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77)
제 444화
133화. 선택의 시간들(5)
“메리 누님의 배라고요?”
“응. 저 배를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 저 배의 이름이 아마…… 사춘기. 히히, 배 이름이 사춘기래.”
“이상한 이름이긴 하군요.”
“메리 언니가 직접 붙인 이름은 아니야. 디푸스 오라버니가 붙였지.”
그리 크지 않은 메리의 돛배엔 선호船號 역시 적혀 있지 않았다. 꼭 유령선처럼 갑판 위에 선원들도 없었다.
‘메리 누님이 날 왜 찾아온…… 아, 그건가.’
결투.
진과 메리는 현재 ‘두 사람은 3개월에 한 번씩 결투를 한다’는 계약서를 작성한 상태였다. 마지막 결투가 작년 8월 말 오즈도크를 토벌하는 것이었으니, 한판 붙을 시간이 되기는 했다.
흠, 진이 난처한 듯 고개를 저었다.
메리와의 결투는 요나와 산책하는 일과 결이 다른 문제였다.
한시라도 빨리 아멜라보다 큰 건을 찾아 끼어들어야 하는데, 메리와 결투를 하면 분명 몸이 남아나질 않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메리 언니의 사춘기호는 홀로 항해하는 일이 별로 없대.”
“왜요?”
“항상 굴복시킨 부하들을 데리고 다니니까, 히히.”
사춘기호의 갑판으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해적 안대를 쓰고 있다는 사실까진 확인할 수 없었으나, 의기양양하게 뱃머리에 서서 연극적으로 검을 추켜세우고 있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메리 룬칸델이 분명했다.
지이이이인, 루우운, 카아아안, 데에엘!
이어 쩌렁쩌렁하다 못해 충격적이고 파괴적인 크기의 목소리로 제 동생의 이름을 부르는 메리.
실제로 그 엄청난 기운에서 비롯된 충격파가 일대 해역을 사납게 흔들고 있었다. 티칸의 온 주민들이 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며 창문을 열고 메리 쪽을 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진은 그 모습에 그만 두통이 와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히이, 메리 언니 목청 엄청 좋다. 그치?”
“단지 그런 수준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튼 다행히 지금은 메리 누님 혼자인 것 같…… 하, 또 뭐야, 저건.”
수와아아악-!
달랑 사춘기호만 홀로 떠 있는 휑한 바다 위로, 우글우글 새하얀 거품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무언가 솟아오를 것처럼 말이다.
다음 순간 그 거품 위로 드러난 것은, 얼핏 보기에도 오십 척이 넘을 듯한 함대였다.
‘뭐야, 잠수함? 전혀 그렇게 생기지 않았는데?’
수면 위로 드러난 배들은 잠수함이라기에는 너무 크고 거대했다. 안 그래도 초라한 사춘기호가 더욱 보잘것없이 느껴질 만큼 화려하기도 했다. 그 덕에 싱겁게 생긴 사춘기호가 더 도드라지는 효과도 있지만.
대체 무슨 수로 이런 함대가 바닷속에서 튀어나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건 메리가 하필 지금 찾아왔다는 사실이었다.
“크하하하! 일어나라, 메리 룬칸델의 함대여! 돛을, 펼쳐라아-!”
메리가 소리치자 배들이 일사불란하게 돛대를 올리며 사춘기호의 좌우로 날개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다 펴진 돛들은 하나같이 메리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축포를 쏘아라!”
펑, 퍼벙! 펑! 메리의 명령에 함대 전체가 하늘을 향해 축포를 쏘았다.
대낮의 태양이 한창 빛을 발하고 있는데도 요란하게 터지는 축포에 인근 바다가 알록달록하게 물들고 있었다.
“와아아아!”
“멋있다, 메리 룬칸델!”
“이게 웬 장관이냐!”
“다들 나와서 저것 좀 보라고!”
처음엔 메리의 엄청난 목소리에 다소 겁을 먹었지만, 이제 티칸의 주민들은 갑작스러운 함대 쇼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티칸은 일종의 탑 같은 구조다. 어느새 주민들은 모두 메리의 함대가 있는 쪽으로 나와 손을 흔들고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진은 점점 더 머리가 아팠지만 말이다.
그래서 메리를 외면하기로 했다.
“음, 우린 산책이나 마저 시작하도록 하죠.”
“그래, 히히. 메리 언니 도착하기 전에 끝내야겠다.”
“메리 누님은 불청객이고, 누님은 제가 직접 모신 손님입니다. 그러니 메리 누님이 기다려야지, 왜 누님이 그런 걸 생각합니까?”
“그야, 메리 언니는 날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아마 싫어할 거야. 히…….”
진을 제외하면 요나는 그 어떤 형제와도 관계를 맺지 못했다.
여덟 살에 최초의 살인을 저지른 후 요나는 폭풍성에서도, 검의 정원에서도 늘 혼자였다.
심지어 사밀로 보내지기 전까지 생도로 활동하지도 못했으며, 그때까지 다른 형제들과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한 번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건 시론의 뜻이었다.
서열 전쟁이 중요하다고는 하나, 요나와 함께 자란 모든 자식들이 허무하게 죽어 버리는 건 막아야 했다.
어린 요나는 당연히 지금보다 훨씬 더 혼돈에 취약한 상태였다.
그때의 요나는 얼마든지 다른 형제들을 모두 죽일 수 있었다. 그때부터 요나는 이미 세계에서 손꼽히는 살수이자, 통제되지 않는 검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요나가 메리가 사춘기 시절 사용하던 배나, 디푸스가 그 배에 사춘기호라는 선호를 붙여 준 일화 같은 걸 잘 알고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요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형제들을 살펴 왔기 때문이었다.
다른 형제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요나가 자신들에게 호기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때로는 그러다 충동적으로 몇 번쯤 죽이려고도 했었다는 사실을. 진이 녹장미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듯이.
요나의 능력 때문이었다. 요나가 마음먹고 접근하더라도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기척을 느끼고 위치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시론 한 사람이 전부였다.
‘나와는 워낙 친하게 지내다 보니 잠시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어. 생각해 보면 요나 누님이 사춘기호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아는 사실을, 메리 누님이나 디푸스 형님은 모를 테지.’
요나가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 속에서 씁쓸한 무언가가 치미는 듯했다.
“제 생각엔 오히려 누님을 좋아하면 좋아했지, 싫어하진 않을 것 같은데. 메리 누님이.”
단지 요나를 위로하기 위해 한 말이 아니었다. 진은 실제로 메리와 요나, 다소 독특한 두 누님들이 은근히 잘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해 왔었다.
“히, 그래?”
“예.”
“진이가 그렇게 말해주니 기뻐. 하지만, 메리 언니는 한 번도 날 찾아온 적이 없는걸.”
-여러모로 절 당황스럽게 하시는군요.
-동생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줘. 네가 사밀에 왔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그 착한 루나 언니도 찾아 준 적이 없는데.
-슬프게도 하시고요. 루나 누님이 요나 누님을 싫어합니까?
-좋아하진 않는 것 같아. 내가 몇 번 약속을 어겼거든. 아니, 좀 많이…….
과거 사밀에서 요나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그 말처럼 전생의 앤과 현생의 진을 제외하면 아무도 사밀을 찾지 않았다.
‘요나를 건들지 말라는’ 시론의 엄명이 있던 게 가장 크지만,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었다.
유대감.
같은 식탁에서 식사 한 번 해 본 적 없는 사이에 유대감이나 관계를 위한 어떤 마음이 생길 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요나는 극도로 위험한 인물이기까지 했다. 따라서 형제들에겐 살해당할 위협을 감수하며 요나를 찾아갈 이유가 없었다.
“히, 어차피 나도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기도 하고. 난 괜찮다구! 그런 표정 짓지 마.”
그러지 말고 한번 만나 보세요, 메리 누님도 좋아할 겁니다.
그 말은 속으로 삼켰다. 그럴 리는 없을 것 같지만, 만에 하나라도 메리가 불편해하는 기색이면 요나는 또 많은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더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차후 두 사람이 보다 안전하게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이 말이다.
“……알겠습니다.”
요나가 잠시 메리의 함대에 시선을 두었다.
함대는 이제 매우 빠른 속도로 티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으, 언니가 너무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잖아. 아무래도 요점만 말해야겠어! 잘 들어, 막내.”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하는 ‘요점’이란 혼돈에 관한 것이었다.
“우선, 아멜라는 이제 절대 널 배신하지 않아. 정확히는 배신할 수 없어. 아멜라의 혼돈을 내가 완전히 굴복시켜 놓았으니까. 그러니 안심하고 막 부려먹어도 돼.”
요나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말하고 있었다. 메리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불편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으하하하, 막내, 네 이놈! 어서 달려 나와 이 누이를 맞이해라. 승부다, 결투다아!”
그런 요나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메리는 계속해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요나는 이제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꼼지락대는 모습.
“그리고! 아멜라는 말투나 행동이 유아처럼 변할 거야. 흑왕단장과 비슷한 나이지만, 걘 실제로는 애라고 봐야 해. 걘 나처럼 선천적으로 타고나서 지금껏 혼돈에 잠식되지 않은 자아만 나이를 먹은 셈이거든.”
요나가 진의 팔을 잡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메리는 티칸에 거의 당도하고 있었다.
“거기 있었구나, 막내! 진 룬칸델, 자랑스러운 내 동생! 이 자식, 대답도 안 하고 말이야. 속도를 더 높여! 동생을 더 가까이서 봐야겠구나!”
“크앗하하하! 대선장님 말씀 들었지? 노를 더 빠르게 저어라, 이 머저리들!”
그렇게 대답한 해적의 목소리가 매우 익숙했다.
‘……해적왕 코스모스? 메리 누님의 밑으로 들어간 건가?’
난데없는 상황이 점점 혼란해지는 가운데, 요나는 당장이라도 달아날 듯 몸을 쭈욱 빼내고 있었다.
“요나 누님, 진짜 이렇게 가시려고요?”
“히, 히히. 다른 궁금한 거 있으면 빨리 물어봐, 진아!”
요나를 붙잡지는 못할 것 같았다.
“혼돈은 대체 무엇입니까, 누님.”
“그건 말해 줄 수 없어! 다른 건!?”
“그렇게 점점 멀어지면서 말씀하시면 어떻게 질문을 해요! 다른 거? 아, 그냥 나중에 다시 사밀에서 만나서 놀면서 그때 설명해 주십시오!”
그때쯤 요나는 저 멀리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알았어! 히, 그럼 나 갈게!?”
“잠깐, 가기 전에 녹장미! 녹장미 들고 있는 거 있습니까?”
“있어!”
“그거 두고 가요!”
“네 주머니에 이미 몇 개 들어 있어!”
주머니를 뒤져 보니 진짜로 두 개로 엮은 녹장미가 다섯 개나 들어 있었다. 방금까지 가까이 서 있던 내내, 진은 요나가 자신의 주머니에 녹장미를 넣은 걸 전혀 의식하지 못한 것이다.
다시 고개를 들자 저택의 담을 넘어가는 요나의 뒷모습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뒤돌아 눈을 맞추며 찡긋 윙크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오긴 했다.
‘요나 누님이 어마어마하긴 하네, 정말.’
요나가 떠나자마자 메리의 함대가 티칸에 도착했다.
메리는 항구도 아니고, 진이 있는 쪽에 함대를 그냥 세운 상태였다. 도시로 들어오기 위한 절차 따윈 다 무시하고, 배에서 바로 도약해서 진을 만나려는 것이다.
“막내!”
“메리 누님!”
“이제야 대답하는군! 잠깐만 기다려, 지금 올라갈게! 이 누이와 한판 붙을 준비는 됐겠……”
“경고입니다, 이쪽으로 뛰어 올라오지 마십시오!”
“뭐!?”
“아버지의 명령을 잊으셨습니까? 제 허락 없이는, 그 어떤 룬칸델도 티칸 땅을 밟을 수 없습니다!”
“……너 설마, 우리 계약을 어길 셈이냐? 3개월에 한 번은 무조건 싸우기로 했잖아!”
티칸에 바짝 붙었다곤 하나 진이 있는 곳은 최상층인 만큼, 두 사람은 쩌렁쩌렁 소리를 질러서 대화할 수밖에 없었다.
구경하러 나와 있던 모든 주민들은 자연스레 이 대화를 듣고 있었고 말이다.
“무조건은 아니었죠! 계약서 확인해 보시길, 아무튼 오늘은 안 됩니다! 조만간 연락을 드릴 테니, 그때 싸우시죠!”
팍 인상을 쓰는 메리. 무척 실망스러운 눈치였으나, 이번엔 그녀도 이 정도 전개는 예상을 하고 찾아온 상태였다.
이내 메리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알았어, 그럼 돌아가도록 하지!”
메리가 오히려 순순하게 나오니 오히려 불안했다.
“결투는 못 해도, 차나 한잔 하고 가세요!”
“괜찮아, 바쁠 텐데 일 봐!”
“뭐,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그래! 아, 그런데 참. 아쉽게 됐네! 이번에 날 이기면 큰 건수 하나를 소개시켜 주려고 했는데 말이지!”
그 말에 진은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멜라 경보다 중요한 문제에 대한 이야기다……!’
메리는 애초에 진이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들고 온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