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54)
제 666화
166화. 칼드란 설원의 흔적(2)
“아가씨, 흥분을 가라앉히십시오.”
“헤도, 저! 저 미친 악마룡이 방금 무슨 소릴 지껄였는지 못 들었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진정하라는 말이지? 진 씨는 나만의 것인데, 저 찢어 죽일…… 진 씨! 유부남이었어요!?”
“아가씨께서 지금 하시는 행동은 진 룬칸델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 룬칸델은 미혼입니다.”
“그렇지? 저 잡것이 헛소리를 한 거지? 저 악마룡은 진짜 내 손에 죽는 날이 올 거야.”
산드라는 더 성질을 부리고 싶었으나, 진의 옆얼굴을 보고 입을 닫았다. 그의 표정이 무척 슬퍼 보였다.
설원의 희뿌연 하늘이 순식간에 제피린의 마기로 검게 물들고 있었다. 그녀는 몰려들기 시작한 기사들을 그야말로 ‘지워버리고’ 있었다.
평소처럼 웃음기나 품격으로 가린 오만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진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가는 게 좋겠소, 탑지기. 시간이 많지는 않을 것 같군.”
당연하게도 기사들 전부가 제피린에게 응전하기 시작한 건 아니었다. 약 2할 정도는 여전히 동굴 근처에 남아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헤도.”
“예, 아가씨.”
“저 정도 기사들은 얼마든지 혼자 상대할 수 있지?”
“왜 물어보십니까?”
“돼, 안 돼?”
“가능합니다.”
“그럼 진 씨를 위해 헤도가 혼자 길을 열어줘.”
헤도는 산드라가 이런 속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잠시 충격을 받았다.
“물론 저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만, 12기수가 반대할 것 같군요.”
“어째서?”
“자신의 짐을 넘기는 부류가 아닙니다. 아무튼 아주 기특한 의견을 내긴 하셨습니다.”
진은 이미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브라다만테에 칠흑 같은 영기가 휘감겼다.
동굴 근처에 남은 기사들은 약 백여 명.
그들이 진이 접근했다는 걸 확인한 시점은, 그중 열셋이 베인 다음이었다. 눈 깜짝할 새에 영검 1식, 영혼 베기가 연속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역시…… 다들 잠식이 완전히 끝났군.’
혼돈에 물든 기사들은 더 이상 ‘룬칸델의 기사’라고 부를 수 없는 흉측한 괴물이 되어 있었다.
뒤틀린 팔들은 기괴하게 검을 휘둘러댔고, 가시나무처럼 변한 다리는 걸을 때마다 스스로를 상처 입혀 피 대신 혼돈을 쏟아냈다.
두 눈동자는 공동처럼 파였으며 입에선 그저 스산한 호흡과 괴성이 흘러나왔다.
진은 검을 휘둘러 그들을 단숨에 안식에 들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게 자신이 기수로서 가문에 충정을 바쳤던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로사…… 머잖아 죗값을 치를 것이다, 반드시.’
헤도는 검을 뽑을 필요도 없었다.
정확히는, 진의 검술을 보며 차라리 자신은 돕지 않는 쪽이 더 나으리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단 하나도 허튼 동작이 없다…… 마치 시론 경의 검처럼.’
정교성, 그것 하나만큼은 시론에 견주어도 그다지 손색이 없다.
헤도는 진의 검을 그렇게 보고 있었다.
잠시 각자의 위치와 입장을 잊고 위대한 예술품을 감상하듯 진의 모습에 빠질 지경이었다.
“뭐야, 그 멍청한 표정은. 설마 헤도도 진 씨한테 반한 건 아니지?”
“조금 충격을 받았을 뿐입니다, 아가씨. 시론 경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은 12기수가 창성에 들어섰다 생각할 것 같군요.”
“소타 사막에서 헤도한테 당할 뻔한 게 고작 몇 년 전이야. 그때만 해도 헤도가 진 씨와 그 일행을 모두 압도했었는데, 지금은 어때?”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이길 수 있겠느냐고.”
“안 될 것 같군요. 검의 정원을 홀로 헤집었으니 예상은 했습니다만, 가까이에서 직접 보는 건 또 다른 느낌이로군요.”
산드라는 그게 자신의 자랑거리인 양 웃음을 터뜨렸다.
“거봐! 진 씨라면 분명 가능성이 있어.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으니 헤도의 잘못은 아니야. 그러니까 저번에 내가 말한 대로 하는 게 어떨…… 아, 깜짝이야!”
헤도가 산드라의 근처로 떨어진 한 줄기의 마기를 베어냈다. 제피린이 혼돈에 물든 기사들을 상대하며 은근히 산드라 쪽으로 충격파를 뿌리고 있었다.
“하, 저거 은근히 뒤끝 있네. 몇 천 살이 넘는 늙은이면서 어린애처럼.”
그들이 대화를 나누며 이동하는 사이 벌써 진은 동굴 근처에 남은 기사를 절반 이상 처리한 상태였다.
동굴 바로 앞에는 과거 흑기사나 흑검회의 최고 원로, 혹은 최상위 집행기사로 추정되는 이들이 남아 있었다.
진이 기사들을 베며 다가갈수록 그들의 혼기는 점점 커져 갔다.
‘저들은 힘을 감추고 있던 건가.’
총 열다섯.
그들의 변이 상태는 앞서 벤 기사들과 다른 형태를 띠고 있었다. 뒤틀리고 기괴한 형태가 아니라 정교하게 제작된 인형처럼 안정적인 외형이었다.
‘이성도 남아 있는 것 같군.’
눈동자 역시 검은 구멍이 나 있는 게 아니라 평범한 인간과 비슷했으나, 로사처럼 뿔이 있고 혼돈의 칼날 같은 것들이 신체 곳곳을 강화하고 있었다.
“12기수 진 룬칸델이다. 이름을 밝혀라.”
[네놈의 기수 자격은 박탈되었다, 반역자 진.]무리의 가운데 선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다소 변형되었다고는 하나 전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진은 그를 통해 상대가 흑기사였으리라 추정했다.
“과거 검은 투구를 썼던 모양이군. 지금이야 로사가 혼돈을 받아들이며 꽤 개편이 된 모양이지만, 그전까지 그건 진짜로 영광스러운 투구였는데. 어째서 그런 모습으로 거기에 서 있나?”
[검은 투구를 썼든, 못 썼든. 가문의 검들이 할 일은 오직 가문을 위해 싸우는 것이지. 네가 지금 죽이고 있는 기사들은 모두 룬칸델을 위해 변화했을 뿐이다.]“자의로 괴물이 된 자들은 얼마 없다고 들었다. 조르덴 당숙께.”
[자의, 그런 게 용납되는 가문이었다면 룬칸델이 지금껏 존재했을 것 같나? 룬칸델은 본래 지배와 명령, 그리고 힘으로 이루어져 왔다.]“그 말은 곧 너흰 저들과 달리 로사의 반역에 진심으로 동조한 무리라는 이야기로군.”
[네놈은 그저 가주가 되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망을 실현하려고 할 뿐이다, 반역자. 그러니 벌써 나머지 세력과 동맹까지 맺은 것이지. 로사 경 덕분에 드디어 룬칸델이 진정 세계제일가로 거듭나게 되었는데도. 그런데 그것 아나? 네가 배신하지 않았다면, 로사 경은 너를 가주로 만들었을 것이다.]후우욱…….
브라다만테를 물들인 영기가 사라졌다.
[로사 경이 없었다면 룬칸델은, 나아가 휴페스터 연합은 어떻게 되었을 것 같나? 네놈이 동맹을 하자고 구걸한 지플과 킨젤로에게 짓밟혀 사라졌을…….]“너희에겐 자비를 베풀지 않겠다. 그리고, 나를 상대로 어설픈 짓거리는 하지 마라.”
영기 대신 활활 타오르는 오러가 브라다만테를 휘감고 있었다.
동시에 한 줄기의 섬광이 번졌고, 진과 대화를 나누던 흑기사의 오른팔이 떨어졌다.
뇌기를 더한 광속 찌르기보다 1회의 가속이 부족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본래 ‘비기’라는 이름이 붙은 검인 만큼.
“지원군이 올 때까지 궤변을 늘어놓아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보려는 수작인 걸 모를 것 같았나?”
흑기사의 떨어진 팔이 빠르게 재생되고 있었다.
이어 그는 응수를 준비하려 했으나, 진은 어느새 다른 기사들을 밀어내고 그의 후방까지 밀고 들어온 상태였다.
“피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애초에 네 팔을 떨구려고 펼친 것이다.”
재생되던 오른팔이 다시 잘려나갔고, 반격하던 왼팔 또한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어 진은 그의 뿔을 잡아 머리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컥!]“말했지, 네놈들에겐 자비를 베풀지 않겠다고…….”
흑기사가 짓밟혀서 바동거리는 사이 나머지 기사들이 진에게 검을 뽑았다.
진은 제자리에서 그들의 검을 모두 여유롭게 받아냈다.
충격파가 겹겹이 퍼지며 달려든 기사들이 튕겨 나갔다. 그들은 모두 검은 혼돈을 컥컥 피처럼 토해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내가 바쁘다는 걸 감사히 생각해라, 마음 같아선 한 놈 한 놈 정성스럽게 고통을 주고 싶으나 그럴 여유까지는 되지 않는군.”
말은 그렇게 했으나 진에게 덤벼든 기사들은 뼛속까지 퍼지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제피린에게 살해당하는 다른 기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을.
그때쯤부터는 헤도도 가세해서 나머지 기사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헤도는 일부러 그들의 고통을 배가시키지는 않았으나, 본래 진보다 파괴적인 형식의 검을 구사하는 만큼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5분.
흑기사를 포함해 과거 최상위 수준이었던 열다섯의 기사들을 모두 처리하기까지는 겨우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두 사람이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강자인 이유도 있으나, 진은 이미 혼돈에 물든 기사들의 ‘격’이 하락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스탐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차라리 기사들이 혼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터. 로사와 예언자는 개개인의 격을 하락시키더라도 총 전력을 늘리는 쪽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면 혼돈을 받아들인 이상 그렇게밖에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군.’
진이 짓밟힌 흑기사의 등에 검을 내리꽂았다.
[저 안에…… 네가 찾는 사람은 없다. 네놈은 찾지 못할 것이다.]“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겨우 그런 허세인가? 검의 정원에 히스터가 없다는 건 다 알고 있다.”
그 말에 흑기사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네 말대로다. 그 붉은 머리의 여자는 이미 죽었으니까…… 푸흐흐.]“뭐라고?”
진이 반응을 보이자 흑기사는 우습다는 듯 조소를 머금었다.
몇 초쯤, 진은 움직임을 멈춘 채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움찔거리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다. 진은 그것을 보자마자 하마터면 포효를 내지를 뻔했다.
흑기사가 꺼낸 건, 한 줌의 붉은 머리카락이었다.
하지만 진은 그러는 대신 평정을 되찾기로 결정하며 손바닥에 한 덩이의 푸른 불꽃을 틔웠다.
“수작을 부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머리칼이 아니라 머리였다면 조금은 더 믿었을지도 모르겠군.”
불꽃이 물방울처럼 흑기사의 등에 떨어지자, 순식간에 그의 몸 전체에 푸른 화염이 솟아났다. 귀를 긁는 비명이 이어졌다.
[크아아악……! 계속 히스터의 시신을 찾으려 한다면, 너도…… 이 땅에서 죽…….]흑기사는 말을 다 끝맺지 못하고 완전히 재가 되어버렸다.
진은 그런 그를 뒤로한 채, 동굴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발 발레리아가 아직 살아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