 좋다는 결론을 내린 거다.”
“무슨 내용이었어?”
“말루기아가 켈리악을 죽이면, 나는 말루기아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 그리고 켈리악과 마신대를 상대할 때, 옥타비아 지플을 이용해라.”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앞 내용은 엘로나 경의 의식이 살아 있다면 당연히 할 법한 이야기야. 정말로 엘로나 경이 그 괴물 속에 남아 있다면 좋겠군. 그런데, 옥타비아 지플은 갑자기 뭐지?”
“그날 꿈에서 엘로나 경이 내게 해준 이야기에 의하면, 마신대의 수장. 그 켈리악 지플은 오로지 고모에게 이상하리만치 인간적인 감정이 남아 있다고 하더군. 연민인지, 호기심인지, 흥미인지는 몰라도. 자세하게 설명해주진 않았어, 말루기아의 눈을 피하느라 그러는 눈치였고.”
옥타비아 지플, 그녀는 현재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적어도 이 차원의 켈리악이 죽고 마신대의 수장이 나타날 때까지 그녀가 전사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소 뜬금없지만 지금은 뭐라도 기대야 할 때지. 발레리아와 르엣 님에게 옥타비아에 대한 기록을 분석해보라고 전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