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77
“어휴. 남쪽에서 더워가지고 여름옷 좀 샀더니 짐이 한가득이네. 옷장도 하나 더 필요하려나?”
“어? 노아 왔냐? 옷장 필요하면 빈방에서 가져다 써. 먼지 털고 마당에서 말리면 그럭저럭 쓸 만할 거야.”
노아가 방문을 열어놓고 짐을 정리하고 있자니 지나가던 시바가 인사해 왔다.
“시바 선배. 개학식에서는 별일 없었죠?”
“개학식에 별일이랄 게 있겠냐. 그보단 네가 더 별일 있어 보이는데.”
시바는 그렇게 말하며 노아의 등 뒤에 서 있는 유니아를 향해 눈짓했다.
유니아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말없이 팔짱을 끼고 노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 눈에만 보이는 거 아니지? 귀신이라던가.”
노아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굴고 있어서 시바로서는 그 점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제 동생이라는데 아무래도 사춘기인가 봐요.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춘기? 아니, 그보다 ‘동생이라는데’는 또 뭐야? 동생인 거야, 아닌 거야?”
“글쎄요? 앞으로의 행동에 따라 동생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잉?”
시바의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하자 노아는 유니아를 돌아보았다.
리히테나워 가문은 노아의 할아버지인 빈센트의 은거 이후 봉문에 들어갔다.
고작 전대 가주가 은거했다고 봉문까지 할 리는 없었고, 뭔가 이유가 있는 모양인데 거기까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다만 리히테나워에서는 이번에 봉문을 끝내며 세상에 다시 나왔다.
유니아는 바로 그 과정에서 나이트레이에 입학하게 된 인물로, 현 가주의 적통이었다.
즉, 빈센트의 손녀.
노아의 여동생이라는 소리였다.
“제가 서류상으로는 저 집 아들로 되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뭐야 그게?”
“아무튼 말하자면 복잡해요.”
서류상 노아의 아버지는 현 리히테나워 가주다.
다만 친부는 아니었다.
인연이라고는 빈센트를 통한 인연이 전부.
‘때문에 어디까지나 남남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만…….’
저쪽에서 먼저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래서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건데요? 랭킹전은 그렇다 쳐도 아버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니까요.”
유니아가 랭킹전을 거절당하고도 계속 노아를 따라온 이유.
그것은 바로 리히테나워의 가주가 현재 노아를 만나기 위해 나이트레이에 와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그냥 데려오라고만 하셨지만. 그래도 데려가기 전에 실력 확인 정도는 해보고 싶었는데.’
혈육도 아닌 타인을 위해 가문에서 이렇게까지 해준다는 건 노아라는 인물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일 터.
‘분명 실력이 상당할 거란 말이지.’
사실 이유는 갖다 붙였을 뿐 노아랑 붙어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렇다고 규칙을 무시하는 성격은 아니라서 노아가 상위 랭커와 하위 랭커 간의 랭킹전은 불가능하다고 하니까 바로 얌전해지긴 했다.
“짐만 놓고 간다니깐. 아무튼 선배, 저는 서류상 아버지 좀 만나고 올 테니까 티우 오면 말 좀 해줘요.”
“어, 어어…….”
시바는 떠나가는 노아와 유니아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 애의 오러, 분명히 8대 가문 쪽…… 모르겠다, 노아가 알아서 하겠지.”
지금은 후배의 가정사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개학하자마자 역대급 빅 매치 소식이라니. 이번 학기는 재미있겠어.”
* * *
레지나는 유니아가 노아를 데려오는 동안 리히테나워의 가주인 미하엘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랬더니 그 영감탱이가 뭐라고 한지 아십니까? 얼굴도 모르는 녀석을 제 아들로 만들었다고 합디다. 자식도 유니아 하나밖에 없는데 뜬금없이 후계 문제로 고민하게 만드는 거죠.”
“아, 예.”
하염없이 어색한 모습.
레지나와 미하엘은 초면이었다.
비록 빈센트가 레지나의 스승이라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공적인 관계였다.
게다가 빈센트가 은거한 이후 리히테나워 가문은 봉문에 들어갔으니 도중에 만날 일도 없었다.
때문에 서류상이라곤 해도 노아의 아버지 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걱정하던 레지나로서는 그 호쾌한 성격에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가문 문제로 곤란하신 겁니까? 그렇다면 제 쪽 호적에 올려도 됩니다만.”
레지나는 미하엘이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하는지 몰라 해본 말이었다.
허나 미하엘은 그 말을 듣자마자 표정을 싹 바꾸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파양을 하려고 했으면 그간 얼마든지 기회는 있었습니다.”
“예?”
“자식과 부모의 관계는 원래 스스로 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노아가 제 피를 잇지는 않았지만, 제가 그 아이를 자식으로 받아들였다는 건 부모자식으로서의 모든 책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뜻과 같습니다.”
미하엘은 레지나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같은 마스터 나이트라면 마스터 나이트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는 진심이었다.
“물론 저는 아직 얼굴 한번 못 본 사이지만요. 하하, 이랬는데 정작 걔가 나를 싫다고 하면 쪽팔려서 어쩌나? 그때는 제발 모르는 척해주십시오. 애들 앞에서 말씀하시면 저 밤에 잠 못 잡니다.”
미하엘은 레지나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성격은 안 맞지만.’
사적으로 친해지기에는 말이 너무 많다.
하는 행동만 보면 그 누구도 미하엘을 8대 가문 중 하나의 수장이자, 마스터 나이트인 인물이라곤 생각하지 못하리라.
솔직히 말해 그냥 동네 아저씨 같았다.
“혹시라도 노아가 리히테나워 가문을 이어받고 싶다고 한다면 유니아와 합의를 봐야죠. 무력이든 설득이든 일단 합의를 보고 나면, 그다음에는 두 아이의 보호자로서 둘 다 달래줄 테지만요.”
“상당히 열린 사고방식을 가지고 계시군요.”
“그냥 현실감각이 없는 걸지도 모릅니다. 가주가 되긴 했어도 내내 봉문했던 탓에 나이만 먹었거든요. 속은 완전 앱니다 애.”
말은 그렇게 해도 저런 생각은 쉽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여차하면 노아의 편을 들어줄 생각으로 뛰쳐나온 레지나였으나, 아무래도 그럴 필요는 없던 모양이었다.
벌컥!
“아버지!”
“여긴 우리 집도 아닌데 예의를 차리는 척이라도 하지 그러냐.”
“앗, 죄, 죄송합니다!”
당당히 문을 박차고 들어온 유니아는 핀잔을 듣자마자 허리를 푹 숙였다.
유니아는 날 때부터 집안이 봉문 상태였기 때문에 좀 버릇이 없긴 했어도 경우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한편 노아는 미하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르셨다기에 왔습니다만 그러면 이분이……?”
“그래. 인사해라.”
노아를 미하엘과 인사시킨 레지나는 유니아를 데리고 자리를 비워주었다.
“차는 좋아하니? 꼴에 학교장이라고 차나 다과류가 선물로 많이 들어온단다.”
“예? 예! 당연하죠! 단 걸 싫어하는 기사가 어디 있겠어요? 무지 좋아합니다!”
기사는 칼로리 소모가 높은 만큼 먹는 것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디저트류는 그중에서도 양에 비해 칼로리가 높아 일상적으로 먹곤 했는데, 그걸 감안해도 유니아는 꽤나 흥분한 모습이었다.
레지나는 이런 경우를 자주 보아서 알고 있었다.
‘나한테 환상을 품고 있는 쪽인가.’
나이트레이에 오기 전까지 기사 레지나의 활약상은 가히 전설적이었다.
또한 한창 전쟁으로 침체된 사회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영웅화 된 부분도 있었다.
덕분에 신입생을 받다 보면 자신을 우상으로 보고 있는 이들도 많았는데, 유니아가 딱 그런 케이스로 보였다.
‘저 나이가 될 때까지 집 안에만 박혀 살았으면 그럴 만도 한가.’
어찌 보면 노아와 비슷한 케이스였다.
그렇게 나쁘지 않은 분위기에서 이야기가 이어졌고, 미하엘은 자식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리히테나워 영지로 돌아갔다.
“이야기는 끝났니?”
“네,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받은 덕에 재미있게 됐어요.”
“생각지도 못한 제안?”
미하엘과의 이야기를 마친 노아가 돌아와 보니 이쪽은 초면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고슴도치 같던 유니아가 완전히 풀어져서 헤실헤실하고 있을 정도.
“어떻게 하신 거예요? 엄청 까칠하던데.”
“학교장 하다 보면 싫어도 애들 다루는 기술이 늘어.”
유니아는 8대 가문 출신답지 않게 순박한 편이었다.
“그래서 노아 너는 이제 어쩔 생각이냐?”
“이번 학기는 수업 적당히 듣고 영약 흡수에 전념하려고요.”
지금의 노아라면 타인의 도움 없이도 영약을 최대 효율로 흡수할 수 있었다.
다만 양이 양이다 보니 전부 흡수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러 자체가 적으니까 무형검 연습도 계속 쉬어야 해서 비효율적이고. 일단 이것부터 끝내는 게 낫겠죠.”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탑 소드에서 얻은 걸 제대로 소화해 내기만 해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질 테니.”
얻은 게 한두 개가 아니라서 그것만 해도 한 학기는 훅 지나갈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쉽구나.”
“네?”
“이번에 랭킹전 도전권 결재가 올라왔거든. 그거 보고 이참에 이번 학기에는 랭킹전을 장려해 보려고 했지.”
“도전권이라면…….”
899기 지옥주간은 유래 없는 탈락으로 재시험까지 진행된 바가 있었다.
그 당시 노아와 티우 두 사람만이 첫 시험에서 합격하여 레지나에게서 원하는 상대와 자유롭게 랭킹전을 치를 수 있는 도전권을 얻었다.
노아에게 주어진 도전권은 프랑크를 상대로 썼다.
그리고 티우에게 주어진 도전권은…….
“선발전 때 연습을 도와주고 우르슐라 선배가 받아갔다고 들었는데. 그거 분명히 팔았다고…….”
“거래하지 말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헌데 제출자를 보니 확실히 우르슐라 그 녀석이 가장 비싸게 쳐줄 놈을 잘 찾아서 판 모양이더구나.”
“누가 누구한테 썼는데요?”
“둘 다 네가 만나본 적 있는 사람이란다.”
* * *
몇 시간 전.
개학식이 끝난 직후, 부동의 15인 전원이 한 자리에 모였다.
15위 오필리아
14위 나이로비 미니미
13위 리나리아 리베리
12위 로젤리아 리베리
11위 베로니카
10위 페르난도 나르바에스
9위 비타 아그리파
8위 테리 맥도웰
7위 가이잭 파브리스
6위 셰리 르클레르
5위 밀리아 린드버그
4위 아니스 파브리스
3위 율리우스 싱클레어
2위 알렌 마이어
“어라? 이거 내가 제일 늦었나?”
마지막으로 들어온 아슬란은 멋쩍은 듯 웃으며 비어 있는 1위석에 앉았다.
“빨리빨리 좀 다니지? 진행자가 가장 늦으면 어쩌자는 거야.”
“미안, 미안.”
늦게 와놓고도 생글거리는 그 모습에 심기가 뒤틀린 이들도 있었지만 할 수 있는 건 고작 앞으로는 빨리 다니라는 말이 전부였다.
랭킹 1위.
나이트레이의 모든 학생들을 쓰러뜨린 최강자이자, 학교장 다음가는 권한을 지닌 권력자.
그런 아슬란이 1위의 모든 권한을 이용해 제정한 규칙은 부동의 15인이라고 해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가 소집한 거야?”
“아슬란 아니었나?”
“황녀님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개학 직후 소집이다 보니 다들 내용은 모르는 채 일단 소집이라고 응한 상태였다.
“내가 불렀다.”
그런 상황에서 앞으로 나온 것은 바로 알렌 마이어.
펠릭스의 형이었다.
“원래는 아슬란 네 녀석만 개인적으로 부를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전달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나 보군.”
아슬란을 언급하는 그 말에 부동의 15인 전원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소집 내용은 관심도 없이 딴청만 피우던 이들도 지금만큼은 눈을 크게 뜨고 알렌을 바라봤다.
“랭킹전 신청이다, 아슬란.”
“……나에 대한 랭킹전 신청은 막아뒀을 텐데?”
아슬란이 가진 1위 권한 중 일부는 사도 학생들을 향한 무분별한 랭킹전을 막는 데 쓰이고 있었다.
또한 그 점을 위해 아슬란이 수정한 교칙에 따르면 아슬란 본인 또한 보호의 대상이었다.
모든 랭킹전을 거절하는 건 기존 교칙에 완전히 위배되니 불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슬란에겐 랭킹전을 걸기 힘들 정도로 많은 조건을 달아놓은 것.
하지만 알렌은 이미 수속을 끝마친 상태였다.
탁!
“도전권이다. 내가 사용해도 되는가에 대해선 이미 학교장님께 확인을 받아뒀으니 걱정할 거 없다.”
알렌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도전권은 바로 티우가 받았던 그것이었다.
“하아, 우르슐라 이 녀석…….”
나이트레이 내에서 랭킹 1위인 아슬란보다 권한이 높은 단 한 사람.
학교장이 직접 발행한 도전권은 아무리 그라도 거부할 수 없었다.
“졸업 전에 누가 최강인지 가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