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크르르륵.”
눈 앞에 좀비 다섯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차가 한데 서 있었다.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것으로 봐서 최근에 세워진 차는 아닌 것 같았다. 고장이 나서 누군가 예전에 버린 것인지, 혹은 사용을 할 수 있는 것인지 확인을 해 보기로 했다.
나와 기웅이는 도끼를, 지선이는 예비로 내 배낭에 들어있던 군용 대검을 한 손에 꼭 쥐었다.
이제 셋이서 좀비 다섯 정도는 쉽게 처리 할 수 있었다. 물론 일반 좀비일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가장 먼저 내가 달려 나갔고, 기웅이와 지선이도 각자 정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장 앞에서 한쪽 팔이 뜯겨진 채로 멀뚱히 서 있는 놈이 내 목표였다. 놈은 내가 꽤 가까이 갈 때 까지 내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헙!”
막 도끼를 휘두르는 찰나 놈이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뻑!
도끼는 놈의 관자놀이 부근을 그대로 부숴놓았다. 놈은 소리 한번 지르지도 못하고 그대로 허물어졌다.
철퍼덕.
하지만 놈의 시체가 바닥에 나뒹구는 소리에 나머지 넷이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크아악!!!”
남들이 동시에 나를 바라보며 괴성을 지르는 동시에, 기웅이와 지선이가 각각 한 놈씩을 쓰러뜨렸다.
이제 남은 것은 둘.
“크아아악!!!”
그런데 놈들 중 하나의 움직임이 조금 빨랐다. 원형좀비 정도의 속도는 아니었지만, 꽤 빠른 움직임이었다.
이제 막 한놈의 정수리에서 대검을 뽑아드는 지선이를 향해서 놈이 달려 들었다.
“지선아! 조심해!”
내 외침에 지선이와 기웅이, 둘 모두 빠르게 달려들고 있는 놈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
지선이는 비명아라기도 애매한 소리를 내질렀다.
들고 있던 도끼를 놓고, 등 뒤에 메고 있던 소총을 고쳐 쥐었다. 그런데 지선이도 가까이 있고, 기웅이도 나와 반대 방향에서 지선이를 향해서 달리고 있어서 총을 쏘기 힘들었다.
“젠장!”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 나왔다. 하지만 그렇게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놈을 본 지선이는 뽑아든 대검을 그대로 휘두르며 바로 코 앞에서 놈의 관자노리에 박아 넣었다.
그 사이 나머지 한 놈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시 도끼를 주워들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들고 있던 소총을 그대로 휘둘렀다.
퍽!
놈은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고 옆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아직 멀쩡한지 다시 일어 나려고 버둥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달려가서 개머리판으로 놈의 두개골을 힘껏 내리찍었다.
퍽! 퍽! 퍽!
놈의 안면은 함몰되어 움푹 들어갔다. 눈, 코, 입의 위치 조차 헷갈릴 정도로 짓이겨 졌다.
“후~ 젠장! 다들 괜찮아?”
다행히 일행들 모두 무사했다.
******
“이제… 어쩌죠?”
지선이가 차창 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차피 정해진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부산쪽으로 방향을 잡는 건 어떨까요?”
기웅이가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음… 뭐, 그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우선 오늘 밤 쉴 장소를 찾아야 하니까, 부산 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다가 쉴만한 곳을 찾자.”
“괜찮을까요? 괜한 수고 하는 건 아닐지…”
지선이는 여전히 불안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걱정하진 않아도 될 것 같아. 뭐… 미군에 관한 얘기가 아니더라도 우린 어차피 안전한 아지트를 찾아야 하는 입장이니까… 그걸 부산 근처에서 찾는다고 생각하자.”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박용진에 대한 짜증이 치밀어 올라왔다.
“아… 거, 빌어먹을 자식 때문에 이게 뭔 생고생이야. 거기다 총까지 훔쳐가고 말이야. 젠장. 마주치기만 해봐. 아주 작살을 내줄테니까. 그리고… 우리가 아무래도 너무 무른 건 아닌지 모르겠어. 마을에서 일도 있었고… 좀비 보다 머리 쓰는 인간들이 더 위험하단걸 명심해야겠어.”
기웅이는 무슨 결의를 다지듯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지선이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뭐라고 중얼거리는 듯 했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우리 셋이네. 그래도 우리끼리 있는 게 제일 마음은 편한 것 같아.”
“저두요. 오빠.”
“하하. 동감이예요.”
그래도 차를 구하고 나자, 다들 마음이 좀 편해진 듯 했다. 이야기도 편안하게 하고, 간혹 우스갯소리도 하며, 거기에 맞춰 웃기도 했다.
******
다음 날, 오전. 우리는 역시 꽤나 화창한 날씨 아래에 차를 타고 달렸다. 역시 행선지는 부산 방향이었다. 물론 대충 방향만 그렇게 정했을 뿐, 어디 확실한 목적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근데, 오빠. 미군들 혹시나 만나면 어떻게 할 거예요? 말도 안 통하고… 우리가 미국사람도 아니고…”
“저도 그게 궁금하긴 해요.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어제 고민을 하긴 했는데… 일단 우리가 말로 그 사람들 설득하긴 힘들거야. 영어가 되야 뭔 설득을 하지. 대신 영감님 연구 자료를 가지고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긴 해. 손짓, 발짓, 말도 안 되는 영어 단어를 조합해서라도… 그 정도는 되도록 만들어야지. 안되면 할 수 없고.”
우선 만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거의 희박했고, 내가 말하긴 했지만 설득을 할 자신도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뭐라도 해보면 후회는 없을 것이기에 뭐라도 해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어? 저거! 저거 우리 차 아니예요?”
조수석에 앉아 있던 기웅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어… 잠시만… 비슷하기는 한 것 같은데…”
얼핏 봤을 때 비슷하게 생긴 것 같기는 했다. 조금씩 거리가 가까워지자 확신할 수 있었다. 우리가 박용진에게 빼앗겼던 바로 그 차였다. 그 차가 보닛이 들어 올려 진 채로 도로 한 켠에 세워져 있었다. 그 사이 그 차 바로 옆에 차를 세웠다.
“그 빌어먹을 자식이 이 근처 있는 거 아닐까요?”
기웅이가 갑자기 흥분을 했다. 그 심정 이해 못할 것은 아니었다.
“글세. 그럴 수도 있고… 그 놈하고 우리하고 하루 정도 차이가 날텐데… 다른 차를 벌써 구했다면 찾기 힘들겠지. 우선 차 안에 뭐 남은 게 있나 한번 살펴보자.”
차에서 내린 우리는 조심스럽게 주변부터 살폈다. 그리고 차 안을 살펴본 결과, 총기와 배낭은 보이지 않았고, 차 트렁크에 실려 있던 여러 가지 공구들은 그대로 였다.
“보니까… 냉각수가 바닥났나보네. 차에 신경을 못 썼는데… 그 자식이 이 차 가지고 가지 않았으면 우리도 고생할 뻔 했네.”
차 트렁크에 실려 있던 것들을 모두 지금의 차로 옮겼다. 여러 가지 공구며, 옷가지, 그리고 약간의 비상식량 까지.
탕!
막 다시 차에 타려는 순간 근처 어딘가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권총 소리였다.
“젠장! 형님. 그 놈… 찾아보죠. 이 총소리 왠지 그 놈이 쏜 총일 것 같은 느낌 이예요.”
“그래. 그러자.”
******
“형님. 저거 그 놈 맞는 것 같죠?”
조금 떨어진 작은 상가 건물 옥상에 군복을 입은 사내 하나가 난리를 치고 있었다. 그 상가 건물은 꽤 많은 수의 좀비들로 거의 봉쇄되다시피 한 상태였고, 그 사내는 옥상에서 여기저기 뛰어 다니며 상가를 둘러 싸고 있는 좀비들을 향해서 마구잡이로 총을 쏴대고 있었다.
“형님. 저놈 저거 거의 제정신 아닌 것 같은데요? 저 많은 쪽수 상대로… 뭘 어쩌자고 저렇게 쏴대는 건지… 조용히 있어도 모자랄 판에…”
실제로 그의 총성에 좀 떨어진 곳에 있던 좀비들도 조금씩 그 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우리하고 만나기 전까지 혼자서 지낸 걸 생각하면… 하루 만에 저렇게 정신줄을 놔버릴 정도는 아닌 것 같았는데… 저런 놈이 여태까지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오빠. 저 사람 이제 총알이 다 떨어졌나봐요.”
지선이의 말에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는 정말 가관이었다. 차창을 올려놔서 뭐라는 건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뭐라고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하루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가 가지고 간 총기가 아쉬웠다.
“속이 시원하긴 한데, 총이 아쉽네. 저래선 어떻게 가지러 갈 수도 없고…”
그렇게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막 시동을 다시 걸려는데 순간이었다.
“응? 오빠. 저 사람… 우리한테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안에 사람이 타고 있는 게 보이는 건가?”
지선이의 말마따나 놈은 우리가 타고 있는 차를 향해서 손까지 모아가며 고함을 치고 있었다.
“여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 살려주세요! 여기예요!”
차창을 조금 내리자 놈의 고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목청은 좋네.”
기웅이가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사이에도 그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형님, 저 놈 속이나 좀 뒤집어 놓을 까요?”
“어떻게 하게? 괜히 좀비들 몰려들게 만드는 것 아냐?”
“걱정 마세요, 형님.”
그렇게 말한 기웅이가 한 일은 사실 별것은 아니었다. 그저 차창을 열고, 박용진이 잘 볼수 있도록 상체를 내밀었다.
“어! 어! 기웅씨! 그저께 일은 미안하게 됐어요. 제가 미쳤었나 봐요. 제바~~알!”
그에게서 즉각적으로 반응이 왔다. 하지만 기웅이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그저 인사를 하는 손을 흔들 뿐이었다.
“저기!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할게요! 아니! 부산 ○○○○산업 주차장! 거기가 모이는 장소예요! 제발요! 살려주세요!”
“형님. 가시죠.”
부르릉! 부아앙!
차를 천천히 출발 시켰고, 뒤쪽에서 박용진의 고함소리가 아니 저주에 가까운 외침이 계속 되었다.
“야! 이 개자식들아! 다 니들 때문이야! 알아?! 니들이 날 그렇게 취급하니까, 그런 거라고! 이 XX놈들아! 뒤져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