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31)
먼치킨 길들이기 131화
짧은 침묵이 지나갔다.
“대공녀는 사람을 현혹할 줄 아는군.”
“어른의 조언을 따랐을 뿐입니다.”
아이 앞에서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프랜시스가 가볍게 웃었다.
“혹 대공녀는 다른 방법이라도 염두에 두고 있나?”
“아뇨. 전혀 감이 안 잡혀요. 모르겠습니다.”
키네미아의 당당한 발언에 어안이 벙벙해진 우진이 머리를 감쌌다.
“그렇다면-”
“그런데 정말 신이 인간들에게 답이 없는 질문을 내렸을까요?”
그 어려운 질문의 답은 아직 알 수 없다.
지금 키네미아가 이해한 상황의 본질은 에이얀이 없는 세상을 짧게 사는 것과 에이얀과 함께 기나긴 생을 살아가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저는 제 방법을 찾아보겠어요.”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을 텐데도?”
이번에도 긴 시간이라고 돌려 말했을 뿐이지, 그가 말하는 건 끝없는 영생을 뜻했다.
키네미아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내게 선택권을 맡기니 좋은 결과를 맞이했다고 했지.”
그녀가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그럼 이번에도 내가 가는 길이 맞겠지.”
우진은 난처한 듯 웃었고 프랜시스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의자에 등을 묻었다.
“걱정 마세요. 절 지켜보셨다고 하셨죠. 저는 리온이에요. 책임을 지는 건 익숙해요.”
그때, 어디선가 조그마한 진동이 일었다. 가만히 느껴 보니 주위의 공기가 불규칙하게 부르르 떨고 있었다.
‘지진인가?’
하나 이 원인 모를 진동에 신경을 쏟는 건 키네미아뿐이었다. 맞은편에 앉은 둘은 평온한 기색 그 자체였다.
해서 그녀는 진동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들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네가 한 말에 따르면 에이얀이 힘을 제어하지 못하게 될 거라는 거지? 무슨 이유로?”
“갖가지 이유가 있었지. 늘 한 가지 이유만은 아니었어. 하지만 대부분은 ‘그자’가 관여한 일이었지.”
“그자?”
“요제프 크로츠에 대해 들은 바가 있어?”
“요제프…… 크로츠?”
크로츠란 성을 달고 있다면 에이얀과 관련된 인물인가?
고민을 이어가는데 재차 진동이 이어졌다.
동시에 누군가 분주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벌컥 문이 열렸다.
“폐하!”
황실 전속 기사단장이었다. 그의 뒤로 기사들이 줄지어 따라와 있었다.
그러나 급박한 기사의 외침에도 황제는 평온한 기색이었다. 마치 무슨 일이 생겼는지 전부 알고 있는 것처럼.
“……?”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키네미아가 이를 의아하게 여길 즈음 우진이 말을 이었다.
“요제프 크로츠는 에이얀 크로츠의 아버지야.”
* * *
한때는 아이를 사랑하려고도 해 보았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자의 부인은 아이의 이름을 ‘에이얀’이라고 지었다.
요제프는 에이얀이란 이름만 남아 버린 제 자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과 새하얀 얼굴. 내 자식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많이 닮은 아이.
이제 갓 3살이 된 에이얀은 말을 빠르게 익혔지만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마저도.
요제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눈앞에는 한때 인간이었던 것이 고깃덩이가 되어 있었다.
어떤 무형의 손 같은 것이 그들의 앞을 막아선 빚쟁이의 몸을 위에서 아래로 꾸욱 누른 것이었다.
그는 무언가 펑, 터지던 소리를 머리에서 떨치려고 노력했다.
“그, 러면, 안 돼. 에이얀.”
배 속에서 울컥 튀어나오는 듯한 말은 형편없이 더듬거렸다. 내 목소리가 이렇게 얼간이 같았나?
누군가 심장을 쥐어짜는 듯 괴로웠다.
당장 주저앉아 구역질을 하고 싶었으나 아이는 제 아비의 손을 땀이 나 미끌거릴 정도로 잡고 있었다.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한때는 분명, 사랑하려고도 했었는데.
‘그런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은 어떠한 것을 사랑한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가?
그것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거대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아이의 그림자에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그건 아이의 감정에 맞춰 행동했고, 자비와 사랑이 없는, 마치 무생물 같은 신처럼 느껴졌다.
‘왜 나한테 이런 끔찍한 혹이 생긴 거지?’
무심코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갈 때였다.
“왜?”
줄곧 침묵하던 아이가 입을 열며 갸웃 고개를 기울였다. 그와 함께 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데구루루, 작은 물까치 한 마리가 생명을 잃은 채 발치께로 떨어졌다.
‘이걸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단 말이야!’
요제프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손을 잡고 놓지 못하는 아이도 대롱대롱 딸려가듯이 달렸다.
아이는 잘 울지도 않았다. 종종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울지 않는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칭찬하며 떠벌거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른다. 아이답지 않다는 것이, 그 적막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지.
내심 알고는 있었다. 오히려 침묵하는 것이 아이가 사랑을 갈구하는 방법이란 걸. 제 아이에게 공포를 느끼는 아버지였으니까. 제가 다가가면 밀어낼까 두려워서 차마 입조차 떼지 못한다는 걸.
이는 그를 더 괴로워지게 했다.
그러한 와중에도 아이는 늘 어떤 ‘인간 너머의 것’이라는 생각이 서슬 퍼런 화살처럼 뇌를 꿰뚫고 지나갔다.
그럴 때면 숨통이 터질 것처럼 집으로 달려가 아이를 집 안에 밀어 넣었다. 그는 검은 동공으로 바라보는 아이를 모른 척하고는 부러 쾅 소리를 내며 문을 닫았다.
미친 듯이 바짓단에 젖은 손을 닦아 내었다.
아이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부모로서 아이를 사랑하지 못한다는 무능감, 실체 없는 공포로 떨어야만 하는 무력감.
남자는 가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주로 자신을 향한 연민이었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흉흉한 크로츠가의 이야기는 결코 숨길 수 없었다. 머지않아 횃불을 든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결국에는 마을에서 쫓겨나게 됐다.
그렇게 되자 남자는 아이의 손을 놓아 버렸다.
“우린 놀이를 하고 있는 거야. ……알지?”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여기서 100부터 숫자를 거꾸로 세고 있으면 찾으러 올 거다.”
어차피 거짓말인 걸 저 무서울 정도로 똑똑한 아이는 다 알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것이 오판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마 아이가 숫자를 전부 세고,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사라진 이후였을 것이다.
‘설마 왕국 하나를 삼켜 버릴 힘이었을 줄이야.’
이야기를 듣던 줄리안 에버렛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층민들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군.”
그의 짧은 평가에 요제프가 샐긋 웃었다.
“그렇지요. 어리석은 자의 비극일 뿐이지요.”
이자는 이용할 만했다. 처음부터 느꼈다. 그에게서는 제 아들과 비슷한 냄새가 난다는 걸.
“특별한 힘을 알지 못하는 무지렁이의 최후지.
에버렛은 작게 중얼거렸다. 마치 제 과거를 떠올리는 것처럼. 그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잠시 시간을 죽였을 뿐이라는 듯, 다시 인부들에게로 몸을 돌렸다.
마침 일을 마친 인부들이 손을 들어 올렸다.
“쓰러집니다! 피하십시오!”
한 손에는 검을, 한 손에는 투구를 든 동상이 끼익, 소리를 내며 쓰러지고 있었다.
제국의 영웅, 아이리아 리온의 동상이었다.
성대한 장례를 치른 후, 리온에서는 볕이 잘 드는 교외에 그녀를 이장했다. 거기엔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그녀의 동상도 함께였다.
리온의 역작이 무너지는 것은 그를 퍽 만족스럽게 했다.
“쥐새끼 같은 놈!”
문득 경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케네스 리온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건 어린 줄리안이 셀테어의 기록을 찾기 위해 황실의 비밀 서고에 몰래 들어갔던 때였다.
제대로 죽지도 않아서 애를 먹였던 그 노인네.
아마 지금의 그를 완성시킨 건 케네스 리온일 것이다.
진심으로 경멸하는 눈빛, 목소리.
그 한마디가 줄곧 뇌리에 남아 줄리안 에버렛을 완전하게 만들었다.
“잘 봤느냐? 네가 저주해야 하는 사람은 저 사람이다.”
이야기를 듣고 그를 데리러 온 선대 에버렛 공작이 줄리안에게 그렇게 속삭였을 때, 그는 조금 기뻤던 것도 같다.
바닥을 뒹굴고 있는 아이리아 리온의 동상을 보고 있자니, 그 딸의 얼굴도 떠올랐다.
‘키네미아 리온.’
얼굴을 본 건 그 연회 날이 처음이던가.
반짝이는 금발에 그린 듯이 예쁜 얼굴을 되새기자 묻어 두었던 옛 기억도 함께 생각났다.
‘아, 그때도…… 본 적이 있었지.’
그는 아이리아 리온의 장례식장에서 제 아빠를 보며 소리 없이 울던 여자아이를 떠올렸다.
우는 아버지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던 아이.
‘즐거웠었는데.’
대공가의 귀한 핏줄들이 그렇게 제 손아귀 안에서 농락당하고, 무너지는 모습에 얼마나 짜릿했던가.
그 아이의 귓가에 속삭여 주고 싶었다.
‘그거 아니? 네 할아버지도, 엄마도 전부 내가 그런 거란다.’
줄리안 에버렛은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점점 그녀와의 만남이 기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