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40)
먼치킨 길들이기 140화
“나, 나도 몰라. 중요한 사령이라고만 들었다.”
“저렇게 흉흉한 사령이 있다고?”
의문스러워하는 키네미아의 목소리가 닿자 그것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저게 고작 시체일 뿐이라고? 새카만 두건에 가려져 도무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빤히 바라보자 그것은 흥분한 듯 덜컹거리며 일어섰다. 다만 사령이기 때문일까. 몸을 잘 가눌 수 없던지 좌우로 무척 휘청거렸다. 때문에 그것의 모습은 더욱더 기이하고 기괴해 보였다.
“히이익!”
늙은 기사는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며 소리 질렀다.
“당장 떨어져야 돼! 죽고 싶어? 저건 맨손으로 수백의 기사를 죽인 괴물이야!”
스르릉- 철컹.
그것은 이제 저를 속박하던 쇠사슬을 맨손으로 잡아당겼다. 쇠사슬에 빼곡하게 적힌 주술사의 주술들이 빛을 발했다.
그것은 쉬이 끊어지지 않는 것이 거슬렸는지 더 큰 힘으로 몸부림쳤다.
철컹, 철컹, 철컹- 텅!
“으아아아악!”
팔을 속박하던 쇠사슬이 하나 끊어지자 늙은 기사는 꼴사납게 숲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내 그것이 손으로 두건을 잡아 뜯었다.
지지지지직-
검은 두건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
순간, 키네미아가 늘 사랑해 마지않던 적갈색 머리칼이 흘러내렸다.
전장을 집처럼 떠도는 여느 기사들처럼 짧은 머리를 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딸아이가 제 머리카락을 땋아 주는 걸 좋아했기에 그녀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긴 머리를 고수했었다.
키네미아의 손에서 푸른 검이 흐르듯 떨어졌다.
“-엄마.”
이지를 잃은 텅 빈 녹색 눈동자가 키네미아를 향했다.
그녀가 움직이는 데 걸린 시간은 1초도 되지 않는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긴 시간 수련을 거듭해 왔던 키네미아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속도였다. 그녀의 손에서 오러가 흘렀다.
‘공격당한다……!’
검을 놓친 것은 찰나의 실수였다.
‘엄마……!’
끝을 직감한 키네미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오러를 감은 손은 젊은 기사의 얼굴을 쥐고 있었다.
기사는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제, 발.”
그녀는 아이가 무서운 장면을 보지 못하도록 품 안에 가두었다.
퍽-
아이리아 리온은 누구보다도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엄마가 늦어서 미안해. 우리 작은 토끼.”
* * *
예상했어야 했나?
죽은 자가 돌아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에이얀은 푸른 잔디가 깔린 정원에 앉아 마력을 끌어 올려 보았다.
반응하지 않는다. 몸에 알 수 없는 제약이 걸려 있는 듯했다.
‘아니면 정신이든지.’
대충 추론해 보자면 그가 과거를 떠올리도록 환각 마법을 건 것에 이어, 아버지를 대면한 후에 흔들리자 정신계 마법이 침투한 것이다.
그리고 마법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인지하게 만든 것일 터.
다시 되돌아온 고향. 증오와 분노로 가득했던 그 시절. 돌아오지 않아야 했던 아버지.
정신을 쪼개 빈틈을 만들기에는 좆같이 훌륭한 연출이었다.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병신같이 휘둘려서는 이런 빌어먹을 상황에 빠지다니.
‘씨발.’
지금 그는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내 머릿속에 무엇을 심고 어떤 인지를 제한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나는 뭘 잊고 있지?’
분명 무언가를 떠올려야 했던 것 같은데.
그는 우선 어려진 제 모습을 훑으며 과거를 샅샅이 살펴봤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요제프 크로츠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그런 비슷한 계통의 능력도 없는 완전한 무능력자.
그렇다면 죽음 속에서 무언가를 깨닫기라도 한 것일까.
에이얀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가라앉혀야 했다.
이곳은 되살아온 고향답게 과거의 기억 속 바로 그 크로츠가의 땅이었다.
크로츠 가문의 집은 정원이 딸린 4층짜리 저택이었다. 이 지역에서는 꽤나 세력가이기도 했고 별것 아니긴 하지만 나름 작위도 가진 귀족가였다.
아내의 죽음으로 술독에 빠져 급격하게 가세가 기울었지만, 요제프 크로츠는 지난 영광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집 하나만은 놓을 수 없다며 수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
어린 에이얀은 그런 아버지가 안쓰러웠다.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가 자신을 사랑해 주길 바랐다.
그래서 아버지를 괴롭히는 모두를 죽였다. 당시의 에이얀에게는 어떤 다른 현명한 선택지가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부자의 관계는 진창에 빠지는 것처럼 멀어지기만 했다.
그런 발버둥 자체가 문제였나?
제 과거를 곱씹던 에이얀이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어리석다. 이런 불안과 혼돈은 상대의 마법이 깊은 곳까지 침투하도록 길을 열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 다시 돌아가야 해.
하나, 어디로 돌아가야 하지?
새하얀 얼굴이 어른거리려던 그때였다.
“목마르지?”
요제프가 정원 테이블 위에 물을 올려 두었다.
에이얀은 찰랑이는 물잔을 바라보다 그를 올려다보며 빈정거렸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와 이제 날 맛있게 먹어 치울 셈인가?’
그리 말하려 했건만.
“…….”
뻐끔거리기만 할 뿐,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그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많이 놀랐나 보구나. 천천히 하자.”
요제프가 다정히 말한 후에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네게 그동안 미안한 일들이 많았지. 내가 어리석었어. 후회한다. 정말, 내 아들에게 그러면 안 됐어.”
내 아들, 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자 에이얀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힘들었지?”
요제프의 따스한 손이 에이얀의 손등 위에 포개졌다. 삽시간에 에이얀의 얼굴에 고통스러운 기색이 퍼졌다.
씨발. 차라리 그를 어둠 속으로 처박은 날 원망하고 잡아먹으려 하는 게 나았을 텐데.
“얀, 이제부터는 아버지랑 행복해지는 거야.”
이건 마치 어린아이의 유치한 꿈 같잖은가.
“미안하다, 얀.”
왜 어리석은 마음은 고삐를 잡을 수 없는지.
그는 거짓 꿈에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26장 maternal affection
“가지 마. 약속했잖아!”
아이리아 리온이 출전 준비를 위해 갑옷을 챙기던 중이었다.
제 앞을 막아선 어린 딸을 보며 아이리아는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이번에는 집에 오래 있을 거라고 했잖아. 저번에도, 저저번에도.”
어린 키네미아는 지난 약속들을 되새김질하며 손을 꼽았다.
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미아랑 함께 있을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전장에 나가면서 어린 딸을 떼어 놓기 위해 그녀가 으레 하던 약속들이었다.
“그리고 내일은 소풍도 가기로 했으면서.”
어젯밤 침대에서 그랬잖아. 같이 숲으로 나가서 토끼를 찾아보자고.
키네미아가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치맛자락을 꼭 쥐고서는 눈물을 그렁그렁 채우자, 그녀는 아이를 안아 들었다.
“미아 두고 가지 마.”
엄마에게 우는 자식을 두고 떠나는 일은 늘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엄마는 나를 사랑하니까, 조금 더 떼를 쓰면 같이 있어 줄 수도 있으니까, 오늘을 후회하며 다음에는 떠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키네미아는 그런 생각으로 부러 아이리아를 나쁜 엄마로 만들곤 했다. 나를 두고 떠나는 엄마의 마음이 아프기를 바랐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엄마가 미안해. 그렇지만 엄마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인 걸.”
“미아도, 미아도 엄마가 이써야 돼.”
코를 훌쩍이며 키네미아가 그녀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녀는 아이의 작은 등을 토닥거렸다.
하지만 키네미아가 아무리 서글피 울어도 아이리아는 출전에 한해서만은 마음을 굽힌 적이 없었다. 짊어진 것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가지 않으면 다른 친구들에게 슬픈 일들이 생길 거야.”
“미아는 친구 엄써.”
키네미아가 눈썹을 잔뜩 치켜올리고는 뿔이 난 듯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이리아가 난처하게 웃었다.
“친구는 언제든 노력하면 생길 거야. 엄마는 앞으로 우리 미아가 만나고 사랑할 모든 사람들을 지키러 가는 거야.”
그녀가 해야만 하는 의무에 대해 설명해 봤지만 어린 키네미아는 못마땅한지 입만 삐죽거렸다.
“다음에는 엄마가 약속 꼭 지킬게. 응?”
그녀가 다정하게 말했다.
“싫어. 안 믿을 거야. 거짓말이잖아.”
“아니야, 약속할게. 다음에는 정말 숲에 가자. 토끼랑 다람쥐도 찾고 꽃도 따고 향이 좋은 버섯을 찾아서 먹어 보자.”
“버섯은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고 유모가 그랬눈데.”
“응, 미아 혼자 찾으면 절대로 안 돼. 그렇지만 엄마는 야영을 자주 해서 먹어도 되는 버섯들을 잘 알아. 대단하지?”
“웅.”
“금방 다녀올게. 엄마 너무 미워하지 마.”
키네미아는 떠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아이리아는 수많은 약속만 남기고 떠나 버렸지만.
그래도 내가 어떻게 엄마를 미워할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