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67)
EP.68)드리우는 그림자 # 4
068 – 아크에 드리우는 그림자 # 4
교단의 도시 그라시아에는 제법 많은 유적이 있다.
그리고 어느 세상이든 유적이라는 것은 대부분 학술적 값어치를 지니기 마련.
그건 아크를 벗어나 도시 외곽 북쪽에 위치한 고성도 마찬가지였다.
흔히 ‘옛 성터’라고 불리는 지역에 나와 미르나 그리고 엘가가 도착했다.
“정말 여기가 과제를 하는 장소라는 거지?”
주변을 슥슥 둘러보는 엘가.
그런 엘가의 맑고 파란 눈동자에 높이 쌓인 벽돌과 그것을 휘감고 있는 가시덩쿨들이 잔뜩 비춰진다.
“으스스하잖아.”
어두컴컴한 벽 너머로는 아직 저녁 시간이 되지 않았음에도 구름이 껴서 우중충한 정원과 회랑들 그리고 비좁은 복도와 박살난 석상들이 가득하다.
“우리들 말고는 아무도 없나?”
엘가의 물음에 나 역시 주변을 살펴봤다.
진흙과 잡초가 가득한 옛 성터 주변으로 여러 불규칙한 발자국들이 찍혀 있는 것이 보인다.
그것을 손가락으로 슥슥 훑어보려니 나와 마찬가지로 사방을 경계하고 있던 미르나가 말했다.
“진흙이 굳지 않은 걸 보니 생겨난 지 얼마 안 되는 발자국이군요. 하지만 인기척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 같네요.”
미르나의 말대로였다.
여기는 이미 우리들 말고도 다른 9개조 정도 되는 팀들이 답사를 하러 왔어야 정상일 텐데. 그들의 모습은 어디서도 보이질 않았다.
먼저 깊은 곳 안쪽으로 들어간 건가?
그때 흐읍-하고 숨을 들이키는 엘가.
“누구 아무도 없어─!?”
곧 그녀의 입에서 우렁차고 커다란 포효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라기보다는 자연의 천둥이 가까웠기 때문에 그 바로 옆에 서 있던 내 귀는 귀마개 없이 총을 쏜 사람처럼 이명으로 먹먹해졌다.
다만 엘가는 그런 것이야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것처럼 쯧-하고 혀를 찼다.
“반응이 없네. 우리가 너무 늦은 모양인데.”
“저희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전부 어디로 갔을 까요?”
나는 먹먹해진 귀를 후비며 엘가에게 물었다. 그러나 바닥에 떨어진 누군가의 교복 로브를 발견한 엘가는 “글쎄.”라고 적당히 대답을 흘릴 뿐.
그러다가 허공에서 거대한 도끼를 꺼내며 흥 코웃음을 쳤다.
“이렇게 뻔히 보이는 함정을 쳐놓은 것도 우습지만. 이렇게 뻔히 보이는 함정으로 들어가는 것도 웃기네. 거미줄에 달려드는 나비들도 아니고.”
자조적으로 말한 것 치고는 자신 있게 진흙탕을 밟으며 찰팍찰팍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미르나 역시 그 뒤를 따라가며 나아갔기 때문에 나도 그들의 뒤를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야, 태오. 뭐 튀어나올 것 같으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누나 뒤에 딱 붙어. 알았냐?”
나를 안심시키려는 것인지 가장 먼저 앞서나가는 엘가가 농담처럼 말했다.
그에 나는 “그러죠 뭐.”라고 적당히 답하긴 했지만 나 역시 이제는 공격 수단이 생긴 몸.
마법으로 상대를 격추시키고 쓰러트리는 만큼 경험치가 들어와 레벨이 오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싸울 의지가 가득했다.
“그럼 이제 성채 내부로 진입한다.”
엘가는 어느덧 아주 거대한 두 개의 문 앞에 섰다. 족히 수십 년은 사용되지 않았을 법한 두 개의 대문.
그 사이로는 사람 한 명 정도 들어갈 만한 틈이 있었는데.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은 그야말로 지독한 어둠이었다.
슥.
코를 막는 엘가.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네. 죽음의 냄새. 부패의 냄새. 이 안에 뭔가 있긴 해. 어이, 미르나. 어떤 것 같냐?”
엘가의 물음에 주변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던 미르나가 흠칫 몸을 떨었다.
“언데드와 유령들이 숨어 있기 딱 좋은 장소기는 하네요. 그들은 이렇게 낡고 무너지고 조용한 곳을 좋아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미르나의 몸은 조금씩 떨려오고 있었다.
물론 예민한 나의 반요정적 감각이 아니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긴 했다만, 미르나는 아마도 겁을 먹고 있는 듯했다.
하긴 미르나의 여동생인 나르미가 말했었다.
자신의 언니는 강령술사의 가계에서 태어났지만 유령과 같은 것들을 무서워한다고 말이다.
그런 사람이 지금 이런 고성터를 돌아다니려니 아주 죽을 맛이겠지.
“그럼 내가 먼저 들어가 본다.”
횃불 하나를 어둠 속으로 던져 넣은 엘가가 비좁은 문틈 사이로 몸을 집어 넣었다.
“윽. 꽉 끼잖아. 생각보다 더 좁네.”
도중에 가슴이 납작하게 끼어서 꽤 곤란해 보였지만 가슴이라는 것은 매우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것이라서 어떻게든 빠져 나간 것 같았다.
“자 그럼 한 명씩 넘어 와.”
엘가의 신호에 나는 다음으로 미르나를 먼저 보내기로 했다.
“먼저 들어가시죠. 제가 뒤에서 지키고 있겠습니다.”
“그러죠.”
미르나 역시 비좁은 문틈을 들어가는 건 꽤 버거워 보이긴 했다만 그래도 엘가 정도는 아니었는지 슥 들어가 어두운 내부에 발을 딛고 섰다.
이제 남은 것은 나 뿐.
나도 성채 안으로 걸음을 내딛으려던 그 때였다.
━그라아아아-!
파스슥, 파스스슥.
무언가가 땅을 뚫고 나왔다.
그것들은 낡고 썩은 갑옷을 입은 사람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갑옷들 사이로 보이는 것은 앙상한 해골들로 공허하게 뻥 뚫린 해골 사이의 안구가 오싹오싹하니 소름 돋는 것이다.
━그르아아아!
수는 족히 다섯? 열?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녀석들이 나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덤벼오기 시작했다는 것. 문 안 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미르나가 소리쳤다.
“스켈레톤이에요! 얼른 이 안쪽으로 들어오도록 하세요!”
미르나가 소리치지 않았어도 나 역시 성채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비좁은 틈에 몸을 집어넣고 있는데. 어느덧 나를 향해 다가온 해골 망자들이 내 다리를 붙잡고 반대쪽으로 잡아당긴다.
━그르으아아!!!
“어엇…!?”
덕분에 내 몸은 성채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바깥으로 잡아당겨지는 상태.
꽈아아악.
근육도 없이 뼈밖에 없는 마물들에게 어떻게 이런 힘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저 좀 도와주세요!”
“잡아 당겨줄게요!”
그때 미르나가 나의 손을 덥썩 붙잡았다.
결국 나는 나를 안쪽에서 잡아당기는 미르나와 바깥쪽에서 잡아당기는 해골 새끼들에 의해 몸이 찢어질 것처럼 죽죽 늘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히에엑…!!!! 찢어진다아아악…!!!!”
이대로 가다간 태/오가 되던지 태오오오가 되던지. 아무튼 내 몸이 늘어나고 찢겨질 것은 확실해 보였다.
줄다리기의 줄이 이런 기분을 느낄까?
“뭣들 하는 거야? 진짜 웃기네.”
그때 내 모습을 보며 푸핫-하고 웃음을 터뜨린 엘가가 미르나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잠깐 힘을 주어 잡아당기니까 나의 몸은 비좁은 문틈으로 온전히 들어오게 됐다. 덕분에 나는 늘어날 것 같았던 다리나 허리를 매만지며 안도의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후, 덕분에 살았습니다.”
내 감사 인사에 히히-웃는 엘가.
“그렇게 신나게 잡아당겨졌는데. 키 큰 거 아냐? 다리 길어졌겠네.”
진짜 찢어질 뻔 했는데 무슨 농담을 저렇게 해.
그치만 무척 일리 있는 말이었다.
나중에 가서 키 재 봐야지.
기이이익. 쾅.
그때 나의 등 뒤로 성채의 문이 아주 닫혀버렸다. 그걸 보며 문을 힘껏 밀어보거나 잡아당겨보는 엘가.
“꿈쩍도 안하네. 박살 내 봐야 하나?”
미르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닐 거에요. 바깥에서 느껴지는 사기가 짙어지고 있어요. 아마 정원에 묻혀 있던 옛 그라시아 성터의 병사들이 망자로 계속해서 부활하고 있는 것이겠죠.”
“이 문을 열면 그 놈들이 성채 안으로 들이닥칠 거라는 거지?”
“그런 거죠.”
미르나의 말처럼 바깥에서는 제법 많은 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드륵드륵 문을 긁는 소리부터 알 수 없는 비명들의 연속까지.
방금 우리가 걸어왔던 잡초 우거진 정원이 해골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제법 등골이 오싹해진다.
“아무래도 함정이겠죠. 저희를 이 성채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함정.”
“그렇겠지 뭐. 가자. 교수 찾고. 점수 받아야지. 안 그래?”
횃불을 들어 올린 엘가가 다시금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엘가랑 함께 오게 되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같은 아군이라고 생각하니까 정말 든든하구나.
그런 의미에서 미르나는 별로 하는 게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리치가 된 알레이스터 드레이코를 발란 교수에게 빼앗긴 뒤로 그녀는 여타의 평범한 여자애와 다를 바가 없이 보였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나르미 쪽이 훨씬 도움이 되려나?
나르미는 지금 저 몸의 어딘가에서 깊은 의식으로 잠들어있겠지.
“쉿….”
우뚝 멈춰서는 엘가.
덩달아 나도 미르나도 걸음을 멈추게 됐다.
“조용히 해 봐. 이 복도 앞쪽에 뭔가 있는 것 같으니까.”
차가운 석벽의 복도를 걷고 있었던 엘가가 앞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정체가 궁금하긴 했는데 우리가 굳이 앞으로 나설 것도 없이 그것이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그어어어-.”
그건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얼굴은 무척 창백하고 팔 다리는 흐느적흐느적 한 것이 꼭 좀비 같다. 실제로 좀비와 다를 바 없겠지.
그런 녀석들이 비좁은 통로 앞에서 두어 마리 정도가 우리를 향해 전진해 오는 것이다. 이제 보니 그들은 아크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성 안으로 들어왔던 학생들일까?
“이런 비좁은 복도에서는 도끼 휘두르기가 쉽지 않은데.”
엘가는 도끼를 내려놓고 맨 손을 쥐어보였다. 그런 엘가의 뒤에 서있던 미르나가 외쳤다.
“아직 살아 있을 거에요. 주문에 조종당하는 것 같으니 웬만해서는 죽이지 말아야 해요!”
“죽이지 말라니. 나한테는 그게 더 힘든데.”
꽈아악.
엘가가 주먹을 쥐고 자세를 다잡을 때였다.
나는 지금에서야 내가 실력을 보여줄 차례라고 확신했다. 임프 꼬리 완드를 복도로 향한 채 나는 가볍게 주문을 중얼거려 본다.
─파이몬.
푸슝-!
그러자 압축된 공기의 탄환이 완드의 끝부분부터 총알처럼 발사됐다.
퍽.
“그아억!”
그것을 맞은 아크 학생들의 몸은 크게 고꾸라져 부들부들 떨 뿐. 나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몇 발의 마법을 더 후려 갈겼다.
푸슝, 푸슝-.
퍽, 퍽.
쾅, 콰당.
그렇게 세 명이 쓰러져 정리된 상황에 엘가가 주먹을 거두며 다소 놀랍다는 듯이 “오-.”하고 입을 동그랗게 벌린다.
“쓸 만 한 마법이잖아? 태오, 네가 언제부터 이런 재주를 부릴 수 있었냐?”
엘가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의식을 확인하며 감탄했다. 위력도 명중률도 좋다는 모양이다.
“살상력은 부족하지만. 죽이지 않고 살려서 제압하는 데에는 딱 적당한 것 같네. 영창도 간단한 것 같고. 앞으로 몇 발 더 쓸 수 있을 것 같냐?”
엘가의 물음에 나는 내 내면을 조금 관조하듯 들여다봤다.
이 마법이라는 것은 의외로 상당히 체력을 잡아먹는다.
마르마르의 꼬리 완드가 수도꼭지처럼 마력의 양과 위력을 조절해준다고 쳐도 마법을 영창하고 발사하는 것은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게 만든다.
“앞으로 휴식 없이 사용한다면 한 열 발 쯤 될 것 같습니다.”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쓸 만한데? 이 정도면 바르자의 황금 군대에 취직할 수도 있겠어. 여기 아크에서 배운 거냐?”
바르자의 황금군대면 리오네스 가문이 자랑하는 사병조직이다.
꽤 실력 있는 사람들만을 뽑아서 최고의 장비를 지급해주는 엘리트 부대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곳에 취직할 수 있다는 것은 내 실력이 실전에서도 상당히 쓸모 있다는 뜻이리라. 물론 마법사를 비롯한 주문술사들이 지니는 희소성도 한 몫 하긴 했겠지만 말이다.
물론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습득한 파이몬은 앙그마르 마왕의 고급 파괴 주문.
어지간한 마법사들의 화염구나 바람칼날에 비해 더욱 고급스럽고 훌륭한 주문이다. 내 위계가 낮아서 위력은 약하지만….
“이런 마법을 언제 배운 거냐? 네게 마법사의 재능이 있었다는 것도 신기한데? 이 정도 위력이면 2위계 정도 되려나?”
엘가가 계속해서 나의 주문에 대해 흥미를 가져와서 나는 적당히 설명했다.
“그게, 지금 설명하는 것보다 우선 앞으로 나가는 것이 좋겠네요.”
그렇게 얼버무리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 곳에 오래 있는 건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실제로 우리가 지나쳐왔던 길 뒤쪽으로부터 무언가 알 수 없는 존재의 으르릉거림도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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