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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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魍魎)
천겁령의 주인은 현재 북천(北天)이다. 사천멸겁(四天滅劫)이라 불리던 공포의 대상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두려운 힘을 지닌 자로써, 남천과 서천이 부재중인 현재는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천겁령과 팔왕의 회담이 시작되기 반시진 전 –
야안의 보각루(寶却樓)의 최상층에 앉아있던 북천은 옆에 서 있는 대공자 비에게 말했다.
” 남천(南天). 네 실력으로 팔왕 중에서 누구를 이길 수 있겠는가?”
대공자 비, 이제는 북천멸겁에 의해서 정식으로 남천멸겁(南天滅劫)으로 임명받은 사내는 차가운 눈동자를 들었다. 그의 눈빛에는 예전과는 달리 기이한 신광(神光)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간 각고의 수련을 통해 암뢰(暗雷)를 다루는 실력이 2단계나 상승했기에 그 자체로 심즉살(心卽殺)에 가까운 기세를 내뿜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남천 비가 나직이 대답했다.
” 금포염왕과 천무대제라면 승산이 있습니다. 허나 그 외에는 장담을 할 수 없습니다.”
” 좋군.”
북천이 웃는건지 으르렁대는건지 모를 목소리로 말했다.
” 자신의 실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
” ……”
” 우리에게도 힘이 모이기 시작한다… 머지 않아 전력(全力)을 동원할 때가 올 것이다.”
남천 비는 북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지만 굳이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사실 팔왕과 대적하기엔 천겁령의 힘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전성기의 천겁령이라면 모르겠지만 양대무신의 그늘에 가려져 세력만 키워온 상태로써는 팔왕을 감당하기 힘들다. ‘그’가 나서준다면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팔왕과의 동맹에서는 다소 처지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북천은 죽어지내고만 있을 인물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중원제패를 노리고 백여년 이상 힘을 키워온 마왕(魔王).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팔왕의 세력이 약해지는 틈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 너는 종남제일검이라 불린 사내를 만나본 적이 있다고 했었지.”
” 네. 회유하려 했었습니다.”
” 흥미가 있어.”
북천은 앉아있던 태사의 끝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남천 비는 그게 북천이 생각에 잠길 때 하는 버릇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 보고가 틀리지 않았지면, 그는 죽기 직전에 분명히 하은천의 천의무봉(天衣無縫)을 깼다… 하찮기 그지없는 종남파의 무공에 완벽무결(完壁無缺)의 완성형을 깰만한 비기가 있었다는 말인가…?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종남파의 무공을 발 아래로 깔아보는 발언. 하지만 북천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중원무림의 태두라는 소림사나 무당파의 무공조차도 북천의 무공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에 불과했으니. 그런만큼 북천의 놀라움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북천이 이토록 말을 하는 건 남천 비로써도 드물게 보는 일이었다.
이따금 무공을 전수할 때나 중요한 작전을 지시할 때도 북천은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았다. 입가에 약간 희미한 미소를 띄운 비가 대답했다.
” 그의 무공은 육합(六合)의 원류(元流). 어떤 무공이든 극에 이르면 필히 역전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 물극필반(物極必反)만으론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뿐 천의무봉의 소유자에게 역전타를 먹일 순 없다. 종남제일검에게는 무언가 다른 힘이 숨겨져 있었던 게 분명해.”
” … 한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 뭐지?”
” 원영신(元靈身).”
쿠웅
그 순간 북천이 강하게 태사의를 내리쳤다. 강하게 부정하는 기세였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을 번득이며 말했다.
” 말도 안 되는 소리! 내 스승조차도 그런 미친 짓은 하지 않았다. 무간(無間)과 영겁(永劫)속에서 사겁(四劫)을 쌓는다는 건 도가 놈팽이들의 부질없는 신화(神話)일 뿐이다. 네놈이 감히 나를 농락하려는 것이냐?”
” 아닙니다.”
비는 북천의 강압에도 기죽지 않았다. 암뢰가 새로운 경지에 오르면서, 그는 준 팔왕급의 실력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실력차도 많이 줄어들었다. 원래 무공의 진척이 막혀있던 남천 비였으나 화산지회에서 유천영과 만난 이래로 갑작스레 자극을 받은 덕분이다.
그는 잠시 허공을 쳐다보았다.
” 제가 알고 있는 유천영이라면 할 수 있었을 겁니다.”
북천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
남천 비는 차갑고 잔인한 성격만큼이나 자존심또한 강했다. 북천 앞에서는 많이 숙이고 들어갔지만 실질적으로 패왕(覇王)의 기질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의 측근인 마천칠걸에게도 함부로 칭찬을 하지 않는 남천 비가 한 인간을 이토록 높게 평가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 재미있군! 하지만 그는 이미 죽었다.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겠지.”
” ……”
비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도 이성으로는 죽은 자가 살아돌아올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천영과 직접 만나서 겨뤄보고, 마주대한 경험이 판단을 망설이게 했다. 왠지 그는 아무리 죽여도 죽여도 되살아나는 불사신(不死神)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유천영이 살아있을 거라는 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딸랑….
잠시 후 종소리가 실내에 울려퍼졌다. 팔왕(八王)이 회담을 위해서 야안 보각루에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물론 이번에도 태왕과 유검은 참석하지 않겠지만 하은천이 직접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중을 나가야 했다.
” 가지.”
당금강호에서 하은천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세 손가락에 꼽히는 절대고수니까.
보각루 1층에는 천겁령의 비밀부대 40여명이 은신해서 진을 치고 있었고, 외곽에도 많은 부대가 잠복하고 있었다. 천천히 계단으로 걸어내려가던 북천과 남천의 눈에 네 사람의 인영(人影)이 비쳤다.
그들 중 선두에 서 있던 말끔한 문사차림의 청년이 북천을 목격하자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 반갑소 북천. 그간 잘 지내셨소?”
북천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온화하게 대답했다.
” 동방지존(東方之尊)께서 내 몸을 걱정해 주다니 영광이오. 이를데없이 잘 지냈소이다.”
” 중요한 자리인데 태왕과 유검이 참석 못한 사실을 유감스럽게 생각하오.”
” 별 일 아니오. 우리든 그대들이든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 것이오.”
정치적인 안부인사를 나눈 그들은 약간의 잡담을 나눈 뒤 천천히 회의를 위해 마련된 밀실으로 걸어들어갔다. 북천 곁에 시립해 있던 남천 비는 힐끔 따라오는 세 사람의 팔왕(八王)을 쳐다보았다.
‘ 천무대제, 적멸존자, 금포염왕… 이들이 친(親) 하은천파로군.’
그들 중에서 비와 눈이 마주친 천무대제가 웃었다.
” 남천. 본노(本老)에게 할 말이 있소이까?”
” 딱히 없습니다.”
” 허허. 나는 할 말이 있군. 부하들의 살기(殺氣)를 좀 낮춰주시게.”
번뜩
그 순간, 장내에 은신해 있던 천겁령 부대원들이 갑자기 은신해있던 장소에서 몸을 사시나무 떨듯 하며 쓰러졌다. 천무대제가 그들의 살기를 불쾌하게 여겨서 단번에 어검술과 환마술(幻魔術)로 20여명을 제압해버린 것이다. 이 자리에 모인 건 하나같이 일류고수 이상의 정예였는데 놀라운 신위였다.
” 다 죽여버릴지도 모르니까.”
으름장놓는 기색에도 남천 비는 불쾌해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저희 부하들이 무례를 저질렀군요. 사죄드리겠습니다.”
” 허허.”
천무대제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적멸존자와 금포염왕은 신경조차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던 남천 비가 주먹을 조용히 말아쥐었다.
‘ 암뢰 칠식(七式)을 사용한다면 승률은 7할… 하지만 나도 죽을 확률이 높다. 이게 팔왕의 수준인가…’
어쩌면 이 자리에 서천(西天)을 데려오는게 좋았을지도 모른다.
남천 비는 회오리치는 생각을 접어둔 채 회담실로 걸어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