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18)
제 888화
205화. 이야기의 부름(1)
중간층, 고대 수인들의 소도시 피르올.
“리스릿은 대승, 큐운은 무승부, 이야기의 탑은 대패. 우리 예상이 정확했군.”
황제, 아이란 비먼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황족들은 침공 결과를 만족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시마트가 적명족들이 우리 의견을 수용하도록 잘 종용한 결과입니다. 만약 기껏 가동시킨 공중요새를 바로 이야기의 탑으로 보냈다면, 또 드렉 혼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 겁니다.”
“드렉 혼을 잃은 건 아쉽지만,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마노프. 드렉 혼이 건재했다면 적명족들이 우리에게 이토록 귀를 기울이기까지 더 시간이 필요했을 테니 말이다.”
“그건 그렇습니다, 폐하. 그 아둔하고 오만한 놈들이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 같군요. 아까 비볼과 통신을 할 때 이야기의 탑에 대한 정보를 알려달라고 애원한 걸 보면 말이죠.”
마노프가 말한 대로, 적명족은 전투가 끝나자마자 황가에 통신을 요청했다. 이야기의 탑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고 말이다.
황가는 마신석과 ‘조작’에 관해 아는 바를 소상히 알려주었고, 지플이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이야기의 탑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적명족 함대가 도주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지플의 조작 능력이 본격적으로 개방되기 시작한 건 확실하다.”
“켈리악과 쉬누를 삼키지 못했으니, 아직은 진입 단계에 불과한 걸로 추정됩니다. 그마저도 무녀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베라딘도 인지는 하고 있을 거다. 결국 무녀의 힘으로 마신석을 완성시키는 건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게다가 적명족의 최종 목적 역시 태양신의 부활이니, 무녀가 놈들과 야합해 배신할 수도 있다는 압박감도 느낄 것이다. 실제로는 그럴 가능성이 없지만 말이야…….”
황가는 태양신교와 적명족이 연합할 일은 없다고 확신했다. 그들이 태양신을 통해 이룩하려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산나의 교파에서 원하는 건 그들이 생각하는 세상의 완전성이다.
그 완전한 세상에 대다수의 불멸자와 필멸자는 필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산나가 신앙을 완성하는 순간에, 적명족은 세상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적명족뿐만이 아니라, ‘선택’을 받지 못한 이들은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의 9할 이상이.
“아직 무녀에게도, 베라딘에게도 서로가 필요하니 당분간 그들의 관계가 멀어질 일은 없을 겁니다.”
“어쨌거나 상황이 훌륭하게 흘러가고 있어. 적명족과 지플은 계속 소모전을 할 수밖에 없고, 우린 점점 절박해지는 적명족으로부터 더 많은 기술력을 이전받는다. 테마르 룬칸델과 엘티엇을 깨울 때쯤이면 더는 이렇게 숨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진이 느낀 불길한 예감처럼, 황가는 오래전부터 테마르의 왼팔을 이용해 그를 복제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또한 대봉인 당시에 챙긴 청명족 투신, 엘티엇까지 부활시킨다면.
황가는 단숨에 두 명의 창성 무인을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테마르의 육신에 남은 정보와 적명족의 기술력을 더해 마인을 최강의 생체 골렘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그 힘을 기반으로 전쟁으로 약해진 지플과 적명족을 집어삼키는 것.
그게 황가의 첫 번째 목표이며, 황가는 그중 특히 지플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태양신을 제외하면, 완전한 수준의 역사 조작을 능가하는 권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권능을 손에 넣으면 추후 룬칸델과 바멀 연합, 킨젤로를 처리하는 일에도 전혀 문제가 없을 터였다. 더 나아가 지하 세계 전체를 잠식하는 일까지도.
미래를 상상하며, 황가는 단꿈에 젖어가고 있었다.
“엘티엇을 살펴보러 가야겠군. 채비하라.”
“예, 폐하!”
* * *
지플, 이야기의 탑.
적명족과 지플의 공식적인 첫 전투가 끝나고 이틀이 흘렀다. 그러나 베라딘은 아직 사로잡은 빌카와 적명족들의 정신을 조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크으윽, 카하아악……!”
“무녀! 가주께서 이렇게 되고 벌써 이틀이 지났다. 아직도 방도를 찾지 못한 것이냐? 어째서 마신석의 개방이 해제되지 않는 것이야!”
옥타비아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베라딘을 보며 소리쳤다. 그녀 또한 리스릿에서 중상을 입었으나, 베라딘이 걱정되어 도저히 회복에 전념할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망령대장님. 저로서도 전혀 알 수 없는 영역입니다. 계속 기도를 올리고 있으나 제 신심이 아직 닿지 않고 있습니다.”
옥타비아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완승을 거뒀다는 가주가 난데없이 이런 꼴이 되어 있는 것이다. 무녀는 계속 기도 운운하며 당황스러운 속내를 숨기지 않았고, 가문의 그 누구도 베라딘의 상태를 호전시킬 방법을 알지 못했다.
또 언제 갑자기 적명족의 침공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건만 사트린과 로닐, 그리고 다른 수뇌들도 이야기의 탑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행여 베라딘이 폭주하기라도 하면 그들이 아니고는 아무도 막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막을 수 있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지금 베라딘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건 개인의 능력뿐만이 아니라, 마신석의 권능이 더해진 결과니까.
마신석은 여전히 반으로 갈라진 이야기의 탑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간부들은 몇 차례 개방 해제를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베라딘의 상태만 위태해질 뿐이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마신석에 우리 교파가 가진 태양신의 힘을 조금 부여한 건 분명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분의 힘은 그 무엇과도 거부반응 없이 융화할 수 있으니까…… 이건 마신석이 아니라 베라딘 지플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아.’
산나도 지플의 수뇌들처럼 안절부절못한 상태였다. 행여 베라딘이 잘못된다면 그 책임을 고스란히 지게 되는 건 자신이 될 터였다.
게다가 베라딘의 문제는 곧 지플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으며, 그렇게 될 경우 산나는 태양신 부활의 가장 중요한 패를 잃게 되는 셈이었다.
‘우선 사제들을 모아서 폭주에 대비해야 하나? 그렇게 되면 교파의 전력이 노출되는 건 피할 수 없다. 킨젤로시여, 제발 답을 주십시오. 어찌해야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겁니까……!’
모두가 심란한 와중 베라딘은 계속 비명을 질렀으며, 창 너머로 보이는 마신석은 점점 한계에 치닫는 듯 보였다.
“마신석의 팽창이 가속되고 있습니다. 정확히 예측하는 건 불가하나, 이대로라면 곧 폭발할 겁니다.”
로닐이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마신석이 폭발하면, 지금껏 우리가 행한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는 것이오.”
“그걸 넘어, 일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결단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문을 종속시키기 위한…….”
“무슨 말이냐? 사트린.”
“가주를 남겨두고 일단 대피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지금 이야기의 탑에 집결한 인원이 모두 죽으면, 가문은 그대로 멸망입니다. 절망적인 선택이지만, 분명 가주께서도 그걸 원치는 않으실 겁니다.”
“그걸 말이라고!”
“현실입니다, 망령대장. 또한 가주께선 제게 언젠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일 자신이 잘못되면, 망령대장께서 가주가 되어야 한다고…….”
“내게 중요한 건 가주가 되는 일 따위가 아니다. 그게 중요했다면 오라버니가 죽어갈 때 내가 베라딘보다 먼저 수를 쓰지 않았겠느냐? 중요한 건 지플 그 자체일 뿐! 어차피 지금 베라딘과 마신석을 잃으면 가문은 끝장이야. 죽더라도 다 같이 죽고, 살더라도 다 같이 산다.”
“고모님!”
“로닐, 너도 이 아이와 생각이 같은 것이냐?”
“가주께서 제게도 그리 말씀하신 적이.”
“닥쳐라! 베라딘을 포기하는 일은 없다. 너희도 알다시피 나는 베라딘이 왕좌에 오른 과정을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이 아이가 유일한 희망이다. 두고 떠나는 일은 없다.”
옥타비아의 노기 어린 목소리가 탑을 울렸다.
‘어쩌면 베라딘 지플을 죽이는 게 답일지도 모른다. 그를 죽이고, 다른 간부가 마신석을 취하면 사태가 나아질 수도 있어! 이건 분명 마신석이 아니라 베라딘의 문제일 테니!’
그리고 산나는 그런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제 생각엔 집정관의 의견이 맞는 것 같습니다, 망령대장님. 제가 마지막까지 남아 기도를 올릴 테니, 나머지 분들은 떠나십시오.”
“난 남는다, 무녀의 말을 믿고 떠날 녀석들은 떠나라.”
산나는 옥타비아를 더 말리지 않았다. 수뇌들이 떠나고 베라딘을 죽일 때, 상처 입은 옥타비아를 함께 처리하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수뇌들은 어떻게든 옥타비아를 데려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죄송합니다, 고모님. 이렇게 모시는 걸 용서하십시오. 가주께서 차기 가주로 고모님을 고르셨으니, 저흰 고모님이 죽는 걸 방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트린이 옥타비아를 제압하려는 찰나.
별안간 베라딘의 경련이 잦아들었다. 터질 듯 부풀었던 마신석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고, 곁에 있던 이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가주!”
“가주님!”
베라딘은 정신을 되찾은 듯 식은땀을 흘리며 무녀와 수뇌들을 바라보았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내가 이틀 동안 괴로웠던 건, 나나 마신석의 문제가 아니었으니 다들 이제 안심하십시오.”
그는 차분하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했다. 이마를 쓸어넘기고, 탁자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씨익 미소를 짓기도 했다.
“가주?”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지금 우린 가문이 이렇게 끝나는 것인지 괴로워하고 있었으니.”
“다급해지니 저를 이름으로 부르셨으면서 다시 말을 높이시는군요, 고모님. 제가 가주에 오르고 따로 말씀드린 적은 없습니다만, 전처럼 편히 대해주셔도 좋습니다. 사실 고모님의 깍듯한 존댓말을 들을 때마다 왠지 조금은 불편하더군요.”
“어떻게 된 일인지나 설명해다오.”
“탑. 이야기의 탑이 저와 마신석을 통해 한 존재를 불러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의식불명에 빠졌던 겁니다. 저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입니다만, 더할 나위 없이 큰 행운이 따른 겁니다.”
“이야기의 탑이 너를 통해 누군가를 불렀다고……?”
베라딘은 물잔을 내려두며, 이렇게 대답을 해주었다.
“……엘로나 지플. 이야기의 탑이 그분의 봉인을 풀었습니다. 이제 곧, 그분이 가문으로 돌아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