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136
“잠깐, 그 양반을 용궁에 보낸 이유가 여차하면 월식을 탈취해 오기 위해서라고?”
아라크네는 잭이 한동안 안 보이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았다가 대경실색했다.
처음에는 월식이 뭔지 몰랐으나, 카인의 부하들이 설명해 준 내용을 듣고는 입을 떡 벌렸다.
“아니, 댁들 안 그래도 적이 많은 상황에서 용궁까지 적으로 돌릴 생각이야?”
카인은 그런 아라크네의 반응에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뭐야, 걱정해 주는 거냐?”
“걱정은 무슨! 댁들이 망하면 나도 끝장이니까 그러지!”
아라크네는 본인이 원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조직에서 탈주하여 카인에게 붙은 꼴이 되어 있었다.
조직과 황실 양쪽 모두 그녀를 잡으면 가만두지 않으리라.
이러한 와중에 카인이 사라지면 답도 없다.
어느 쪽이든 잡혀가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몰랐다.
잘은 몰라도 자결하는 편이 훨씬 나을 거라는 건 확실했다.
“걱정 마라. 잭에게는 월식을 대체할 시원석 봉을 들려 보냈으니까.”
“시원석 봉?”
“전에 나이트레이에 들렸을 때 좀 챙겨왔거든.”
탑 소드 1라운드 당시 광휘제는 개회식에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이 스텔라리움에 있음을 내보였다.
카인은 그 사실이 확인되자마자 나이트레이에서 레지나와 접선.
시공단열의 힘으로 추적을 피해 국경을 넘은 바가 있었다.
“시원석 봉이라면 그 월식이라는 걸 대신할 수 있는 거예요?”
“당연히 대신할 수 없지.”
“네?”
“그게 가능했으면 광휘제가 진작 시원석 좀 떼어주고 월식을 받아왔지. 시원석 봉으로는 기껏해야 용궁이 천천히 가라앉게 해주는 정도밖에 안 될 거다.”
잭은 카인을 따르는 기사들 중에서도 진법에 능통한 진법가인 기사였다.
잭이 고안한 진법을 새긴 시원석 봉은 월식을 완전히 대체하는 게 아니라 잠깐 부하를 버텨주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시원석이 심검이 아니면 깎아내는 것조차 불가능한 소재라는 걸 생각하면 용궁의 진법은 그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시원석 봉이 용궁을 붙잡아두는 동안 일을 끝마치고 월식을 돌려놓는다. 그러면 돼.”
“……하지만 그 월식은 수인들의 동의 없이 훔쳐오는 거죠?”
아라크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카인을 바라봤다.
대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기사들 사이에서도 카인은 과격파로 통한다.
그 말은 일반인의 시선으로 보면 카인도 완전히 맛 간 인간이라는 뜻.
‘제국의 황제한테 칼을 겨눈 것만 해도 제정신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남의 집 기둥을 훔쳐놓고 집이 무너지기 전에 돌려놓겠다니.
정신이 나가도 단단히 나간 발상이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얻은 월식으로 뭘 할 생각인데요?”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다고 생각해 던진 질문이었으나, 이어지는 말에 아라크네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광휘제 암살.”
종말의 영약을 먹어치운 역사상 최강의 기사를 암살하겠다는 발언.
다른 사람이 했다면 코웃음 쳤을 이야기였으나 팔심검의 주인이 말하자 무게가 달랐다.
“그러니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성공하든 실패하든 월식은 용궁에 반환될 테고.”
거기까지 가면 월식이 중요한 게 아니지 않냐는 소리가 턱 끝까지 차올랐으나 아라크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 이 인간한테 잡힌 거 사실 큰일인 거 아니야?’
물론 큰일이 맞다.
* * *
쿠구구구구!
용왕궁 축지진의 폭주는 용궁 전체의 지진으로 이어졌다.
“소요!”
“말 안 해도 하고 있어요.”
레지나는 황급히 소요를 찾았으나 그녀는 이미 진법의 안정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법의 중추인 월식이 보관된 곳 부근을 물리적으로 공격당한 건 바깥에서 어떻게 한다고 고쳐질 문제가 아니었다.
“잭 그놈이 결국 사고를 친 건가! 들어가서 놈을 잡아오겠다.”
“멈춰요.”
소요는 레지나가 용왕궁으로 진입하는 것을 말렸다.
“축지진의 폭주로 저 안은 지금 공간이 뒤섞이고 있어요. 진법에 대해서 모르면 영원히 길을 헤매게 될 거예요.”
시공단열이라면 용왕궁을 통째로 날려 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간 월식이라는 축을 잃은 용궁 전체가 붕괴한다.
“게다가 저 안에는 아직 티우가 남아 있으니 무작정 부술 수도…….”
그 말에 노아가 뒤도 안 돌아보고 용왕궁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노아!”
“스승님!”
노아가 사지로 뛰어드는 것을 본 한별이 그 뒤를 따랐고,
“나와 싸우다 말고 어딜 가는 거야!”
나루마저 용왕궁에 뛰어들었다.
그 모습을 본 레지나는 표정을 굳히고 소요를 바라보았다.
“길 안내를 할 사람이 있으면 되는 거겠지? 누군가 길잡이를 붙여다오.”
허나 소요는 말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거면 됐어요.”
“됐다니 도대체 뭐가…….”
소요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레지나는 자신을 바라보는 신산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레지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있었다.
* * *
용왕궁 안으로 들어선 노아는 길이 매순간 바뀌고 있음을 깨달았다.
폭주하는 오러의 흐름은 물론이고 안에 들어온 노아의 움직임마저 진법을 변화시킨다.
‘정확한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그대로 진법 안에 갇힌다.’
머리가 아파올 정도로 집중한 노아의 눈에는 다음으로 이어지는 생로(生路)가 보였다.
허나 생로는 방금까지 눈앞에 있다가도 어느 순간 수십 킬로미터 바깥에 나타나곤 하며 계속 그 위치가 바뀌고 있었다.
멀리서 나타난 생로를 향해 달려가 봐야 도달하기 전에 위치가 변하기 일쑤.
폭주한 축지진은 진법을 보는 눈만 가지고는 돌파할 수 없었다.
‘진법의 생로가 가까운 곳에 나타나길 기다리는 건 너무 오래 걸려.’
노아는 갈 수 있는 위치에 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대신 오버드라이브를 사용했다.
“6단계 개방.”
2단계만으로도 집성제의 분신을 압도한 오버드라이브를 단번에 6단계까지 끌어올렸다.
카인과 함께 시험해 본 것조차 4단계가 최대.
4단계만으로도 후유증에 앓아누웠던 노아였으나 후유증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7단계 이상은 아직 제어가 불가능하니 이게 사실상 현재의 노아가 낼 수 있는 최대 출력.
“후욱.”
호흡과 함께 도약한 순간 주위의 경치가 뒤로 밀려났다.
두 번의 도약으로 생로에 도달, 다음 방으로 넘어온 노아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계속 달렸다.
한순간에 수십 미터를 뛰어넘는 속도로 달리면서도 눈은 계속해서 다음 길을 찾는다.
한 번만 삐끗해도 이상한 공간으로 날아갈 위험한 일이었으나, 혼란 속에서 생로를 찾는 건 익숙했다.
‘우장왕이랑 내기바둑 할 때가 더 어려웠어!’
그런 식으로 몇 개의 공간을 넘어서자 낯선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수인이 아닌 인간.
그것만으로도 노아는 그가 이번 일에 깊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 너는…….”
남자는 혼자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티우의 오러가 잔향처럼 남아 있었다.
콰앙!
노아의 도약을 본 남자는 순식간에 자세를 잡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을 휘감은 강철의 속성변환.
불의 속성변환으로도 뚫기 힘든 강력한 방어를 자랑하는 속성이었으나, 지금의 노아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호신강기를 두른 손을 내밀어 상대의 검을 붙잡는다.
손바닥에서 피가 흘렀지만 노아는 아랑곳 않고 힘을 주었다.
그리고,
콰지직!
속성변환을 두른 검기가 깨져 나갔다.
이어서 상대의 손목을 꺾은 노아는 남자의 멱살을 잡아 들었다.
“티우는 어디 있지?”
“너, 너 그 눈은……!”
“용왕궁 안에 여자애가 하나 남아 있었을 텐데.”
“……그 애랑은 축지진이 폭주하면서 떨어졌다. 적어도 마지막으로 봤을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으니 걱정하지 마라.”
잭은 상대가 흥분했음을 읽고 얌전히 질문에 대답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대장의 아들인가. 무슨 힘이…….’
수인도 아닌 인간이 강철의 검기를 맨손으로 쪼개다니.
‘부모의 재능을 모두 이어받았다더니 정말 괴물이군. 이런 건 파브리스의 가주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만.’
신체 능력도 신체 능력이지만 저 연보랏빛 눈동자는 그가 마안의 각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뜻이었다.
‘혼자서 여기까지 왔다는 건 거의 개안 직전이라고 봐도 되겠지.’
어쩌면 근시일 내에 최연소 마스터 나이트의 기록이 다시 갱신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끝으로 잭은 다시 눈앞의 일에 집중했다.
“계속 변화하는 용왕궁 내부에서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을 거다. 피차 이 상황이 진정되길 원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나와 월식으로 가지 않겠나?”
“내가 당신의 뭘 믿고?”
“나한테는 이게 있거든.”
잭은 숨겨두었던 시원석 봉을 꺼냈다.
그런 기다란 봉을 잘도 숨겨들고 있었구나 싶은 모습이었지만 노아의 시선은 봉의 표면에 빼곡한 문양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이트레이의 학생이라면 이게 뭐로 만들어진 건진 알 수 있겠지? 이걸 이용하면 일시적으로 용궁의 축을 두 개로 늘려 흔들림을 멈출 수 있다. 물론 사용할 수 있는 건…….”
“당신밖에 없겠지. 특정 오러가 아니면 작동할 수 없게 만들어놨군.”
“거기까지 알아보는 건가? 문무겸비 그 자체로군.”
지금이라면 저 진법을 자신도 쓸 수 있도록 개조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안 돼.’
진법이 새겨진 곳은 바로 시원석의 표면.
개조한 진법을 만들 순 있어도 그걸 저 표면에 새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카인 님의 부하다. 네게 해가 될 일은 하지 않아.”
약간 못 미덥긴 했지만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실제로 봉의 표면에 새겨놓은 흔적은 초승달 군도의 지하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했으니까.
노아는 표면에서 기승전결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월식이 있는 곳까지 갈 방법은?”
“월식의 위치는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곳엔 강력한 장막이 펼쳐져 있어 내 힘으로는 들어갈 수 없더군.”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노아의 힘이라면 봉을 찔러 넣을 틈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으리라.
“좋아. 안내해.”
* * *
노아가 티우를 찾는 대신 잭과 함께 월식이 있는 방에 가기로 결정했을 때.
정작 티우는 바로 그 월식이 안치된 방에 날려 와 있었다.
우웅! 우웅!
“으으윽……!”
축지진이 뒤엉킬 때 이동하며 머리를 부딪혔던 티우는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이제야 깨어났다.
깨어난 티우는 주위에 가득한 선술 오러에 반사적으로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아직 제어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이만한 오러를 접했다간 그대로 폭주할 위험이 있었다.
허나 집중을 위해 검의 손잡이를 잡은 티우는 곧이어 떨고 있는 것이 자신의 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웅!
“검이 울고 있어……?”
티우는 비슷한 현상을 본 적이 있었다.
“완성된 성련검이나 혹은 완성되기 직전의 성련검이 우는 건 본 적이 있지만 네가 왜……?”
티우의 성련검은 초승달 군도에서의 활약으로 광휘제가 하사한 것.
당연히 완성까지는 아직 한참 남은 검이었다.
“설마?”
하지만 강력한 오러로 인해 완성이 앞당겨진 것은 노아의 암월도 마찬가지.
티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중앙에 위치한 월식에서는 막대한 선술 오러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사방은 완전히 막혀 물리적으로도 축지로도 완벽히 차단된 공간이었다.
어지간하면 소요의 구조를 기다리는 게 맞겠으나…….
“지금 상태로는 몇 분도 못 버텨. 내 오러가 여기에 휩쓸려 폭주하는 게 먼저일 거야.”
티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검을 뽑아들고 월식에 다가갔다.
최대한 자신의 오러를 진정시키며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었다.
우웅! 우우우웅!
월식의 빛에 맞닿은 검이 미친 듯이 진동했다.
검의 표면이 허물처럼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아래로 드러난 표면은 흑요석처럼 새까맣게 빛났다.
또한 그 표면에는 하늘의 별자리가 새겨졌다.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에 만들어진다는 사인검을 닮은 모습.
산군의 피를 이은 그녀를 닮은 호랑이의 기운이 담긴 검이 완성되었다.
티우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떠오르는 이름을 중얼거렸다.
“호시탐탐(虎視眈眈).”
티우가 그 이름을 부르자 방 안에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