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341)
EP.342)오브 하트 # 11
342 – 퀸 오브 하트 # 11
호각(互角).
서로 역량이 같거나 그와 비슷한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서로 공방을 주고받으며 맹렬하게 전투하고 있는 두 여성을 나타내기에 그보다 적합한 말도 없을 터.
전력을 내기로 결심한 엘가는 몹시도 강했다.
그 아이라를 상대로 마나 쉴드를 펼치거나 다른 주문을 영창 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몰아붙이고 있는 모습은 흡사 나를 상대하던 때의 라인하르트를 떠올리게 했다.
강렬한 맹공.
영창 시간이 필요한 마법사를 상대함에 있어서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라 그랬었지. 하지만 2년 전의 아이라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거야, 응? 좀 더 반격해 봐!”
“…….”
기분 탓일지 모르겠지만 엘가의 공격을 아까부터 종이 한 장 차이로 아슬아슬 피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퍽 긴장감이 돌 정도.
그런 내 긴장감을 씻어준 것은 미르나였다.
“이제 슬슬 준비도 끝났으니 저 역시 가세하겠어요. 태오 경도 원거리 영격을 부탁드립니다.”
바닥에서 주워낸 검에 까만 먹 같은 것으로 글씨를 써 넣은 미르나. 그녀가 엘가와 아이라가 싸우고 있는 틈에 끼어들었다.
“리오네스 영애, 큰 소리 쳐놓고 몸에 상처가 잔뜩 늘어나고 있지 않나요?”
“뭣? 아니, 이건 일부러 맞아주는 거야. 내 무기 능력 모르냐? 내 피를 머금을수록 더욱 무겁고 파괴적으로 변하는 거.”
“그런 것 치고는, 호흡도 가빠보이는 군요. 제가 도와드리도록 할 테니까 작전 B로 가도록 하죠.”
“작전 B? 그런 게─.”
엘가의 도끼가 높이 치켜 올려졌다.
“─있었나!”
콰아앙.
무거운 도끼로 있는 힘껏 바닥을 내려치자 그대로 지반이 무너져 내려 아이라가 그 어둡고 깊숙한 나락 아래로 떨어진다.
콰르르르르르르!
“윽!”
그에 아이라는 거친 숨을 내쉬며 허공에 손을 뻗었다. 바닥 아래로 떨어지고 있던 그녀의 몸 뒤편으로 무너진 파편들이 발판처럼 부유한다.
하지만 그 모습을 미르나가 두고 보고 있을 리 없었다.
“좁은 발판을 만들어낼 줄 알고 있었죠.”
휙.
미르나가 팔을 휘두르자 그녀의 넓은 소매 품에서 팔랑팔랑 종이들이 튀어나갔다. 그것은 일종의 부적으로 각기 특이한 효과를 담고 있는 주술을 담고 있을 터.
촤악.
다만 아이라가 허공에 손을 뻗어 염동력을 통해 모조리 부적들을 갈라냈다. 기묘한 묘리를 담고 있다고는 하나 부적이 종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그때 미르나가 부채를 착 펼쳐서 자신의 얼굴을 반쯤 가렸다.
“찢어버릴 줄 알고 있었죠. 사실 그 부적은 찢어발기는 것으로 발동하는 것이랍니다.”
착, 착착.
여러 갈래로 찢겨진 부적들이 아이라의 몸에 달라붙는다. 마치 젖은 휴지가 벽에 붙는 것처럼 착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모양새.
“……!”
아이라는 그것을 잡아당겨 억지로 때어 내려고 했으나, 이내 몹시도 괴로운 표정으로 뿌드득 이를 갈았다.
“크윽….”
“강한 마력을 지닌 존재에게 더욱 끌리는 흡마술. 억지로 떨어트리고자 하면 괴로울 거에요. 이로서 당신의 마력과 위계는 약간 저하 될 터.”
부채 뒤로 후후-웃는 미르나. 곧 그녀는 품속에서 수많은 부적들을 날려 아이라의 몸을 뒤엎어 버렸다.
─종이 연옥.
촤르르르르르르.
알록달록한 종이에 봉쇄당하는 아이라는 마치 예술 작품 같았다.
마침내 여왕의 얼굴에 마지막 종이 한 장이 놓여 그 눈동자하나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그 구덩이 아래를 내려 보고 있던 엘가가 미간을 찌푸렸다.
“야, 이런 편리한 게 있으면 진작 좀 쓰지 그랬냐.”
“빈틈을 노릴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작전 B대로 잘 됐네요.”
작전 B가 무엇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으나 미르나와 엘가의 호흡은 꽤 잘 맞았다.
폭주한 발란 교수를 상대했을 때를 비롯해 여러 일들을 겪으며 함께 생사를 넘어왔기 때문인지. 아니면 라이벌이기에 오히려 잘 맞는 걸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그들이 함께 했을 때 만들어낸 시너지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커서. 비록 2년 전이라고는 하나 상태가 양호하지 못했던 아이라를 둘이서 제압했을 정도였다.
그때 엘가가 말했다.
“야, 태오, 네가 아무것도 안 한 사이에 우리들이 다 했다.”
그에 미르나가 쯧-혀를 찬다.
“리오네스 영애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군요? 태오 경이 타란테라 여왕의 마력 구사를 방해하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 쯤 누워 있는 건 저희였을지도 모른답니다.”
“그래? 진짜냐?”
내색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미르나의 말대로였다.
나는 아이라가 마법을 영창 할 때마다 그와 똑같은 속도의 영창을 거꾸로 읊어 마력을 흐트러뜨렸었다.
엘가의 맹공이 아무리 빠르고 뛰어났다고는 하지만 간간히 생겨나는 그 빈틈에 아이라는 포기하지 않고 마법을 구사하려고 했었으니까.
또 내가 마법을 공격마법을 영창해 아이라를 노렸다면 엘가와 미르나가 휘말릴지 모르니, 나로서는 최선의 서포트를 한 셈.
엘가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래? 몰랐네. 아무튼 제압했다. 비록 삼대 일이었지만 비겁하다고는 하지 않겠지, 아이라. 다 널 위해서니까 말이야.”
* * *
“이렇게 직접 보니까. 알 같네요. 태오 경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우리는 대량의 종이에 파묻힌 아이라를 위로 끌어올렸다. 그 동그란 모습은 미르나의 말대로 마치 부활절 달걀처럼 알록달록 예쁜 알 같았다.
아이라가 태어나는 알이라니. 왜인지 묘하게 야릇한 기분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걸까. 그 동그란 것을 슥슥 둘러보고 있을 때 턱을 쓰다듬고 있던 엘가가 물었다.
“그래서 이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나도 궁금하다.
이제 이 알을 어떻게 하는 거지?
그에 미르나가 답했다.
“이제 이 안에 들어있는 여왕을 설득해야겠죠. 그녀의 안을 좀먹고 있는 아르스 노바를 찾기 위해서는 여왕의 도움이 필수 불가결하니까요.”
“뭐야, 나는 얘를 쓰러트리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진짜 상대는 따로 있었단 말이냐?”
엘가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처럼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그에 미르나는 정말 질렸다는 표정으로 엘가를 바라봤다. 마치 혐오스러운 벌레라도 보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설명했는데 다 까먹었나요? 저희는 이곳에 아르스 노바를 쓰러트리기 위해 온 거잖아요. 타란테라 여왕이 아니라! 아까 전에 자기 입으로도 이야기 했었으면서.”
그렇구나.
나도 사실 조금 깜빡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아이라를 쓰러트리기 위함이 아닌 그녀의 안에서 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대주술을 제압하기 위함이었지.
아이라가 약간 최종보스 같이 우리를 압도하고 있어서 목표가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아이라를 쓰러트린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었구나!
“그럼 계속 진행하도록 하죠.”
으흠-하고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미르나가 종이로 만들어진 알에 대고 말했다.
“타란테라 여왕.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우리들은 당신을 돕기 위해 왔어요. 이 왕성 어딘가에 당신이 숨기고 싶거나 숨겨야만 할 무언가가 있을 거에요. 그게 어디에 있죠?”
깊은 무의식.
그 아래에 아르스노바가 도사리고 있을 터.
녀석이 우리를 향해 먼저 찾아와주지 않는 이상 우리로서는 그 녀석이 어디에 있는 지 찾으러가기 쉽지 않다고 그랬다.
그 녀석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은 오직 이 마음의 주인인 아이라 정도라고.
하지만 아이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알은 마치 무정란처럼 고요할 뿐.
나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주술에 문외한인 엘가가 물었다.
“원래 이런 거냐?”
그에 알을 톡톡 두드려보는 미르나.
곧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뭔가 이상하네요. 조금 더 저항을 한다거나 아니면 악에 받쳐서 소리쳐올 줄 알았는데. 정말 알처럼 고요하네요.”
혹시 아이라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아니면 기묘한 변화가 있다거나? 나는 그런 걱정을 하고 말았다.
“한 번 풀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만약 날뛰거나 하면 다시 제압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내 의견에 미르나는 흐응-긴 콧소리를 냈다. 그러나 아이라가 미동도 않고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지금 그녀로서도 별 다른 방법이 없었던 건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중얼중얼.
미르나의 진언이 읊어지고.
쩌적. 쩌저적.
종이 껍질로 만들어진 알의 표면에 알기 쉬울 정도로 표가 나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면이 박살나 터졌을 때.
스르륵.
그 안에서 까만 무언가가 그 깨진 틈으로 쓰러져 바닥에 넘어졌다. 땀에 젖은 머리칼 사이로 흐리멍텅한 눈이 나와 마주친다.
혹 봉인이 풀리자마자 덤벼오거나 하진 않을까 긴장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힘없이 축 늘어지는 그 모습에 맥이 빠질 정도다.
마치 갓 태어난 새 같다.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까만 깃털을 가진 새.
“아이라 님, 제 말 들리십니까?”
나는 아이라의 앞에서 손가락을 튕겨봤다. 하지만 아이라는 어딘가 정상이 아니라서 우리들의 말을 알아듣거나 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에 엘가가 인상을 와락 찌푸린다.
“야, 미르나. 지금 애가 완전히 망가졌잖아.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네가 정신에 무슨 짓 한 거 아냐?”
“그런 게 있었으면 얼마나 편리 했겠어요? 이건 제가 한 게 아니라─.”
서로 언성을 높이는 미르나와 엘가를 내버려두고 나는 눈에 생기 하나 없이 흐릿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라와 눈을 마주쳤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일찍이 원작에서 사냥꾼에게 패배한 여왕 아이라다. 그녀는 사냥꾼 파티에게 패배한 후 끝내 자포자기해 교수대에 목이 내걸렸었지.
그렇다.
자포자기.
지금 아이라는 붙잡고 있던 마음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아주 놔 버린 게 아닐까.
보이는 모습 그대로 여왕으로서 자존심 강하고 고고한 그녀니까.
자신이 침입자인 우리들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서 달아나 버린 것이겠지. 도망친 것이라고 해도 좋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것에서는 고개를 돌려버리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외면하려는 거야.
━저쪽에서 소란이 났다! 여왕님을 구해라!
━여왕님을 지켜!
그때 저 복도에서 갑옷과 무기가 요란히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횃불을 든 사람들이 이곳으로 우르르 몰려오는 기척에 나도 미르나와 엘가도 모두 당황해서 주변을 허겁지겁 둘러보기 바쁘다.
“태오 경, 일단 자리를 피해야겠어요!”
나도 미르나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서 아이라를 번쩍 들어 올린 채 일단 인기척이 제일 없어 보이는 쪽으로 내달렸다. 왕성의 안쪽은 나름 지리가 익숙한 편이니까.
하지만 어느 곳을 가도 병사들이 가득하다.
덕분에 막다른 길에 서서히 몰린 미르나가 혀를 찼다.
“아무래도 여왕을 순순히 넘길 생각이 없는 모양이에요. 이미 저희가 이 내부에 침입했다는 건 숨길 수 없이 들통 났어요.”
싸워야 하나?
─쉬이이잇, 이쪽으로 와.
그때 누군가가 덥석 엘가의 팔을 붙잡았다.
그 뜻하지 않은 상황에 우리들 모두 당황하게 되었는데. 이유인즉슨 막다른 벽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팔이 돋아나와 엘가의 손목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뭐야 이거!”
엘가는 정말 깜짝 놀란 듯이 보였다.
“함정인가!? 뭐가 날 붙잡아 당기고 있어! 생각보다, 힘이 강해!”
주우욱-하고 벽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엘가. 그러나 엘가 역시 완력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강했기 때문에 쉽사리 함정에 빠지진 않았다.
그때였다.
미르나가 그런 엘가의 등을 벽 쪽으로 휙 밀어버렸다.
“엇-.”
짧은 외마디 외침과 함께 벽 안으로 모습을 감추는 엘가.
“태오 경도 이쪽으로!”
동시에 미르나도 그 벽 안으로 모습을 숨긴다.
미르나가 뭘 하고 싶어 하는 지는 나도 알 것 같아서 벽에 대고 몸을 확 밀어 넣었다. 수욱-무언가 얇은 비누 막 같은 것을 통과한 기분이 되었던 것도 잠시.
내 눈앞에는 차가운 돌 벽과 돌 벽 사이에 만들어진 듯한 공간이 보였다.
작은 촛불이 타들어가고 있고 버려진 나무 상자를 이어 붙여 만든 침대 따위가 퍽 사람 사는 느낌을 물씬 풍겼다. 어째서 막다른 벽이라고 생각한 곳에 이런 공간이 있는 걸까.
뭔 지는 모르겠지만 살았다.
━어디 갔지? 여긴 막다른 길인데?
━몰라! 어서 여왕님을 찾아!
그때 내 뒤쪽에서 큰 기척이 들렸다. 내게는 마치 투명한 유리창 같은 것이 앞에 있어서 이 벽 너머의 상황이 훤히 보였다.
그들도 나를 볼 수 있는 건 아닌가 걱정됐지만 다행이 그러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매직미러 비슷한 것인가.
━너는 저쪽, 너는 나를 따라 저쪽으로 간다!
검과 창 그리고 횃불을 든 사람들이 사방을 헤집는 것 같다가 이내 뿔뿔이 흩어진다. 그때서야 우리는 모두 참고 있었던 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도움을 받았네요. 여기는, 아마도 나르미가 준비했다는 안전구역 중 하나인 것 같은데. 대체 당신은 누구시죠? 나르미가 숨어 둔 술법?”
예의바른 미르나가 먼저 감사인사를 표하며 정체를 물었다.
“하?”
벽에서 돋아났던 손의 주인은 그 인사에 괴상한 소리를 냈다. 곧 자신의 머리에 쓰여 있던 로브를 걷어내고 얼굴을 드러낸다.
“안전구역? 술법? 무슨 영문 모를 소리야? 여긴 내 집이야.”
촤르르-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금발. 그 사이로 보이는 하얀 얼굴에 푸른 눈동자가 어딘가 낯이 익은 것 같기도 하고 낯설다.
엘가를 완력으로 잡아당겼기에 더 우락부락한 사람이거나 남자일 줄 알았는데. 그 정체는 생각지도 않게 소녀였다.
생각이상으로 앳된 얼굴.
이제 한 열 네 살 다섯 살 됐을까. 하지만 나이를 온전히 가늠할 수 없는 것은 짧고 뾰족한 귀를 봤기 때문이다.
님프구나.
금발의 님프는 꽤 희소하다고 들었는데.
인형 같네.
그때 녀석이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그거 여왕이지? 여왕을 쓰러트려서 납치한다니. 당신들 정말 미쳤어? 아니, 미친 사람도 그런 짓은 안 해. 덕분에 완벽한 내 계획마저 틀어질 뻔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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