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02)
제 888화
198화. 밑지는 거래(3)
드락카, 지플 본가.
베라딘은 자리에 앉은 간부들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로닐과 옥타비아, 그리고 베라딘이 데려온 새로운 순혈 지플들을 제외한 간부들은 모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회의장 바깥 복도에 시체가 즐비하기 때문이었다.
이야기의 탑 사건 이후, 당연하게도 지플 전체엔 뒤숭숭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아무런 공식 발표 없이 여러 소문만 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베라딘이 처음으로 가문 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오로지 순혈 지플과 원로들만으로 구성된 이 회의가 시작되기 직전, 베라딘은 짧고 강렬한 숙청을 감행했다.
이야기의 탑 사건에 의문을 품은 이들을 순식간에 몰살한 것이다. 죽은 이들은 갑작스레 시작된 공격에 제대로 저항 한 번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저항이 가능했다 할지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성지와 드락카 본진에서 베라딘의 권능은 그야말로 절대자나 다름이 없었다.
“잠깐 소요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가주로서 가문을 효율적으로 이끌기 위한 선택이었으니, 보기 불편했더라도 양해를 해주면 고맙겠습니다.”
간부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순식간에 서른 명이 넘는 간부를 죽이고 자리에 앉았으면서 잠깐의 소요라니.
게다가 베라딘은 자신을 가주라 말하고 있었다. 그 표현으로 인해 켈리악의 생사는 더 이상 중요치 않게 되었다.
그가 살았든 죽었든 베라딘에게 가주 자리를 빼앗긴 건 달라지지 않는다.
“궁금한 바가 많을 겁니다. 전 가주와 카둔이 어떻게 된 건지, 앞으로 우리 지플이 어떻게 운영될 것인지. 이런 부분들은 정리가 되는 대로 내 누이이자 새로이 집정관에 임명된 사트린 지플이 차차 정리를 도와줄 겁니다. 곧 외부에 공표도 할 예정입니다.”
사트린 지플이 간부들을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베라딘이 데려온 순혈들은 모두 최고위 요직에 임명된 상태였다. 기존 간부들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반역에 이은 폭정이었으나 아무도 항거하지 못했다.
베라딘은 그 모습에 환멸을 느꼈다.
물론 덤비면 철저하게 죽이고 짓밟을 테지만, 바로 이런 모습이 유약해진 지플의 실태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제일가로서 너무 오랜 시간 군림해온 탓이었다.
지플이라는 이름 때문에 강한 게 아니라, 강하기 때문에 지플이어야 한다는 가문의 초기 신조를 되찾아야 할 때였다. 뿌리부터 전부 뜯어고쳐서.
“그러니 지금은 그 얘기가 아니라, 최근의 안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죠. 우리가 가문 정리를 하는 사이에 적들이 묘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우선, 킨젤로가 최근 갑자기 우리와의 강철 거래를 일방적으로 중지했습니다. 이 일의 배후에는 당연히 바멀 연합, 진 룬칸델이 있을 겁니다.”
“이상한 일이긴 합니다, 가주님. 킨젤로 또한 바멀 연합을 견제해야 하는 상황인데 갑자기 그들에게 강철을 내어줄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싼값에 사고 있던 것도 아니고 말이죠.”
한 간부가 입을 열자 베라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적응이 빠른 자도 있는 법이었다.
“게다가 최근 우리 첩자들이 알아본 바, 킨젤로의 최중요 지부인 수인들의 땅이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바멀 연합이 강철 거래에 대한 보복으로 킨젤로를 쳤고, 압박을 못 이긴 킨젤로가 강철을 내어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로군요. 하지만 킨젤로가 겨우 그 정도에 고개를 숙일 친구들은 아닙니다. 바멀 연합에서 공격을 했다면 곧장 전면전이 시작됐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렇다면 가주께서 진 룬칸델이 배후에 있으리라 말씀하신 건…….”
“나는 진과 킨젤로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거래는 방금 리탄 원로가 말한 지부 파괴와 관련이 있겠죠.”
“거래라고 하시면…… 설마, 킨젤로가 진 룬칸델에게 지원을 요청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우리와 바멀 연합, 룬칸델과 제국을 제외한 어느 한 세력이 킨젤로를 쳤고, 킨젤로는 진에게 지원을 요청한 거죠.”
“하지만 그 세력들을 제외하면 지금 킨젤로를 칠 수 있을 만큼 힘이 있는 집단이 없지 않습니까? 그나마 비먼트 황가가 나름 저력을 갖추고 있으나, 그들이 이런 무리수를 던질 것 같지는 않군요.”
비먼트 황가 잔당은 흉신전 이후 지플과도 연락을 끊고 종적을 감춘 상태였다.
“황가 잔당은 아닐 겁니다. 나는, 새로운 세력이 나타났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새로운 세력……!?”
“새로운 세력이라면 중립들이 힘을 합친 경우밖에 없을 터인데…… 지금 거대 세력의 수장급들을 제외하면 중립들을 모을 수 있을 만한 인물이 없지 않습니까?”
“인물은 없지만 흉신전 이후 생사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는, 조슈아 룬칸델이 나타난 거라면 불가능하지는 않소. 그러나 조슈아라면 룬칸델이 가만히 있을 리 없지.”
한동안 간부들 사이에서 여러 말들이 오갔다. 베라딘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최근 알게 된 정보를 그들에게 공유해주었다.
“조슈아 룬칸델도 아닙니다. 그가 혼돈의 힘을 사용해 활동을 시작했다면 내 권능으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 생각엔, 지하세계의 짓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지하세계……?”
“가주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열람할 수 없는 자료, 그중 하나에 지하세계에 대한 내용이 있더군요.”
본래 그 열람실은 쉬누의 허락 없이는 확인이 불가능하나, 베라딘은 산나의 힘을 이용해 봉인을 깨뜨린 상태였다.
“우리가 마계라 부르는 공간이 이 세상의 지하에 있던 겁니다. 그리고 지상과 지하를 나누는 경계엔 큰 뱀이라 불리는 존재와 일부 고대 종족들이 봉인되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최측근을 제외한 간부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베라딘이 미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베라딘은 품에서 한 개의 두루마리를 꺼내 간부들을 향해 펼쳐 보였다. 그 두루마리엔 해당 내용과 지상과 지하의 경계와 아메리스를 표현한 그림이 있었다. 하단에는 불의 인장이 이글거렸다.
그 인장이 뜻하는 바는 절대적인 믿음. 간부들은 더 의심하지 않고 베라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에 킨젤로를 친 게 마족, 혹은 다른 고대 종족이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마족은 대부분 킨젤로 소속이니, 고대 종족에 더 무게가 실리는군요.”
“즉, 가주님 말씀은 지하의 고대 종족이 모종의 이유로 봉인에서 풀려났고…… 킨젤로를 쳤다. 그리고 킨젤로는 바멀 연합에 지원을 요청한 상태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을 알아보는 겁니다. 킨젤로를 친 자들이 누구인지, 왜 그들이 처음 공격한 지상 세력이 킨젤로인지, 킨젤로는 왜 우리가 아니라 진에게 지원을 요청했는지, 오르갈과 제피린은 무얼 하고 있는지.”
베라딘이 정리하자 간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부들은 지금 즉시 휘하 필진들에게 명령을 하달하도록 하세요. 오늘 회의에서 나온 내용이 모두 사실인 것처럼 꾸민 기사를 내라고. 그리고 망령대장은 집정관과 연계해서 킨젤로 각 지부로 망령대와 집정관의 마법사들을 보내십시오.”
“알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바멀 연합과 킨젤로에 비해 정보가 늦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격차를 좁히고, 지하의 세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성과를 낸 자들에겐, 가문의 비전 마법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주겠습니다.”
비전 마법은 룬칸델의 결전기와 마찬가지로 아무나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다. 순혈 지플과 대등한 마력 친화력을 보유해야만 배울 수 있었다.
“엄청난 재화가 필요하긴 하나, 연구부에서 안정적으로 마력 친화력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으니 하는 말입니다. 다들 열심히 뛰어주시길.”
* * *
1803년 시월 첫날.
진은 킨젤로 제3지부 외곽에 설치한 막사에 앉아 차를 홀짝였다.
“왔소?”
진이 막사 안으로 들어온 비슈켈을 보며 말했다. 거래가 성사된 이후, 그는 며칠째 밤을 새우며 킨젤로의 지부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것까지는 진이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멀 연합은 어디까지나 대기조로서 기다릴 뿐이었다. 습격 예상 지점 두 곳에 진과 시리스가 대기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직 여기 나타나지 않은 모양이군.”
“그렇소. 지난번 습격 때 나나 시리스 님 둘 중 한 사람이 7지부에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 됐군.”
이틀 전, 진과 시리스가 각각 3, 5지부에 대기하던 중 적명족은 킨젤로의 7지부를 습격했었다. 결과는 몰살, 7지부에 있던 수인들의 시체에선 저항 흔적을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진과 그토록 밑지는 거래를 하고도 지부 하나를 또 잃었으니, 킨젤로로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게다가 여전히 오르갈과 제피린은 깨어나지 못하는 중이었다.
‘제피린이 아메리스 님의 머리 중 하나였을 수도 있다라…….’
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아메리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메리스는 제피린이 정말 자신 때문에 의식을 잃었다면, 그 이유밖에 없으리라 말했다. 오르갈이 기절한 건 제피린과 정신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까닭일 거라고도.
“지부들을 돌아보는 동안 소식지를 좀 확인했는데, 베라딘 지플이 지플의 새로운 가주가 되었다는 기사가 보이더군.”
“……베라딘이?”
“그렇소. 게다가…… 이걸 보시오. 베라딘이 가주에 오르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지하세계에 대한 공개와 킨젤로와 바멀 연합의 관계에 대한 의심이오. 이게 방금 나온 소식지지.”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베라딘이 새 가주가 되었다는 공표도 충분히 충격적인데, 갑자기 지하세계와 우리 거래에 대한 의심까지?”
“이것 때문에 지금 킨젤로 내 마족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오가고 있소. 짐작 가는 바는 전혀 없…….”
“잠깐.”
소식지를 살피려던 진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놈들이군, 때를 잘 맞춰 오셨소. 비슈켈.”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 차례 가볍게 몸을 풀었다.
“……적명족이?”
비슈켈은 뒤늦게 감각을 끌어올렸으나 별다른 기운을 느끼지 못했다. 진보다 실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데다 광심장도 없기 때문이었다. 진이 읽어낸 건 3지부 인근에 급작스럽게 퍼진 광심장 특유의 폭발적인 뇌기였다.
“그렇소. 아무래도 소식지는 저것들을 처리한 후에 확인해야겠군. 먼저 갈 테니, 따라오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