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17)
제 888화
204화. 전쟁 선포(5)
사트린이 탑의 지하로 향했다. 이야기의 탑 지하엔 마신석이 안치되어 있었다.
그사이, 붉은 함대의 기함에선 빌카 혼이 지플의 함대를 평가하고 있었다.
“역시, 저 코젝이라는 함선을 제외하면 나머진 그저 그런 수준이군. 청명족 놈들이 타던 함선보다도 떨어지는 수준이다.”
빌카 혼이 말했다. 이야기의 탑을 친 함대엔 대투왕이 없기에 1급 투왕인 그가 지휘하고 있었다.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빌카 동포. 화력, 기동력, 방어력. 어떤 면에서도 우리 함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아쉽게 됐어, 내가 바로 대투왕으로 선정됐다면 더 많은 함선을 이끌 수 있었을 거고, 물러나기 전에 놈들에게 꽤 치명적인 타격을 줬을 텐데 말이지. 지금으로서는 숫자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어쩔 수 없군.”
적명족의 기술이 압도적인 건 사실이나 칠십으로 오백을 꺾을 수는 없었다. 어차피 정찰이 목적이었으니 빌카는 슬슬 퇴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차원문을 개방하겠다. 다른 동포들이 지플에도 괴물 같은 인간들이 많다고 하였어. 갑자기 놈들이 움직일 수도 있으니 끝까지 방심은 금물이다.”
빌카가 이끄는 함대엔 대투왕이 없으므로 차원 문을 열기까지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적명!”
지플의 함선들은 쉽사리 붉은 함대의 보호막을 뚫지 못했다. 기동력이 떨어져 붉은 함대를 포위할 수도 없었다.
때문에 빌카와 승무원들은 우월감을 느꼈으나, 묘한 위화감도 엄습하고 있었다.
‘한데 이상하긴 하군. 어째서 초인이라 불리는 인간들이 지금껏 하나도 전선에 합류하지 않은 것이지? 초인들은 전부 다른 1급 마탑으로 퍼뜨리고, 이야기의 탑은 그냥 함대만으로 지킬 생각이었나? 그렇다면 대투왕 동포들이 빠진 게 더욱 아쉬운데.’
아직 빌카는 탑 내부에 베라딘과 사트린, 그리고 다수의 망령대와 유령 단원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들이 전투에 합류하지 않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적명족이 느낀 위화감이 끔찍한 위기감으로 바뀌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십여 분이 지난 다음이었다.
“곧 차원문이 개방됩니다!”
“전 함대 집결, 퇴각을 준비하라.”
“차원문 개방 완료! 어, 자, 잠깐. 빌카 동포! 뭔가 이상합니다!”
“무슨 소리냐?”
“차, 차원문이 어그러지고 있습니다……!”
그 말에 빌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고, 다음 순간 바로 차원문을 확인하고는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끄드드득, 즈으읏-!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함대 후방에 열린 차원문을 짓이기고 있었다. 차원문이 완벽한 원 형태를 유지한 건 아주 잠시뿐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알 수 없습니다, 설정과 필요 동력 모두 문제가 없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의 탑을 친 적명족들 중엔 이런 현상을 겪어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과거 청명족 투신이 차원문을 막는 걸 본 동포들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분명 이런 형태가 아니었다. 일그러지는 걸 넘어, 찢어지기까지?’
벌써 차원문은 몇 갈래로 찢어지며 상공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찢어진 모습이 마치 자신들을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적명족, 감히 지플을 치려 한 대가를 받을 준비는 되었나?]찢어진 차원문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베라딘의 목소리였다. 빌카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걸 느끼며 반사적으로 이야기의 탑을 확인했다.
‘어, 언제 저렇게 변한 거지?’
탑은 처음과 달리 세로로 갈라져 두 개로 나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중앙엔 꼭 눈처럼 보이는 둥글고 거대한 물체가 있었다.
마신석이었다.
히이이…….
이내 마신석은 검은 얼굴이 되어 기괴한 숨소리를 내었다. 검황성전, 흉신전 때와 달리 마신석의 텅 빈 눈구멍은 하나뿐이었다.
그 하나뿐인 눈동자와 시선이 닿은 적명족들은, 얼어붙고 있었다. 마치 천적을 마주한 짐승들처럼.
빌카는 손톱으로 제 목을 쥐어뜯으며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목에서 살점이 한 움큼 떨어졌는데도 공포 때문에 고통을 느낄 수조차 없었다.
“소, 속도를 높여라! 일단 비행으로 전장을 빠져나간다!”
붉은 함대가 전속력으로 후퇴하면 지플의 함대는 결코 쫓아올 수 없다. 따라서 빌카는 일단 마신석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빠져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명령을 내리면서도 확신은 가질 수 없었다. 함대는 몰라도 저 끔찍한 사물이, 자신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것 같지 않았다. 마신석에 어떤 능력이 있는지, 얼마나 위험한지, 아직 겪지 않았으나 알 수 있었다. 저건 지금 자신들의 함대 따위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적명족들이 다급하게 동력원으로 뇌기를 공급했다. 지금 당장 마신석으로부터 멀어지지 못하면 죽음뿐이라는 마음이었다.
혹은 죽음 이상의 대가를 치를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적명족들의 뇌리를 잠식하고 있었다. 불사군이 될 수 없는 건 물론이고, 실험체가 되어 끔찍한 일을 겪게 될지도 몰랐다.
[언제든 차원문을 이용해 도망치면 된다고 자만했을 테지. 하지만 여긴 이야기의 탑이다. 나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의지를 실현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뜻이다.]붉은 함대가 속도를 내려는 찰나, 기함 앞쪽에 놓인 찢어진 차원에서 한 인간이 걸어 나왔다. 베라딘 지플, 지플의 가주.
흐로티가 화염을 머금고 있었다. 그 화염은 순식간에 번져서 거대한 불의 장벽을 만들었고, 붉은 함대는 그걸 뚫고 나아갈 수 없었다.
선체가 통째로 녹아버릴 게 분명했다. 베라딘은 허공에 뜬 채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내 그가 한 차례 흐로티를 휘두르자 화기가 집중되며 붉은 함대의 기함을 불살랐다.
스물 정도의 승무원이 재가 되었고, 절반에 가까운 선체가 사라졌으나 기함은 베라딘의 마력에 고정되어 추락하지 않았다.
베라딘이 화기를 거둔 건 함교의 전면부가 완벽하게 소멸한 다음이었다. 빌카의 앞에 앉아 있던 승무원들은 모두 재가 되거나, 반쯤 녹아내린 채 죽음을 맞이했다.
인간이 아니다.
혹은, 필멸자가 아니다. 태양으로부터 불멸의 힘을 나눠 받은 존재만이 이런 권능을 부릴 수 있다.
빌카는 그렇게 생각하며 간신히 베라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하늘을 성큼성큼 걸어 함교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름이 무엇인가.]“빌카…… 혼. 적명족의, 1급 투왕.”
[이곳에 온 목적은?]“크윽…… 정찰…….”
[앞으로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지?]“복귀해서…… 사태를…… 알린다.”
빌카는 괴로운 듯 떨면서 침을 흘렸다. 베라딘이 질문을 할 때마다 공포에 젖은 눈동자가 차츰 멍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다시 묻겠다. 앞으로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지?]“복귀…… 아니, 지플에…… 우리에 관한 정보를. 내, 내게 무슨 짓을 하는 거냐, 크아아악!”
우드득!
별안간 기괴하게 꺾이는 빌카의 오른팔. 그건 베라딘이 원한 일이 아니었다.
[아, 이런. 지나쳤나.]베라딘은 지금 마신석을 이용해 빌카의 기억과 의지, 그리고 ‘빌카 혼’이라는 역사를 조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베라딘의 바람보다 정교하지 못해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베라딘은 미간을 구기며 한숨을 삼켰다.
‘조작에 저항한 반발로 몸이 뒤틀릴 정도라니. 아버지와 쉬누를 놓치지 않았다면 이 정도는 무난하게 성공했을 텐데.’
베라딘이 적용 중인 ‘조작’을 해제하자 빌은 앞으로 고꾸라지며 거친 숨을 토했다. 그는 자신이 방금까지 무슨 말을 했는지, 오른팔은 왜 뒤틀린 건지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
또한 그간 쌓아온 기억과 내면에도 심각한 손상이 있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지금 이 상황은…… 전투 중이었나? 이 인간은 뭐야, 내가 설마 인간에게 당한 건가. 대체 왜 이렇게, 두려운 것이냐.’
베라딘은 즉시 빌카의 황망한 상태를 알아보며 한숨을 삼켰다.
[이름이 무엇이냐.]“빌카…… 혼…….”
[적명족의 1급 투왕이 맞나?]빌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이름과 소속, 계급을 기억하고 있다. 다행히 손상 정도가 아주 심각하지는 않아. 하마터면 귀중한 자원을 못 쓸 정도로 망칠 뻔했어. 비록 대투왕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이자가 지휘관이었으니 가장 많은 걸 캐낼 수 있을 거다.’
시험을 하려는 듯.
베라딘은 빌카의 옆에 웅크리고 있는 평전사에게 조작을 적용했다. 그러자 그는 이름을 대답하기도 전에 목이 꺾이며 사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대편에 있던 2급 투왕은 그보다 조금 더 버티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투왕이라 불리는 계급쯤은 되어야 조작의 압박을 조금이나마 견딜 수 있는 모양이군. 일정 수준의 저항력은 적명족이라는 종족 모두가 갖추고 있는 것 같고…….’
그렇다면 투왕급들은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조작해서 정보를 알아내야 하고, 나머지는 고문하면 될 터.
베라딘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몸을 돌렸다.
[전부 탑 지하에 가둬라. 투왕급들은 따로 추려놓도록. 함선엔 아마 기술 유출을 대비한 장치가 되어 있을 것이다. 자폭이 가장 가능성이 높으니, 최고 공학자들이 올 때까지 테이아 평원에 대기시켜라.]“알겠습니다.”
각 함대 지휘관들이 함선 내부에서 답했다. 베라딘은 그 목소리들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2, 3함대는 지금 즉시 빠져서 최대한 신속하게 망령 대장을 지원하도록.]명령을 끝내자마자, 베라딘은 잠시 휘청이며 한 움큼 핏물을 내뱉었다.
‘역시, 약간 무리했나.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군.’
그리곤 몸을 돌려 이야기의 탑 저 멀리에 있는 바위 지대를 바라보았다. 마신석을 개방한 시점부터, 베라딘은 그곳에 자신을 지켜보는 한 무리가 있다는 걸 확신했다.
그 무리엔 분명 진이 있다는 것도.
“……오울 경. 지금 베라딘이 이쪽을 봤습니다.”
“이 조건, 이 거리라면 시론 경이라 할지라도 내 은신을 알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느낌이 서늘하긴 하구나, 마신석의 힘이라는 건가.”
오울과 달리, 진은 베라딘이 자신들을 알아본 사실에 별로 충격을 받지 않았다. 마신석이라는 물건은 아직 정확한 능력도, 그 한계도 알려진 바가 없으니까. 탑이 개방되자마자 적명족이 제압된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친구가 점점 더 인간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었다.
“후, 마음 같아선 가서 그냥 정신이 좀 돌아올 때까지 패주고 싶지만, 오늘은 이만 철수하는 게 좋겠습니다.”
“알겠다, 준비하마.”
오울이 채비를 하는 동안, 진과 베라딘은 서로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