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361)
EP.362)# 7
362 – 주인공 # 7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
VIP석에서 다음 경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엘가 폰 리오네스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이 넓은 경기장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마치 전쟁터의 피난민들처럼 비명을 지르며 빠져나가기 시작했으니까.
콰아앙-!
그때 경기장 지하로부터 강렬한 폭발과 땅울림이 일었다. 어떤 일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으나 엘가는 감이 좋은 편이다.
“기어코 사고가 터졌나보네.”
웬 일로 일이 잘 진행되는 건지 싶었다.
사실 지금까지 너무 순조로운 구석이 있어서 오히려 긴장되고 있었는데 이렇게 일이 터져버리니까 엘가로서는 오히려 기묘한 안도감마저 들었다.
그럼 그렇지-라는 느낌.
“엘가 양, 우리도 빠져나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때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스텔라 교수가 엘가의 팔을 슥 붙잡았다. 그녀의 말대로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좋을 터. 괜히 사건사고에 휘말려서 몸이 잘못되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그런 느낌으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콰아앙-!
강렬한 폭발과 함께 경기장의 바닥이 화산이라도 터진 것처럼 큰 구멍이 뚫렸다.
그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검은 로브를 입은 남자와 그 남자의 손아귀에 붙잡혀 있는 푸른 눈의 여자였다.
‘쟤 아슬란이잖아.’
먼 친척 아슬란. 리오네스 유산과 재산 문제로 본가에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있는 분가 사람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가족 모임 때마다 시끄럽게 굴던 녀석이었지.
그런 녀석이 인질처럼 붙잡혀 있다니.
정의감이 투철해 귀찮기는 해도 아슬란은 서부전선에서 활약할 만큼의 실력자.
녀석을 인질로 잡을 만한 놈이라면….
신경을 기울였던 엘가는 깜짝놀랐다.
녀석을 붙잡고 있는 것이 꽤 익숙한 남자였던 것이다.
로브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으나 삶의 짝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엘가는 어리숙하지 않았으니까.
‘…저 새끼, 저기서 뭐하는 거야!?’
의문을 느끼고 있을 즈음 남자가 말했다.
“나는 마법사왕 앙그마르. 이 비무제 경기장 곳곳에 마력으로 발동하는 폭탄을 심어두었다. 내가 가볍게 손짓하는 것만으로 터뜨릴 수 있지.”
슥.
콰아아앙-!
남자가 손을 뻗자 휑한 경기장에 큰 폭발이 일었다. 그에 도망치는 사람들이 귀를 틀어막으며 한층 더 커다란 비명을 내지른다.
3달 가까이 준비했던 대회가 아비규환으로 변하는 데에는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하물며 자신 스스로 진흙을 요리에 쳐 넣는 행위라니. 엘가는 저 반요정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왜 굳이 앙그마르의 이름이 먹칠을 하는 거지? 이래서야 왕좌를 이기고 탈환했을 때 사람들에게 지지 받을 수가 없잖아.’
잘 모르겠지만 분명 무언가 뜻이 있을 거다.
‘저 녀석이 진짜로 폭탄 같은 걸 심어두었을 리 없어.’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저 녀석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엘가 역시 어느 정도 파악했다. 문제는 그 이유다.
그러다가 빠져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비무제를 중단시키고 사람들을 피난시키기 위해서인가?
‘확실하진 않지만….’
쯧.
엘가는 혀를 찬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텔라 교수, 일단 사람들을 피난시키도록 하자.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어떻게든 질서를 유지해야 해.”
“어, 그, 그래야지.”
슥.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대피시키며 엘가는 경기장을 내려다봤다.
녀석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거리가 멀기 때문인지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인지 유난히 놈과 자신의 거리가 멀어보였다.
* * *
혼란 속에서 사람들이 대피하고 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출구로 몰리다보니 다소 혼란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뒤늦게서라도 상황을 파악한 병사들이 어떻게든 질서를 맞춰 그들을 바깥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이로서 피난 쪽은 어떻게 해결 된 것 같네.
이제 문제는 저쪽이다.
슥.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려 높은 곳에 마련되어 있는 여왕의 왕좌를 올려다봤다.
다리를 꼰 채 고고하게 앉아 있는 아이라. 그 표정은 지독히도 오만불손했다. 전혀 당황하지 않은 것처럼, 마치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나 역시 먼 길을 왔다.
단 한번 뿐일 수 있는 기회.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잔뜩 저질러버린 내가 밟을 수 있는 건 엑셀밖에 없다.
“아이라 폰 타란테라.”
아이라를 향해 말했다.
“본선 진출자들 모두 내가 쓰러트렸다. 마지막 남은 오를레앙의 아슬란도 가볍게 쓰러트렸지. 나는 이 대회의 우승자야. 고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해 너와 맞붙겠다.”
반은 거짓이지만 반은 나름 진실이었다.
본선 진출자 중에서 남은 것은 나와 이 아슬란이라는 여기사 뿐. 이 녀석을 내가 가볍게 제압했었으니 나는 사실 경기의 우승자라고 봐도 좋겠지.
이제 와서 그런 것이 뭐 중요할 수 있겠냐 누군가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아이라는 이런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건지.
아이라는 천천히 입술을 열고.
“━━━──.”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목소리가 혼란스러운 사람들의 머리에 퍼져나갈 때, 혼비백산했던 사람들은 모두 걸음을 멈추고 자신들의 여왕을 바라봤다.
그런 상황에 아랑곳 않고 아이라는 그저 무척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들었다는 것처럼 웃었다. 한쪽 눈에 또르르 눈물까지 흘리며.
아이라가 이렇게까지 웃는 건 나로서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에 조금 놀라고 만다. 이런 식으로 웃을 수 있는 여자였구나.
그걸 이런 상황에서야 알게 되었다니.
한참 웃던 아이라가 이윽고 눈가를 슥 닦아내고는 물었다.
“마법사왕 앙그마르라고 했니? 내 앞에서 그 이름을 칭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지, 똑똑해 보이는 너라면 충분히 알고 있을 터인데.”
“그래. 이제 돌이킬 수 없어.”
나의 대답에 멀리 있는 아이라의 얼굴에 한 순간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스쳤다 사라지는 게 보였다. 이윽고 눈을 살포시 감은 그녀가 말한다.
“설령 극악한 죄인이더라도 도전하는 자를 받아줄 의무가 여왕인 내게는 있는 법이지. 좋아, 마법사왕 앙그마르. 네 도전을 받아주마. 나를 이기고, 손에 넣어 보렴.”
슥.
아이라가 왕좌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허공을 또각또각 걸어서 무대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그녀가 걷는 걸음에 맞추어 부서지고 박살난 경기장의 파편들이 계단처럼 만들어져 일종의 왕도(王道)를 만들어냈다.
그 우아하고도 신비로운 광경에 도망치던 사람들은 모두 아주 걸음을 멈춰버렸다. 모두 숨을 죽이고 여왕의 발끝을 바라보기 바쁘다.
순식간에 사람들을 휘어잡는 그것은 일종의 마법과도 같았다.
여왕으로서 성장한 아이라의 모습에 무척 기쁘면서도, 사람들이 도주를 포기했다는 사실에 나는 조금 초조해졌다.
다만 아이라는 당당하다.
“백성들아, 두려워할 것 없노라. 이 신성한 여왕의 비무제에 불순물이 섞여들었다는 것 정도. 이미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알고 있었노라.”
딱.
허공에 손가락을 튕기자 몇몇 사람들의 공중으로 붕 떠오른다.
“비밀 결사 이그드라실.”
딱.
다시금 손가락을 튕기자 몇몇 사람들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검은 로브 혁명단. 월광 교도. 무정부주의자.”
수많은 나열이 이어졌다. 모두 비무제를 틈타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세력들이 아닐까. 아이라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던 듯했다.
아이라의 눈은 거짓과 진실을 꿰뚫는 눈.
그것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겠지.
“마지막으로.”
마침내 아이라의 손가락이 나를 향한다.
“옛 망령.”
스으으으윽.
나를 가리키고 있던 손가락이 허공을 그었다.
그러자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경기장의 파편들이 내게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 크기와 속도가 날아드는 포탄 못지않다.
─마나쉴드.
다만 공격을 받을 걸 알고 있으면 그것을 막는 건 지금의 내게 그리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염동의 포환들을 마법방벽으로 막아낸 후 나는 그 먼지 자욱한 틈 사이로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경기장에 고고하게 발을 디딘 아이라의 머리칼이 마치 거미의 다리와도 같이 공중에 떠올라 있다. 그것이 나타내는 것은 그녀 역시 전력으로 나를 상대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다비드의 자손들이여, 경배하라. 너희들의 여왕 아이라 폰 타란테라. 너희들의 지배자를 진정으로 목도할 기회가 주어질 테니.”
나는 품에 안고 있었던 아슬란을 놓아주었다.
“도망쳐라. 최대한 이 경기장으로부터 멀리. 사람들을 지켜.”
방금까지의 일로 혼이 빠져 있었던 여기사는 내가 놓아주자마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어디론가 달려갔다. 이 싸움에 끼어 들어선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건가?
현명하구만.
━히오옹…!
알아, 나 역시 전력을 다해야 한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 나와 아이라는 이 넓은 경기장의 무대에서 맞붙게 되었다.
조금 더 낭만적이고 정정당당한 경기가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어버릴 줄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혹시 아이라는 알고 있었을까?
혹시 그래서 나의 참가를 말렸던 건 아닐까-라는 희망적인 사고회로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것보다 눈앞의 아이라와 싸워 이기는 것뿐이겠지. 내가 도전하는 입장이다. 방심이나 에너지 절약은 결코 용납되지 않을 터.
─영창 전개.
나의 몸에 깃든 모든 마력과 회로들을 최대로 개방한다.
파지지지지직-.
머리부터 손끝까지 번개처럼 타고 도는 강렬한 마력에 정신이 그만 아찔해질 것 같았다만 어떻게든 버텨냈다.
나는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더욱 출력을 높였다.
머릿속으로 수 없이 재생했었던 모의전이 떠오른다.
장기전보다는 내게 승산이 있는 단기전으로 가야 해. 더욱 승산이 있는 것은 첫 공격에 모든 걸 쏟아 아이라를 쓰러트리는 것이다.
단박에 최대의 출력으로 아이라를 향해 때려 박는다.
파짓, 파지지직!
“…윽….”
하지만 그 전에 나의 몸이 8위계 이상 끌어올린 마력에 버티질 못하고 있었다. 순도 높은 고위 마력에 비해 육신의 내구성이 현저히 낮았기 때문이리라.
그런 나를 보며 아이라는 가느다란 눈을 떴다.
“스스로를 불태워 빛을 뿜어낸다니. 아름답구나. 마치, 별이 스스로를 태워 빛나는 것처럼….”
이런 상황임에도 아이라는 긴장감 없이 내가 뿜어내는 광휘의 광채에 눈을 반짝였다. 지독한 오만. 내가 언제나 머릿속에 그려왔던 아이라 다운 행동이었다.
그 틈이 약점을 만들어낼 터.
“아이라, 그럼 이건 더 아름다울 거야.”
바엘.
너는 대가를 먹는 것으로 더 큰 힘을 주었지.
“그렇다면 좋아, 먹어라.”
네게 내 수명을 바친다.
그러니 내게 힘을!
내게 모든 것을!!!
“궁극마도!”
태오-노바(Teo-Nova)!!!
* * *
…….
━네가 베아트리체구나. 잘 부탁해. 간단히 바닥 정도만 쓸 면 돼. 내 말상대를 해주거나. 나는 친구가 별로 없거든.
…….
━베티,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너는 언제나 영원한 소녀겠지. 그렇지만 내가 듣기로 님프들도 어른이 될 수 있다고 하나 봐. 북쪽의 숲에 가면 신비한 지네가….
정신을 차렸을 때.
…….
나는 육신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이 수많은 별들의 사이를 부유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아이라는? 비무제는 어떻게 된 거지? 여기는 어디고?
곧 귀도 없는 내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영혼에 스며든다.
━어째서 나를 두고 갔나…. 이제 더 이상 바라는 게 없다. 어떠한 모습으로든, 그저 네가 내 옆에 있어주는 것으로 족해. 그저 그것이면 족했는데….
아니, 그것은 목소리가 아닌 감정이었다.
슬픔.
━세상이 내게서 너를 빼앗겠다면 나 역시 세상으로부터 모든 걸 빼앗아 너를 돌려받겠다.
그리고 분노.
━나의 수명을 바친다. 나의 미래도. 이 별에 사는 모든 자들의 생명과 태어날 모든 운명까지도. 미래영겁 모두 바친다.
━그러니 내게 힘을!
━내게 모든 것을!!!
그 티 없이 순수한 감정에 나는 섞여지는 물감처럼 나를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곳에 있다간 전부 휩쓸려버릴 것만 같아 나는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나는 마도의 극치. 모든 시대의 끝. 세계의 종결자. 세상이여 부서져라.
어서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해.
스으윽.
나의 강한 원념이 잘 작용한 건지 나는 내 몸을 드디어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런 내 허리춤에서 징징거리는 무언가.
그것은 아이라가 선물해주었던 마법진 《다람쥐 저장고》가 적힌 솔로몬의 마법 스크롤이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달칵.
내 손에 무언가 붙잡히는 게 있었다. 그것은 네모나고 단단한 틀을 가진 물건이다. 그것을 꺼냈을 때 나는 푸른빛 눈동자와 눈을 마주쳤다.
━나의 달. 나의 별. 나의 오랜 불꽃. 베아트리스.
누군가의 사념과 함께 글자들이 떠오른다.
「영원의 소녀 : 지나간 시간을 붙잡고 싶었던 남자의 삶에 걸친 최고 혼신의 역작.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끔 미소를 짓거나 눈물을 흘린다. 능력 미상.」
영원의 소녀?
능력 미상?
당장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푸른 눈동자의 너머에서 눈부신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그림을 위부터 아래로 죽 그어 내리그었다.
좌아아악.
그것으로 그림 뒤에 있었던 기묘한 공간이 드러났다.
통로.
그것은 누가 봐도 통로였다.
━네가 마지막 미래. 최후의 조각이구나. 오랜 시간 내게서 숨어있던 듯하지만 나의 눈은 삼라만상을 꿰뚫고 미래마저 엿본다. 자, 오너라. 운명을 받아들여라.
꽈아악!
“윽!”
그때 무언가가 나를 향해 손을 뻗어와 발목을 붙잡았다. 발목이 으스러지는 듯한 감각에 나는 화들짝 놀라 그 통로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베아트리스…, 솔로몬의 님프인 모양로군요. 저도 이름을 알게 된 건 처음이에요. 이런 그림이 만신전에 보관되어 있었을 줄이야.”
“……!”
나는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둘러보니 나는 어두컴컴한 동굴 안, 어느 액자 앞에 멀거니 서 있었다.
“이 여자, 태오 경과 무척 닮았어요.”
그리고 그런 나의 옆에 서서 조잘거리는 것은 미르나 폰 드레이코다. 이해할 수 없다.
“미르나 아가씨! 여기는, 어떻게…. 대체 무슨 일이죠? 여기는 만신전 같아 보이는데. 제 말이 맞습니까?”
내 물음에 미르나 드레이코가 미간을 좁힌다.
“태오 경…. 이렇게 땀에 흠뻑 젖어서는…. 제가 묻고 싶네요. 대체 무슨 일이죠?”
“대체….”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에 머리가 복잡했다. 침착한 사고가 발동하고 있으나 감정이 정리되질 않는다.
그나마 미르나와 드레이코 가문의 만신전을 보며 말할 수 있는 건 비무제에 참가하기 전 아직 드레이코 가문의 본당에 있을 때로 내가 돌아왔다는 것 뿐. 혹은 그렇게 보인다는 것.
방금까지 있었던 건 전부 꿈?
“태오 경, 그 발목은 어떻게 된 거죠?”
슥. 그때 미르나가 내 발목을 가리켰다.
고개를 숙이자 나의 발목은 마치 곰덫이라도 밟은 사람처럼 피가 흥건했다. 바지를 걷어 올리자 까맣게 그을린 화상의 흉터가 보였다.
그것은 기이하게도 꼭 누군가의 손바닥 자국 같았다.
“낙인…?”
미르나의 눈이 가느다랗게 떨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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