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61)
제 888화
215화. 신과의 재회(3)
“뭐? 살려달라고?”
“네, 무라칸 님.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습…… 윽.”
율리안이 휘청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페이텔과의 갑작스러운 교감이 그의 몸에 무리를 주고 있었다.
“칼토르, 넌 뭐 들리는 목소리 없…… 허, 애가 맛이 갔네.”
“으그그극, 그가각.”
칼토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율리안보다도 페이텔과의 교감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경우는 예상치 못한지라 일행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체 뭔 상황인 거야? 애들이 오자마자 급히 교감하면서 살려달라고 말을 하는 걸 보면 페이텔이 이 근처에서 누군가한테 두들겨 맞고 있기라도 한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딱히 느껴지는 기운이 없는데.”
꼭 32번 섬 인근이 아니더라도, 청새 군도 어디든 페이텔이 궁지에 몰릴 정도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면 일행이 모를 수가 없었다.
“우어어어억.”
“그각, 어거걱!”
율리안과 칼토르의 발작이 이어졌다.
“야, 얘들아. 정신 좀 차려봐라. 응?”
“그극, 페, 페이텔, 저, 전투 중, 입, 어억.”
“뭐? 전투? 아니, 어디서 싸우고 있다는 거야.”
“무라칸, 비행해서 군도 전체를 싹 살펴봐.”
무라칸이 본모습으로 변신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도 누군가 싸우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역시 아무것도 안 보인다, 꼬마.]“기록창에도 딱히 전투에 대해 떠오르는 기록은 없어, 진.”
이내 진은 결론을 내렸다.
“흠, 그렇다면 두 가지네. 하나는 페이텔이 이곳에 남은 그람의 기운을 통해 그냥 교감만 시도한 경우겠지. 전투는 다른 지역에서 하는 중이고. 두 번째는 아공간.”
빡, 빡!
별안간 무라칸이 지상에 내려앉으며 율리안과 칼토르의 등을 한 대씩 후려쳤다.
“컥!”
“커헉!”
“무라칸, 무슨?”
“내가 맛 갈 때마다 꼬마 네가 이렇게 하면 좀 돌아왔던 것 같아서.”
“율리안이랑 칼토르 님은 너만큼 튼튼하지 않다고. 특히 칼토르 님은 이제 막 회복해서 허약한 상태인 데다, 그런 방법이 통할 리가, 있네……?”
“허억, 헉.”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긴 했으나 율리안과 칼토르는 정신을 되찾고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아공간입니다, 진 경. 천둥신 그람의 무덤…… 페이텔 님은 지금 그곳에서 전투를 하고 계십니다!”
율리안이 소리쳤다. 그와 칼토르는 페이텔과 교감하는 동안 그가 처한 상황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페이텔은 지금껏 그람의 무덤, 즉 아공간 속에 숨어서 지내고 있던 것이다. 왜 숨었던 것인지는 이제부터 알아봐야 했다.
“어떻게 진입해야 하지?”
“지금 페이텔 님이 입구를 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나, 어려운 모양입니다. 그런데 무라칸 님이 저흴 때려서 교감이 끊기기 직전, 갑자기 진 경을 찾더군요.”
“나를?”
“예, 진 경은 무덤의 열쇠가 되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꽤 위급한 상황인 모양인데, 용케 네가 우리 연합원이 되었을 가능성을 떠올렸나 보군.”
“그런 것 같습니다.”
시그문드엔 여전히 그람의 문양이 빛나고 있었다.
“내 검을 어떻게 사용하면 된다고 했나?”
“잠시 후 페이텔 님이 진 경께 소통을 시도해서 설명해주실 겁니다.”
그 말처럼 진은 곧 페이텔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이봐! 진 룬칸델……! 내 목소리가 들리나!]다른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페이텔의 목소리는 진의 내면이나 머릿속에서 울리는 게 아니라 시그문드의 검신에서 퍼지고 있었다. 검신엔 어느새 그람의 문양과 더불어 페이텔의 문양도 떠오르고 있었다.
[어이, 들리냐고! 얼른 대답 좀!]페이텔의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진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주 익숙한 상황인 것이다.
다급한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를 뜯어낼 수 있는 상황. 상대가 신이라 할지라도 예외는 없었다.
“들린다. 그런데 누가 내 허락도 없이 시그문드에 깃들어도 된다고 했지? 꼴에 그람의 형제라고 그 기운을 흉내 내서 깃든 건가? 어쨌거나 불쾌하군.”
진은 일부러 목소리를 내리깔며 대답했다. 루나와 룬티아는 오랜만에 보는 막내의 영악한 모습에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 좀 도와다오!]“내가 왜? 난 그쪽한테 좋은 기억이 별로 없는데 말이지.”
“그건 너무 정이 없으니 부하 같은 동료라고 해두지. 그런데?”
[그럼 날 도와줘야지, 지금 내가 여기서 소멸하면 율리안은 별다른 능력 없는 인간으로 전락하는 거다!]“싫다면?”
[제발! 지금 내가 진짜로 소멸할 수 있단 말이다!]“아니지, 아니지. 부탁하는 자세는 그게 아니야. 정말 내 도움을 원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신으로서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해라. 내 도움을 받아 살아남은 이후엔, 바멀 연합을 위해 무엇이든 헌신하겠다고.”
애초에 진 일행이 페이텔을 찾아온 목적은 그것이었다. 이 재수 없는 신의 권능을 통해 황금함대와 라프라로사 해방 사업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것이다.
페이텔의 인성을 잘 알기에 처음부터 폭력과 협박을 전제로 인원을 모아왔다. 지금은 페이텔의 약속을 받아낼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이었다.
[하겠다, 약속할게!]“말뿐인 약속은 의미가 없어. 쉬누처럼 불의 인장 같은 절대적인 신뢰의 수단을 보여줘. 그러면 즉시 우리가 전력으로 너를 도울 것이다. 참고로 지금 이곳엔 나를 포함해 인세제일검에 가까운 기사가 셋에, 전성기의 힘을 대부분 되찾은 무라칸이 있어. 히스터가의 마법사도 있고.”
[크아아악! 나는 쉬누처럼 그런 최상급 권능은 쓸 수 없단 말이다!]“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우린 이만 돌아갈 테니 알아서 잘 살아남아 봐.”
진이 정말로 자리를 뜨려는 듯 납검하려는 찰나, 시그문드의 칼날 위로 글씨가 떠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폭풍의 인장이었다. 불의 인장처럼 그 문장은 절대적인 신뢰를 품고 있었다. 쉬누의 인장보다는 분명 질이 떨어졌지만 말이다.
“와, 이 양반. 그렇게 급한 상황에서도 우릴 속여먹으려고 했네. 그런데 꼬마는 보통 지독한 놈이 아니거든. 진작 이렇게 나왔으면 서로 좋았잖아. 체면 구길 일 없이.”
“접수 완료되었습니다, 폭풍의 신이시여. 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나이까?”
[지금! 지금 검을 통해 문을 열 테니 빨리 무덤으로 들어와!]“예, 준비 완료입니다. 어서 열어주시길.”
진이 대답하기 무섭게 시그문드에서 시퍼런 뇌기가 쏟아졌다. 명왕족의 기운과는 조금 다른 빛깔을 띤, 페이텔과 그람의 뇌기였다.
뇌기는 곧 원형의 차원문을 개방했다. 차원문 너머는 온통 폭풍과 천둥 번개가 가득한 풍경이었다.
일행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인간과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는 페이텔의 모습과, 그를 압박 중인 정체불명의 실력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총 다섯인가?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로군.’
진이 페이텔의 앞에 자리를 잡으며 적들을 살펴보았다.
페이텔은 방금까지 궁지에 몰린 기색이 역력했다.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고 숨은 거칠었는데, 적들은 모두 멀쩡한 상태였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페이텔, 용케 지원군을 불렀군.] [저자는, 진 룬칸델인가? 그리고 그의 수호룡 무라칸과…… 백경, 룬티아인 것 같군. 페이텔이 룬칸델과 연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적들은 진과 일행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진은 계속 그들이 묘하게 익숙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루나와 룬티아도 마찬가지였다.
‘아, 설마?’
-어디서 한바탕 하다 오신 모양이군. 파이라는 어린 용과 똑같은 냄새가 나. 피와 재, 전쟁의 냄새지. 혹시 불의 땅이라는, 당신의 영역이 습격이라도 받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는걸.
-[하하, 놀랍구나.]
-신의 위엄으로 아무리 감추려 해도 소용없소. 내 눈에 당신은 지금 상당한 부상에 빠진 환자처럼 보이거든.
-[그래, 정확히 보았다. 방금 전, 내 영역을 침범한 녀석들을 처리하고 오는 길이다.]
쉬누가 티칸에 현현했을 때 나눈 대화.
당시 쉬누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이들을 ‘태양신교의 사제’라 표현했었다.
-[태양신교의 사제는 대부분 망자, 과거 이름이 드높았던 영웅들로 구성되어 있다.]
-부활한 옛 강자들이라, 지긋지긋하군.
-[모두 집념이나 원한을 품은 채 죽은 이들이지. 태양신이 부활하면 원하던 바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어 사제가 된 것이다.]
진은 처음 보는 적들이 낯익은 이유를 깨달았다.
모두 역사책에서 본 적이 있는 전설적인 인물인 것이다.
“창왕 카이만 유론, 미친개 트락스 쿤겐, 쿠라노의 방벽 루진 티펀, 권제 친 마이어, 투신 투자드 아틸라…… 생각지도 못한 선배님들을 뵙게 되는군요. 반갑습니다, 룬칸델의 소가주 진 룬칸델입니다.”
유론, 쿤겐, 티펀, 마이어, 아틸라. 그 다섯 가문은 진 일행 대부분과 모두 간접적인 관계가 있었다.
모두 과거 룬칸델에 의해 멸문당한 가문인 것이다. 폭풍성엔 아직도 해당 가문들의 비전서가 남아 있었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무인들의 세계가 원래 그런 법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른 분들은 몰라도…… 쿤겐가의 선배님은 지금 감히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시면 안 될 텐데요. 네놈들이 멸망한 건 200년 전에 폭풍성을 습격해 룬칸델의 아이들을 죽인 결과니까.”
트락스 쿤겐은 당시 쿤겐의 가주로서 200년 전 폭풍성 암살을 직접 주도한 장본인이었다. 트락스는 진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형형한 살기를 드러냈다.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페이텔은 우리가 데려가야겠으니, 선배님들께선 지금 즉시 사라져주십시오. 산나의 명령인지 베라딘의 명령인지는 몰라도 돌아가서 저와 누님들, 무라칸을 만났다고 하면 아마 잘 물러났다는 소리를 들을 겁니다.”
그 말에 투자드 아틸라가 진에게 검을 겨눴다. 여기 있는 태양신교의 사제들 사이에선 그가 우두머리격 인물이었다.
[말이 많구나, 내가 만난 룬칸델들은 그렇지 않았거늘. 와라.]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투자드와 눈을 맞췄다.
“안 그래도 선배님의 이명이 투신이라는 게 껄끄럽던 차였습니다. 제가 아는 투신은 한 사람뿐이니, 오늘 그 격을 알려드려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