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388)
EP.389)새 # 4
389 – 호중천의 새 # 4
“그릇에 영혼이 존재하지 않았어요.”
미르나가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항아리 속에, 영혼이라 부를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았어요. 분명, 끔찍하고 거대한 증오로 점철된 악귀와 같은 영혼이 그릇 안에 도사리고 있어야 정상일 텐데….”
호중천의 염매술.
그것은 단순히 저주가 깃든 항아리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재앙의 씨앗이 되지만. 진정으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누군가가 그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라고 그랬다.
그것을 본 자들은 뇌가 꼬여 죽는다고.
하지만 항아리 안을 들여다보았던 나르미는 멀쩡해 보였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그것에 대해서 나르미가 이야기 해준다.
“내가 저주에 대해 강한 내성을 지니고 있긴 한데. 애초에 그릇 자체가 비어 있었어. 그 말은, 이미 누군가가 항아리를 열어보았고. 덕분에 저주가 약화되었다는 거야.”
그 말은 이미 이 항아리의 저주는 누군가를 향해 사용된 적이 있다-. 그렇게 봐도 되는 걸까? 이해하기 힘든 영적 주술적 대화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자 미르나가 설명해주었다.
“분명 빠져나간 영혼이 이 성채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을 확률이 높아요. 그릇이 이곳에 있으니 멀리 가진 않았겠죠.”
저주로 변질된 악령이 성채를 돌아다닌다니. 꽤 으스스하다.
내가 물었다.
“그냥 이 항아리만을 파괴하면 안 되는 겁니까?”
그에 고개를 젓는 나르미.
“태오야, 만약 네가 외출해 있는 사이에 누군가 네 방을 부순다고 생각해 봐. 화가 나지 않겠어? 영혼들에게 육신이란 방이야. 그래서, 화장이 아닌 매장을 하는 거고.”
그런가.
이 대륙에 장례법으로 화장의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조금 알 것 같았다. 드레이코 가문이 넓은 공동묘지를 관리하는 부담까지 감내해가며 시신을 매장하는 이유도.
그럼 결국 우리는 이 항아리 안에서 죽어간 아이의 영혼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영혼을 찾는다니. 초현실적인 이야기에 나는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만 같다.
찾는 방법은?
외모는?
무엇하나 알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나, 아이라의 정신이 붕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그럼, 어떻게든 찾아보도록 하죠. 부적이나 탐지기 같은 걸 이용해 찾는 건가요? 영혼을 찾는 건 또 처음이네요.”
내 말에 나르미가 와락 손을 든다.
“나, 유령 찾기 잘해! 물론 이런 건 언니가 더 잘하지만!”
모두의 시선이 미르나에게로 향했다. 항아리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던 미르나는 무어라 우물쭈물하더니 한숨을 푹 내쉰다.
“영혼을 감지하는 데에는 특별한 파장을 측정하는 도구가 필요해요. 수맥을 탐지할 때 사용하는 탐지봉이나. 열감에 따라 민감히 반응하는 종이. 정제된 소금 등….”
미르나는 한참 필요한 재료에 대해서 읊었다. 하지만 이 성채에 주둔하고 있는 우리가 그 재료들을 모두 준비하기에는 꽤 무리가 있었다.
“물론 위와 같은 방법이 없어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은 있어요. 영감이 높은 자나, 영적인 눈인 영안을 지니고 있는 자라면 쉽게 찾아낼 수 있겠죠.”
“그 말은….”
“태오 경의 요정 눈은 남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죠. 유령을 찾는 일에 대해서 태오 경 만큼 적임지가 없을 것 같네요.”
미르나의 말에 나는 기쁜 마음이 들었다.
이런저런 준비를 할 필요 없이 일을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다니. 얼른 일을 해결할 생각에 손이 간지러워질 때였다.
“그….”
미르나가 미처 다 하지 못한 말이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말을 쉽게 꺼내기 힘든 것처럼 몹시도 우물쭈물했다.
“미르나 아가씨,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저희는 이미 만났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영혼을….”
“저희가요?”
내 계속되는 되물음에 미르나가 참지 못한 것처럼 말했다.
“태오 경,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저희는 이상한 존재를 만났잖아요.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이 마물로 가득한 성채에서 살고 있었던….”
미르나의 말은 그걸로 끝이었다.
그녀의 세심한 배려심이 그 이상의 말을 아꼈다는 걸 나는 눈치 챌 수 있었다. 미르나가 말하는 자가 누구인지도 알 수 있었다.
“설마….”
“…그래요, 아마도 그 임프요.”
미르나가 말하는 임프가 누군지 나는 잘 알았다. 확실히 나와 미르나는 이 성채에 숨어 살고 있었다는 임프를 만났지.
미르나가 계속해서 말한다.
“임프가 이 마물로 가득했던 성에서 혼자서 십 수 년을 살아왔다는 게 이상하긴 했어요. 먹을 것도 없었을 테고, 추운 겨울은 또 어떻게 버텨야 했을지….”
그건 맞는 말이었다.
성채의 부엌에서 예전 마왕군이 주둔할 때 남았다는 음식들을 훔쳐 먹었다고 그랬었나. 그러나 십 수 년이 지나면 음식들은 썩고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당시에는 녀석이 이사야 가스펠의 임프라는 것에 매몰되어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었다. 아니, 잠깐 그렇다면 혹시 녀석을 가장 먼저 발견했던 것도….
나는 품에서 책을 꺼내들었다.
‘태오’라고 적힌 책.
그 뒷부분을 넘기면 마치 정신이 나갔을 때의 아이라와 마찬가지로 지리멸렬한 구조의 문장들이 퍼즐처럼 얽혀 있었다.
그것에서 내릴 수 있는 추리는 하나.
이사야 가스펠이 먼저 녀석을 발견하고 저주를 받았던 거야. 그것으로 항아리 안에 갇혀 있던 아이, 임프는 바깥으로 빠져나온 것이고.
미르나가 말했다.
“너무나도 그 존재가 생생히 느껴져서 영혼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가 없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에요.”
“이상한 점요?”
“저와 태오 경 말고는, 그 임프를 본 사람이 없잖아요.”
오싹한 소름이 등을 타고 오른다.
* * *
우리는 임프를 찾기 위해 성채에 뿔뿔이 흩어졌다.
너무 기가 강해서 영감(靈感)이 적은 엘가나 스텔라는 성채를 뒤져 혹 이와 비슷한 항아리나 저주들이 더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그래서 혼자 성채의 복도를 걷고 있으려니 마치 걸음이 잔뜩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나는 몹시도 침울해졌다.
마르마르에게 소개 시켜주려고 했던 임프가 알고 보니 이미 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난 유령이었다니.
그리고 그 임프를 항아리 속에 억지로 집어넣고 저주로 만든 상대에 대한 분노도 끓어올랐다.
몹시도 임프 혐오적이다.
만약 나라면 절대 마르마르나 가르가르, 타르타르 같은 임프들을 항아리 속에 집어넣지 않을 거야. 절대. 내가 죽더라도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거다. 용납할 수가 없어.
대체 누가 그런 못되고 나쁜 짓을?
스스로에게 물어보면서 나는 동시에 답을 내렸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 성채에 묻어져 있었던 저주. 그것은 마치 우연처럼 보이나 아이라를 정교하게 조준하고 있었다.
아이라가 햇볕이 잘 드는 중간층의 창가 쪽을 선호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거야. 그렇다면 범인은 한 사람 밖에 없다.
아이라를 과거에서 노리는 마왕.
과거에서부터 목숨을 노린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막연한 느낌으로만 알고 있었지 직접 상황을 두 눈으로 목도하니까 숨이 막힌다.
아이라는 예전부터 언제 어디서 무엇이 격발장치가 될지 모르는 지뢰밭 같은 삶을 살아오고 있었던 걸까? 머리가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굉장히 잘 참아오며 절제하고 있는 편에 속하지 않을까.
내가 복도의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 누군가가 내 등 뒤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데이트, 못하게 됐구나. 같이 꽃 보러 가기로 했는데.”
“아이라 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밑에 그런 게 있었다니. 저는 몰랐습니다. 그냥, 아이라 님께서 여러모로 아프신 줄로만….”
“그냥 아팠던 것도 맞아. 내 감정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시간이었으니까. 그치만 좀 나아졌어. 태오야, 네 덕분이야.”
그렇게 말하며 아이라는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내 덕분이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솔직히 아이라를 위해 내가 뭘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번에는 제가 한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나는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스스로에 대해서 조금 화가 났다.
이것저것 잘 알고 있는 척, 비밀을 숨기고 있는 척했지만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모르는 게 많았다. 심지어 나는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른다.
덕분에 조금 안달이 났다.
초조하기도 하다.
그런 느낌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아이라가 말했다.
“태오야, 네가 없었으면 나는 결코 방을 벗어날 수 없었을 거야.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 강한 의지로, 태오 네가 나를 또 한 번 구한 거야.”
나는 창문에서 고개를 돌려 아이라를 바라봤다. 그녀의 맑은 눈은 흐릿한 구름한 점 없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태오야, 너는 예전부터 그랬지. 나를 구하고 싶어 했어. 그리고 실제로도 여러 번이나 내 목숨을 구해주었지. 너 뿐이었어. 누구보다 강한 나를, 감히 지켜주고자 했던 건….”
슥.
그렇게 말하는 아이라는 시선을 움직여 창밖을 바라봤다. 노을이 저물고 있기 때문인지 아이라의 얼굴은 꽤 붉다.
사르르 흔들리는 그녀의 까만 머리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가 과연 그 방을 잘 빠져나온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저주의 영역에서 벗어난 건 확실할 텐데.
아직 이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모든 것을 내던지고 저 밤의 호수처럼 까만 눈으로 뛰어들고 싶다는 기분이 되고 만다.
그녀도 나와 같을까?
아니면, 미몽(迷夢)의 의식. 항아리 속 도원향에서 벗어나게 된 그녀는 나에 대해 들끓던 욕정도 사랑도 모두 냉정한 마음으로 씻어 내렸을까.
문득 그녀와 함께 보냈던 지난 사흘의 시간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그곳은 우리들만의 별세계. 마치 항아리 속 세상 같아서, 내가 혼자 착각하고 있던 건 아닌지─.
사실 미쳐 있는 것은 내가 아닐지.
이 모든 상황 자체는 꿈이 아닐까 헷갈려오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불안하게 흐릿해지고 마치 배 멀미라도 하는 것처럼 바닥이 흔들흔들 거릴 때 아이라가 말했다.
“나의 태오, 앙그마르의 태오 가스펠.”
그녀가 내 이름을 불렀을 때.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이라가 말했다.
“태오 가스펠.”
“네.”
“태오야.”
“무슨 일이시죠?”
그녀는 내 이름을 계속해서 불렀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고. 마치 할 말이 있는데 쉽게 꺼내지 못하는 것처럼 뜸을 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그녀가 이름을 계속해서 불러줄수록 내 안에 답답하게 얽혀 있었던 실타래가 하나 둘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누구고, 무엇인지 사실 중요하긴 할까? 그녀들이 부르는 대로 나는 바람처럼 형태를 바꾼다.
그게 나야.
확실한 모습은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바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곧 바람이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아이라의 머리칼도 흔들리기를 멈춘다.
“솔직하게 인정할게. 요 며칠 사이의 나는, 여왕으로서도 여자로서도 현명하지 못했어.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없던 일로 약속할 수는 있겠지.”
“없던 일로요?”
“방에서 있던 일은 없던 일로 해주었으면 해. 태오야, 네가 이야기 하지 않는다면. 누구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을 거고.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겠지.”
아이라는 미몽에 젖어 했던 모든 일들이 실수였다는 것처럼 말해오고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요 며칠의 시간은 지우고 싶은 기억인 걸까.
확실히, 방에 틀어박힌 그녀는 아이라 답지 않았었다. 그랬기에 멀쩡해진 그녀가 이렇게 말해올 것임을 나는 어딘가 한 편으로는 미리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하지 않아도 돼.”
마침내 아이라의 손이 내 왼쪽 눈에 감긴 붕대를 풀어낸다.
순식간에 넓어지는 시야에 머릿속이 탁 트이는 기분도 잠시, 한 편으로는 아쉬웠다.
모처럼 그녀와 강하게 얽혔던 것 같았는데. 그 실타래가 하나 둘 풀려버려 우리 둘이 다시 떨어져버리는 것 같아서.
여러 감정들에 무거워진 입술을 열고 무어라 말을 하려고 할 때 다시금 강한 바람이 불어 닥쳤다.
솨아아아아-.
그 시원한 가을의 바람에 아이라는 머리에 얹어져 있던 왕관을 손으로 끌어내렸다.
사르르르.
덕분에 그녀의 머리칼이 자유롭게 흩날렸다. 한 결 홀가분해진 표정의 아이라가 치맛단을 들어 올리고 사뿐사뿐 걷기 시작했다.
“……?”
그것이 서툰 춤동작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반주도 노래도 없이 어색한 춤사위였다. 아름다운 아이라가 그러한 춤을 춘다는 것에서 괴상한 감정마저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아이라는 이마에서 땀을 흘릴 정도로 열중했다. 아이라가 말했다.
“나의 조부는 데릴 사위였어. 조부들의 조부도. 타란테라는 여성들의 가문이거든. 그 여성들은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 특별한 춤사위를 만들어냈지.”
“혹시 지금 그게 그 춤이라는 건가요?”
“그래, 바보 같은 춤이야. 고상함이라고는 하나도 없지. 마녀들이란, 내가 생각해도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존재야. …내가 이 춤을 추게 될 줄은 몰랐지만.”
스르륵.
아이라는 손에 착용하고 있던 장갑을 하나 벗어서 벽에 걸었다. 곧 다른 쪽 장갑도. 그녀의 목에 걸려 있던 스카프나 다리에 신겨져 있던 구두도 벗겨진다.
마침내 그녀가 스타킹을 벗으려 할 때였다.
“아니, 왜 옷을 계속 벗으세요? 남들이 보면 어쩌려구요?”
내 당황스러운 물음에도 아랑곳 않고 아이라는 몸을 움직였다.
“내가 이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 걸 멈추게 하고 싶다면. 나와 결혼해 줘, 태오 가스펠. 나는 지금 여왕이 아닌, 한 명의 여자로서 구애하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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