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26)
EP.27)열리는 개학 시즌 # 2
027 – 가슴이 열리는 개학 시즌 # 2
“짐들은 다 확인한 것 맞습니까? 다시 한 번만 체크 해보죠.”
나는 인부들을 향해 빠트린 항목과 물품이 있는 건 아닌지 마지막 체크를 일렀다.
오늘은 교단의 땅에 짐과 사람을 보내는 첫 날.
빠트린 것이 있다면 꽤 곤란해지기 때문에 아무래도 깐깐하게 살피게 되는 것이다.
“야!”
그때 누군가가 나의 등을 손바닥으로 팡-하고 쳤다.
덕분에 나는 앞으로 넘어질 뻔 했지만 가까스로 어떻게든 버틸 수가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햇볕 아래로 반짝이고 있는 금발의 묶음머리가 보인다.
“야, 태오. 뭘 그렇게 자꾸 확인해? 이제 곧 있으면 출발할 시간이잖아.”
엘가의 파란 눈동자는 어딘가 나를 비난하는 것처럼 찡그려져 있었다.
이제 그만하고 성황국으로 떠날 준비를 끝내라 이거겠지.
“엘가 님이었습니까?”
“내가 몇 번이나 불렀는데 말이야. 최근 며칠 전부터 영 집중도 못하고. 뭔가 숨기는 사람처럼 불안해 보이고. 역시….”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 같더니 이내 입을 다물어버리는 엘가였다.
내가 불안해 보인다고?
엘가 나름대로 직관적인 관찰력이었다.
나는 지금 꽤 여러모로 복잡한 고민들을 앓고 있었다.
스토리를 비틀기 위해 아이라의 아카데미 행을 고려한 것은 나였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것이 과연 정말 최우선의 수였나-라는 느낌이 든다.
하물며 나 태오 가스펠이 단순한 단역으로 소모되는 악인 캐릭터가 아닌 앙그마르 마왕의 후예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부터 도무지 진정을 할 수가 없었다.
자꾸만 다리가 떨리고 눈앞이 아찔아찔해진다.
내 정체가 발각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 일단 침착하자.
너무 부산 떨면 되는 일도 안 되는 법이다.
「침착한 상황 판단!
재능 《침착한 사고》에 의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모든 직업 경험치 + 5」
후.
나는 심호흡으로 마음을 골랐다.
여러 문제들을 한 번에 떠안았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라면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차근차근 맞이하는 법이다.
“그래서, 엘가님은 괜찮은 겁니까?”
“뭐가? 내가 안 괜찮은 일이 뭐가 있어? 겨우, 고백 좀, 들은 거로-.”
“아뇨. 그것 말고. 오늘 교단의 방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것에 회의적인 입장이지 않았습니까?”
“아, 그거. 나도 당연히 그거 말하는 줄 알고 있었지. 안 괜찮을 게 뭐 있어? 거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일 텐데. 좀, 귀찮은 놈들도 있긴 하겠지만.”
스릉-.
엘가는 자신의 등에 메고 있던 거대한 할버드를 뽑아들어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저 무거운 것을 저렇게 쉽게 들어 올린다니. 현실감이 없다.
“거길 가면, 이걸 좀 더 잘 다룰 수 있게 된다는 거 아냐. 그치?”
“그렇겠죠?”
스륵-.
적당히 말하며 나는 가느다란 눈을 뜨고 나의 재능 《십리안》을 발동시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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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엘가 폰 리오네스 lv. ??
직업 : 귀족영애 lv. 5
처형자 lv. 8
여기사 lv. 9
전략가 lv. 7
[잠금] lv. ?
재능 : 《열정적 사고》 《자유분방》
성향 : 혼돈-중립.
명성만으로 우는 아이를 뚝 그치게 만드는 대가문의 장녀입니다.
답답한 것을 싫어하고 몸으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귀족영애답지 않다는 말을 종종 듣고, 그것을 은근히 신경 쓰고 있습니다.
[잠금]
[잠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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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잠금 항목이 많구만.
레벨도 물음표고.
하지만 밝혀진 것들만 봐도 엘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충분히 알 수가 있다.
처형자, 여기사, 전략가, 상당히 어울리는 항목들의 레벨이 7에서, 8에 가깝다니.
“뭐야,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드는데.”
그때 엘가가 미간을 찌푸렸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정보를 들여다보길 멈췄다. 스릉-하고 자신의 등에 할버드를 다시금 착용하는 엘가.
“그래서, 언제 출발하는 거야? 심심해 죽겠네. 야만인들과 싸우고 싶은 기분이야. 거기에 야만인들도 있으려나?”
그녀는 곧 근처에 있는 말 한 마리에 훌쩍 올라타 주변을 다각, 다각거리며 돌기 시작했다.
말을 능숙하게 타는 엘가를 향해 나는 방금 봤었던 항목들을 떠올리며 그냥 한 마디 슬쩍 해보기로 했다.
“무척 말을 잘 타시네요. 과연 귀족다우십니다.”
“흥, 이 정도야 리오네스 가문의 장녀로서 당연한 소양이 아니겠어?”
엘가는 당연한 소리라는 것처럼 코웃음을 쳤지만 나는 공중에 떠오르는 글자들을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제법 성공적으로 상대를 유혹 했습니다.
‘호색한’의 직업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 5 」
호색한이라니.
이런 식이구만.
다만 경험치는 5밖에 들어오질 않았다.
성과나 강도에 따라서 경험치의 양이 차등 지급 되는 것일까?
나는 혹시나 해서 엘가를 향해 “오늘 정말 아름다우십니다.”같은 말을 해볼까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그러나 저 멀리, 또각, 또각하고 구두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는 까만 머리의 여성을 보자 그런 것이야 아무래도 좋아졌다.
“날씨가 좋네.”
여왕 아이라가 따사로운 햇볕 아래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의 자태는 과연 햇볕과 주변의 꽃들에 지지 않을 만큼 화사하고 밝아서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녀가 걸어오는 이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주변의 아첨꾼들이 아이라를 향해 말했다.
“여왕님, 오늘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헤헤.”
“저 봄날의 태양과 꽃도 아이라님의 눈부심에 빛을 잃는 것 같군요.”
“흥-.”
그에 아이라는 코웃음을 칠 뿐.
저렇게 꼴 사나운 멘트들이라니.
나는 내가 엘가에게 저것과 비슷한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을 절실하게 반성하게 됐다.
아무리 경험치에 대한 실험이 하고 싶었어도 저런 말을 맨 정신에 하는 것은 좀….
또각, 또각.
마침내 아이라가 짐들을 가득 쌓아놓은 곳까지 도착했다. 언제나처럼 나른한 까만 눈동자로 짐들을 살펴본 아이라가 이내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친다.
“오랜만이구나, 태오.”
“예, 여왕님.”
“처리해야한다는 문제는 다 끝낸 것이니? 마물의 인권에 대한 법안 때문에 며칠 바빠서 집무실에만 틀어박혔다고 하던데.”
“예. 그렇습니다. 덕분에 최근 일 주일 잠도 못자고 철야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구나. 나는 네가 일부러 나를 피하는 줄 알았지.”
아이라의 말에 내 등 뒤로 서늘한 한기가 스쳐지나간 기분이었다. 솔직히 일부러 아이라를 피하는 것도 있긴 있었다.
왜냐하면, 아이라는 타란테라 가문의 가주이자 앙그마르의 현 여왕.
몰락한 전 왕조의 후예인 나와는 그야말로 상극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존재였으니까.
혹시 그녀가 나의 변화를 알아챌까 두려워서 마음의 정리가 될 때까지는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는데.
역시 세상이라는 것은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지긋이.
여왕의 까만 눈동자가 나의 눈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은 마치 내 모든 걸 꿰뚫어보는 것처럼 느껴져서 나는 우수수 돋아나는 소름들을 참아야만 했다.
그녀에게도 《십리안》을 사용해 볼까?
아니, 이렇게 마주보고 있는 지금은 도무지 용기가 안 난다.
내가 글자를 들여다 볼 때면 엘가와 마르마르가 그걸 어렴풋이 눈치 챘었지.
7위계의 대마법사인 아이라라면 분명 그 이변을 알아낼 것이 확실했다.
스으윽-.
그때 아이라의 손이 나를 향했다.
뭐지? 내 꿍꿍이를 눈치 챘나?
내가 목을 움츠릴 때 그녀는 곧 내 머리칼에 붙어 있는 자그마한 무언가를 때어내 손바닥 위에 올려둔다.
“실거미가 한 마리 붙어있구나.”
그것은 새끼손톱만큼 작은 거미였다. 아마 불어오는 바람에 거미줄을 타고 내 머리에 달라붙어있었던 모양이다.
“내 언니가 말했지. 실거미를 발견하는 건 좋은 징조라고. 이제 슬슬 준비가 되었으면 떠나도록 하자.”
아이라의 지시에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곧 왕궁의 한 구석에 놓인 오랜 마법진 위로 차곡차곡 짐들이 쌓인다.
육망성과 오막성 그리고 번잡한 문자들이 어지럽게 음각으로 파여 있는 석조 마법진. 그 크기는 대략 스무 평 될까 말까.
그곳 위에 발을 올리며 엘가가 가느다란 눈을 뜬다.
“정말 여기 위에 올라가면, 성황국까지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는 거야? 엄청 신기한 마법이 다 있네. 원리가 뭐야?”
그에 손으로 마법진을 슥슥 훑으며 아이라가 답했다.
“자세한 건 알 수 없어. 그 마술사왕의 주문이니까. 그렇지만, 작동은 잘 되는 것 같네.”
웅웅-하고 마법진으로부터 기묘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제법 눈부시니까, 눈을 감는 게 좋을 거야. 그쪽에서 결계를 열고 입장을 허가하면. 눈을 떴을 때는 전혀 다른 곳에 있을 테지”
아이라의 눈이 주변을 향했다.
그녀의 눈앞에는 여왕의 여정을 격려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꽃잎을 이리저리 뿌리며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아이라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여왕폐하 만세-.
━앙그마르 왕국 만세-.
사람들의 목소리가 빛 사이로 번진다.
팟-!
마침내 작렬하는 듯한 광명이 모든 걸 뒤엎는다.
* * *
눈을 떴을 때.
나의 앞으로 보이는 것은 하얀 도료를 칠한 건물들이었다.
하얀 도료를 잔뜩 칠한 빨간색 지붕이 넓적한 건물들 말이다.
그것은 지붕을 높이 첨탑처럼 뽐내는 앙그마르 왕국 모나크 시티의 건축 양식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에 나는 이곳이 어딘지 단박에 파악할 수 있었다.
“여기가 성황국? 정말 눈 감았다 뜨니 전혀 다른 곳에 와버렸잖아!”
자신이 겪었던 일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입을 헤-벌리는 엘가.
이 세상의 주민인 엘가에게 있어서도 방금 있었던 전이 마법은 도통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나도 매우 놀라서, 솔직히 감탄밖에 나오질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그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하얀 로브의 사람들이 앞쪽에서 손을 활짝 펼치며 인사를 해왔다.
“어서 오십시오, 앙그마르의 귀빈들이여. 성황국에서는 그대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기, 안쪽으로 들어가시지요.”
그들은 성황국의 사절단으로 우리들이 온다는 연락을 듣고 반나절 전부터 이 마법진이라는 것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고 했다.
“저희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짐을 이리 주시지요. 나머지 짐은 마차로 오는 겁니까?”
하얀 로브를 입은 노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몇몇 사람들과 함께 일 주일 정도 후에 이곳에 도착할 거라고 봅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쪽으로 갑시다.”
우리는 그들의 손에 이끌려 궁정처럼 지어져 있는 건물로 향했다. 궁정이라기보다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잔뜩 장식되어 있는 대신전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도 같다.
실제로 신전이 맞겠지.
여기는 빛과 소금의 신을 섬기는 도시니까.
슥-.
나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런 나의 눈에 거대하고 동그란 반 구체 같은 것이 보였다.
그것은 하늘에 닿을 만큼 매우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엄청나게 거대한 반원 모양의 건축물.
색깔은 은빛. 금속 재질로 겉 부분을 둘렀는지 모르겠지만 꼭 무슨 아트홀이나 축구 경기장처럼 보이는….
아니, 나는 나의 의견을 정정했다.
저것은 방주다.
교단의 시설 아크.
저기가 바로 용사들을 육성하고 교육해내는 시설인 것이다.
내가 정말 여기에 엘가와 아이라를 데리고 왔다니.
이건 원작의 소설 스토리와는 아주 다른 범주의 진행 방식이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미지의 것에 대한 두근거림과 긴장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 내가 뭘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았다.
정적들을 피해 앙그마르 가문을 부흥시켜야만 하는 것.
아마 거기에 많은 답과 해답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 난데 없는 혼란들을 해결할 방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가 늘 계획하고 있었던 ‘살아남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일이었으니 그리 복잡한 일도 아닐 것 같았다.
그런데 가문의 부흥이라는 게 뭐지?
당장 직관적으로 생각해보면 가문의 이름을 양지 바깥으로 다시 드높이라는 말 같기도 한데….
어쩌면 가문의 생존자가 나밖에 없으니 결혼을 해서 앙그마르의 성씨를 이어 받을 아이들을 잔뜩 낳으라는 말일 지도 모르겠다.
「침착한 상황 판단! 올바른 길을 찾아냈습니다!
재능 《침착한 사고》에 의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모든 직업 경험치 + 50」
「직업 ‘반요정’ 레벨 1 상승!
Lv. 2 → Lv. 3
이제 더욱 요정스러운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구만.
이제 좀 이 시스템이라는 것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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