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69)
제 111화
56화. 혼돈의 조각가(5)
고구마 크로켓이 든 봉투를 한쪽으로 치우는 비슈켈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아! 죽이고 싶다.
정말, 미치도록, 이 역겨운 놈을, 죽이고 싶다!
비슈켈은 당장이라도 그렇게 소리치지 않으면 머리가 어떻게 될 것 같았다.
“부바르.”
“예?”
“잠깐만 나갔다가 10분 뒤에 돌아와라.”
“왜요?”
“그냥, 좀, 부탁, 하지.”
“예…… 뭐. 그러죠, 아. 혹시 우유가 없어서?”
“아아아악!”
콰직!
비슈켈이 탁자를 부수며 괴성을 지르자 부바르가 부리나케 공방을 빠져나갔다. 그 와중에도 바닥에 떨어진 고구마 크로켓을 챙기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와, 부바르 가스톤. 나처럼 혼돈의 기운이 깃든 인간이라는 걸 감안해도, 정말 여러모로 대단한 고깃덩어리네…… 히히.’
아까부터 그 모든 걸 창문 너머로 지켜보고 있던 요나조차 탄식을 내지를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비슈켈은 지하실로 달려가 한동안 미친 사람처럼 소리만 질렀다. 악, 악, 악! 제발! 죽어어엇! 분노와 절규가 뒤섞인 목소리가 지하실에서 메아리치는 동안, 요나는 방긋방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후우으.”
한참 악을 쓴 비슈켈이 1층으로 돌아와 산발이 된 머리칼을 정리하자, 부바르가 슬쩍 다시 공방으로 들어섰다. 챙겨간 고구마 크로켓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채였다.
쭈뼛쭈뼛 눈치를 살피던 부바르가 남은 고구마 크로켓을 제 입으로 집어넣는다. 우물우물. 그 꼴을 보고도 비슈켈은 더 이상 흥분하지 않았다.
“좀 괜찮으십니까?”
“……아까 하려던 얘기나 다시 시작하지, 부바르.”
아까 하려던 얘기란, 진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두 사람이 진즉 끝냈어야 할 사무적인 대화를 뜻했다.
“아아, 예.”
“단장님께서 지플 측에 정식으로 동맹 파기를 선언하셨다.”
첫 마디부터 중요한 내용, 요나가 창문에 더 가까이 귀를 가져다댔다.
원래라면 그대로 거리를 유지했을 것이다. 8성 기사에게 한 뼘 더 다가가는 건, 요나에게도 쉽지 않은 일.
하지만 비슈켈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느라 평소보다 훨씬 감각이 무뎌진 상태였다.
“크, 잘하셨다고 전해주십시오! 지플, 그것들은 진 룬칸델보다도 더 사악하고 악독한 놈들입니다. 우리 몰래 마신석을 사용하다 훼손시킨 시점에, 이미 끝을 냈어야 했죠!”
“……마냥 좋은 상황은 아니다. 우리의 대업이 수월하게 이뤄지기 위해선, 놈들의 힘도 필요했었으니까. 앞으로 네가 신물을 제작할 때, 재료 수급이 전처럼 원활하지는 않을 거다.”
“이잇! 그런 문제가 있었군요! 그런데, 비슈켈 님. 제작이 아니라 조각입니다. 조각과 제작은 완전히 다르다고요. 그리고 신물이 아니라 작품이고요. 대체 몇 번을 설명해드려야.”
“그래, 조각…… 작품…….”
가까스로 혐오감을 억누르며 표현을 정정하는 비슈켈.
“재료 수급에 차질이 대충 얼마나 생기는 겁니까?”
“죽은 신들의 유해는 거의 구하지 못할 거다. 옛 문명의 잔해들은 동맹이 끊기기 전의 절반 정도만 구할 수 있을 거고.”
“하아!”
“대신, 파기 조항에 따라 지금껏 우리가 지플에 준 작품 일부를 회수하기로 했다.”
“나침반!”
부바르가 눈동자를 빛내며 소리쳤다.
“나침반을 꼭 찾아와야 합니다! 그게 있어야 살아있는 신들을 쉽게 찾아 재료로 쓸 수 있다고요.”
“나침반은 당연히 회수 대상이다.”
“사실 그것만 되찾으면 나머진 줘버려도 상관없죠, 마신석 다음가는, 이 부바르 가스톤의 걸작! 나, 침, 반. 으흐흐. 내 새끼, 드디어 내 품으로 돌아오겠구나.”
“부바르, 그것도 그렇게까지 좋아할 문제가 아니다.”
“왜요?”
“지플이 처음 우리에게 마신석과 나침반을 비롯한 작품들을 받아갈 때, 어떤 태도를 보였지?”
“극히 저자세였죠. 단장님 발가락이라도 핥을 기세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파기 조항을 들먹이자 순순히 내놓겠다는 분위기다.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정말 모르겠나?”
“쓸 만큼 다 썼다……?”
“아니. 놈들은 이미 나침반이나, 그 비슷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준비를 끝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에이, 그럴 리 없습니다. 제 권능이 없는 한 안 될 거라고요.”
“놈들의 마법은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야. 나침반이 아니라, 부서진 마신석을 복원해도 이상할 게 없는 가문이다, 지플은. 게다가 작품 회수는 내년 유월 초하루로 합의되었다. 놈들에겐 연구할 시간까지 남은 셈이지.”
“에, 왜 그렇게 늦습니까? 단장님이 그렇게까지 시간을 줬다고요?”
“파기 조항 때문이다. 이쪽에서 먼저 조항을 꺼냈으니,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비슈켈이 답답한 듯 담배를 물자 부바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년 유월 초하루…… 으, 날짜가 더 늦춰질 일은 없겠지요?”
“이번에도 약속을 어기면 전면전을 하겠다고 단장님께서 직접 으름장을 놓았으니, 그럴 일은 없어. 룬칸델이 있는 한, 놈들도 우리와 전면전을 벌일 수는 없을 테지.”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내년 유월 초하루라…… 어디서 받기로 했습니까?”
“벨라도 제후국의 남쪽 섬, 해적들의 땅이다.”
“다행히 역겨운 마물이 나오는 곳은 아니로군요. 저도 데려가주십시오.”
“굳이?”
“제가 있어야 작품에 문제가 없는지 즉시 확인할 수 있지 않습니까. 뒷말 나올 일이 없어야지요.”
비슈켈의 눈이 동그래졌다. 부바르가 이런 멀쩡한 이야기를 하는 게 믿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건…… 그렇군. 단장님께 말씀드리도록 하겠다.”
“아, 그리고 비슈켈 님. 그자는 아직 찾지 못했답니까? 제가 지플 마법사로 조각해줬던.”
“마토 배커.”
“그런 이름이었죠.”
“안 그래도 그쪽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본부는 아직도 난리가 났…….”
별안간 말을 끊은 비슈켈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고는 찬찬히 주위를 살피더니, 일어서서 사방에 난 창을 모두 확인하기 시작했다.
‘히, 역시. 너무 가까웠나.’
스스슥…….
요나가 창가에서 물러나며 재빠르게 몸을 숨겼다. 풀밭을 밟으며 달리는데도, 풀은 한 포기도 쓰러지거나 굽혀지지 않았다.
‘미약한 기척이 느껴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이내 밖으로 나가 공방 근처 땅바닥을 샅샅이 살피는 비슈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까 진이 풀을 밟은 흔적밖에 없었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비슈켈 님.”
뒤뚱거리며 따라 나온 부바르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것도 아니다.”
“비슈켈 님은 가끔 보면 신경과민 같습니다, 마르지엘라 님은 보는 제가 다 기분이 좋을 만큼 낙천적인데, 어쩜 남매가 이리 다른지. 으흐흐.”
“……내일부로 네 거처를 옮길 것이다. 지플에게 노출되지 않은 곳으로.”
“아윽, 그건 짜증나네요!”
비슈켈은 한동안 요나가 사라진 자리를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그녀가 있었다는 걸 알아챈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요나는 속으로 히히 웃으며 숲길을 달리고 있었다.
‘혼돈의 고깃덩어리랑 불쌍한 신경과민이 나눈 대화가 뭔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막내가 엄청 좋아할 것 같다!’
* * *
“오우…… 맙소사.”
진은 요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야말로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요나는 그 모습이 재밌어서 몇 번이나 배꼽을 붙잡는 모습.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들이야? 그 표정 웃겨, 막내야. 너도 그렇게 멍청하게 보일 수 있구나.”
“알짜 중의 알짜만 가득합니다. 단 하루, 아니. 이게 고작 몇 시간 만에 얻은 정보라니. 룬칸델 특급 비밀문서를 뒤져봐도 이것보다 놀랍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 정도야? 나도 자세히 알려줘.”
“음, 누님이 가져온 게 무슨 내용들이냐면. 아, 그전에 약속. 오울 님은 이거 몰라야 합니다.”
“약속!”
진이 한동안 킨젤로와 오늘 얻은 정보를 설명해줬으나, 요나는 여전히 모르겠다는 듯 고개만 갸웃했다.
사실은 막내가 뭔가 열심히 중얼대는 게 그저 귀엽다고 생각하다보니, 하나도 듣질 못했다.
“……이제 제가 왜 그렇게 충격 받았는지 아시겠죠?”
“응, 완전 재밌다.”
어차피 요나에게 중요한 문제들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도 부바르 가스톤이 ‘혼돈’을 타고난 존재라는 건 계속 의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님, 누님과 부바르 가스톤이 같은 부류라는 건 대체 무슨 뜻이었습니까?”
계속 신경 쓰이는 문제였다. 그 불쾌한 뚱보와 하나뿐인 막내 누님이 같은 부류라니!
“아, 그거는…… 아직 못 알려줘.”
“이러깁니까, 우리 사이에.”
“막내도 비밀이 있…….”
후우웅.
진이 손바닥에 영기를 뭉쳐 요나에게 내밀었다.
그로서는 더는 비밀이 없다는 걸 말하려는 수단이었으나.
히익!
요나는 미친 사람처럼 소스라치며 뒷걸음질을 쳤다. 마치 봐선 안 될 것을 본 사람처럼.
“어?”
[죽여라!]영기를 직접 마주하자 요나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속삭이던, 그 목소리가 한층 커진 것이다.
하마터면 반사적으로 진의 목덜미에 단검을 찔러 넣을 수도 있을 만큼, 강렬한 목소리가.
그녀는 부바르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짙은 혼돈에 휩싸여 태어났다. 부바르 정도의 혼돈은 영기를 마주하더라도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꺼!”
진이 황급히 영기를 꺼뜨렸다. 동시에 요나의 내면에 번진 목소리가 잦아들며, 그녀는 충동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진을 죽이라는 충동에서 말이다.
영기가 진의 손바닥에 형성된 건 고작 2, 3초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요나는 온몸이 땀에 젖은 채 거친 숨을 토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진을 아끼지 않았다면 아마 목소리의 의지를 거부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님!”
“앞으로 절대, 그 힘은 내 앞에서 꺼내면 안 돼. 자세한 건 아무것도 묻지 말아줘.”
“무슨…….”
진은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날 공격하지 않으려고 물러난 거야. 영기가 누님을 자극했고.’
몇 초 전, 튀어나올 듯 커진 요나의 눈동자는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자신이 동생을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진이 당혹스러운 감정을 억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미안해요. 이럴 줄 몰랐습니다.”
“나는 영기를 보면 이성을 잃어. 내가 설명하지 않았으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히, 난 막내가 그 힘을 적어도 기수가 될 때까진 나한테 숨길 줄 알았거든…….”
“제가 왜요?”
“내가 너한테 그렇게까지 믿음직스러운 누나는 아닐 것 같으니까? 어, 아니면 네가 날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전자는 전혀 잘못 생각했고, 후자는 솔직해서 좋네요. 맞아요, 그쯤까지 숨기려고 생각은 했었죠. 딱 누님이랑 꽃밭에서 놀기 전까지만.”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으나, 심란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영기를 조금만 더 펼쳤어도 요나가 자신을 죽였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진은 요나를 슬프게 만들 생각이 없었다.
“당분간 조심하긴 해야겠군요. 누님이 무슨 짓을 해도 날 죽이지 못할 만큼 강해지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히, 그건 꿈도 꾸지 말고, 이제 나랑 놀아. 약속대로.”
이후 진은 요나와 이틀 동안 콘 제후국의 사방을 돌아다니며 시원하게 놀아재꼈다.
그리고 콘 제후국엔 과거 진을 염탐 왔다가 죽은 조슈아의 기사들뿐만이 아니라, 시론의 기사들도 늘 상주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두 사람이 ‘같이 논다’는 소식은 시론의 귀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