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360)
EP.361)# 6
361 – 주인공 # 6
사람에게는 두 가지 타입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어떤 일을 행하기에 앞서서 계획을 잘 짜는 타입.
둘째로는 상황에 맞춰 임하는 타입.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전자에 가까웠다. 어떤 일을 했던지 앞서서 미리 계획하고 구상하고 충분히 검토를 해본 뒤에야 비로소 한 걸음씩 돌다리를 두들기며 나아갔다.
어떤 일을 하던 실패가 허락되지 않은 상황이 많았으니까, 항상 최선을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그리 되었던 걸지도.
물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계획을 수정하거나 고민했던 일정들을 통째로 폐기해야만 할 때도 잔뜩 있었다.
이를테면 지금.
“마검사 안드로말리에 대해 들어본 적 없어? 나 꽤 유명할 텐데. 이래 뵈도 아주 유명한 청부업자거든.”
사람의 일이라는 것. 특히 수많은 사람이 엮이게 될 행사에는 항상 생각지 못했던 변수나 오차가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애초에 아이라의 변덕에서 개최된 변수 그 자체의 비무제. 어떤 일이 벌어지고 또 누가 무슨 일을 벌여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었다.
“…….”
그래도 지금 상황은 조금 심각했다.
출신고하를 막론하고 실력지상주의로 참가자들을 끌어 모은 대회이기 때문일까? 이렇게나 통제되지 않는 녀석이 본선에 진출했었을 줄이야.
“그래서, 내가 노리는 타겟은 이번 대회에 참가할 거라고 했다더라. 실력 좋으니까 본선 까지는 올라갈 거래. 그리고 발목에 손바닥 자국 같은 화상이 있다던데.”
남자는 내가 묻지 않은 것을 주절주절 떠들어대고 있었다.
“마검사 안드로말리.”
“그래, 그게 내 이름이지. 어디서 들어본 적 있지? 그보다 너 혹시 발목에 손바닥 자국 있냐? 보여줘 봐.”
녀석은 자신만만한 듯한 태도로 물어왔지만 오늘 전까지 녀석의 이름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기묘한 느낌의 승인욕구 유명세를 과시하는 듯한 태도. 나르시스트인가.
다만 지금 상황에 놓인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건 이 녀석이 자신의 흥미나 목적을 위해 사람을 죽이거나 대회를 망치는 것에 거리낌 없는 싸이코패스라는 것이었다.
망할.
본선 진출자가 5명이나 살해당했다고?
뭐 이런 거지같은 경우가 다 있어?
돌이킬 수도 없이 이 비무제는 망했다.
이 우스꽝스럽고도 동화 같은 대회를 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로 전 날까지 노력해왔던가?
행사를 위해 경기장을 지은 수많은 인부들. 서류를 심사하느라 잠도 자지 못하고 고생했던 임프 친구들. 볼거리 많은 경기를 위해 컨텐츠를 떠올리느라 골머리 쌓았던 날들.
모두 물거품이 되고 있다.
그것뿐만 아니라 잔뜩 고대하고 홍보했던 경기들이 난장판이 되었다는 사실이 퍼지면 이 경기장에 몰린 10만의 관객이 훌리건 폭도로 변할 수도 있었다.
더욱이 이 비무제에 묘할 정도로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던 아이라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 막지 못한 관계자들이 숙청당할지도 몰라. 그럼 또 그에 대한 반발이 연쇄작용처럼 일어나 우려했던 혁명이 일어나고 국내가 쑥대밭이 될 터.
그렇게 된다면 엘가와 미르나르미 아가씨 그리고 스텔라 등 지금껏 나를 돕기 위해 노력해주었던 자들의 도움도 무의미한 것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는 내 일상과 평화를 흙발로 짓밟는 이 녀석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이 녀석은 이곳에서 쓰러져야 한다.
“발목 보여주기 싫어? 그럼 좋아. 널 죽이고 확인하면 간단 해.”
슥.
나는 멋대로 지껄이고 있는 놈에게 손을 뻗은 후 지금까지 갈무리 해두었던 마력을 재빨리 영창 했다.
7위계.
─지저나락(地底奈落).
쿠우우웅-.
“읏으읏…!?”
자신만만한 여유를 짓고 있던 마검사의 얼굴에 굵은 핏줄이 돋아났다. 한 눈에 봐도 그의 몸에 얼마나 많은 힘이 쏠리고 있나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쿠우웅.
마침내 앉아있던 벤치 그대로 바닥에 납작 엎드리는 마검사 안드로말리. 녀석의 코에서 두 줄기의 피가 뿜어진다.
“으으으,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가 없다. 대체 뭐으으….”
그는 한 없이 바닥으로 짓눌리는 상황을 미처 다 파악하지 못한 듯이 보였다. 그는 지금 7위계의 대마법 지저나락에 의해 무자비한 중력을 느끼고 있을 터.
“느아아아악…!”
우직, 빠드득, 콰직.
벤치와 바닥 그리고 사람의 뼈와 관절이 무자비하게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거인의 손가락에 짓눌리는 기분이겠지.
평소에 자주 사용했던 포획 목적 마법이 아닌 무자비한 살상마법이었다. 그러나 이런 반사회적 범죄자가 도주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몰라 강경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가벼운 저주와 함께 녀석에게 향하는 힘에 더욱 중량을 실어주었을 때였다.
“…지옥. 우리들은 이미 그곳에서 왔다. 너는 그 이름의 깊이를 아나?”
촤르르르르.
녀석의 손에 감겨 있던 쇠사슬이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곧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나의 목덜미를 노리고 날아든다.
쇄애애액-!
━크르릉…!
그때 커다란 울음소리와 함께 무언가 나의 몸을 감쌌다.
고개를 돌리니 두껍게 펼쳐진 마나 쉴드에 마치 갈고리 혹 물음표처럼 생긴 칼날이 박혀 있는 게 보인다.
변칙적 기습인가?
다른 조의 승자들이 어쩌다 녀석에게 당했는지 알 것 같았다. 확실히 사각에서 날아드는 공격을 피하기란 쉽지가 않았겠지.
스스슥.
어디선가 튀어나온 종이거미 바엘이 나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이 녀석이 없었다면 나 역시 다소 부상을 입었을지 모르겠다.
━크르릉…!
나를 힐난하며 가슴 안으로 파고들어오는 바엘에게 나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알아, 방심했다.”
설마 7위계 나락에 짓눌리면서 반격을 해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으니까.
* * *
마지막 공격은 꿀벌의 독침과도 같았던 모양인지, 검사 녀석은 이제 말하거나 움직일 수 없는 주검이 되었다. 목뼈가 부러진 탓에 의식을 유지할 수 없었던 탓이겠지.
심폐의 완전정지.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는 충격이 가슴 속 불처럼 번지고. 죽어도 싼 녀석이었다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스프링클러처럼 물을 뿌렸다.
내 격한 감정을 대신 먹어 치워주는 바엘과 《침착한 사고》가 없었다면 꽤 당황했으리라.
“그보다 이 녀석, 우리라고 하지 않았나?”
스스슷.
그때 내 민감한 목덜미의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경악에 가득 차 커다랗게 뜨인 푸른 눈동자가 보인다.
“앗, 뭐야, 이건!!!”
녀석이 입을 크게 벌린 채 이 승자 대기실의 참혹한 광경에 대해 소리쳤다.
오를레앙의 아슬란이라고 했나? 나 다음 경기인 H조의 본선 진출자로 알고 있었는데 이곳으로 향해온 걸 보니 그 짧은 시간에 경기가 끝나고 승자가 되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녀석이 나를 바라보고는 성난 표범처럼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너, 이 녀석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그 모습이 꼭 화내는 엘가를 떠올리게 만들어서 친근감이 느껴짐과 동시에 약간의 낭패감이 자리를 잡았다. 엘가와 닮았다면 이 상황을 봤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이 갔으니까.
“너 이 새끼, 감히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을 때부터 극악무도한 악인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만…!”
“무언가 오해를 한 게 있는 것 같은데, 내가 한 게 아니다.”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다는 말이냐! 비겁한 놈! 정정당당히 무대에서 실력을 가릴 생각도 않고 얄팍한 습격이나 하려 한다니!”
스릉.
성난 여성이 허공에서 긴 창을 뽑아냈다. 그것은 길고 뾰족한 원뿔형으로 흔히 말을 탄 기사들이 돌진할 때 사용하는 마상창-랜스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나는 오를레앙의 영주 대리 아슬란!!! 널 단죄하겠다!!!”
팟-!
아슬란은 단순히 대지를 도약했음에도 말을 탄 채 내리막을 달리는 무장기사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내게 덤벼들었다.
콰아아아-!
미사일이 코앞에서 날아든다면 이런 기분이 들까. 다행히 거미의 반응 속도는 그것에 상응할 수 있을 정도로 빨랐다.
─마나 쉴드!
열 겹의 마나 쉴드가 펼쳐진다. 아슬란의 돌진이 강력하고 빠르긴 했으나 그 단단한 껍질을 뚫을 수는 없었던 건지 일곱 겹 정도를 뚫던 녀석은 이내 움직임을 멈추고 만다.
동시에 나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후.”
아까 전 괴상한 님프 녀석에게 마나쉴드가 찢겨나가서 내 실력이 형편없는 건가 싶었는데. 역시 그 님프가 이상했던 것일 뿐 내 방어력은 역시 꽤 높은 편이다.
“비겁한 잔재주를!”
아슬란이 분해서 소리칠 때 나는 녀석의 그림자를 얼른 밟았다.
6위계.
─그림자 밟기.
드레이코 가문의 주술인 그림자 묶기 술법을 나의 버전으로 어레인지한 기술이었다. 내가 그림자를 밟고 있는 한 이 녀석은 이제 움직이지 못한다.
“뭣, 우, 움직일 수가 없어!”
당황하는 녀석에게 내가 말했다.
“아슬란이라고 했나? 내 이야기를 들어 봐. 지금 이 상황에는 사정이 있다.”
“웃기지 마! 나를 이렇게 속박하고, 대체 무, 무슨 짓을 할 셈이야!”
“아슬란, 지금 널 죽이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 하지만 그러지 않을 거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미친 싸이코패스가 아니니까.”
“…싸이코 뭐?”
싸이코패스라는 말은 당연히 모르겠지.
“아무튼, 이건 내가 한 게 아냐. 저기 보이는 A조 승자, 마검사 안드로말리가 이놈들을 습격해 죽여 둔 것이었고 나는 그걸 격퇴한 것뿐이다. 믿건 말건 그게 진짜.”
내가 그렇게 대강의 설명을 끝냈을 때였다.
저 복도 멀리서 서넛 되는 경비들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저쪽에서 큰 소란이 났어!
━승자 대기실로 보냈던 인원들도 연락이 안 돼!
━싸움이라도 벌어진 거 아냐?
소란을 느끼고 오는 축제 관계자들인가?
내 눈이 향하는 곳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이었다.
바닥에 붉은 피가 흥건해 참혹한 모습과 그곳에서 홀로 가면을 쓴 수수깨끼의 참가자. 그에게 붙잡힌 정의로운 여기사.
이 광경을 목도한 경비들이 어떤 생각을 가장 먼저 할지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내가 가장 먼저 의심 받겠지. 반대라면 나도 그렇게 생각할 거다.
망할.
계획이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상황이 뒤틀렸구만.
━히오옹…!
나도 알아,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
마검사 안드로말리는 자신의 동료가 있다는 듯한 뉘앙스의 말을 남기고 죽었다.
이 비무제 어딘가 혹 도시 산도라 어딘가에 테러리스트가 있다면 당연히 노리는 건 수 많은 사람이 모여 있을 이 콜로세움이겠지.
“후….”
차가운 사고 덕분에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알고 있었다. 욕심을 내고 있었지만 이 비무제는 중지해야 한다. 사람들을 내보내고, 모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것이 옳겠지.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엘가나 엘가의 뱃속에 있는 아이. 스텔라와 마르마르를 비롯한 임프 친구들이었다. 미르나르미 아가씨들은 이곳에 없어서 오히려 다행인가.
하지만 아이라는 이 비무제가 중단되는 걸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경기를 중단시키라는 이야기도 묵살시킬 것이 분명해.
평범한 방법으로는 어렵겠지.
평범한 방법으로는….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내 머릿속에는 이럴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선명히 떠오르고 있었다.
━히오옹….
“괜찮아. 늘 했었던 일이야. 연기자도 10레벨에 달했으니까.”
“뭐라는 거야? 그것보다, 이것 빨리 안 풀어?”
아슬란이 당황하여 몸을 이리저리 비트는 사이 경비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이 참혹한 현장을 바라보며 무기를 꺼내들고 나를 겨눴다.
━대체 무슨 짓이냐!
━투항해라!
여기저기 울려 퍼지는 소음과 사람들의 성난 얼굴 표정이 물감처럼 번진다. 마치 현실감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경기를 끝내고, 마지막 최후의 무대에서 아이라와 싸워 이길 계획을 세우고 있지 않았나.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지만, 어느 무리의 악의적 계획에 내 계획이 어그러졌다 생각하니 침착한 분노밖에 남지 않았다.
놈들의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놈들의 계획을 망가뜨려 줄 뿐. 이 경기장에서 사람들 모두를 탈출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물론 나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슥.
나는 눈앞의 여기사 아슬란의 목덜미를 붙잡아 방패처럼 내 앞에 세웠다. 그 모습에 경비들의 눈에 긴장감이 서리는 게 보였다.
━대, 대체 무슨 꿍꿍이냐!
━인질을 붙잡다니!
당황하는 그들에게 나는 그저 천천히 입술을 열 뿐이다.
“사실 나는 이 세상이 싫었어.”
미개하고, 야만적이고. 스스로의 몸에 불을 지른 채 기름 속으로 뛰어드는 멍청이들밖에 없어서. 모든 것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그 감정을 한껏 끓어 올려 나름의 진심을 담아 고백한다.
“나는 마왕. 마도의 극치. 시대의 종말. 세계의 종결자다. 지금부터 내리는 일들은 모두 단죄. 달게 받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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