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54)
제 111화
53화. 상(1)
검술 7성, 마법 7성, 영기 5성에 이어.
만독불침의 몸까지 얻게 생겼다. 아직 만독주를 먹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것들은 대체 언제 돌아가려는 거야?’
진, 베라딘 단테. 세 사람이 사밀을 떠나고 벌써 이틀이 흘렀다. 그리고 베라딘과 단테는 진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제 슬슬 헤어져도 괜찮지 않…….”
“무슨 소리! 널 찾는 것도 생고생이었고, 찾은 다음엔 더했거든. 양심이 있다면 며칠 정도는 우리랑 더 놀다가 돌아가란 말이야.”
“베라딘의 말이 맞소.”
“너희 둘, 차기 가주 아니야? 하루도 허투루 쓰기 아까운 시기 아니냐고.”
“아닌데? 난 가문 내 입지가 워낙 공고해서, 대충 살아도 웬만해선 내가 다음 가주가 될 걸? 그리고 단테는 아예 확정이라고. 론 하이란 경이 저 친구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아?”
단테가 머쓱한 듯 헛기침을 했다.
“그래,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아는데. 난 너희랑 달리 뭐 빠지게 움직여야 하는 입장이거든. 예비 기수일 때 팍팍 공을 세워야 한다고.”
“얼마 전에 키다드 홀을 죽였잖아. 그 정도면 공은 충분한 것 같은데.”
“글쎄 키다드 홀을 죽인 건 내가 아니라니까.”
“또, 또 잡아떼는 것 좀 봐.”
“아무래도 진에게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것 같소, 베라딘. 그 문제는 그만 묻는 게 좋겠군.”
“하여간 맨날 우리한테 선이나 긋고 말이야!”
“지나치게 선을 안 긋는 네놈들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해 본 거냐.”
“게다가 단테가 그러는데, 너 오러도 벌써 7성에 다다른 것 같다며? 성취도 차고 넘치는 수준 같은데. 당장 기수가 돼도 좋을 만큼.”
“하지만 벌써 기수가 되면 우리랑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적어지지 않겠소? 이미 너무 적긴 하지만 말이오.”
진이 지난 이틀간 베라딘, 단테와 지내며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다.
두 사람은 대화의 흐름이 어떻든 묘하게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오러가 7성 수준이라고 모두가 진짜배기 7성 기사가 되는 건 아니야. 중요한 건 검술이지.”
“검술은 오히려 평범한 7성 기사보다 낫다던데. 그렇지, 단테?”
“맞소. 그건 각축장에서도 그랬지. 솔직히 진이 계속 예비 기수로 지내는 이유가 뭔지 모를 정도지. 그대의 셋째 누님인 메리 룬칸델 경도 열아홉에 6성으로 기수가 되지 않았소?”
단테의 말대로 룬칸델의 자녀들은 보통 6, 7성 즈음에 기수가 되었다.
기수가 된 후에야 룬칸델의 비전절기들을 하나씩 습득하며 본격적인 성장을 이루는 게 순혈 룬칸델의 보편.
‘결전기’라 불리는 룬칸델의 비전절기는 모든 무가를 통틀어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력을 품고 있었다.
“나는 아직 메리 누님만큼의 명성이 없잖아. 검객으로서 진 그레이라는 이름은 아직 무명이니까.”
사실 그깟 명성 따위, 마음만 먹으면 몇 달이면 쌓을 수 있다.
하지만 진은 시론이 준 5년 안에 마검사로서의 자신을 완성해야 했다. 그 사정을 두 사람에게 설명할 수 없으니 대충 둘러댄 것이다.
“오호, 그럼 사밀에 온 이유에 그것도 포함되어 있었겠군. 진 그레이라는 소년 검객이 살수들의 성지에서 살아남았다는 소문을 내기 위해.”
“그렇지.”
“그럼 내가 좀 도와줄까?”
“뭐?”
“내가 누구야, 베라딘 지플이잖아. 흐흐, 돌아가면 우리 가문 소식지들에 싹 기사 돌리라고 전할게. 사밀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그럼 나도 돕겠소. 하이란에 빚을 지고 있는 소식지들에 요구하도록 하지. 그대는 분명 하루빨리 기수가 되고 싶을 테니.”
“됐어. 하지 마.”
진이 단칼에 거절하자 두 사람은 곧장 다른 패를 꺼냈다.
“아니면 이참에 아예 우리랑 같이 모험을 떠나는 건 어떠냐? 나랑 단테는 철저히 신분 숨기고, 네 보조만 해주는 거지. 짐꾼 비슷한 개념으로.”
“오! 그것참 훌륭한 생각이오. 우리 셋이 힘을 합치면 웬만한 악의 소굴은 다 부숴 버릴 수 있을 거요. 모든 공을 진에게 돌리면, 그만큼 명성을 빨리 쌓을 수 있을 테지.”
“그리고 그때마다 소식지들에 기사를 내게 하는 거야. 진 그레이와 짐꾼들, 정의를 수호하다. 이렇게 제목 뽑아서.”
“그렇다면 굵직한 악당을 찾는 일부터 시작해야겠군!”
“악당이야 널렸지! 마미트의 왕들, 비먼트 서부의 광견 잭 글로우, 암흑마법회의 잔당들, 반켈라의 파계기사 휘로크, 적호족 돌격대장 판타…….”
“그 사악한 무리를 처단하러 우리 셋이 모험을 떠난다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하오.”
진의 의사는 듣지도 않은 채, 한동안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목소리를 높이는 두 사람.
‘아주 난리가 났군.’
진은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으나, 두 바보를 지켜보는 일이 마냥 싫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경험 쌓기에 제격인 악당들 이름이 꽤 많이 나오네. 내 입장에선 워낙 오래된 악당들이라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는데.’
베라딘이 말하는 악당 목록은 대부분 중급에서 상급 수준의 위험도를 지닌 이들이었다. 거대 세력조차 함부로 건들지 않는 시대의 마두들은 감당할 수 없으니 꺼내지 않는 것이다.
잠자코 듣고 있던 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놀고들 있네. 우리 셋이 모험하는 내용의 소설 나오면 꼭 알려줘라. 사서 읽어볼게.”
“설마 안 하겠다는 뜻이냐?”
“물론.”
“모험이란 말이오, 모험! 그대는 낭만도 없소?”
“내 삶은 이미 충분히 낭만과 모험으로 가득해.”
“으으……!”
“진, 이번엔 양보할 수 없다. 이것만큼은 꼭 하고 싶다고!”
진이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두 사람은 지난 이틀 동안에도 이런 식으로 진을 붙잡고 늘어진 적이 많은 것이다.
‘한번 꽂히면 도무지 포기를 모르는 놈들인데.’
사밀까지 자신을 찾아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
다행히도 진은 이제 이들을 다루는 방법을 조금씩 익혀가고 있었다.
“네놈들 마음은 잘 알겠는데, 당장은 무리야.”
일부러 ‘당장’이라는 대목에 힘을 실었다.
“당장은?”
“그럼 나중에는 가능하다는 뜻이오?”
먹이를 물었군.
진이 씨익 웃으며 두 사람과 눈을 맞췄다.
“그래, 사실 나도 네놈들하고 노는 거 싫지는 않아. 다만 사정이라는 게 있잖냐? 사실 선약이 있어서 얼른 돌아가야 해. 너희들 때문에 약속 상대를 이틀이나 기다리게 했다고.”
물론 선약 따윈 없다. 진을 기다리고 있는 건 티칸의 동료들밖에 없었다.
“누구랑 무슨 약속을.”
“그것까지 묻는 건 지나쳐, 베라딘. 사생활 좀 존중해라. 아무튼, 모험은 나중에 가자.”
“나중에 언제?”
“편지할게.”
“어디로?”
마치 조카들과 놀아주는 삼촌이라도 된 기분. 어린애들은 기약 없는 약속으로 적당히 때우는 게 가능하나, 상대는 열아홉 소년들이다.
“주소를 줘.”
즉시 베라딘이 쪽지에 주소를 적어 내밀었다.
“내 별장 주소야. 여기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가문에서 절대 감시하지 않고, 관여하지도 않아.”
“나는 그런 별장이 없소만.”
“진한테 편지가 오면 당연히 내가 단테 너한테도 연락을 하지. 걱정 마.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별장 우리 아지트로 쓰자고. 둘 다 집사한테 이름을 알려 아무 때나 찾아와도 문제없도록 조치를 해둘게.”
베라딘의 별장은 놀랍게도 서해의 한 무인도였다. 가문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비궁의 영향력 아래에 놓인 섬을 구입한 것이다.
차기 가주로서 입지가 매우 탄탄한 편이라지만, 베라딘 역시 형제들을 비롯한 반대세력의 견제를 받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런 비밀 공간을 마련했을 터.
“이런 걸 나한테 막 알려줘도 되냐?”
“설마 네가 내 형제들한테 투서를 보내진 않을 테니까. 내가 네 형제들에게 진 룬칸델이 우리랑 어울리고 있다는 투서를 보내지 않듯이.”
은근한 경고.
진이 어깨를 으쓱이며 쪽지를 챙겼다.
“뭐, 그건 그렇지. 그럼 이제 정리 끝났지? 난 오늘 돌아가야 해.”
“어디로 가는지 알려줘. 내가 이렇게 아지트까지 제공했잖아. 게다가 네가 부르면 언제든 나랑 단테는 달려갈 준비까지 된 셈이라고.”
베라딘과 단테는 진이 티칸에서 지내는 사실을 몰랐다.
“그래도 아주 양심이 없지는 않군. 지플의 힘을 이용하면 나 사는 곳 찾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았을 텐데.”
“우리 셋이 친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나도 아니까. 특히 너랑 나는 안 되지. 가문의 힘을 빌려 너에 관한 정보를 찾는 순간, 난 자율성을 잃게 돼. 그리고 널 만날 수 없게 되거나, 만날 거면 싸워서 죽이라는 압박이 시작되겠지.”
“안타까운 현실이군…… 사실 내 조부께서도 내가 진과 친한 것은 모르시오. 이름 모를 친구가 생겼다는 것 정도만 인지하고 계시지.”
급격히 시무룩해지는 두 사람을 보니 어쩐지 양심이 찔렸다.
“너희가 그렇게까지 말하면 내가 미안해지잖아. 좋아, 돌아가기 전에 아지트가 생긴 기념으로 맥주 한잔 사도록 하지.”
* * *
진탕 마시고 밤이 되어서야 티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티칸의 동료들이 진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하지만 시론의 부름에 응해 흑해로 떠난 카시미르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흑해에서 꽤나 고생하고 계시겠군. 아버지 성격상, 친절한 길잡이 같은 건 보내주지 않으셨을 테니.’
진은 우선 퀴칸텔을 찾았다.
이번엔 그녀에게 가장 먼저 감사 인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고맙습니다, 퀴칸텔 님. 덕분에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새삼스럽게 무슨. 사밀에서 성과는 좀 있었냐? 어! 그거…… 만독주잖아!”
진이 품속에서 만독주를 꺼내 보이자 퀴칸텔이 벌떡 일어서 소리를 질렀다.
“복용하기 전에 퀴칸텔 님한테 먼저 보여주고 싶었어요.”
“세상에. 그걸 대체 무슨 수로 얻은 거야? 놈들이 은룡의 발톱을 신물로 여긴다지만, 그래도 바꿔주지는 않았을 텐데?”
진이 사밀에서 겪은 모든 일을 상세히 설명하는 동안 퀴칸텔은 놀라운 듯 두 눈을 끔뻑이기만 했다.
“넌 볼수록 진짜 신기한 놈이다. 만독주를 얻은 것도 모자라, 현 무명왕을 농락하기까지 했단 말이지…… 그의 힘을 한 번 빌릴 기회까지 얻었고.”
“그 모든 게 퀴칸텔 님의 발톱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빈손이었다면 숨겨둔 힘을 모조리 꺼내야 했을 거예요. 퀴칸텔 님 덕분에 난감한 일을 피할 수 있었군요.”
“후후, 감사는 그만하면 됐어. 뿌듯하군, 내 백 년이 아주 훌륭하게 쓰였군.”
“백 년이요?”
“발톱이 다시 자라기까지 필요한 시간이야.”
“아…….”
대수롭지 않게 주기에, 큰 희생이 아닌 줄 알았다.
그러나 용에게 발톱이란 사람의 손가락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퀴칸텔은 행여 진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대비해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희생한 셈이었다.
“인간의 기준에선 평생이나 다름없는 시간이지만, 용의 기준에선 그리 길지 않은 것이지. 그러니 마음에 담아둘 것 없다, 만독주나 이리 내봐. 더 빨리 흡수되도록 정제를 해주마.”
“저 때문에 너무 큰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아니, 네가 아니었으면 엔야는 진즉 죽었어. 그것만으로도 오히려 내가 네게 갚아야 할 빚이 많다는 거다. 그러니까 그렇게 미안한 얼굴 하지 마, 이 자식아.”
퀴칸텔이 만독주를 만지는 동안.
진은 자신이 이번 생에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